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342화 (342/1,214)

342화. 계략에는 계략으로

단양자가 방패를 꺼내자마자 굵은 벼락이 그 위에 떨어졌다.

쾅!

굉음과 함께 청동방패는 사분오열되었지만, 두 줄기 벼락도 사라졌다.

적수진인이 손에 든 깃털부채는 붉은 빛을 크게 내뿜었고, 화르륵 소리를 내더니 오색 불기둥이 맹렬히 솟구쳐 오르다가, 커다란 붉은 화봉(火鳳)으로 변해 굵은 벼락과 맞부딪쳤다.

꽈르릉!

폭발음이 울리면서 붉은 화염과 하얀 벼락이 격렬히 충돌하더니, 마치 끓는 기름에 찬물을 끼얹은 듯 폭발했다. 처음에는 우열을 가릴 수 없는 팽팽한 양상을 보였지만, 거대한 두 줄기 벼락은 빠르고 맹렬한 일격 뒤에 힘을 잃어 곧 붉은 화봉에 격파 당했다.

그때, 저 앞에 사람 그림자가 아른거리더니 갈천청 옆에 그림자 하나가 나타났다. 바로 심협이었다.

그는 창백한 안색으로 의식을 잃은 사우흔을 들여다보고는 이내 시선을 거두고 회복 유영단을 꺼내 갈천청에게 던져주었다.

“천년영유로 만든 치유 단약입니다. 내상과 외상에 효과가 뛰어나지요.”

심협이 담담히 말했다.

갈천청은 손을 들어 유영단을 받고 안색이 조금 변하더니 곧 고개를 젖히고 단약을 삼켰다. 그러자 팔이 잘려나간 부분에 하얀 빛이 떠오르고 붉은 피가 순식간에 멎었고, 상처에서 새살이 꿈틀거렸다 .그러더니 놀랍게도 새로운 피와 살이 끊임없이 돋아났다.

“대단히 감사하오, 심 도우.”

갈천청이 유영단의 효력에 놀라면서도 낮은 목소리로 감사를 표했다.

한편, 단양자와 적수진인은 심협의 출현에 몹시 놀라 즉시 먼 곳을 돌아보았는데, 몸과 머리가 분리된 흑의 수사를 발견하고는 경악하고 말았다.

“우리는 모두 대당의 수사이고 이번 임무 역시 내내 서로 도우며 예까지 왔는데, 어찌하여 칼끝을 돌려 우리를 공격하는 겁니까?”

심협이 싸늘한 눈으로 단양자와 적수진인을 노려보며 물었다.

“심협, 너는 항상 총명하지 않았더냐? 어찌 그런 어리석은 질문을 하느냐?”

적수진인이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당신들은 연신단 사람이었군요! 정 국공께서 당신들을 그리 신임하셨건만, 두 분은 왜 배반하시려는 겁니까? 설마 헌원각과 취보당이 정말 연신단의 세력이란 말입니까?”

심협이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

“속지 마시오! 저놈은 시간을 끌며 법력을 회복하려는 게요! 공격합시다!”

단양자가 싸늘하게 외치더니 손을 번쩍 들어 곁에 있던 붉은 비검 세 자루를 날렸다. 비검들은 세 줄기 붉은 빛으로 변해 심협을 덮쳐왔다.

적수진인도 심협의 속셈을 깨닫고는 속으로 욕을 퍼부으며 공격에 나섰다. 그러나 그는 붉은 깃털부채를 쓰지 않고, 어떤 짐승의 발로 만든 듯한 암홍색 법기로 심협과 갈천청을 움켜쥐려 했다.

심협은 한숨을 내쉬었다. 흑의의 수사와 한바탕 대전을 치른 데다 쉴 틈도 없이 낙뢰부를 여덟 장이나 쓴 터라 법력 소모가 심했다. 이쪽으로 오기 전에 이미 회복 단약을 복용하긴 했지만, 이를 정제하고 법력을 회복할 시간이 필요해 일부러 적수진인에게 말을 건 것이다. 한데 안타깝게도 단양자, 저 늙은 여우를 속일 수는 없었다.

심협은 이를 악물고는 소매를 떨치고 묵갑순을 꺼냈다.

땅! 땅!

단양자의 시뻘건 비검과 적수진인의 붉고 날카로운 발이 묵갑순과 충돌했다.

심협은 다른 한 손으로 푸른 단부를 꺼내 단양자를 향해 내리찍었다.

꽈르릉!

커다란 우렛소리가 울리면서 푸른 번개 아홉 줄기가 단양자에게로 날아들었다. 이 번개들은 매우 광대하고 밝아서 눈이 시리다 못해 주위 상황도 일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단양자는 지금껏 지켜본 결과 심협의 전투 방식을 잘 알고 있었기에, 가슴이 철렁해져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그런데 그 순간, 돌연 빠르게 약해지더니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이 아홉 줄기 번개는 뜻밖에도 빈 껍데기였던 것이다.

심협은 싸늘한 미소를 띤 채, 중얼중얼 주문을 읊으며 왼손을 결인했다. 그러자 손바닥 주위에서 난데없이 물줄기 하나가 응집되어 빠른 속도로 통령 통로를 만들어냈다.

뒤이어 백성(白星)이 그 안에서 튀어나왔고, 동시에 건곤대에서는 하얀 빛이 일렁이더니 짙은 회백색 기체와 함께 귀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귀장은 겉모습이 확 달라져 검었던 몸은 회백색이었고, 기운도 많이 바뀌어 있었다. 게다가 훨씬 강력해져 응혼 중기 절정에 이르렀는데, 응혼 후기까지 한 걸음 남은 상태였다. 그 기운도 달라져 이제 단순한 귀력(鬼力)이 아니라 얼음처럼 차가운 기운이 더해져 있었다. 명한음기를 받아들인 결과임이 분명했다.

“운수진을 쳐라!”

심협은 손을 휘둘러 하얗고 작은 깃발 여섯 개를 꺼내 귀장과 백성에게 두 개씩을 날려 보냈다. 앞서 지하 석실에서 폐관할 때 귀장과 백성에게 운수진의 사용법을 전수해 주었기에, 그들은 깃발을 받자마자 곧 법력을 그 속에 주입했다.

“젠장! 속았군!”

단양자는 노발대발하며 온힘을 다해 되받아쳤지만, 방금 지레 겁을 먹고 너무 멀리 물러났던 터라 제때 반격할 수 없었다.

적수진인은 비교적 심협과 가까이 있었기에 상대의 연이은 행동들을 보았다. 그는 심협이 무엇을 하려는지 모르긴 했지만, 분명 좋은 일은 아닐 것임을 알고 곧바로 결인하여 그쪽을 가리켰다.

새빨갛고 날카로운 짐승의 발 두 개가 몇 배로 불어나 몇 장에 이를 정도로 거대해졌는데, 그 끄트머리에서 길이 1장쯤의 붉은 빛이 쏘아져 나와 심협을 홱 잡아채려 했다.

심협은 이 공격을 막기 위해 묵갑순을 움직였으나, 약간 늦은 감이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두 줄기 검은 빛이 날아왔는데, 검은 쇠밧줄 두 가닥에 검은 번개가 휘감겨 있었다.

쩔그렁 하는 소리와 함께 이 검은 쇠밧줄이 시뻘건 짐승의 발을 막아냈다. 갈천청이 나선 것이다.

심협은 갈천청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전력으로 운수진을 작동시켰다.

우르릉! 콰쾅!

하얗고 환한 세 줄기 빛이 그의 몸과 백성, 귀장의 몸에서 폭발하며 서로 이어져 눈 깜짝할 사이에 하얀 빛의 고리를 이루더니 세 사람을 뒤덮었다.

백성과 귀장이 운수진에 주입한 요력과 귀력이 법진의 전환을 거쳐 심협에게로 몰려들었다.

바닥을 보이던 법력이 금세 보충되자, 심협의 몸 주위로 푸른 빛이 크게 일어나 성난 파도처럼 사방으로 맹렬히 돌격했다.

단양자는 빠르게 질주해 오다가 도리어 성난 파도 같은 푸른빛에 정면으로 부딪히고 말았다.

푸른 빛은 심협과 백성, 귀장 세 사람의 힘을 모은 것이라, 단양자는 이 푸른빛에 부딪히자마자 만 근(斤)이나 되는 거대한 물결에 얻어맞은 것처럼 형편없이 나가떨어졌다.

심협은 체내에서 들끓으며 솟구쳐 나오고 싶어 안달하던 법력을 푸른 단부에 주입했다. 그러자 단부에서는 이전보다 몇 배는 눈부신 푸른 번개가 폭발하여 단양자를 향해 높이 치솟았다.

꽈르릉!

하늘에서 커다란 천둥소리가 터지면서 푸른 번개가 휘감긴 집채만 한 도끼 그림자가 단양자의 머리 위에 나타났다.

무시무시한 천둥번개의 파동은 낙뢰부보다도 훨씬 강력했고, 도끼 그림자는 벼락과 같은 기세로 매섭게 떨어져 내리며 단양자를 두 쪽으로 쪼개버릴 듯했다.

단양자는 기겁하여 재빨리 결인하고는 허공을 가리켰다. 그러자 세 자루 붉은 비검이 날아올라 번개가 휘감긴 도끼 그림자를 향해 날아갔다. 동시에 반대편 손에서 하얀 빛이 연이어 번쩍이더니, 하얀 고리 두 개가 더 나타났다. 그 위에 어린 섬뜩한 한기만 보더라도 범상한 물건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가랏!”

단양자가 낮게 외치며 손을 휘두르자 두 개의 하얀 고리는 그의 손을 떠나 하얀 빛으로 변하여 허공의 도끼 그림자를 향해 날아갔다.

펑! 퍼펑! 펑!

굉음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붉은 비검들과 하얀 고리들 모두 말끔히 잘려나가 폭죽이 터지듯 폭발했다.

푸른 도끼 그림자는 붉은 비검과 하얀 고리들을 벤 뒤에도 무사했지만, 빛도 약해졌고 속도도 크게 줄었다. 그럼에도 떨어져 내리는 기세만은 맹렬했다.

단양자는 그 틈에 노란 그림자를 번쩍이며 커다란 황색 번(幡)을 꺼내려 했다.

이때, 심협의 발아래에서 검은 그림자 두 줄기가 바닥을 뚫고 솟구쳐 번쩍하고 그의 몸속으로 사라졌다.

‘이런! 아까 사라진 그자들이다! 잊고 있었어!’

가슴이 덜컥 내려앉은 심협이 뭔가를 해보기도 전에, 그는 다음 순간 갑자기 움직임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체내 경맥은 얼음물을 들이부은 듯 얼음장처럼 차가워졌고, 법력 운행도 비정상적으로 느려져 꼭 얼어붙은 것만 같았다. 여전히 푸른 단부를 휘두르던 자세 그대로였다. 단양자의 머리 위에 떠 있는 도끼 그림자도 허공에 멈춰 섰지만, 그렇다고 사라지지도 않았다.

‘네 법력은 고강하고, 법기 또한 강력하나, 안타깝게도 우리에게 빙의되면 누구도 너를 구할 수가 없지! 낄낄낄, 얌전히 신혼을 내놓아라.’

차갑고 교활한 웃음소리가 심협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는 음침한 두 줄기 혼력(魂力)이 뇌리로 침입하여 그의 신혼을 차지하려 했다.

‘안 돼! 이들은 연신비전에 기록된 혼수(魂修)다!’

심협은 움찔 놀랐고, 연신비전에 기록된 신비한 수련법이 번뜩 스쳐갔다.

연신단에는 신혼의 힘을 수련하는 데 전념하는 수사들이 있다. 그들은 수많은 방법으로 신혼을 단련하여 더욱 강해지게 만드는데, 응혼기, 심지어는 벽곡기에도 신혼이 몸을 떠나게 만들 수 있다.

몸을 떠난 넋은 천둥번개와 불꽃 등에 취약하다는 약점이 있지만, 대신 여러 가지 신기한 능력을 지닌다. 그중 하나가 지금처럼 빙의하여 다른 사람의 혼을 차지하는 것이다.

‘내 신혼을 빼앗으려고? 어림도 없지!’

심협은 침착하게 부주진신법(不周鎭神法)을 운공했다. 그러자 머릿속 신혼의 힘이 순간 한곳에 모여들어 하늘에 이어지고 땅과 맞닿는 거대한 봉우리의 모습으로 응결되었다. 이에 그의 뇌리에 침입한 음침한 혼력들은 아무리 애를 써도 신혼의 산봉우리에 침입할 수가 없었다.

‘부주진신법! 네가 어찌 우리 연신단의 최고 법문을 알고 있는 것이냐!’

약간 쉰 목소리가 그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는데, 매우 놀란 듯했다.

‘네놈은 정말이지 괴상하구나!’

좀 전의 싸늘한 목소리도 경악하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심협은 그들의 물음에 답할 마음이 없었기에, 말없이 전력으로 무명공법을 운공했다. 법력을 회복하기 위함이었다. 법력을 움직일 수만 있다면, 그는 순양검배를 체내로 거둬들여 홍련업화의 신통력으로 두 연신단 혼수들을 전혀 힘들이지 않고 태워죽일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두 혼수가 신통력으로 그의 경맥을 얼어붙게 만들었는지, 아무리 무명공법을 운공해보아도 법력을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

‘헛수고하지 마라! 우리 두 사람이 동시에 구한응맥법(九寒凝脈法)을 시전했으니 출규기 수사라 해도 법력을 동원할 수 없다!’

쉰 목소리가 계속해서 말했다.

‘부주진신법을 할 줄 아니 우리가 네 신혼을 집어삼킬 수 없다만, 네놈을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 수는 있지. 그럼 단양자가 네놈을 죽일 것이다!’

싸늘한 목소리가 다시 한번 울리자 심협의 경맥 속 얼음처럼 차가운 기운이 더욱 짙어졌다.

심협과 두 혼수는 몇 차례나 맞붙었지만, 실제로는 눈 한 번 깜박일 시간이 지났을 뿐이었다.

한편, 단양자도 심협의 체내로 검은 그림자가 들어가는 것을 보고는 눈을 번득이며 손에 든 노란색 번을 거둬들이더니 갑자기 말없이 입고 있던 옷을 벗었다. 그의 앞가슴과 등 뒤에 열 개의 얼굴이 나타났는데, 하나같이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진 것이 마치 악귀 같았다.

이 얼굴들에서 검은 빛이 번쩍이며 흉살의 기운이 거세게 뿜어져 나왔고, 그 속에서 검은 귀신 그림자가 줄줄이 솟구쳐 나와 열 마리의 작은 악귀가 되어 동시에 입을 쩍 벌렸다. 그러자 검은 불꽃 열 개가 작은 악귀들의 입에서 튀어나와 검은 불기둥으로 응결되더니 도끼 그림자로 달려들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