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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343화 (343/1,214)
  • 343화. 배신자를 처단하다 (1)

    화르륵!

    푸른 도끼 그림자가 검은 불기둥 위를 벤 순간, 불타는 소리와 함께 사라져버렸다.

    심협은 꼼짝도 할 수 없었지만, 오감은 그대로였기에 이 모든 것을 보았다. 그 순간, 그의 머릿속에 연신비전이 보존되어 있던 나무상자 안의 검은 불꽃 금제가 떠올랐다.

    그 둘은 외형도 거의 차이가 없었고, 위력도 비슷했으며, 불태우지 않는 것이 없었으니 분명 같은 종류의 화염일 터였다.

    “죽어라!”

    단양자는 꼼짝도 하지 않는 심협을 향해 두 손을 맹렬히 흔들었다. 그러자 검은 불기둥이 하늘로 치솟으며 거대한 화룡(火龍)으로 변해 매섭게 심협을 덮쳐왔다.

    그때, 벼락 같은 호통이 떨어졌다.

    “우리 주인님을 해칠 생각 마라!”

    귀장은 운수진에 전념하느라 연신단의 혼수들이 심협의 몸에 침입하는 광경을 보지 못했으나, 단양자가 심협에게 달려드는 것은 볼 수 있었다. 이에 두 손에서 빛을 번득이며 하얀 기운을 응결시켜 만든 전과(*戰戈: 중국 고대 무기 중 하나로 ‘ㄱ’자로 굽은 창)를 휘둘렀다.

    놀랍도록 차가운 힘을 품은 전과는 바람을 맞으며 몇 배로 불어나 검은 화룡의 머리를 내리찍었다. 그러자 끄트머리가 부서져나가긴 했지만, 대신 검은 화룡도 움찔 멈춰 섰다.

    화룡은 몸을 비틀고 꼬리를 휘둘러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전과를 흩어버린 뒤 다시 심협에게로 돌진했다.

    그 순간, 심협의 눈에 한 줄기 기이한 빛이 솟아났다. 귀장이 검은 화룡을 공격하는 동안 세 사람은 함께 운수진 안에 들어오게 됐는데, 법진으로 연결된 법력을 통해 굳어 있던 체내 법력을 순간 힘껏 움직였다.

    심협은 몸에 투명할 정도로 엷은 파란 빛을 띠며 오른손 검지로 전방 어딘가를 끌어 당기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그의 곁 허공에 떠 있던 순양검배가 미약한 붉은 빛을 발하며 쉭 하고 날아 돌아와 단전 안으로 사라졌다.

    그가 의식을 통해 동원할 수 있는 아주 약간의 법력을 순양검배에 주입하자 검배가 붉은 빛을 맹렬히 내뿜으며 이글이글 타오르는 기운이 몰려나왔다.

    순양검배의 작열하는 기운은 홍련업화의 힘을 띠고 있어 두 혼수의 힘을 억눌렀고, 그 기운이 지나는 곳마다 얼어붙었던 법력이 금세 자유를 되찾았다.

    그런데 이때, 검은 화룡 역시 심협의 코앞까지 날아와 커다란 입을 쩍 벌려 단숨에 집어삼키려 했다.

    절체절명의 순간, 심협은 파란 빛을 발하며 발로 땅을 냅다 박차고 뒤로 날아갔고, 동시에 푸른 단부를 거세게 휘둘렀다.

    머리통 굵기의 푸른 번개 여러 줄기가 단부에서 뿜어져 나와 검은 화룡에게 내리꽂혔다.

    꾸르릉! 쾅!

    수차례 우렛소리가 터져 나오면서 푸른 번개는 사라졌지만, 화룡 역시 나가떨어졌다.

    심협은 양손을 결인하고 법력을 최대한으로 운행해 순양검배에 불어넣었다.

    치익!

    달궈진 쇳덩이에 물을 붓는 듯한 소리와 함께 작은 홍련업화 한 떨기가 순양검배 위에 나타나더니, 심협의 체내로 빠르게 퍼져 나갔다.

    ‘안 돼!’

    ‘끄아악!’

    두 차례 처절한 비명이 심협의 머릿속에서 거의 동시에 울려 퍼졌다.

    뒤이어 심협의 몸에서 만신창이가 된 검은 그림자 두 개가 솟구쳐 나왔다. 그들은 두 팔을 휘저으면서 도망치려 했지만, 심협의 단전에서 가닥가닥 붉은 화염이 쏘아져 나와 마치 밧줄처럼 휘감은 채였다.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 때는 그리 되지 않을 것이다!”

    심협이 싸늘하게 내뱉었고, 다음 순간, 그의 단전 속 순양검배가 다시금 빛을 발했다. 그러자 붉은 연꽃 모양 불빛이 단전에서 피어올라 검은 그림자들을 감싸며 가볍게 회전했다.

    두 검은 그림자는 비명을 내지르며 일시에 몸이 무너져 내려 검은 빛으로 변하더니, 홍련의 불길에 휩싸여 다시 심협의 체내로 끌려 들어갔다.

    두 검은 그림자가 사라지자 심협의 체내 경맥에 있던 법맥은 완전히 정상을 되찾았다. 뿐만아니라, 그는 순수한 신혼의 힘이 몸 이곳저곳에서 솟구쳐 머릿속으로 모여들더니 자신의 신혼에 녹아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심협의 신혼은 빠르게 강화되어 눈 깜짝할 사이에 무려 3할이나 더 강해졌다.

    그는 속으로 크게 기뻐했다. 이 순수한 신혼의 힘은 두 연신단 혼수가 홍련업화에 멸살당한 뒤 신혼의 정수가 남은 것으로, 그에게는 예상치 못한 득이었다.

    ‘혼수가 내 신혼에게는 이리도 좋은 보약이구나. 앞으로 연신단 혼수들을 상대하게 되면 그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겠어!’

    신혼의 힘은 비록 법력만큼은 아니지만, 어쨌든 천지의 영기를 흡수하거나 단약을 복용해 끌어올릴 수 있다. 또한 신혼의 힘은 형체도 없고 실체도 없어 조금 끌어올리는 것도 힘겨웠다. 신혼을 단련하는 법문을 지녔다 해도 반드시 순서대로 차근차근 수련해야만 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신혼의 힘이 3할이나 급상승했으니 기쁜 게 당연했다.

    “어찌 이럴 수가!”

    단양자는 우세를 점했던 두 검은 그림자를 심협이 단숨에 해치워버리는 것을 보고 저도 모르게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지만 그는 재빨리 냉정을 되찾고 손가락을 구부려 심협을 가리켰다. 그러자 앞서 나가떨어졌던 검은 화룡이 다시 살기등등하게 달려들었다.

    심협은 싸늘한 얼굴로 오른손을 결인했고, 손가락 사이로 파란 빛이 거세게 뿜어져 나왔다. 거의 동시에 근처 명하에 느닷없이 거친 파도가 넘실대더니 하늘을 뒤덮을 듯한 거대한 물결이 솟아올랐다.

    “가랏!”

    심협이 손을 휘두르자, 높이가 족히 백 장은 되어 보이는 거대한 파도가 커다란 손처럼 기슭을 덮치며 단양자를 내리치려 했다.

    단양자는 미간을 찌푸리고 결인한 양손을 황급히 휘둘렀다.

    심협에게 달려들던 검은 화룡은 멈칫하더니 번쩍 단양자 앞으로 되돌아 왔고, 용의 형체를 이루던 검은 화염이 화르르 펼쳐지면서 검은 불의 장벽으로 변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거대한 물결이 불의 장벽 위를 때리자, 어마어마한 명하의 강물이 수증기로 변했다.

    하지만 명하 강물은 너무도 많아서 검은 불의 장벽만으로 다 막아내기는 힘들었기에 단양자는 주춤주춤 물러났다.

    “겨우 그깟 화염 따위로 네가 천하무적이 될 것이라 여겼더냐!”

    심협은 버럭 호통을 치며 손을 뒤집어 순양검배를 꺼낸 뒤 법력을 주입했다.

    용 울음소리 같은 검명이 울리면서 순양검배가 격렬히 진동했고, 윗면의 붉은 검광이 미친 듯 불어나 눈 깜짝할 사이에 길이 백 장의 붉고 거대한 검으로 변했다. 광포한 검기가 종횡무진 날아다녔고, 검신에서는 연꽃 모양의 붉은 화염이 치솟았다.

    “베어라!”

    심협이 손가락을 모아 휘두르자 커다란 붉은 검이 검은 불의 장벽과 그 뒤에 있던 단양자를 세차게 베었다. 그 방대한 검세(劍勢)는 능히 하늘도 단칼에 벨 것만 같았다.

    단양자는 크게 놀랐지만, 침착하게 양손을 결인해 검은 불의 장벽을 가리켰다.

    검은 불의 장벽은 구부러지면서 활 같은 보호막을 이루어 그의 몸을 감쌌다.

    뒤이어 단양자는 보호막 안에서 노랗고 커다란 번(幡)을 꺼낸 뒤, 입을 벌리고 순수한 법력을 내뱉어 그 안으로 녹아들게 했다.

    번 위의 9도 금제가 환하게 밝아지면서 노란 빛이 활짝 피어올랐고, 커다란 번이 녹아서 실체가 있는 듯한 노란 구름으로 변해 그의 머리 위로 떠올랐다.

    하지만 단양자가 무언가를 더 해보기도 전에 거대한 붉은 검이 날아 내려와 화염 보호막 위를 내리찍었다.

    쫙!

    검은 화염 보호막은 종잇장처럼 맥없이 잘려나갔다. 그러면서도 표면에 홍련업화가 번뜩이는 붉은 검신에는 아무런 영향도 없었다.

    “마, 말도 안 돼!”

    단양자는 경악성을 내뱉었다.

    그에게 붙어 있는 작은 악귀들이 뿜어낸 검은 화염은 많은 음살의 기운을 모은 뒤, 일종의 헌제술(獻祭術)로 산 사람을 제물로 바치고 음살의 기운과 융합해야만 만들어낼 수는 흑정마화(黑精魔火)였다.

    이토록 만들어내기 힘든 이 불꽃은 일단 만들어지면 못 태우는 것이 없다 할 만했고 법기를 부식시키는 능력까지 있었다. 이 불은 지화(地火)의 반열에 들지는 못하지만 위력이 어지간한 인품영화보다 훨씬 뛰어났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엿한 연단 대가인 단양자가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무릅쓰면서까지 오귀부혼이라는 사술을 연마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단양자는 마화를 만들어내고부터 이 불길로 셀 수 없이 많은 강적들을 처치해왔지만, 심협의 붉은 검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거대한 붉은 검은 화염 보호막을 베어버린 뒤에도 멈추지 않고 커다란 번이 변해 만들어진 노란 구름 위로 날아들었다.

    꽈르릉!

    엄청난 폭발음에 이어 노란 구름이 격렬하게 요동치면서 강렬한 빛을 내뿜었지만, 결국 붉은 검에 잘려나가면서 잔뜩 겁에 질린 단양자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가 미처 어떤 행동을 취하기도 전에 거대한 붉은 검이 떨어져 내렸다.

    퍼펑!

    단양자의 머리통과 반쪽 가슴이 단숨에 폭발하며 피 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이어 붉은 검은 허공에 멈춰 선 채 섬뜩하게 번쩍였다.

    단양자의 반쪽짜리 몸통은 한 차례 휘청거리더니 이내 털썩 쓰러지고 말았다.

    가까이에서 이를 본 적수진인은 경악했고, 손을 뒤집어 새빨간 깃털부채를 그러쥐고는 갈천청을 향해 부쳤다. 그러자 오색 불기둥이 튀어나와 성난 파도처럼 날아들었고, 이 불기둥 속에서는 무시무시한 열기가 뿜어져 나와 반경 수십 장을 온통 불바다로 만든 것만 같았다.

    갈천청은 낯빛이 약간 변하여 뒤로 피했다.

    적수진인은 그 틈에 화선을 거둬들이고는 몸을 휙 흔들었다. 그러 몸 표면에 불꽃 같은 붉은 빛이 치솟았고, 다음 순간 그의 온몸이 불꽃의 무지개처럼 하늘을 가르며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아났다.

    갈천청은 뒤쫓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이미 늦은 터라 포기해야 했다.

    “제가 쫓을 터이니, 수고스럽더라도 갈 도우께서는 이 단약으로 사 도우를 좀 도와주십시오.”

    심협은 다시 요상유영단 하나를 꺼내 갈천청에게 던져주었다. 그리고는 답을 듣기도 전에 손으로 검결를 맺어 거대한 붉은 검을 불러내 올라탔고, 백성과 귀장까지 태운 채 흐릿한 검홍이 되어 날아갔다. 그 속도는 적수진인의 불꽃보다 훨씬 빨랐다.

    둘 다 워낙 빨라서 거의 눈 한 번 깜빡일 새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멀리 하늘가로 사라졌다.

    갈천청은 빠르게 멀어지는 심협의 뒷모습을 다소 복잡한 얼굴로 잠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이번 임무를 수행하는 몇 사람 중에 자신의 수련 경지가 가장 높았지만, 당초 황목상인은 육화명에게 인솔자 역할을 맡겼다. 그는 이를 받아들였지만, 사실 속으로는 퍽 마뜩찮게 여겼다. 한데 지금 보니 육화명과 심협 모두 자신보다 훨씬 윗길이 아닌가! 퍽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그는 머리를 흔들며 그 생각을 털어내고는 사우흔에게로 다가갔다.

    * * *

    심협은 운수진의 힘으로 순양검배를 움직이며 어검술을 시전해 몇 리를 단숨에 날아갔다. 홀로 어검술을 시전할 때보다 열 배는 더 빨라서 거의 출규기 수사의 속도에 가까웠고, 주위 풍경이 빠르게 스쳐갔다.

    어검술은 매우 높은 경지의 비둔법(飛遁法)이라 인검통달(人劍通達)의 경지에 달해야만 시전할 수 있다. 그게 바로 그가 진즉 자모검이라는 비검을 얻고도 순양검배가 만들어질 때까지 어검술을 수련하지 못한 이유였다.

    본래 운수진의 힘으로 어검술을 시전하는 데에는 여러 어려움이 따른다. 법진의 힘이 강하기는 해도 모두 그 자신의 법력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심협은 신혼의 힘이 크게 증가한 상태라 예전보다 훨씬 순조롭게 여러 신통력을 발휘했고, 어검술 또한 단번에 성공할 수 있었다.

    적수진인도 비술을 써서 전력으로 달아났지만, 심협의 어검술에 비하면 한참 느렸기에 거리는 빠르게 좁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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