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338화 (338/1,214)

338화. 명석교(冥石橋)

아직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 심협을 돌아보는데, 날카로운 울부짖음이 저 앞에서 들려오고, 어둠 속에서 줄줄이 검은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여러 마리의 검은 귀금(鬼禽)들이었다.

길이는 5장 남짓에 몸 전체가 시커멓고, 커다란 두 눈은 핏빛으로 흉악하게 번득였다. 거의 몸뚱이만큼 길고 마치 날선 검처럼 아주 날카롭고 뾰족한 부리 때문에 더욱 기괴해 보였다.

이 귀금들은 두 날개를 몸통 옆에 모으고 몸을 꼿꼿하게 세운 채, 마치 거대한 검은 화살처럼 날아오고 있었다.

일행은 이곳에서 시야가 좁았지만, 다행히 심협이 주의를 준 덕분에 대비하고 있었기에 즉시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제때에 이 거대한 날짐승들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육화명의 비주는 부피가 큰 데다 사우흔과 함께 타고 있다 보니 약간 반응이 늦어져 검은 귀금의 날카로운 부리에 찔리기 직전이었다.

그때, 한 줄기 푸른 번갯불이 날아와 검은 귀금에게 내리 꽂혔다.

콰르릉!

굉음이 터져 나오면서 귀금이 멀찌감치 날아갔다. 심협이 재빨리 나선 것이다.

하얀 비주는 어느 정도 방어력을 갖췄지만 검은 귀금의 날카로운 부리를 막아낼 수 있을지 미지수였기에, 가까스로 벗어난 육화명은 숨통이 트였다.

“저놈들과 얽히지 말고 속도를 내서 떨쳐버리십시다!”

육화명은 고개를 살짝 숙여 심협에게 감사를 표하면서 크게 외치고는 비주를 조종해 엄습해오는 귀금들을 피해 나아갔다.

사실 육화명이 말할 필요도 없이 다른 사람들도 어찌 해야 할지 알고 있었다.

이 귀금들은 사실 별것 아니었다. 진짜 위험은 뒤에 있는 귀물들이었으니 괜히 시간 끌다가 그놈들에게 따라잡히면 꼼짝없이 죽은 목숨이 되리라.

그들은 각자 속도를 극한까지 끌어올려 귀금 떼 사이로 이리저리 뚫고 나가다가 어쩔 수 없을 때에만 법기를 꺼내 귀금들을 죽였다.

하지만 이 귀금들은 그 수가 너무 많았고, 마치 일부러 그들을 붙잡아두려는 것처럼 들러부터 온힘을 다해 나아가도 속도는 매우 떨어졌다.

한편, 뒤쪽의 먹구름은 빠른 속도로 다가와 곧 그들을 따라잡을 것만 같았다.

바로 그때, 앞쪽 강가에 오래된 돌다리 하나가 나타났다. 돌다리는 아주 널찍해 보였는데, 다리 바닥은 낡고 망가져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그런대로 온전했다. 그 끝은 강 건너편으로 구불구불하게 이어져 있어 보이지도 않았다.

“다리로 올라가시오!”

육화명이 단호하게 외치고는 앞장서서 돌다리 위로 뛰어올랐다.

일행이 다리 위로 올라가자마자 검은 구름 속 귀물들과 검은 귀금들은 즉시 멈춰서더니 망연자실하게 주위를 둘러보며 울부짖었다. 그러더니 마치 눈이 먼 것처럼 이리저리 두리번거렸다. 그렇다고 흩어지지도 않고 도리어 다리 주위를 겹겹이 둘러싸고는, 킁킁대며 냄새를 맡거나 귀를 기울였다.

“귀물들이 어찌 된 거죠? 우리가 보이지 않는 걸까요?”

사우흔이 놀라워하며 물었다.

심협은 아래 돌다리로 신식을 뻗어 살펴보려 했으나, 다리에는 보이지 않는 금제의 힘이 넘쳐흘러 그의 신식은 몸을 떠날 수도 없었다.

“이 돌다리가 조금 이상한 듯합니다.”

그 무렵, 단양자 등도 이미 다리 위 금제의 힘을 알아차리고 놀라는 중이었다.

오직 육화명만은 침착했는데, 오히려 한시름 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육 도우, 보아하니 자네는 이 다리의 정체를 아는 것 같구먼?”

단양자가 육화명에게 의아한 듯 물었다.

“이전에 사존께 들은 적이 있습니다. 유명계에는 명하(溟河)라는 강이 있는데, 이승과 저승 두 세계를 이어준다 하셨지요. 명하 위에는 저승과 이승의 틈에서 나는 특수한 광석인 명석(冥石)으로 지어진 명석교(冥石橋)라는 다리가 하나 있어, 오로지 산 사람의 넋만 건너갈 수 있고, 귀물들은 건너지 못한다 하셨습니다. 하여 저 귀물들이 우리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산 사람의 혼만 건널 수 있고 귀물들은 건너지 못한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육화명의 설명에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듯 사우흔이 되물었다.

“사람이 죽은 뒤에도 넋은 여전히 이승의 양기를 띠고 있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 양기를 깨끗이 씻어버릴 수 있지. 명석은 양기를 흡수하여 음력(陰力)으로 바꾸는 효력을 지녔으나, 명하에는 흉물이 너무도 많아 녀석들이 갓 죽은 사람의 넋을 습격하는 일이 많았기에 유명지부(幽冥地府: 저승을 관장하는 곳)에서 이 다리에 금제를 설치했소. 양기를 띤 사람의 기운은 숨겨지지. 우리 모두 양기를 지니고 있으니, 이 다리에 오르면 금제가 우리 기운을 가려주는 것이오. 혹시나 싶어 이 위로 올라와본 것인데, 진짜 통할 줄은 나도 몰랐소.”

육화명의 이어진 설명에 사우흔은 감탄하며 돌다리를 내려다보았다.

“그런 것이었군요!”

심협도 다소 얼떨떨했다. 이 돌다리가 이상하다고는 느꼈지만, 그런 내력을 가지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육 도우의 말대로라면 이 명석교는 이승과 저승 두 세계에 걸쳐 있으니, 다리의 반대편이 바로 이승이란 말인가?”

적수진인이 다리 반대편을 유심히 살피며 그다지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그곳은 아득한 안개에 휩싸여 아예 끝이 보이지 않았고, 그 안에 뭐가 숨겨져 있는지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건 저도 단언할 수 없습니다. 사부님께서 당시 제게 명하에 관해 상세히 말씀해주시지는 않았지요. 그저 저 또한 저쪽이 이승이길 바랄 뿐.”

육화명이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하자 일행은 서로를 멀뚱히 쳐다보며 누구도 선뜻 입을 열지 않았다.

오늘은 너무도 괴이한 일들을 많인 겪은 데다 이 돌다리 또한 수상쩍게 나타났기에 육화명의 말이 이치에 딱 들어맞았음에도 의구심이 생겼다. 그러니 앞길이 어떨지 예측할 수도 없었다.

“어찌됐든, 다리 아래에는 수많은 귀물들이 도사리고 있으니 물러나면 살 길이 없지만, 앞으로 나아가면 그래도 살아서 나갈 기회가 있습니다. 저는 육형이 오판하지 않았으리라 믿습니다.”

심협이 육화명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심 도우의 말이 일리가 있으니 계속 나아가는 편이 나을 듯합니다. 앞에 위험이 도사린다 해도 우리 여섯 사람이 한마음으로 힘을 합친다면 이겨낼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사우흔도 한마디 거들었으나, 단양자와 적수진인은 여전히 망설여지는 듯 서로 마주보며 눈짓을 했다.

그때, 줄곧 입을 닫고 있던 갈천청이 불쑥 나서더니 앞장서서 걸었다.

“갑시다.”

심협과 육화명, 사우흔도 뒤를 따랐고, 이에 단양자와 적수진인도 어쩔 수 없이 합류했다.

여섯 사람은 금방 강기슭을 뒤로 하고 다리를 따라 앞으로 나아갔다.

눈길이 닿는 곳마다 아득한 강물이었고, 희미한 안개 속에서 손쓸 수 없이 몽롱한 느낌에 여섯 사람 모두 자신들이 나아가고 있기는 한 것인지도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렇게 거의 반 시진을 걸었지만, 다리는 끝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다행이라면 지금껏 아무런 위험도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고, 이제 슬슬 일행은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심협은 나란히 건던 사우흔을 슬쩍 보더니 다른 사람들 몰래 그녀를 끌어당기며 걸음을 늦췄다.

사우흔은 의아해하면서도 걸음을 늦췄고, 두 사람은 서서히 일행의 맨 뒤로 처졌다.

“심 도우, 무슨 일입니까?”

사우흔이 물었다.

“사 도우. 요 몇 년간 줄곧 연신단에 잠복해 있었습니까? 얼마 전에 창평방으로 도우를 찾아갔는데, 이미 떠나고 없더군요.”

심협은 신식으로 주위를 경계하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줄곧 연신단에 있었던 것만은 아닙니다. 저는 대당관부의 명으로 연신단과 접촉했지만, 안타깝게도 쉽게 그들의 핵심으로는 들어가지는 못했지요. 얼마 전 연신단이 장안성을 대거 공격하려고 급하게 인력을 필요로 하는 기회에 겨우 연신단 상층부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사우흔도 목소리를 낮춰 답하자 심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생각에 잠겼다.

“심 도우는 무슨 일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전에 사 도우가 신혼을 회복하고 경맥을 다시 만들어내는 비법을 얻어내고자 연신단에 잠입하려 한다고 했던 기억이 나서 말입니다. 목적은 이루셨습니까?”

심협의 물음에 사우흔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대당관부 대신 연신단과 내통하겠다고 응한 것도 연신단의 그 비법을 손에 넣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이미 계획대로 심협 일행을 핵심이 되는 소환법진까지 인도했고, 대당관부 쪽에서도 모든 것이 순조로워 완전히 연신단을 몰락시키고 비법을 얻길 바랐다.

“그럼 마침 잘되었습니다. 몇 년 전 제가 우연히 연신단의 중요 인물을 하나 격살하였는데, 그에게서 <연신비전>을 얻었거든요. 그 안에 신혼을 재생시키고 경맥을 다시 만드는 비법이 기록되어 있지요. 창평방에 도우를 찾아갔던 것은 그 비법을 전수해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심협의 설명에 사우흔은 가녀린 몸을 움찔 떨더니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저, 정말입니까?”

그녀는 평소답지 않게 말까지 더듬으며 심협의 손을 덥석 잡고는 감격에 겨워 물었다.

“당연하지요. 이런 일로 실없이 농을 하지는 않습니다. 하하하.”

심협은 작게 웃으며 하얀 비단을 한 장 꺼냈다. 그 위에는 깨알 같은 해서(楷書)체 글씨가 가득 적혀 있었는데, 그가 베껴 쓴 연신비전의 일부였다.

그는 연신비전을 연구하면 할수록 더욱 정묘하게 느껴졌기에 아무리 사우흔과 가깝다고는 해도 비전 전체를 주고 싶지는 않았다.

사우흔은 두 손을 살짝 떨며 하얀 비단을 받아들고는 그 위에 적힌 글자들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이내 감격에 젖는 듯하더니 굵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눈물이 비단 위에 떨어졌고, 그러자 사우흔은 글자가 번지기라도 할까 화들짝 놀라 재빨리 법력을 운공해 눈물방울을 조심스레 털어냈다.

“심 도우,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사우흔은 비단을 품에 꽉 끌어안은 채 살짝 목이 메어 말했다.

“저도 우연히 얻은 것뿐입니다. 어서 가지요. 벌써 사람들과 멀어졌습니다.”

심협은 싱긋 웃고는 성큼성큼 앞으로 향했다.

사우흔은 눈물자국을 닦고는 심협의 뒷모습을 가만히 응시했다.

‘심 도우, 앞으로 어찌 되든 내 반드시 그대에게 보답할 것입니다. 온몸이 부서지고 넋이 산산이 흩어진다 하여도…….’

그녀는 마음속으로 묵묵히 다짐했다.

심협은 그런 사우흔의 심정도, 표정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어느새 육화명과 사람들을 따라잡았다.

“심형, 사 도우와 무슨 비밀 얘기를 그리 나누었소?”

육화명이 짓궂은 미소를 띠며 물었다.

“비밀 얘기는 무슨……. 그저 뭘 좀 물어봤을 뿐이오. 명하가 이렇게나 넓을 줄은 몰랐구려. 이리 오래 걸었는데도 아직 끝에 이르지 못했으니 말이오.”

심협이 옅게 웃으며 말머리를 돌렸다.

“명하가 넓긴 하지요. 속도를 조금 더 내봅시다. 더 시간을 끌다가 변고가 생길까 걱정입니다.”

육화명의 근심 어린 목소리에 단양자가 불쑥 끼어들었다.

“날아가면 안 되겠나? 그게 훨씬 빠르지 않은가?”

“안 됩니다. 명석교는 저승과 이승을 관통하는 곳이라 보기에는 평온해 보여도 실제로는 매우 불안정합니다. 다리 위를 벗어나면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공간의 폭풍에 휩쓸려 삼계(三界)의 틈에 갇힌 채 영원히 인계(人界)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지요. 그리고 이 명하에는 수많은 강력한 귀물들이 숨어 있으니 다리를 떠났다가 양기가 노출되면 살아날 방법이 없습니다.”

육화명의 진중한 설명에 하늘을 올려다본 심협은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비행을 하는 대신 신행갑마부를 사용해보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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