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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344화 (344/1,214)
  • 344화. 배신자를 처단하다 (2)

    도망치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적수진인은 사나운 눈빛으로 멈춰 섰다. 뒤이어 그의 손에서 오화선이 다섯 가지 빛을 번득였다. 이전에 나타났던 진홍색 외에도 황금색, 까맣고 어두운 색, 순백색, 피처럼 붉은 색이 뒤섞였다.

    부채 위의 일곱 가닥 깃털이 하나하나 꼿꼿하게 섰고, 신성한 빛이 흘러 화선 전체가 견줄 데 없는 위세를 뿜어냈다.

    “시건방진 놈 같으니라고, 이거나 먹어라!”

    적수진인은 뒤에서 맹렬히 다가오는 붉은 검홍을 향해 오화선을 있는 힘껏 휘둘렀다.

    거센 바람소리와 함께 족히 30여 장에 이르는 화봉(火鳳)이 깃털부채에서 힘차게 솟아나와 몸 뒤편으로 각각 오색 꼬리 깃을 늘어뜨린 채 붉은 검홍과 부딪쳤다.

    쾅!

    굉음이 울렸다.

    검홍은 번쩍하더니 거대한 붉은 검으로 변해 커다란 화봉과 팽팽히 맞섰다. 양쪽 모두 빛이 하늘로 치솟았고, 서로 조금의 양보도 없이 충돌하여 근처 허공마저도 우르릉 진동했다.

    화봉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다시 맑고 카랑카랑한 울음소리를 내면서 두 날개를 활짝 펼치더니 거대한 광구(光球)로 변했다. 그 표면에도 다섯 가지 다른 색깔 광채가 요동치고 있었다.

    이 광채는 확 줄어들었다가 다시 주변으로 단숨에 불어나면서 눈 깜짝할 새 광구 주위에 다섯 빛깔의 소용돌이가 만들어졌다. 이어 광구에서 내뿜는 영압(靈壓)은 갑자기 몇 배로 폭증해 거의 숨도 못 쉬게 만들 지경이 되더니 우르르 앞으로 몰려갔다.

    큰 소리가 울리고 붉은 검이 한순간 무너져 내려 다시 순양검배로 변했다. 그리고는 빙글 회전하며 뒤로 방향을 틀어 날아왔다. 검배 표면의 영광(靈光)이 어두워진 것이 심한 손상을 입은 게 분명했다.

    한편, 심협과 귀장, 백성도 튕겨 날아가면서 운수진도 일격에 박살이 났다.

    심협은 입가에 흐른 피를 닦으며 예상보다 강한 힘에 놀란 눈으로 적수진인이 손에 든 오화선을 바라보았다. 적수진인은 지난 몇 번의 전투에서 이 부채의 모든 힘을 발휘하지 않았던 것이 분명했다.

    심협의 곁에는 푸른 방패, 묵갑순이 떠 있었다. 만약 방금 재빨리 묵갑순을 꺼내지 못했더라면 심각한 중상을 입었을 터였다.

    반면 방어법기가 없는 귀장과 백성은 오화선의 일격에 제법 큰 부상을 입고 땅바닥에 맥없이 주저앉았다.

    심협은 오화선의 위력에 깜짝 놀라긴 했지만 손을 멈추지 않으며 부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양손을 연달아 휘둘렀다. 그러자 황색, 금색, 백색 빛이 각각 번쩍 스쳐 지나며 오악진형인과 금빛 원보, 건곤대가 일제히 튀어나와 적수진인에게로 날아갔다. 운수진이 사라지자 심협의 법력도 이미 바닥을 드러낸 상태라 이 세 가지 법기를 작동시키는 것도 버거웠다.

    한편, 적수진인은 단번에 심협과 귀장, 백성을 격퇴시키는 데 성공했지만, 자신도 법력 소모가 상당했기에 세 가지 법기가 달려들자 화들짝 놀랐다. 그러나 이내 분노한 표정으로 손에 든 화선을 다시 흔들었다.

    화르륵!

    방금 전보다 한층 희미해진 다섯 빛깔 불꽃이 치솟았다.

    오악진형인과 금빛 원보가 환하게 빛을 발하며 오색화염과 충돌했고, 굉음이 울렸다. 이어서 심협이 결인한 손을 휘두르자 갑자기 하얗고 긴 무지개가 오악진형인의 한쪽 모서리에서 쏘아져 나가 쏜살같이 10여 장을 넘어 오화선 위를 때렸다.

    쩌적!

    오화선에 하얀 얼음 결정이 한 겹 맺히면서 그 위의 빛이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적수진인은 대경실색해 즉시 법력을 밀어넣어 오화선 위의 얼음 결정을 부수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하얀 무지개가 뒤로 휙 움츠러들더니 별안간 거대한 힘을 폭발시켰다.

    “헉!”

    적수진인은 다섯 손가락이 확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고, 다음 순간 오화선이 그의 손을 떠나 쌩 하고 심협의 건곤대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내 오화선! 내 부채!”

    적수진인은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리며 미친 사람처럼 건곤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때, 건곤대 안에서 파란 그림자가 얼핏 스치더니 푸른 비검 한 자루가 번개처럼 쏘아져 나와 적수진인의 머리로 날아갔다.

    적수진인이 흠칫 놀라 정신을 차리고는 손에 붉은 빛을 번득였다. 그러자 붉은 단봉(短棒)이 나타나 푸른 비검 앞을 막아섰다.

    한데 그 순간, 푸른 비검의 좌우 끝부분에서 쩍 하고 가벼운 소리가 울리더니 가느다란 자검 두 개가 튀어나와 질풍처럼 적수진인의 목을 한 바퀴 휘돌았다. 다음 순간, 적수진인의 목이 슬쩍 기우는가 싶더니 이내 머리통이 뚝 떨어져 내렸고, 몸통도 앞으로 쓰려졌다.

    “헉! 헉!”

    그제야 긴장이 풀린 심협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미 법력이 완전히 소진되기 직전이었던 그는 급히 회복 단약을 꺼내 삼키고 가부좌를 튼 채 정제했다.

    곧이어 가닥가닥 법력이 단전에 생겨나면서 창백했던 안색도 차츰 원래대로 되돌아갔다.

    육화명과 경하용왕의 전투 상황을 알 수 없었던 그는 오래 쉬지 못하고 법력이 반쯤 회복되자 곧장 몸을 일으켰다. 우선 통령술을 써서 백성을 동해로 돌려보내고, 귀장을 건곤대로 거둬들인 뒤 적수진인의 시체 곁으로 다가갔다.

    푸른 빛이 적수진인의 시체 위를 한 차례 훑었고, 이내 두 가지 물건이 휘말려 나왔다. 하나는 검붉은 반지로, 바로 적수진인의 저물법기였다.

    다른 하나는 손바닥만 한 회색 옥패였다. 옥패의 한쪽 면에는 지도가 새겨져 있었지만, 온전한 상태는 아니었다. 지도의 앞뒤가 끊어져 있었던 것이다. 또한 그 위에는 지역이 표시되어 있지 않아 어디를 가리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다른 한 면에는 글자 같기도 하고 그림 같기도 한 부호가 두 개 적혀 있었는데, 심협으로서는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아마도 적수진인이 이 물건을 매우 소중히 여긴 것 같군. 한데 어찌 저물법기 안에 챙겨 넣지 않았단 말인가? 꽤나 수상쩍군.”

    그는 옥패를 두어 번 뒤집어가며 살펴봤지만, 아무런 단서도 찾아낼 수 없었기에 우선 임랑환 안에 챙겨 넣고 저물반지도 거둬들였다. 이어서 곧장 열화부를 한 장 꺼내 불을 붙인 뒤, 적수진인의 시체 위에 대충 던져놓고 나서야 몸을 돌려 왔던 길로 날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심협은 다시 제단 근처로 되돌아왔다.

    사우흔은 제단 가까이에 누워 있었는데, 가슴께의 상처는 이미 아물었는지 더 이상 피가 흐르지 않았다. 호흡도 일정해져 이미 요상유영단을 복용한 것이 분명했지만, 아직 깨어나지는 못했다.

    한편, 이때 갈천청은 검은 쇠 정 세 개를 움직여 여러 줄기 검은 그림자로 변하게 한 뒤, 제단 주변에 있는 돌기둥을 공격하는 중이었다.

    콰지직!

    검은 번개가 휘감긴 철 정은 귀를 찌르는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돌기둥을 두들겼다.

    하지만 이 돌기둥들은 도대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무너지거나 갈라질 조짐조차 전혀 없었다.

    심협은 이 광경에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심 도우, 적수진인은 어찌 되었소?”

    심협이 돌아온 것을 보고 갈천청이 손을 멈추며 물었다.

    “죽였습니다.”

    심협이 담담하게 답했는데, 갈천청은 그 말에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다시 떴다. 자신의 팔을 잘랐던 배신자에 대한 분노와 한이 조금은 풀린 듯 표정에 어렸던 차가운 기운도 적잖이 사라졌다.

    “육 도우가 경하용왕을 상대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르니, 어서 이곳의 금제를 깨트리고 황제 폐하를 구해야 하오!”

    심협은 멀리 제단을 힐끗 보며 말했다.

    제단 위에는 황제가 여전히 혼수상태에 빠진 채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지만, 다행히 아무런 해를 입지 않은 듯해 일단은 안도할 수 있었다.

    “좋소. 허나 금제를 풀 때 조심해야 하오. 절대로 저 육각 회전판의 빛 장막을 직접 건드리지는 마시오.”

    “이유가 있습니까?”

    갈천청의 말에 심협이 의아한 듯 되물었다.

    “경하용왕이 떠난 뒤 이곳의 금제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소. 내가 좀 전에 혹시나 싶어 저 회전판의 금제를 탐색해보았는데, 이 금제가 좀 이상하오. 법력이든 법기든 금제에 닿기만 하면 법술을 쓴 사람이 그 금제의 힘에 영향을 받았던 것처럼 곧바로 몽롱하게 변했다가 한참 뒤에야 깨어나오.”

    갈천청이 진중한 목소리에 심협 역시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필경 이 육각 회전판 금제는 경하용왕이 직접 설치한 것일 테니 보통은 아닐 터였다.

    “금제를 건드려서는 안 된다니, 역시 이 돌기둥들을 파괴해야겠군요!”

    심협은 낮은 목소리로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손을 번쩍 치켜 올렸다.

    푸른색과 노란색 보광(寶光)이 그의 손에서 튀어나왔다. 푸른 단부와 오악진형인이었다.

    그에게는 수많은 법기가 있지만, 공격력이 가장 강한 것은 이 두 가지였다. 순양검배의 홍련업화는 생령(生靈)과 귀물 모두에게 뛰어난 효과가 있지만, 견고한 무언가를 공격하는 용도라면 앞의 두 법기에 미치지 못했다.

    두 법기는 갈천청이 공격하던 돌기둥 위를 거세게 때리며 두 차례 커다란 굉음을 냈다. 돌기둥은 움찔 흔들렸고, 표면에는 몇 촌 깊이의 자국이 두 줄기 생겨났다.

    심협은 돌기둥의 견고함을 익히 알고 있었음에도 막상 직접 겪어보니 마음이 더욱 무거워졌다.

    하지만 그는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한 터라 다시 두 법기를 움직였다.

    갈천청도 번개가 감긴 철 정들로 공격을 이어갔다.

    두 사람이 힘을 합치자 몇 배는 효과가 있었는지 반 각 정도 지났을 때에는 그 튼튼한 돌기둥이 반쯤 파괴되어 떨어져 나갈 듯 흔들렸다.

    그때, 천둥이 치는 것처럼 노기등등한 포효가 멀리서 들려왔다.

    “멈춰라!”

    동시에, 검푸른 둔광이 한 줄기 저 높은 하늘에 나타나 번개처럼 날아왔다.

    “저 늙은 것이 돌아왔습니다. 최후의 일격을! 어서요!”

    심협은 두 눈을 부릅뜨고 온몸에 파란 빛을 환하게 내뿜으며 두 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러자 오악진형인이 노란 빛을 활짝 피워내며 수십 장 크기의 다섯 손가락 모양 거봉을 이루고는 엄청난 기세로 돌기둥을 내리쳤다.

    꽈르릉!

    동시에 푸른 단부는 똑바로 쳐다보기 힘들 정도로 눈부신 번개를 빛내며 돌기둥의 손상된 곳을 내리찍었다.

    갈천청도 양손을 빠르게 결인했다. 그러자 검은 쇠 정 표면에 검은 빛이 번쩍이더니 놀랍게도 하나로 합쳐져 칠흑같이 검은 양날 송곳이 되었다. 갈천청은 나지막하게 기합을 내지르며 돌기둥을 향해 양날 송곳을 힘껏 던졌다.

    꽝!

    귀를 찌를 듯 날카로운 소리가 터져 나오면서 양날 송곳은 검은 번개로 변해 튀어나가 순식간에 돌기둥에 이르렀다. 송곳이 지난 곳마다 허공에는 하얀 자국이 희미하게 그려졌다.

    양날 송곳은 검은 번갯불을 번쩍이며 돌기둥의 부서진 곳을 맹렬히 찔렀다.

    두 사람의 공격은 거의 동시에 돌기둥을 두들겼다. 하늘을 뒤흔드는 굉음이 울렸고, 근처 허공이 끊임없이 격렬하게 요동치며 한 차례 광풍이 일어났다.

    돌기둥은 극심하게 진동하더니 기이한 소리와 함께 중간부터 갈라져 위쪽 반 토막이 날아가 버렸다.

    그 순간, 육각 회전판 금제의 한쪽 모서리가 내려앉으면서 빈틈이 드러났다.

    심협은 크게 기뻐하며 번개처럼 금제 안으로 날아들었다. 갈천청도 마찬가지였다.

    “이 쥐새끼 같은 놈들! 감히 고의 대사를 망치다니! 목숨을 내놓아라!”

    검푸른 둔광이 눈 깜짝할 사이에 제단 상공으로 날아오더니 경하용왕의 모습이 나타났다.

    이때 경하용왕은 꽤나 낭패한 모습이었는데, 몸에 걸친 옷은 갈기갈기 찢어진 데다 군데군데 입은 부상에 피로 절반쯤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러나 그 기세만큼은 전과 그리 큰 변화가 없었다.

    그는 왼손을 번쩍 치켜들고 다섯 손가락을 쫙 펴서 아래쪽 허공을 움켜쥐었다.

    쿵!

    둔탁한 소리가 울리더니 믿기 힘들 만큼 엄청난 힘이 공중에서 아래로 내리눌렀다.

    심협과 갈천청은 순간 큰 산에 등줄기를 짓눌린 것처럼 조금도 움직이기 힘들었다.

    그런데 그때, 경하용왕 뒤에서 찬란한 금빛이 한 줄기 번개처럼 날아들어 용왕의 가슴팍을 찔렀다. 금빛 속에는 기이한 형태의 금빛 장검이 있었는데, 바로 참룡검이었다.

    경하용왕은 놀라면서도 분노해 재빨리 한쪽으로 피했지만, 완전히 피하지는 못해 가슴을 칼끝에 찔리고 말았다.

    “크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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