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335화 (335/1,214)

335화. 아버지를 구하라

자삼 여인이 쏘아 보낸 하얀 빛은 검은 그림자 뒤를 바짝 뒤쫓아 황제를 감쌌다. 뒤이어 자주색 노을빛 한 줄기가 날아와 자줏빛 화개(*華蓋: 옛날 왕족들과 귀족들의 수레에 씌우던 의장용 덮개)로 변해 황제의 머리 위를 뒤덮었다. 자색 옷의 우사가 법술을 쓴 것이었다.

“폐하!”

두 사람은 경악하며 다급하게 결인했다.

자삼 여인이 두 손을 합장하고 뭔가를 중얼거리며 외우자, 황제를 감쌌던 하얀 빛이 빙글빙글 돌더니 1장 크기의 하얀 연꽃으로 변했다. 연꽃에서는 불경 외는 소리가 울려 듣는 이의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었다.

침전 안에 혼절했던 궁녀들의 얼굴은 이 소리에 사라지고 평온해졌지만, 하얀 연꽃 안의 황제는 여전히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자색 옷의 우사는 열 손가락을 수레바퀴처럼 결인하고 자줏빛 화개를 빠른 속도로 회전시키며 커다란 자줏빛을 피워내 황제의 몸속으로 스며들게 했다. 그러나 이 역시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아아악!”

침상 위의 황제가 갑자기 몸을 바들바들 떨기 시작하더니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고는, 몸부림을 멈추고 쓰러져 꼼짝도 하지 않았다.

세 사람은 낯빛이 돌변했고, 결례를 범하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황제의 가슴에 손을 댔다.

다행히 황제의 가슴은 아직도 미미하게 뛰고 있어 자색 옷의 우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한편, 대방진인과 자삼 여인은 혼절한 귀비와 세 궁녀를 한쪽 옆으로 옮겨 법술로 구속해놓은 뒤, 황제를 침상으로 옮겨 눕히고 상태를 자세히 살폈다.

세 사람은 곧 황제가 아직 심장만 뛰고 있을 뿐, 눈빛은 공허하기 그지없으며 호흡도 지극히 미약하여 산송장과 같은 상태임을 알게 됐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세민의 머릿속 신혼의 파동이 완전히 사라져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어찌 이럴 수가……? 방금 그 검은 그림자들이 대체 무엇이기에……? 조 미인과 세 궁녀가 설마 사악한 자들이 변장한 것이란 말인가?”

세 사람은 어쩔 줄 모르고 서로를 쳐다보았고, 자색 옷의 우사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게 아니오. 귀물이 몸에 들러붙은 것이지.”

자삼 여인이 아미를 찌푸렸다.

“임(林) 선배님께서는 이미 불문의 천안통부(天眼通符)를 완전히 수련하셨는데, 무엇이 선배님의 법안(*法眼: 불교에서 일컫는 보살의 눈)을 피해갈 수 있단 말입니까?”

대방진인이 믿기지 않는 듯 물었다.

“불문의 천안통도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것은 아니라오.”

자삼 여인이 희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럼 이제 어찌합니까?”

자색 옷의 우사가 겁먹은 듯 물었다.

그들 세 사람이 보는 앞에서 황제가 이 모양이 되었으니, 차후 어떤 벌을 받게 될지 알 수 없었다.

자삼 여인과 대방진인도 표정이 몹시 어두워졌다.

그때, 바깥에서 커다란 굉음이 울리더니 대전 전체가 격렬하게 요동쳤다.

세 사람이 다급히 소리를 따라 대전 바깥으로 시선을 돌려보니, 허공에 강렬한 빛이 번쩍 스쳐 지나며 아름드리 나무 같은 하얀 번개 기둥이 하늘에서 떨어져 내렸다. 이 번개 기둥은 핏빛 귀물을 내리쳐 정수리를 곧장 뚫고 들어갔다.

“캬아아악!”

핏빛 귀물은 고개를 쳐들고 처참한 소리를 내지르더니 번갯불의 일격을 견디지 못하고 온몸이 터져나갔다.

콰쾅!

굉음과 함께 귀물의 몸뚱이는 무수한 잔해와 핏빛 기체로 변해 사방으로 흩날렸다.

번개 기둥은 핏빛 귀물을 쳐 죽이고는 계속해서 요란스레 떨어져 내려 땅 위의 검은 법진을 때리며 가뿐하게 법진을 전부 파괴했다.

그 뒤에도 번개 기둥은 사라지지 않고 수십 줄기의 팔뚝만 한 줄기로 갈라져 사방으로 날아가 침전 바깥의 다른 귀물들에게 정확히 꽂혔다.

다른 귀물들도 이 하얀 번개의 일격을 버티지 못하고 사라졌다.

곧이어 세 사람이 멀리서 날아와 침전 바깥에 내려섰다.

앞장선 사람은 금포 차림에 금관을 쓴, 잘생긴 외모에 위엄이 넘치는 청년이었다. 바로 심협이 황하에서 폐관하며 응혼기를 돌파했을 때 우연히 마주쳤던 구황자 전하였다.

젊고 아리따운 소녀가 그의 곁을 따랐다. 심협과 몇 차례 면식이 있는 이씨 소녀로, 당조의 십구공주(十九公主)였다.

두 사람 뒤에는 그때 그들과 함께 있었던 비범한 외모의 국사가 서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병색이 살짝 엿보였는데, 손에는 하얀 불진을 들고 있었다. 불진 위로 하얀 번개가 한 가닥 번뜩였다.

“구황자 전하! 십구공주 전하! 원 국사님!”

침전 앞의 어림군들이 세 사람을 보고 황급히 허리를 굽혀 예를 갖췄다.

“어찌 이곳에 귀물이 나타난 것이냐? 폐하의 상황은 어찌되었고?”

구황자가 엄한 목소리로 꾸짖듯 물었다.

“그것이…… 속하도 모르겠사옵니다. 이 귀물들이 느닷없이 나타나 저희는 전심전력으로 막았습니다. 침전 안은 국사께서 설치하신 금제가 작동된 까닭에 들어갈 수가 없어 상황이 어떠한지는 알 수 없사옵니다. 허나 임 선사님과 대방 선사님, 무 선사님이 줄곧 폐하 곁을 지키고 있으니 무탈하실 것이옵니다.”

가무잡잡한 얼굴의 어림군 통솔자가 약간 당황하며 말했다.

구황자는 그 말에 표정이 조금 풀리더니 어림군에게 물러나라고 손짓한 뒤 침궁의 대문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국사 도인이 손에 든 불진을 슬쩍 휘두르자 침궁 대문의 금빛이 흩어지면서 틈이 하나 생겨났다.

대문이 끼익 하고 저절로 열렸고, 세 사람은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

“부황(父皇)!”

구황자와 십구공주가 황제의 침상 곁으로 달려갔다.

자색 옷의 우사 일행은 재빨리 옆으로 물러났다.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국사 도인이 땅에 쓰러져 정신을 잃은 귀비와 세 궁녀들을 훑어보며 미간을 찌푸리렸다.

“원 국사님, 오셨습니까? 실은…….”

대방진인은 방금 귀비와 세 궁녀가 갑자기 태도가 돌변했던 것이며, 그 뒤에 몸속에서 검은 그림자가 날아가 황제를 맞추는 바람에 그가 의식을 잃고 쓰러진 것까지 자세히 설명했다.

“임희월(林希月)! 대방진인! 무간(武艮)! 그대들은 부황을 곁에서 호위하는 자들이오. 한데 간악한 이들이 폐하께 이리 쉽게 접근하도록 놔두다니, 이 죄를 어찌 물어야 한단 말이오!”

구황자가 벌떡 일어나 엄한 목소리로 힐문했다.

“저희의 무능을 벌하여주시옵소서, 구황자 전하!”

세 사람은 두려운 마음에 몸 둘 바를 몰라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장안성 안에 귀환이 발발한 탓에, 황가의 수사들은 황성의 안전을 위해 일찍이 황성 안팎으로 무수한 금제들을 설치해 놓았다. 자연히 외부인들은 잠입할 수가 없었고, 궁을 드나드는 사람들 또한 엄밀히 검사하였다. 그러니 언제 귀물이 귀비와 세 궁녀에게 달라붙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국사 도인은 침상에 누운 황제 이세민 곁으로 가 손가락을 굽히고 미간을 짚었다. 그의 손끝에서는 하얀 빛이 가볍게 반짝였고, 입에서는 곧 가벼운 탄성이 터져 나왔다.

“과연 그렇군. 억몽부였어.”

그는 곧 또다시 기절한 귀비와 세 궁녀들을 빠르게 살펴보고는, 그제야 몸을 일으키며 중얼거렸다.

“억몽부? 부적 이름이오?”

구황자와 무간이 동시에 물었다.

“사람의 꿈속에 잠입할 수 있는, 보기 드문 고급 부적이옵니다. 저의 예상이 틀리지 않다면 연신단의 간악한 이들이 이 부적으로 조 미인과 세 궁녀의 꿈속에 잠입하여 숨었을 터. 그리 되면 알아차리기가 지극히 어렵사옵니다.”

국사 도인이 가느다란 청색 산가지(점술에서 괘를 나타내기 위해 쓰는 도구)몇 개를 꺼내 손끝에서 뒤집어보며 거침없이 말했다.

“세간에 그런 부적도 있단 말입니까? 한데 멀쩡한 수사가 어찌 남의 꿈속에 숨어들어갈 수 있단 말입니까?”

무간은 여전히 믿어지지 않는 듯 되물었다.

“평범한 수사는 당연히 안 되겠지만, 연신단에는 신혼을 오랜 시간 몸에서 떠나게 할 수 있는 귀수들이 있지요. 그들은 다른 이의 꿈속에 숨어들 수 있습니다. 다만 이 부적도 큰 제약이 있어서 반드시 상대방이 혼수상태에 있어야만 꿈속을 드나들 수 있습니다.”

국사 도인의 설명에 무간이 무릎을 쳤다.

“그렇군요! 어쩐지…… 아까 귀물들의 울부짖음에 조 미인과 궁녀들이 혼절했습니다. 또한 며칠 전에 조 미인께서 한 차례 출궁하셨던 것이 기억납니다. 숭안사에 가서 폐하를 위해 복을 기원한다 하셨지요. 연신단의 요물들이 바로 그때 조 미인과 이 궁녀 세 사람의 꿈속으로 숨어든 듯합니다.”

“이제 와서 그 간악한 자들이 어찌 황궁에 잠입했는지 고민해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원 국사, 부황께서는 무탈하시지만 호흡이 미약하실 뿐만 아니라, 내 보타산의 비법으로 살펴보니 부황의 옥체에 신혼의 흔적이 털끝만큼도 남아 있질 않더군요. 설마 부황의 넋이 누군가에게 붙잡혀 간 것은 아니겠지요?”

이씨 소녀, 십구공주가 초조한 목소리로 물었다.

“공주 전하의 말씀대로입니다. 누군가가 비술을 써 폐하의 신혼을 데려간 것이 분명합니다.”

국사 도인은 조용히, 그러나 숨김없이 말했다.

그 자리의 모두가 짐작하고는 있었지만, 막상 국사 도인이 직접 인정하자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럼 어찌한단 말이오? 부황께서 위험하시지 않겠소?”

구황자는 수선(修仙)을 하지 않아 신혼을 붙잡아간다는 말의 의미를 몰랐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표정에서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는 급히 물었다.

“황자 전하, 공주 전하, 당황치 마시옵소서. 제가 방금 구장신산(九章神算)으로 폐하를 위해 점을 쳐보았사옵니다. 폐하께서는 진룡천자(眞龍天子)시라 여러 신령님들께서 보호해주시는 백령호체(百靈護體)를 지니셨으니, 이번에 누군가 신혼을 잡아간 것은 그분의 운명 속 하나의 겁(劫)이옵니다. 결국은 전화위복하시어 평안히 돌아오실 터이니 두 분께서는 안심하셔도 되옵니다.”

국사 도인이 손에 든 산가지를 거두고 웃음을 머금은 채 말했다.

이 국사는 대당의 제일 능력자로, 특히 점술에 정통하여 들어맞지 않는 말이 없었으므로, 구황자와 십구공주는 그제야 한시름 놓았다.

“그럼 부황의 넋은 언제 돌아올 수 있겠습니까?”

공주가 또다시 물었다.

“시간이 조금 필요합니다.”

국사 도인은 손을 꼽아가며 잠시 헤아려보고 나서야 말했다.

“부황께서는 진령(眞靈)의 가호를 받고 계시기는 하나 시간이 오래 지나면 변고가 생길지도 모릅니다. 국사의 신통력은 광대하니 부황의 영혼이 하루 빨리 돌아오도록 나서주실 수 있겠습니까?”

공주가 걱정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폐하를 조금 일찍 회복하시도록 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옵니다. 다만 공주 전하께서 저를 조금 도와주셔야 합니다. 꽤 위험하기도 하니 공주 전하께 말씀드려도 될지 모르겠군요.”

“하겠습니다. 국사 대인께서 법술을 베풀어주십시오.”

국사 도인의 조심스런 목소리와 달리 공주는 생각조차 해보지 않고 응낙했다.

“좋습니다. 공주 전하의 효심이 대단하군요. 제가 법술을 쓸 터이니 기다리시지요.”

국사 도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더니 곧 뭔가를 읊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하얀 빛줄기가 그의 손끝에서 쏘아져 나와 번쩍하고 십구공주의 미간으로 들어갔다.

공주의 몸에서는 하얀 빛이 반짝이더니 반투명한 허상이 그녀의 머리 위로 날아올라 순식간에 허공으로 들어가 사라져버렸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