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334화 (334/1,214)

334화. 암도진창(暗度陣倉)

“허허, 정 국공은 역시 대당의 든든한 기둥이오. 무쌍일격(無雙一擊)으로 단번에 나의 천귀조(天鬼爪)를 깨뜨렸으니 말이오.”

정교금이 ‘원죄’라 부른 검은 옷의 사내가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헛소리 집어치워라! 지난번 우리 싸움은 시원치 않았으니 다시 한번 붙어보자!”

정교금이 거대한 도끼로 맞은편의 원죄를 가리키며 호통쳤다.

“국공 대인께서 손수 가르침을 주시겠다는데 기꺼이 받아들여야지. 허나 그대와 내가 맞붙으면 주위에 큰 피해가 발생할 테니 예전처럼 저 위로 가서 싸우는 게 어떻겠소?”

원죄가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모처럼 네놈이 마음에 드는 말을 하는구나!”

정교금은 너털웃음을 터뜨리고는 하늘로 날아오르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먼 곳의 땅바닥이 우르릉 울리더니, 굵기가 족히 백 장은 될 법한 검은 빛기둥이 하늘을 떠받치는 거대한 기둥처럼 하늘로 솟구쳐 올라왔다. 또한, 성 남쪽 곳곳에서는 검은 빛이 연달아 번쩍이면서 좀 전의 것보다는 훨씬 작은 검은 빛기둥 백여 개가 우후죽순 솟아나왔다.

“아니, 설마…….”

원죄는 이 광경을 보고 안색이 크게 돌변했고, 반대로 정교금은 크게 웃었다.

하늘을 떠받친 거대한 기둥은 맹렬하게 반짝이다가 윗면이 울룩불룩 튀어나오고 심하게 부풀어 오르더니, 이윽고 펑 하고 터져버렸다. 이어서 작은 기둥들도 잇달아 부서졌다. 허공의 검은 구름과 아래의 빛기둥들도 서로 연결되어 있는지, 혼란스러워지고 성난 파도처럼 끊임없이 용솟음치면서 빠르게 흩어지기 시작했다.

한편, 대당 수사들과 한데 뒤엉켜 싸우던 수많은 귀물들의 몸이 투명하게 변하면서 마치 어떤 신비한 힘이 강제로 불러들인 것처럼 하나둘씩 사라졌다. 이제 남은 것은 연신단의 수사들과 소환되지 않은 소수의 귀물들뿐이었다.

이제 비등비등했던 전세는 단번에 대당관부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관부 놈들이 어째서 전면적으로 반격해오는가 했더니, 우리의 주력을 붙잡아 두고 그 틈에 소환법진을 파괴한 것인가!”

원죄는 잔뜩 굳은 얼굴로 내뱉었다.

“그렇다! 그렇지 않았으면 내가 왜 여기서 네 수하들과 전쟁 놀음이나 하고 있겠느냐! 늙은 마귀야, 이제 귀물들의 도움이 사라졌으니 네놈에게 무슨 능력이 더 남았나 보자꾸나!”

정교금이 차게 웃고는 몸에서 금빛을 내뿜으며 외쳤다.

“정 국공 말이 옳소. 귀물들의 도움이 없으면 연신단만으로는 관부에 맞설 수 없지. 그러니 나는 여기서 인사를 고해야겠소이다.”

원죄의 얼굴에 가득했던 노기가 별안간 썰물처럼 사라지더니 다시 이전의 우아한 미소를 되찾았다. 이에 정교금은 도리어 얼떨떨해졌다.

그 순간, 원죄의 몸은 쏜살같이 거꾸로 날아가서 빠르게 흐릿해지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허공과 지상에 있던 연신단 수사들도 즉시 물러났다. 대당관부와 장안성의 수사들이 뒤쫓아 가려는데, 남은 귀물들이 필사적으로 막아섰다.

또한 성안 곳곳에서 느닷없이 검은 연무가 치솟아 성 남쪽 전역을 뒤덮었다. 이에 대당관부의 수사들은 무리하게 추격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게 어찌 된 일이지?”

정교금 곁으로 다가오는 황목상인 등의 표정은 하나같이 당혹스러워 보였다.

“나도 모르겠소.”

정교금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계획을 완수했다는 기쁨은 사라졌고, 오히려 마음이 무겁고 몹시도 불안했다.

“저들이 전력으로 맞서 싸운 것 역시 눈속임일 뿐이고, 암암리에 어떤 계략을 꾸미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오늘 대전투에 경하용왕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으니 말이외다.”

황목상인의 무거운 목소리에 정교금의 얼굴에도 수심이 더욱 깊어졌다.

* * *

장안성 황궁.

웅장하고 위엄이 넘치는 황성은 높고 거대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붉은 칠이 된 성벽은 높이가 30여 장에 황금기와가 놓여 있어 눈부시게 화려했다.

황성 안에는 겹겹이 궁전들이 연이어 우뚝 솟아 있고, 화원 사이로 흐르는 물이 정취가 넘쳤으며, 옥각(玉閣: 정교하고 화려하게 지어진 누각)은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없었다. 곳곳마다 광활하고 위풍당당하며 우아하고 아름다운 기운이 가득 넘치니 천상의 궁궐에 견줄 만했다.

성안의 귀환 때문에 황성 안팎은 일찍이 경계를 철저히 하여 곳곳마다 어림군이 매일 열두 시진을 쉬지 않고 순찰했다.

이 어림군들은 보통의 군사들보다 훨씬 더 우수하고 강력한 이들로, 하나같이 무거운 철갑을 입고 여러 무기를 든 모습이 꼭 강철로 만든 전사들 같았다. 게다가 각 대열마다 반드시 수사 한 사람을 배치하여 황성에 해를 끼치는 자는 가차 없이 짓밟았다.

파리 한 마리 드나들지 못할 정도로 무수히 많은 방어나 경계 금제가 황성 전체를 철통같이 둘러싸고 있었다.

황성 동쪽의 어느 화려한 궁전은 어림군들로 빼곡하게 둘러싸여 있었다. 이 병사들은 주위의 모든 동정을 경계하며 살폈다.

궁전 안은 화려한 침궁이었는데, 황색 용포를 입은 중년 남자가 궁 안에 서서 창문으로 멀리 하늘가를 바라보며 잔뜩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나이가 적잖아 보였고, 귀밑머리가 희끗희끗했지만, 그의 모습에서는 천하를 지배하는 위엄과 기개가 드러났다.

“폐하, 근심치 마시옵소서. 정 국공이 있으니 분명 순조롭게 귀물들을 격파하고 성 남쪽 잃어버린 땅을 수복할 것입니다.”

곁을 지키던, 눈부시게 아름답고 요염한 여인이 조심스레 말했다.

“나 또한 그러길 바라오.”

중년 남자가 탄식하며 말했다. 그가 바로 당조(當朝)의 태종, 당의 황제 이세민(李世民)이었다.

그때, 궁전 밖 지면이 돌연 한 차례 요동치더니, 어디선가 검은 기운 한 줄기가 솟구쳐 나와 땅 위에 빠르게 퍼져 나갔다. 그리고는 눈 깜짝할 사이에 지름 수십 장의 검은 법진을 이루었다.

이어서 법진 안에서는 줄줄이 검은 그림자가 어른거리며 나타났는데, 놀랍게도 수십 마리의 귀물이었다. 각양각색의 귀물들은 모습을 드러내기가 무섭게 화려한 궁전 안으로 뛰어들었다.

궁전 근처 허공에는 곧 거대한 하얀 빛이 떠올라 폭죽처럼 연달아 날아가면서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주변의 경계 금제가 발동된 것이다.

“귀물이 나타났다! 침전을 보호하라!”

궁전 바깥의 어림군들도 즉각 대처하여 절반은 침전 주위를 지키고 나머지 절반은 귀물들에 맞서 싸웠다.

이 귀물들은 무척 강한 편이었다. 하나같이 벽곡기의 전투력을 지녔고, 우두머리인 몇몇은 심지어 응혼기에 도달해 있었다.

그러나 이곳을 지키는 어림군은 모두 정예병이었고 그중에는 수사들도 적지 않은 데다 인원이 많았기에 귀물들의 공세를 재빠르게 막아냈다.

“빌어먹을! 이 귀물들은 어디서 갑자기 나타났단 말이냐! 하나도 남김없이 죽여라!”

어림군의 우두머리는 가무잡잡한 얼굴에 턱수염을 기른, 위용 넘치는 사내였다. 그는 상황이 진정되는 것을 보고 즉시 어림군을 지휘하여 반격을 가했다.

경계 금제의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지자, 먼 곳에서 순찰을 돌던 어림군들이 즉각 달려왔고, 황궁 곳곳의 수사들도 순식간에 모여들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바닥의 검은 법진이 문득 다시 밝아지더니 날카로운 귀신의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그리고는 거대한 혈광이 법진 안에서 솟아나와 키가 무려 8장에 이르는 흉악한 귀물로 변했다.

이 귀신의 형상은 사람과 같았으나 온몸이 피처럼 붉었고, 엄청난 피비린내가 진동했으며, 세 개의 뿔과 네 개의 눈에 뾰족하고 날카로운 이빨이 더없이 무시무시했다. 게다가 그 경지는 출규기 절정에 이르러 대승기까지 겨우 한 걸음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어림군들은 짙은 피비린내에 뺨이 온통 핏빛으로 변해 마치 술에 취한 듯 손발이 풀려 하나둘 쓰러졌다. 심지어 수사들조차 무사하지 못했고, 오히려 상태가 더욱 심각해 눈을 허옇게 뒤집고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

핏빛 귀물은 등 뒤에 붉은 빛을 번쩍이며 커다란 핏빛 한 쌍의 박쥐 날개를 활짝 펴고는 마치 한 덩이 혈운(血雲)처럼 화려한 침궁을 향해 몸을 날렸다.

어림군들은 땅에 쓰러진 이가 태반이었고, 아직 서 있던 자들도 도저히 막을 힘이 없었다. 핏빛 귀물은 순식간에 궁전 앞까지 내달려 곧 담장을 뚫고 들어갈 기세였다.

그때, 앞쪽 궁전에 갑자기 금빛이 한 층 떠올랐다. 빛은 그다지 밝지 않았지만, 쿵 하는 굉음과 함께 핏빛 귀물이 진동에 뒤로 훅 밀려났다.

궁전 주위의 금빛이 가볍게 한 번 반짝이고는 곧 다시 평정을 되찾았다. 막강한 금제임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아래쪽 침궁은 그만큼 튼튼하지 못했다. 금빛이 충돌의 충격을 대부분 흡수했음에도 궁전은 여전히 격렬하게 흔들렸고, 궁전 안에서는 의자가 뒤집어지고 골동품과 옥기(玉器), 장식품들이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궁전 안의 아리따운 여인과 궁녀들은 깜짝 놀라 소리를 내질렀다.

황제도 바깥의 핏빛 귀물을 보고는 흠칫 놀라 무의식중에 한 걸음 물러섰다.

이때, 황제의 앞에 사람 그림자가 어른거리며 어디선가 세 사람의 모습이 나타났다. 자색 옷의 우사(羽士)와 백발노인 그리고 자삼(紫衫)을 입은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만약 심협이 이들을 보았더라면 자색 옷의 우사와 백발노인이 그해에 황하에서 그와 한 차례 맞붙었던 무씨 사내와 대방진인임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자삼 차림의 젊은 여인은 심협에게도 낯선 얼굴일 텐데, 차림새를 보아하니 궁중의 호법수사인 듯했다. 하지만 그녀의 경지는 무씨 사내나 대방진인보다 훨씬 윗길로, 무려 출규기였다.

“폐하, 걱정 마시옵소서. 바깥에는 어림군이 호위하고 있고, 침전 안에는 저희 세 사람이 있으니 모든 게 무사할 것이옵니다.”

자색 옷의 우사가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그가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대전이 다시 한 차례 격렬하게 진동하며 바깥에서 하늘도 놀랄 법한 귀신의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금제의 금빛이 소리를 약화시키긴 했으나, 그 울부짖음의 위세만큼은 여전히 대단했다.

대전 안의 사람들은 고막이 아플 지경이었고, 궁녀들은 두 눈을 까뒤집고 거품을 내뿜으며 의식을 잃은 채 쓰러졌다. 황제의 곁에 있던 아리따운 여인도 마찬가지였다.

반면 황제의 가슴에서는 금빛이 피어올라 전신을 뒤덮어 귀를 찌르는 귀신 울음소리를 막아주었다.

“애비(愛妃)? 애비!”

황제는 약간 당황하였으나 순식간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쓰러지려는 여인을 황급히 끌어안았다.

“폐하, 당황하지 마시옵소서. 조(趙) 미인께서는 그저 혼절하셨을 뿐, 큰 문제는 없습니다.”

자삼의 젊은 여인이 혼절한 여인을 보고는 재빨리 황제를 안심시켰다.

“어찌 황궁 안에서 사악한 귀신들이 소란을 피우는 것인가?”

황제는 고개를 들고 세 사람을 바라보며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

“폐하, 용서하여주시옵소서. 저 귀물들은 소환법진에서 튀어나온 것들인데, 신도 궁 안에 어찌하여 소환법진이 생겨났는지는 알지 못하옵니다. 허나 저 귀물들은 현재 어림군과 여러 도우들에게 막혀 있고, 대전 주위에도 원 국사가 친히 설치한 금제가 있으니 제아무리 대단한 귀물이라도 들어오지 못하옵니다. 폐하께서는 안심하셔도 되옵니다.”

대방진인이 어느 창가로 달려가 금제를 통해 바깥을 살피고는 몸을 돌리며 공손히 아뢰었다.

황제는 원 국사라는 이름에 조금 진정한 기색으로 무슨 말을 하려 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황제의 품에 안겨 있던 미모의 여인이 눈을 번쩍 떴는데, 온유했던 눈빛이 더없이 차갑게 변한 채, 자신을 안고 있는 황제를 올려다보았다.

용상 주위에 있던 세 궁녀도 고개를 홱 쳐들었는데, 똑같이 음산하고 차가운 눈빛이었다.

황제는 간담이 서늘해져 무의식적으로 품 안의 여자를 밀어냈다.

“폐하, 조심하십시오!”

황제와 가장 가까이 서 있던 자색 옷의 우사가 이 변고를 가장 먼저 알아차리고는 안색이 급변하여 양손을 번쩍 들고 결인하려 했다.

동작은 옆에 있던 자삼 여인이 한 발 더 빨랐다. 그녀가 다섯 손가락으로 난초 꽃이 피어나는 듯한 결인을 하자, 하얀 빛줄기가 그녀의 손을 떠나 침상 위의 황제를 감싸려 했다.

하지만 아리따운 여인과 세 궁녀의 동작이 더 빨랐다. 그녀들이 동시에 입을 쩍 벌리자 검은 그림자 네 줄기가 쏘아져 나와 순식간에 황제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그의 몸에서 빛나는 금빛조차도 이 검은 그림자를 전혀 막아내지 못했다.

“크아악!”

황제는 고통스러운 듯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안고 처절하게 울부짖기 시작했다.

반면 아름다운 여인과 세 궁녀는 검은 그림자를 토해낸 뒤 다들 두 눈을 뒤집고 다시 혼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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