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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337화 (337/1,214)
  • 337화. 재회

    심협은 잠시 고민하다가 건곤대의 흡입력을 높였다. 그러자 수면 위의 명한음기가 마치 물꼬가 트인 것 마냥 모조리 건곤대로 끊임없이 쏟아져 들어왔다.

    건곤대가 명한음기를 집어삼키는 속도는 육화명의 벽옥호리병이나 사우흔의 옥병법기보다 훨씬 빨라서, 두 사람 모두 깜짝 놀랐다.

    명한음기는 건곤대에 들어가자마자 빠르게 주머니 벽 속으로 녹아들어갔다.

    주머니 벽의 검은 빛은 경쾌하게 반짝이며 마치 대단한 보약을 먹은 것처럼 밝아져 점점 빠르게 명한음기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원래 칠흑 같았던 주머니 벽에 가닥가닥 하얀 빛이 솟아나기 시작했는데, 기이하게도 이 빛은 산뜻하거나 밝은 기운이 전혀 없었다. 도리어 음산한 느낌을 풍겼다.

    심협은 건곤대 내부를 자세히 살피다가 흠칫 놀라더니 이내 미소를 지었다. 명한음기를 적잖이 흡수하자 놀랍게도 건곤대 안에 흩어져 있던 두 가지 금제가 회복될 조짐을 보였던 것이다.

    수련 중이던 귀장도 화들짝 놀라 주머니 속 명한음기를 바라보며 기쁜 기색으로 물었다.

    “엄청나게 순수한 음기군요! 주인님, 저도 좀 빨아들여도 되겠습니까?”

    귀장은 건곤대가 명한음기를 빨아들이는 것을 보고는 심협이 건곤대를 제련하는 것임을 알았지만, 참지 못하고 물었다.

    “물론이지.”

    수면 위의 명한음기는 무궁무진했으니 심협이 쩨쩨하게 굴 이유가 없었다.

    귀장은 크게 기뻐하며 입을 딱 벌리고 명한음기를 들이마시기 시작했다. 다만 그 속도는 건곤대에 비하면 훨씬 느렸다.

    심협은 온힘을 다해 주위의 명한음기를 흡수하도록 건곤대를 재촉했고, 강물 위의 음기는 금세 말끔히 흡수됐다.

    그때였다. 명한음기가 사라진 강물이 갑자기 부글부글 끓어오르더니 강에서 굵기가 맷돌만 한 검은 촉수가 불쑥 튀어나와 쏜살같이 세 사람을 휘감으려 했다.

    “어서 물러나시오!”

    심협은 깜짝 놀라 외치고는 옆에 있던 사우흔을 확 끌어당겼다. 그리고 두 발에 달그림자를 세차게 뿜어내면서 쏜살같이 뒤로 물러났다.

    두 줄기 검은 촉수가 두 사람을 스쳐 지나 허공을 휘감고 땅을 내리찍었다.

    쿵! 쿵!

    두 차례 굉음이 울렸고, 땅 위에 폭이 1장쯤 되는 커다란 구덩이가 생겨났다.

    심협은 아연실색하여 잠시도 멈추지 않고 전력으로 물러났다.

    육화명도 몸에 하얀 빛을 번쩍이며 곧바로 물러나 촉수의 공격을 피했다.

    강물이 부글부글 끓듯이 용솟음치더니 거의 작은 산만한 검은 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괴물은 꼭 문어처럼 생겼는데, 몸에 달린 거대한 수십 개의 촉수를 미친 듯이 휘둘러 강물에 마치 파도처럼 거대한 물결을 일으켰다. 촉수 중앙에는 시뻘건 눈알 두 개가 달려 있는데, 이 눈으로 기슭의 세 사람을 죽일 듯 노려보았다. 그 눈에는 살육과 피에 굶주린 기색이 역력했다.

    이 무시무시하고 거대한 짐승 앞에 심협 일행은 모두 간담이 서늘해졌다. 방금 그들은 찰나의 순간만 늦었어도 촉수에 휘말려 강 속으로 끌려갔을 것이다.

    순양검배와 홍련업화를 가지고 있음에도 막상 이런 거대한 괴수와 맞닥뜨리자 심협은 맞설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다행이라면 이 거대한 괴물은 강에서 포효할 뿐, 기슭까지 추격해 오지는 않았다.

    수면의 다른 곳에서 명한음기가 천천히 날아오자, 거대한 문어 괴물은 세 사람을 향해 달갑지 않은 듯 크게 한 번 포효하고는 다시 강 밑바닥으로 거대한 몸뚱이를 숨겼다.

    “저 괴수는 육지에 올라올 수도 없고, 명한음기를 아주 두려워하는 것 같소. 우리가 이곳의 명한음기를 거둔 탓에 저놈이 나와서 말썽을 일으킨 모양이오.”

    육화명의 말에 사우흔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군요. 이제 명한음기는 더 이상 거둬들이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안 그러면 괴물이 또다시 나올 테니까요.”

    “아니, 그럴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소. 강폭이 넓으니 한쪽의 음기만 집중적으로 모으지 않는다면 큰 위험은 없을 듯하니 말이오.”

    심협은 강가를 슥 훑어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명한음기로 건곤대의 망가진 마지막 2도 금제까지 회복할 가능성을 본 이상 지금 멈추자니 너무 아쉬웠다.

    “심형의 말대로요. 명한음기를 이대로 버려두기에는 너무 아깝지. 허나 사 도우의 말도 일리가 있으니…… 이렇게 합시다. 우선 하류로 좀 내려가 저 괴물에게서 떨어진 다음, 서로 흩어져서 강의 음기를 거두는 거요.”

    육화명도 명한음기를 간절히 바라는 듯했다.

    심협은 당장 고개를 끄덕였고, 사우흔도 두 사람의 의견이 그렇게 모이자 반대하기가 어려웠다.

    그리하여 세 사람은 하류로 수십 리를 내려간 뒤, 각자 흩어져 계속 명한음기를 흡수했다. 다만 언제 그 괴물이 튀어나와 습격할지 모르니 모두 강가에서 거리를 둔 채, 각자 법기를 꺼내 들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그렇게 반 시진이 흘렀다.

    사우흔과 육화명의 법기는 가득 차 더는 명한음기를 흡수할 수 없었다. 다만 심협은 여전히 음기를 흡수하기에 여념이 없었는데, 머지않아 건곤대에서 돌연 환한 빛이 번득이더니 검은 빛의 고리 두 개가 떠올랐다. 동시에 흩어졌던 금제가 완전히 회복되었다.

    심협은 건곤대가 9도 금제까지 회복하자 위력이 크게 증가한 것을 느꼈다. 다른 것은 둘째 치고 탄서지력(*呑噬之力: 집어삼키는 힘)만 따져도 예전보다 몇 배는 강해져 있었다.

    그는 건곤대를 보며 조금 뜻밖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9도 금제까지 회복했으니 이제 멈출 줄 알았건만, 뜻밖에도 건곤대는 여전히 밑 빠진 독처럼 명한음기를 계속 흡수했다. 심지어 그 속도는 이전보다도 더 빨랐다.

    원래 검은색이었던 건곤대 위로 하얀 반점들이 얼룩덜룩 떠올랐는데, 이제 거의 절반은 검고 나머지 절반은 하얀, 퍽 괴상해 보이는 주머니가 되었다.

    심협은 의아하긴 했지만, 건곤대가 명한음기를 집어삼키도록 내버려두었다.

    또다시 반 시진이 지났다. 이제 명한음기를 얼마나 집어삼켰는지 알 수도 없게 됐을 무렵, 건곤대가 위잉 하고 울리면서 마침내 흡수를 멈추었다. 이제 건곤대는 전체가 완전히 하얀색으로 변해 있었는데, 표면에는 실체가 있는 듯한 하얀 빛이 반짝였다.

    심협은 건곤대를 불러들인 뒤 두어 번 훑어보고는 결인한 손으로 이 주머니를 가리켰다. 그러자 건곤대에서는 하얀 빛이 환하게 번득이더니 방대한 법력 파동을 뿜어냈다. 상품법기 수준을 월등히 뛰어넘어 오악진형인과 묵갑순이라는 극품법기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푹 하는 가벼운 소리와 함께 무려 8장 길이의 하얀 기의 회오리가 건곤대에서 쏘아져 나와 바닥을 휩쓸었다.

    하얀 기의 회오리에서는 무시무시한 탄서지력이 뿜어져 나왔는데, 그 안에는 기이할 정도의 한기가 담겨 있었다.

    기의 회오리가 쓸고 지나간 지면에는 하얀 얼음 결정이 맺혔지만, 다음 순간 얼어붙은 부분과 그 주변의 땅이 가볍게 말리면서 건곤대 안으로 들어갔다. 이에 땅이 갈라지면서 길이가 10여 장에 너비는 약 3장, 깊이가 1장에 이르는 깊은 구덩이가 생겨났다.

    이를 본 심협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완전히 환골탈태한 건곤대의 위력은 이제 상품법기 단계를 완벽히 뛰어넘었다. 이 하얀 기의 회오리의 무시무시한 탄서지력과 기이한 한기로 휘감는다면 그 자신도 화를 면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이리 대단한 법기를 얻다니, 축하하오. 심형. 하하하!”

    육화명이 진심이 담긴 축하의 말을 건네며 웃었고, 사우흔도 다가와 축하해주었다.

    “두 분께 감사드리오. 너무 오래 기다리게 했구려.”

    심협이 건곤대를 챙기며 조금 미안한 듯 말했다.

    “괜찮소. 심형의 실력이 높아졌으니 우리의 이번 여정에도 이득 아니겠소?”

    육화명이 웃으며 답했다.

    명한음기를 다 수집한 세 사람은 앞으로의 여정에 대해 상의했다. 다만 앞에는 큰 강이 길을 막고 있어 강줄기를 따라 좌우 중 하나를 택해야 했다.

    그들은 좌우를 둘러보았지만, 잠시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때, 귀장의 목소리가 돌연 심협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주인님, 조심하십시오. 왼쪽에서 커다란 귀물 무리가 오는 것이 느껴지는데, 수도 많고 실력 또한 강한 편입니다.’

    심협은 그 말에 안색이 약간 어두워졌다.

    “심형, 왜 그러오?”

    육화명이 즉시 심협의 이상을 알아차리고는 묻자, 심협은 숨기지 않고 바로 상황을 설명했다.

    “지금은 가능하면 귀물들과의 충돌은 피하는 것이 좋겠소.”

    심협과 사우흔도 굳이 귀물들과 목숨 걸고 싸울 생각은 없었기에 육화명의 말대로 곧장 강을 따라 오른쪽으로 급히 내달렸다.

    이곳은 시야가 좁아서 그들은 섣불리 비둔술을 쓰지도 못했다. 물론 강으로 날아 들어가 피했다가는 예의 그 거대한 문어괴물을 맞닥뜨릴 우려가 있으니 엄두도 낼 수 없었다.

    ‘귀물들이 속도가 너무 빨라서 곧 따라잡힐 듯합니다!’

    귀장이 다시 다급한 목소리를 전해왔다.

    심협은 가슴이 철렁하여 이 사실을 육화명과 사우흔에게 알리려 했다.

    그런데 그때, 뒤에서 파공음이 들려오더니 붉은 빛줄기 두 개와 자줏빛 둔광 하나가 어둠 속에서 튀어나왔다. 단양자와 적수진인 그리고 갈천청이었다!

    “단양자 도우, 적수 도우, 갈 도우!”

    육화명은 세 사람을 보자 반가운 마음에 손을 흔들며 그들을 불렀다.

    “육 도우! 자네들이었구먼! 어서 어공비행(御空飛行)으로 달아나게! 뒤에 많은 귀물들이 있어 맞서기가 어렵네!”

    단양자가 황급히 외쳤다. 그는 부상이 상당히 호전된 듯했다.

    이들을 쫓는 귀물들은 대다수가 짐승 형상이었다. 머리가 둘 달린 늑대 귀물과 꼬리가 셋 달린 삼미호(三尾狐), 외뿔이 달린 사자 귀물 등등이었는데, 하나같이 고강하여 그중 절반가량이 응혼기 단계에 도달해 있었다. 우두머리격인 건장한 귀물 몇몇은 더욱 대단해, 갈천청보다 강력한 기운을 뿜어냈다. 응혼기 정점에 도달한 기운이었으니 이들로서는 맞설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갑시다!”

    이를 본 육화명도 안색이 변하여 손을 흔들어 월백비주(月白飛舟)를 꺼내 사우흔을 잡아끌고 그 위로 날아올랐다. 하얀 비주의 속도도 빨라서 단양자를 비롯한 사람들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심협도 순양검배를 꺼내 몸에 가까이 붙이고는 붉은 검광이 되어 순식간에 단양자와 사람들을 뒤쫓아 그들과 나란히 나아갔다.

    구름 속 귀물들은 분노에 차 울부짖으며 입에서 검은 기운을 내뿜어 발아래 검은 구름에 주입했다. 하지만 검은 구름의 속도는 거기까지가 한계인 듯 더 이상 빨라지지 못했다.

    양측의 거리가 한순간 천천히 벌어졌고, 이 광경에 심협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모두들 무탈하시니 되었습니다. 세 분께서는 어찌 이곳에 오셨습니까?”

    잠깐 위험을 벗어나자, 육화명이 단양자 일행에게 상황을 물었다.

    “법진이 우리를 여기로 전송했네. 육 도우도 찾질 못하고 앞장서는 지도자도 없어 우리끼리 여기저기 헤매고 다닐 수밖에 없었지. 그러다가 재수 없게도 저 귀물 놈들을 마주치는 바람에 여기까지 쫓겨 왔다네. 한데 전화위복이 되어 우리가 마침내 한곳에 모이게 되었구먼. 허허허!”

    육화명은 단양자의 말을 통해 저들도 이곳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다소 실망했다.

    “육 도우, 이제 우린 어찌해야 하는가?”

    “우선 저 귀물들부터 떼어 내고 다시 이야기하지요!”

    단양자의 물음에 육화명이 단호하게 답했다.

    심협은 옳은 생각이라 여겨 순양검결을 운공해 어검(御劍: 검을 조종하는 것을 말함) 속도를 높이려 했다.

    한데 그때, 또다시 귀장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주인님, 조심하십시오. 앞쪽에도 귀물들이 다가옵니다!’

    심협은 즉시 소리 높여 말했다.

    “다들 조심하십시오! 앞에 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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