소설리스트

대몽주-345화 (345/1,214)
  • 345화. 당(唐)의 황제를 구하다 (1)

    “크아아아!”

    용왕이 분노의 포효를 내지르자 가슴에 금빛 용비늘이 나타나면서 창룡검은 결국 비늘 위를 긋고 지나갔다.

    끼이익!

    고막을 찢을 듯한 날카로운 소리가 울리고, 불똥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러나 경하용왕은 용비늘에 깊게 베인 자국과 가느다란 핏줄기가 슬쩍 배어나왔을 뿐, 별다른 부상을 입지는 않았다.

    그는 그 상태로 심협 쪽을 향해 오른손 두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심협과 갈천청 머리 위의 압력이 문득 사라졌고, 두 사람은 황급히 금제 안으로 달려들었다. 그러나 채 두 걸음도 떼지 않아 등 뒤에서 날카로운 파공음이 울리며 두 줄기 검은 빛이 느닷없이 나타났다. 그 안에는 거무스름한 손톱이 들었다.

    심협은 굳은 얼굴로 곧장 두 손을 휘둘렀다. 푸른 빛 한 줄기가 스쳐 지나면서 어느새 묵갑순이 나타나 아슬아슬하게 검은 손톱을 막아냈다.

    깡!

    묵갑순이 심하게 진동했고, 푸른 빛도 세차게 일렁였다. 그래도 다행히 무너져 내리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때, 심협은 등이 엄청난 열기에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고, 이어서 날카롭기 이를 데 없는 힘 한 줄기가 방패를 뚫고 그의 체내로 전해졌다.

    “쿨럭!”

    그는 울컥 피를 뿜어냈고, 튕겨져 나온 묵갑순에 부딪혀 함께 날아갔다.

    그 순간, 옆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갈천청도 즉시 회색 방패를 꺼냈지만, 안타깝게도 이 방패는 상품법기에 불과해 순식간에 뚫리고 만 것이다.

    다음 순간, 검은 손톱에 가슴이 꿰뚫린 갈천청은 다리가 풀리면서 힘없이 쓰러졌다.

    “갈 도우!”

    심협은 깜짝 놀라 외쳤으나, 지금은 남을 돌볼 때가 아니었다. 그는 등에서 느껴지는 통증을 이를 악물고 견디며 묵갑순을 등에 진 채 돌진했다. 그리고 휙 하는 소리와 함께 마침내 육각 회전판 금제 안으로 들어섰다.

    “흥! 버러지 같은 놈!”

    경하용왕은 콧방귀를 뀌고는 오른손에 푸른 빛을 번득였다. 그러자 푸른 용도(龍刀)가 나타나 심협에게로 매섭게 날아갔다.

    하지만 그 순간, 참룡검이 번쩍하고 나타나 푸른 용도를 막아냈다.

    까깡!

    하늘을 진동시키는 금속의 충돌음 속에, 금색과 푸른색 빛이 서로 격렬하게 부딪치며 주위로 세차게 퍼져 나갔다.

    뒤이어 육화명이 금빛 장검 옆에 번쩍 나타났다. 그 또한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는데, 경하용왕과의 싸움에서 누구도 이득을 보지 못한 게 분명했다.

    육화명은 이를 악물고 참룡검에 법력을 불어넣었다. 검은 마치 뜨거운 태양처럼 눈부신 금빛을 폭증시키며 힘껏 용도를 걷어냈고, 쨍 하는 커다란 소리와 함께 푸른 용도가 튕겨 날아갔다.

    금빛 검망이 세차게 치솟으며 경하용왕의 가슴을 찢고 지나가면서 두 동강을 냈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한 줄기 잔상이었을 뿐, 거의 동시에 경하용왕의 모습이 육화명 뒤에 나타나더니 단숨에 용도를 내리꽂았다.

    그러나 육화명의 몸 역시 눈 깜짝 할 사이에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한편, 심협이 제단의 금제를 뚫고 들어가자마자 천지를 뒤덮는 날카로운 울부짖음과 도검이 허공을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에 그는 고막이 터질 뻔했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허공에서 두 개의 잔상이 반짝이며 서로 쫓고 쫓기는 중이었다. 그들은 모두 번개같이 빨라서 주위 허공이 눈부시게 화려한 검기와 도망(刀芒)으로 가득했다.

    형용할 수 없는 위력의 온갖 기이한 법술과 신통력이 천둥번개처럼 무자비하게 서로를 노렸다. 불시로 웅대한 검기가 공중에서 쏘아져 내려와 땅에 떨어졌다. 이 검기들에 지면에는 거대하고 깊은 구덩이들이 생겨났고, 그 주위로는 거미줄 같은 균열이 생겨났다.

    두 줄기 금빛 검기는 제단 위의 육각 회전판 금제를 두들기기도 했다. 그때마다 금제는 심하게 떨렸지만, 이내 평정을 되찾았다.

    심협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평범한 요상단약을 하나 꺼내 복용한 뒤, 손을 들고 푸른 빛 두 줄기를 쏘아 보내 바깥의 갈천청과 사우흔을 홱 끌어당겼다.

    경하용왕은 육화명과의 격렬한 싸움 때문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기에 심협은 무사히 두 사람을 금제 안으로 끌어올 수 있었다.

    갈천청은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피가 울컥울컥 쏟아져 나오는 것이, 숨이 간당간당해 보였다. 만약 앞서 요상유영단을 복용해 약기운이 몸속에 적잖이 남아 있지 않았더라면 진즉 목숨을 잃었을 터였다.

    심협은 손을 뒤집어 요상유영단이 담긴 약병을 꺼냈다. 남은 단약은 네 개뿐이었다.

    그는 잠시 주저했지만, 이내 하나를 꺼내 갈천청에게 먹였다. 생사를 함께한 동료이자 몇 차례 자신을 구해주기도 한 갈천청이 죽도록 지켜볼 수는 없었다.

    갈천청의 상처부위에 순간 가느다란 하얀 빛이 떠오르더니, 곧 피가 멎고 가닥가닥 혈관과 새살이 자라나 커다란 상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심협은 갈천청과 사우흔을 안전해 보이는 곳에 앉혀놓은 후 제단 꼭대기로 훌쩍 솟구쳐 황제 근처에 이르렀다.

    황제는 회백색 나무 받침대에 묶여 있어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심협은 손을 뒤집어 푸른 단부를 꺼내고는 밧줄을 끊어내려 했다.

    그때 였다.

    “너는……?”

    어느새 깨어난 황제가 놀란 눈으로 심협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는 심협이라 하옵니다. 정 국공과 황목상인의 명을 받아 폐하를 구해드리러 왔사오니 잠시 기다려주시옵소서. 제가 곧 구해드리겠나이다.”

    말을 마친 심협은 도끼로 밧줄을 내리그었다. 그러나 이 밧줄도 보통 물건은 아닌지, 조금도 잘리지 않았다.

    바로 그때, 머리 위에서 육각 회전판 금제가 돌연 회백색 빛을 크게 발하며 기이한 금제의 힘이 파도처럼 몰려와 심협을 뒤덮었다.

    심협은 의식이 아득해지고 눈앞에 무수한 환상이 떠오르면서 전에 금제의 힘에 영향을 받았던 때처럼 끝없는 윤회 속으로 빠져드는 것만 같았다.

    다만 이번에는 금제와의 거리가 가까워서인지 환상도 열 배는 선명했고, 미처 부주진신법을 운공하기도 전에 의식이 멍해지면서 진흙으로 빚은 꼭두각시라도 된 것처럼 멍하니 넋이 나가버렸다.

    황제도 금제의 영향을 받아 똑같이 흐리터분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공에서는 경하용왕이 육화명의 공격을 막아내며 이쪽 상황을 힐끗 보고는 심협이 금제에 제압당하는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육화명에게 붙들려 있으니 심협이 정말로 황제를 구출한다면 그도 막을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는 금제를 설치하면서 비장의 무기를 남겨두었었다.

    그런데 그때, 제단 근처 허공이 일렁이더니 하얀 빛으로 된 문이 난데없이 나타났다. 이어서 그 문 속에서 사람 형체가 하나 날아왔는데, 바로 하얀 옷을 입은 이씨 소녀, 십구공주(十九公主)였다.

    공주는 평소와 사뭇 다르게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상태였고, 눈빛은 차분하면서도 슬기로워 대천세계(*大千世界: 불교에서 끝이 없는 넓은 세계를 일컫는 말)의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나타나자마자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는 즉시 제단으로 다가가더니 육각 금제의 빈틈을 통해 제단 안으로 날아 들어갔다.

    경하용왕은 이 모습을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리고 그때, 경하용왕의 주의가 분산된 순간 육화명은 참룡검을 맹렬히 휘둘렀다. 금빛 검망이 경하용왕의 방어를 뚫고 아랫배를 베었다.

    이번에 경하용왕은 미처 방어하지 못하고 용린방어(龍鱗防禦)를 운공할 겨를 도 없이 아랫배에 기다란 상처를 입었고, 이에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크아아! 하찮은 인간 수사 따위가 고의 행사를 방해하다니! 다 죽여주마!”

    경하용왕이 노여움에 포효하자 푸른 용도가 세찬 도광(刀光)을 발했다. 이어서 그는 돌개바람처럼 몸을 회전하여 순식간에 육화명을 세 번이나 연달아 베었다.

    챙! 챙! 챙!

    세 번의 굉음이 연이어 울렸다! 육화명은 가까스로 모든 공격을 받아냈지만, 그 힘과 기세에 밀려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육화명을 몰아붙여 물러나게 한 경하용왕은 결인한 손으로 아래를 가리켰다. 그러자 제단 위의 육각 회전판 금제가 빠른 속도로 회전했다. 반투명했던 금제의 빛 장막이 순식간에 실체를 갖추고는 눈부신 회백색 빛을 피워냈다.

    강력한 윤회 금제의 힘이 육각 회전판에서 솟구쳐 반경 수십 장이 전부 영향력 안에 놓였다. 또한 육각 회전판 아래 금제의 힘은 더욱 세차게 용솟음쳤다.

    “네가 누구든 금제를 뚫고 나오지는 못하리라!”

    경하용왕은 차갑게 비웃고는 다시 막 공격해오는 육화명과 맞붙었다.

    한편, 육각 회전판 금제 아래 있던 십구공주의 온몸 위로 하얀 빛이 한 겹 떠올랐다. 주위에서는 윤회 금제의 힘이 밀물처럼 몰려왔지만, 그녀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공주는 멀거니 서 있는 심협을 보고는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구부려 그의 미간을 짚었다. 그러자 하얀 빛이 한 줄기 소녀의 손끝에서 쏘아져 나와 심협의 미간으로 스며들었다.

    심협의 몸 위로 하얀 빛이 한 겹 떠오르는가 싶더니, 그는 몸을 부르르 떨었고, 이내 눈빛이 다시 맑아졌다.

    “으음…… 다, 당신은……? 귀하께서 나를 구하신 거요? 도움에 대단히 감사드리오.”

    그는 상대의 정확한 정체는 아직 알지 못했으나, 이미 몇 번 마주친 바 있는 이씨 소녀임을 알아보고는 공수하며 감사를 표했다.

    “나는 그저 약간 손을 써서 도왔을 뿐, 심 소우가 이리도 빨리 깨어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굳건한 의지와 부주진신법 덕분이지. 그 법술은 연신단에서 나온 것이긴 하지만, 쉽게 얻을 수 없는 정묘한 진신법문이니 잘 익히도록 하게. 앞으로 분명 크게 쓰일 날이 있을 테니 말이야.”

    이씨 소녀는 웃음을 머금은 채 말했는데, 그 목소리는 뜻밖에도 굵직한 남자의 것이었다.

    “귀하는 이 도우가 아니군요! 당신은 누구십니까?”

    심협은 안색이 급변해 경계하는 눈초리로 빤히 소녀를 쳐다보며 나지막하게 물었다.

    하지만 상대는 그의 궁금증을 풀어줄 마음이 없는지 하얀 손가락으로 황제를 묶은 밧줄을 짚었다. 그러자 회백색 밧줄 표면에 하얀 빛이 솟아나더니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스스로 꿈틀대며 황제의 혼백을 풀어주었다.

    속박이 풀린 황제의 몸은 나무 받침대에서 떨어져 내렸고, 이씨 소녀가 얼른 다가가 부축하려는데 그림자가 아른아른 스쳐 지나더니 황제의 혼백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심협이 가로채 제단 너머로 날아간 것이다.

    “귀하는 아직 제게 답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대체 당신은 누구이며, 왜 여기에 온 것입니까?”

    심협은 이씨 소녀를 빤히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고, 그의 손에는 붉은 빛이 한층 떠올랐다.

    “자네가 심협이지? 내 정 국공과 황목상인에게서 얘기는 많이 들었네. 나는 원천강이라네. 적이 아니야. 폐하의 신혼이 붙잡혀 갔는데 당장 방법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숙공주 전하의 옥체를 빌렸다네. 이 옥체로 폐하의 혈통에 반응하여 이곳으로 전송된 것일 뿐.”

    이씨 소녀는 화를 내지 않고 공수하며 웃음기를 띠고 말했다.

    “국사 원천강? 하…… 하지만 그걸 어찌 증명할 수 있단 말입니까!”

    심협은 화들짝 놀랐지만, 곧 평정을 되찾고 다시 낮은 소리로 물었다.

    “소우가 도리어 나를 난처하게 하는구먼. 우리는 전에 만난 적이 없으니 내 신분을 증명하기란 쉽지 않을 듯하네. 허나 내가 빙의한 이분은 진짜 대당의 공주님이라네. 이것이 그분의 옥첩금책(*玉牒金冊: 고대 중국황족의 족보)이니 도우가 살펴볼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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