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333화 (333/1,214)

333화. 혼전(混戰)

심협은 굳은 얼굴로 허리춤의 건곤대를 툭 두드렸다. 그러자 귀장이 번쩍 나타나 손에 두 자루 쥔 장도를 쥔 채 좌우로 휘두르며 서늘한 빛을 막아냈다.

이어서 심협은 있는 힘껏 건곤대를 작동시켜 자신의 발을 휘감은 음살 안개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이 음살의 기운은 땅을 뒤덮은 검은 안개와 같은 뿌리를 가진 것이 분명했다. 그가 안개를 흡수해봐야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더 많은 음살의 기운이 뭉게뭉게 솟아올라 거의 파묻힐 지경이었던 것이다. 벗어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해 보였다.

한편, 육화명은 온몸 위아래로 눈부신 금빛에 휘감긴 채 묘 부인의 명치에서 천천히 장검을 뽑아내다가, 위기에 처한 심협을 보고는 몹시 초조해졌다. 그는 손톱으로 자줏빛 부적을 쥔 채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늦지 않았길…….”

그가 말을 맺자마자 부적지가 완전히 불탔고, 그의 모습은 그 자리에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때, 현효의 손바닥이 떨어져 내려 손바닥에서 서늘한 빛이 귀장이 든 장도를 일격에 베어버리고는 몸통까지 관통해 금방이라도 심협의 가슴을 찌를 것만 같았다.

그 순간, 심협 앞에 갑자기 금빛이 번쩍 빛나더니 다음 순간 환하게 밝아졌다.

그 자리에 육화명이 난데없이 나타났는데, 몸에서는 눈부신 금갑이 팔다리에서부터 몸통으로 빠르게 퍼져 어느새 점점이 금박 같은 부스러기로 사라졌다. 다만 그의 가슴에 번쩍이는 호심경(*護心鏡: 갑옷 앞가슴에 호신용으로 붙이던 구리조각)은 무사히 현효의 일격을 막아냈다.

“가라!”

육화명은 혀를 깨물어 손에 든 장검 위에 정혈을 뿜은 뒤 가볍게 외쳤다.

그러자 순간 장검이 검명을 크게 발하더니, 마치 용이 노닐듯 그의 손에서 날아가 일격에 현효의 명치를 꿰뚫었다.

곧이어 한숨 돌린 심협이 의식을 발동하자 순양검배가 튀어나가 현효의 미간을 향해 곧장 날아갔다.

그러나 붉은 검광이 가까이 이르자마자 현효의 미간이 쩍하고 갈라지더니 안에서 피범벅이 된 커다란 눈알이 나타나 한 줄기 핏빛을 발사했다. 이 핏빛은 붉은 검광을 뒤덮어 허공에 붙잡아 두었다.

그런데 그때, 한차례 세찬 번갯불이 번쩍 스쳤다.

콰지직!

동시에 뒤에서 그림자 하나가 쏜살같이 날아와 현효의 어깨 위로 떨어져 내리며 장창 같은 쇠 정으로 현효의 귀 옆을 비스듬히 위로 찔렀다.

쇠 정 위에 번갯불이 번쩍이면서 곧바로 현효의 머리를 관통해 미간에 세로로 생겨난 눈을 뚫고 나왔다.

구속하던 핏빛이 없어지자 심협의 순양검배는 거침없이 현효의 식해를 파고들었다.

“크아아아!”

현효의 찢어질 듯한 비명 속에, 그의 신혼은 말끔히 불타버렸다. 이어서 현효는 몸을 격렬하게 떨더니 뒤로 쓰러졌고, 차츰 원래 크기로 되돌아갔다.

현효가 죽는 순간, 혈동자는 경악해 주위를 둘러봤으나 묘 부인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그는 덜컥 두려움이 치솟아 곧장 돌아서서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를 놓아줄 생각이 없던 적수진인이 얼른 뒤를 쫓았다.

그 무렵, 현효가 소환해낸 붉은 옷의 귀왕도 흐릿해지며 차츰 사라졌다. 그러자 단양자의 모습이 다시 나타났는데, 상반신은 발가벗은 상태였고, 앞가슴과 등에는 무시무시한 얼굴 열 개가 불쑥 떠올라 있었다. 그 얼굴들은 악귀처럼 흉악하게 일그러진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단양자는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즉시 달려가 현효의 시신을 자세히 들여다보더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두 눈은 아직 망가지지 않았군.”

그는 쾌재를 부르며 현효의 두 눈을 파내려 했다. 그러다가 멈칫하고는 다른 사람들을 둘러보며 머쓱하게 말했다.

“이 유명귀안은 여러분에게는 쓸모가 없으나 나 같은 귀도 수사들에게는 매우 유용하다오. 그러니 내게 양보해주지 않겠소? 그리 해준다면 다른 수확물에는 일절 손도 대지 않겠소.”

그러자 다시 자유를 얻은 심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눈은 제게 필요 없습니다. 다만 그의 육신은 제게 넘겨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 몸의 음살 귀기는 제 부하인 귀장에게 쓸모가 있을 테니 말입니다.”

육화명과 갈천청은 서로 눈을 한 번 맞추고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단양자는 크게 기뻐하며 재빨리 갈고리와 옥합을 꺼내 현효의 두 눈을 파냈다.

심협이 심한 부상을 입은 귀장에게 짧게 분부하자, 귀장은 즉시 현효 옆에 서더니 검은 안개로 변해 그 입과 코를 따라 체내로 들어갔다.

이윽고 그렇지 않아도 말랐던 현효의 몸은 빠른 속도로 오그라들어 끝내 한 줌 먼지로 변했고, 검은 저물계 하나만 땅에 떨어졌다.

옆에서 이 장면을 지켜보던 단양자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심 도우, 자네의 귀장은 서살술(噬煞術)이 보통이 아니구먼?”

심협은 지금껏 그 점에 전혀 개의치 않았지만, 그 말을 듣고서야 문득 귀장이 음살의 기운을 집어삼키는 속도가 분명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주인님, 놀라실 것 없습니다. 속하도 주인님께서 현음개맥결로 살기를 끌어들이신 뒤에야 이렇게 변한 것이니까요. 제 기연은 모두 주인님 덕분입니다.’

곧 귀장의 목소리가 그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그때, 등 뒤에서 쿵 하는 굉음이 울렸다.

사람들이 돌아보니 법진 속에서 검푸른 귀린이 하늘을 찌를 듯 솟구쳐 오르며 바깥의 결계가 곧바로 터져나갔다.

심협은 가슴이 바짝 졸아들어 재빨리 귀장과 묵갑순을 거둬들이고 커다란 구덩이를 바라보았다.

일곱 개의 백골 경관이 모두 무너졌고, 그 너머로 지친 기색의 사우흔이 바닥에 앉아 쉬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녀가 무탈한 것을 보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한바탕 욕지거리가 들려오며 적수진인이 쏜살같이 다가왔다.

“결국 그 애송이 놈을 놓치고 말았소. 바깥에는 귀물들이 몰려오기 시작했으니 우리도 서둘러 떠나야 하오.”

갈천청이 몸을 굽혀 땅에 떨어진 저물계를 주워들며 혀를 찼다.

“돌아가서 나눕시다.”

육화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번에는 이리 위험한 잠복 같은 일은 절대 하지 마십시오.”

심협은 구덩이 아래로 뛰어 내려가 사우흔을 부축하며 웃었다.

사우흔이 막 뭐라 답을 하려는데, 두 사람 발아래 바닥이 갑자기 거세게 진동하더니 갑자기 지하에서 검은 돌풍이 솟아올랐다. 이 돌풍은 순식간에 거대한 소용돌이로 변해 두 사람을 집어삼켰다.

“심형!”

육화명이 경악해 황급히 구하러 왔으나, 그 역시 두 사람과 함께 이 힘에 끌려 들어가고야 말았다.

갈천청과 두 사람은 뭔가 잘못됐음을 알고 즉시 도망가려 했지만, 미처 벗어나기도 전에 점점 더 강력해지는 힘에 휩쓸렸다.

잠시 후 큰 구덩이 속의 검은 회오리가 차츰 잦아들었을 때, 심협 일행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 * *

넓은 장안성 곳곳에서 싸우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울렸다. 거리와 골목마다 전장이었으며 고함소리가 하늘을 뒤흔들었다.

대당관부에서는 모든 군대를 동원했고, 귀물 쪽도 마찬가지였다.

땅 위에서는 일반 병사들과 낮은 등급의 수사들이 강시나 물귀신 같은 약한 귀물들과 맞붙어 싸웠다. 허공에는 먹구름이 하나 떠 있었는데, 먹처럼 까맣고 끝없는 밤하늘처럼 짙어서 온 하늘을 점령할 기세였다.

먹구름 아래에는 경지가 높은 수사들이 강력한 귀물들과 연신단의 수사들을 상대로 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온갖 법기가 격렬하게 번득였고, 귀신들의 그림자가 나부꼈으며, 날카로운 울부짖음과 처참한 비명이 여기저기서 쉬지 않고 울렸다. 또한 불시로 붉은 피가 흩뿌려지고, 잘려나간 팔다리가 뚝뚝 떨어져 내리는 통에 장안성 위쪽 공기가 피비린내로 가득한 것 같았다.

그 와중에 거대하고 밝은 빛 덩어리 여러 개가 떠다니며 서로 치열하게 맞붙었다. 양쪽에서 경지가 가장 높고 강한 자들이 필사의 전투를 벌이는 것으로, 이들은 이따금씩 경천동지할 굉음을 냈다.

선두에는 온몸을 무장한 노인 한 명이 허공에 서 있었으니, 바로 정교금이었다. 그는 손에 금빛 찬란한 두 자루 도끼를 든 채, 키가 8장쯤 되고 온몸이 피처럼 붉으며 머리통이 세 개나 달린 흉악한 해골과 검은 옷에 음양이 반반인 괴상한 얼굴의 키 큰 남자와 격전을 치르고 있었다.

정교금이 찬란한 금빛을 발하는 쌍도끼를 휘두르니 흐르는 구름처럼 거침없고 용이 춤을 추듯 민첩하여, 혼자서 둘을 대적하면서도 압도적으로 우세를 점하고 있었다.

거대한 삼두해골은 여섯 개의 눈을 매섭게 빛내며 세 개의 입을 동시에 쩍 벌렸다. 시뻘건 화염 덩어리들이 그의 입에서 튀어나와 빠르게 불어나더니 눈 깜짝할 사이 지름 10여 장의 핏빛 불덩이가 되어 지글지글 타는 소리를 냈다.

해골의 중간 머리가 다시 입을 벌리자 그 속에서는 한 줄기 혈광이 쏘아져 나와 세 가닥으로 나뉘어 각각 불덩이 안으로 흘러들어갔다. 그러자 시뻘건 화염 덩어리들이 다시 활활 불타오르면서 금세 하나로 합쳐졌다. 이제 작은 산처럼 커진 화염이 정교금에게 별똥별처럼 날아갔다.

사나운 기운이 핏빛 화염 속에서 끝없이 뿜어져 나오자 허공의 천지영기가 물 끓듯 끓어올랐다.

삼두해골의 몸에서 빛나던 혈광이 반절이나 어두워지고 몸뚱이도 적잖이 줄어든 것이 이번 일격은 보통이 아닐 터였다.

한편, 음양의 얼굴을 한 남자도 크게 고함을 지르면서 양손을 뒤집었다. 그러자 그의 앞에 흑백의 보경(寶鏡)이 나타나 역시 흑백의 기이한 빛을 발했다.

음양의 얼굴을 한 남자는 혀를 꿈틀거려 정혈을 한 모금 흑백 보경에 뿜었다. 정혈은 빠르게 녹아들어갔고, 보경에서 피어난 흑백의 빛이 즉시 거세지면서 흑백의 빛기둥을 뿜어내 정교금에게로 날아들었다.

“흥! 요망한 것들!

정교금은 콧방귀를 뀌더니 몸에서 눈부신 금빛을 내뿜었고, 역시 금빛을 내뿜는 커다란 도끼를 가로로 휘둘렀다.

찰나의 순간, 날카로운 파공음이 온 허공에 울려 퍼졌고, 태산 같은 금빛 광풍이 휘몰아쳐 높이가 30장에 달하는 금빛 빛기둥을 이루더니 산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는 듯 공중에서 떨어져 내렸다.

숨 막히는 살기가 대기를 가득 메워 모든 것을 집어 삼킬 듯했고, 허공이 뒤틀리고 변형되었다.

정교금은 금빛 빛기둥에 녹아든 채 요란한 소리와 함께 앞으로 나아가 핏빛 불덩어리와 검은 빛기둥에 부딪쳐갔다.

쾅! 쾅

두 차례 둔탁한 울림에 이어 핏빛 불덩이와 검은 빛기둥이 잘리고 삼켜졌다.

금빛 빛기둥은 그러고도 멈추지 않고 계속 휘몰아쳐 눈 깜짝할 새에 삼두해골과 음양의 얼굴을 한 남자 앞까지 날아왔다.

삼두해골은 원기가 크게 상한 탓에 미처 달아나지 못하고 금빛 빛기둥에 휩싸였다. 금빛 빛기둥에 파묻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으나, 뭔가 쪼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음양 얼굴의 남자는 순간 안색이 창백해져 크게 포효했다. 그러자 흑백보경이 크게 빛을 발하며 흑백의 빛을 빠르게 번득였다. 이어 주위의 대기가 어렴풋이 뒤틀리고 일렁이면서 음양 얼굴의 남자까지 흐릿해지게 만들었다.

그때, 금빛 빛기둥이 순식간에 밀려와 흑백 거울 위를 매섭게 베었다.

콰르릉!

하늘을 뒤흔드는 소리가 울리면서 흑백의 기이한 거울은 부서졌지만, 금빛 빛기둥도 일순 멈춰 섰다.

음양 얼굴의 사내는 피를 왈칵 토해내면서도 그 틈에 뒤로 날아갔다.

그러나 금빛 빛기둥은 곧 흑백 거울을 철저하게 쳐부수고 계속 번개처럼 날아가 순식간에 사내를 따라잡고는 무참히 베어버리면서 집어삼키려 했다.

그 순간, 뒤쪽의 검은 구름에 갑자기 검은 기운이 맹렬히 몰려들어 시커멓고 거대한 짐승의 발을 만들어냈다. 그 위에는 검은 비늘이 가득 돋아 있었고, 무수한 귀신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더해졌다.

이 거대한 발은 앞으로 뻗어 나와 순식간에 10여 장을 뛰어넘고는 음양 얼굴의 남자 앞에 나타나 금빛 빛기둥을 막아섰다.

콰쾅!

요란한 굉음과 함께 금빛 기둥과 검은 발이 동시에 산산조각 나면서, 거센 폭풍이 허공에서 터져 나와 한바탕 광풍을 일으켰다. 반경 10여 리 안의 수사와 귀물들 모두 이 진동에 날아가 버렸다.

정교금이 금빛에 휩싸인 채 나타났다. 마치 천신 같은 그 모습은 절로 경외심을 불러일으켰다.

“원죄(元罪), 네가 드디어 나서려는 것이냐?”

그는 검은 구름 깊은 곳을 바라보며 싸늘하게 외쳤다.

빽빽한 검은 구름이 양쪽으로 갈라지고 길이 하나 생겨나더니,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흔 전후로 보이는 사내는 훤칠한 몸매에 이목구비가 맑고 뚜렷하여 늠름하고 위풍당당했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그의 두 눈으로, 생기가 가득 흘러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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