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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332화 (332/1,214)
  • 332화. 위장신분

    그때, 연신단 사람들도 노경의 죽음을 알아챘다. 그들은 모두 놀라고 분노하여 갑자기 더욱 거세게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방심했구나. 진즉 죽였어야 했는데.”

    묘 부인은 조용히 중얼거리고는 손에 든 하얀 손뼈를 입에 가져다 댔다. 그러자 손뼈의 팔뚝 부분에 갑자기 구멍 몇 개가 생겨나 뼈피리가 되었다.

    그녀가 가볍게 피리를 불자 귀를 찌르는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고, 쓰러져 있던 우록은 극심한 경련을 일으키더니 기괴한 자세로 일어났다.

    우록은 고통스런 표정으로 입을 벌렸지만,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했고, 눈빛은 흐리멍덩한 상태였다.

    그때, 뼈피리에서 울리던 음률이 갑자기 빨라지자, 우록의 몸에 피처럼 붉은 빛이 한 겹 떠오르면서 두 눈에 어두운 빛이 번득였다. 이어서 그는 붉은 단검을 쥔 채 심협에게로 곧장 질주해왔다.

    “음고(音蠱)! 그가 통제를 당하고 있소!”

    육화명이 미간을 찌푸리며 외쳤다.

    “방법이 있소?”

    “고충(蠱蟲)이 몸에 들어가면 짧은 시간 안에 없애기 어렵소. 일단 고충을 쓴 사람을 죽이고 조종하는 법기를 빼앗으면 잠시 통제를 풀 수 있을 터! 고충을 제거할 방법은 그 뒤에 찾아냅시다.”

    육화명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우록이 심협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대는 저 노파를 상대하시오. 내 잠시 우록을 붙잡아 놓겠소.”

    우록과 맞서려 달려들던 육화명은 심협의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즉시 묘 부인에게 달려들었다.

    심협은 발끝으로 땅을 찍고 뒤로 물러나는 동시에 두 손을 결인하여 전력으로 무명공법을 운공하며 두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기운찬 물줄기가 저택 연못에서 미친 듯이 솟아올라 우록을 덮쳐왔다.

    우록이 단검으로 허공을 가르자 그의 몸에서 핏빛이 한 줄기 뿜어져 나와 검의 몸체를 타고 퍼져 나갔다. 그리고 단검이 떨어져 내리는 순간, 물결이 양쪽으로 밀려나면서 통로가 생겨났다.

    그는 그 사이를 파고들어 심협을 뒤쫓았다.

    심협은 인상을 찌푸리고는 갑자기 열 손가락을 갈고리처럼 구부렸다. 그러자 양쪽 물결 속에서 교룡이 고개를 쳐들고 팔뚝 굵기의 튼튼한 수룡 10여 마리가 아래로 쏜살같이 내려와 우록을 휘감아 한복판에 가두었다.

    동시에 심협은 속으로 통령 구결을 가만히 읊조리며 뒤집은 손바닥 위에 물결 소용돌이를 일으키더니, 휙 하고 손을 휘둘렀다.

    물결 소용돌이가 머리위로 날아가자마자 우록의 온몸에서 강력한 기운이 폭발하여 시뻘건 빛이 터져나갔고, 모든 수룡이 무수한 물보라를 일으키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러나 거의 동시에 길이가 3장에 이르는 해모충 요괴가 소용돌이 속에서 튀어나와 우록을 다시 한번 휘감았다. 곧 해모충의 온몸에서 분홍빛 안개가 가득 피어올라 우록의 온몸을 뒤덮었다.

    심협은 이를 보며 코와 입을 가린 채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분홍빛 안개 속에서는 우록의 모습이 흐릿해지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그가 몸부림치며 뛰쳐나가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다만 그는 몇 걸음 떼지 못하고 힘을 잃은 듯 바닥에 쓰러졌다.

    “무춘, 거의 다 되었으니 독기를 거둬도 되겠소.”

    심협이 나지막이 외치자 주위에 자욱했던 분홍빛 안개가 사그라들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사방이 다시 맑아졌다. 심협은 해모충 무춘이 우록의 몸 위에 납작 엎드려 마지막 독기 한 점까지 완전히 흡수하는 것을 잠시 지켜보았다.

    한편, 우록을 중심으로 반경 3척 정도에는 새빨간 지렁이 같은 연충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는데, 모두 무춘의 독기에 죽은 것들이었다.

    “그는 어떻소?”

    심협이 다가서며 조심스레 물었다.

    “혈기가 크게 부족한 데다 나의 독기에 물들어 부상이 가볍지 않은 듯하오.”

    무춘의 답변에 심협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했소. 오늘은 이만 돌아가서 쉬시오.”

    말을 마친 그는 다시 통령술을 시전해 무춘을 되돌려 보냈다.

    “사 도우…….”

    심협은 우록을 부축해 단약을 먹이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우록’이 가볍게 기침을 하고는 천천히 두 눈을 떴다. ‘그’는 초췌한 얼굴로 가볍게 웃었다.

    “저인 줄은 어찌 아셨습니까?”

    심협이 한쪽 손바닥을 펼치니 손바닥에 희뿌연 빛깔의 돌덩이가 하나 놓여 있었다. 바로 무영옥이었다.

    “왠지 모를 낯익은 기운을 느꼈는데, 이것을 보고 바로 알아차렸습니다.”

    심협이 웃으며 답했다.

    그 말에 ‘우록’은 손을 들어 귀 뒤를 문지르더니 다시 힘겹게 얼굴을 몇 번 문질렀다. 그러자 평범했던 남자의 얼굴이 금세 수려한 여인의 얼굴로 변했다.

    사우흔이 아니면 누구겠는가?

    “어떻소? 좀 괜찮으시오?”

    심협이 진심으로 우려하자 사우흔은 창백한 안색으로도 슬쩍 웃었다.

    “목숨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러더니 다소 어색한 표정으로 심협의 품에서 천천히 일어나 앉았다.

    “장안을 떠난 줄 알았는데, 연신단에 잠입해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소. 틀림없이 적잖은 위험을 겪었겠소.”

    “미리 알리지 못한 점, 심 도우께서는 개의치 말아주십시오.”

    사우흔이 조금 미안한 듯 말했으나, 이어서 기침을 했다. 입을 막은 손가락 사이로 피가 스며 나왔다.

    심협은 재빨리 그녀를 한쪽 옆으로 부축해 가서 쉬게 하려 했지만, 뜻밖에도 그녀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휴식을 취할 때가 아닙니다. 우선 저 법진을 파괴해야 해요.”

    사우흔이 힘겹게 몸을 일으키려 애쓰며 그리 말하자 심협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녀를 부축해 결계의 빛 장막으로 다가갔다.

    한편, 육화명은 한 손에 검을 쥐고 다른 손에 둥근 구리거울을 쥔 채 묘 부인과 한데 엉켜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묘 부인은 손뼈를 교묘한 각도로 거듭 휘둘렀지만, 매번 육화명의 장검에 가로막혔다. 그 뒤로는 한 줄기 금빛이 구리거울에서 비쳐 나와 그녀는 끊임없이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러야 했다.

    혈동자도 적수진인에게 얽매여 빠져나올 수 없는 상황에서 현효는 심협과 우록이 결계를 향해 다가가는 것을 보고는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는 예상과 달리 노경을, 그것도 순식간에 죽여 버린 심협의 뒷모습을 보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설마 봉수의 말이 그저 헛소리가 아니었단 말인가?’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그는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이미 봉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에 그는 더더욱 강한 분노가 폭발했다.

    “네놈들이 명을 재촉하는구나!”

    그가 분노하며 외치자 소매에서 검은 부적 두 장이 날아가 거대한 두 귀물의 뒤통수로 녹아들어갔다. 그러자 두 귀물은 갑자기 고개를 쳐들고 포효했다.

    그중 금갑귀왕이 두 눈에서 금빛을 발하며 손에 든 장극을 맹렬히 휘젓자, 검은 회오리바람이 울부짖는 소리를 내며 갈천청을 휘감고 겹겹이 포위했다.

    다른 귀왕은 온몸에서 거센 핏빛을 발하면서 펄럭펄럭 요란한 바람소리와 함께 커다란 옷소매를 휘날려 단양자를 뒤덮었다. 그리고는 소맷부리를 오므려 단양자도 똑같이 한가운데에 가둬버렸다.

    그러는 사이 현효 자신은 순식간에 법진 쪽으로 성큼성큼 달려가 손바닥으로 심협의 등 한복판을 향해 내리쳤다.

    심협은 무영옥을 사우흔의 손에 욱여넣고 그녀를 휙 떠민 뒤, 몸을 돌려 현효를 마주보며 두 손바닥을 앞으로 세차게 뻗었다. 그러자 그의 앞에 둥글고 검푸른 무언가가 튀어나와 순식간에 6척 높이의 거대한 방패가 되더니, 그 위로 물결무늬 같은 푸른 빛을 번득였다.

    현효는 콧방귀를 뀌고는 손바닥에 집중된 힘을 키웠다. 그러자 손바닥 한가운데의 검은 빛이 거세지면서 흑갑순을 묵직하게 내리쳤다.

    쿵!

    현효의 손바닥에서 검은 빛이 폭발하며 눈에 보일 정도로 짙은 살기가 방패 위의 푸른 빛을 흩뜨렸다. 이어서 묵직한 손바닥은 귀갑의 본체로 곧장 떨어지면서 방패 전체가 거세게 흔들렸다.

    방패 뒤에 몸을 숨긴 채 온힘을 다해 묵갑순을 작동시키던 심협도 이 난폭한 힘에 뒤로 곧장 튕겨 날아가 결계의 빛 장막 위에 세게 부딪쳤다.

    쾅!

    그러자 결계의 금제가 작동하면서 눈부신 노란 빛이 폭발하며 심협을 앞으로 튕겨냈다.

    다행히 현효의 공격은 대부분 묵갑순에 가로막혔고, 결계의 금제도 그리 강한 편은 아니어서 심협은 피를 한 모금 뿜어내긴 했어도 몸에는 큰 지장이 없었다.

    다만 심협이 강한 기세로 나가떨어지는 바람에 막 결계 옆에 도착한 사우흔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심 도우!”

    그녀가 놀라서 비명을 내지르자 심협은 비틀거리면서도 일어서서 똑바로 서더니 입가의 핏자국을 쓱 문질러 닦고는 재빨리 묵갑순을 불러들였다. 그 사이 현효가 단숨에 다가서며 손바닥으로 내려쳤다.

    뒤에 사우흔이 있었기에 피할 수 없었던 심협은 이를 악물고 결단을 내렸다. 그는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며 어느새 원래 크기를 되찾은 묵갑순을 두 손으로 떠받친 채, 혼신의 힘을 다해 무명공법을 운공해 모든 법력을 그 안으로 불어넣었다.

    묵갑순에서 다시 푸른 빛이 환하게 뿜어져 나오고, 겹겹이 금제 부적 문양이 연이어 빛나면서 마름모꼴 귀갑(龜甲) 무늬가 연이어 떠올라 무려 12층이 넘는 광흔으로 응집되었다.

    현효의 손바닥은 묵갑순에 가까워지자 돌연 다섯 손가락이 구부러지면서 날카로운 짐승의 발로 변했다. 그의 손가락 끝에는 검은 빛이 맺혔고, 이 빛은 다섯 줄기 가느다란 소용돌이가 되어 더없이 예리한 기세로 귀갑 위에 떨어졌다.

    쩌적! 쩍!

    귀갑의 광흔은 줄줄이 현효의 손톱에 뚫렸고, 12도 금제는 뜻밖에도 종잇장처럼 찢겨나갔다.

    쨍!

    마침내 쟁쟁한 소리와 함께 현효의 손이 모든 광흔을 완전히 산산조각내고 묵갑순 본체를 세게 내려쳤다.

    심협은 이 거대한 힘에 밀려 다시 한번 비틀대며 몇 걸음 물러났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이를 악문 채 몸으로 방패를 떠받치며 현효가 더 나아가지 못하도록 온몸으로 막았다.

    “심 도우!”

    사우흔이 굳은 얼굴로 다가오려 하자 심협이 다급히 외쳤다.

    “나는 괜찮으니 어서 법진을 파괴하시오.”

    그는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채 피를 토하면서도 이를 악물었다.

    사우흔은 결의에 찬 표정으로 무영옥을 결계의 빛 장막에 대고 누르며 얼마 남지 않은 법력을 끌어모아 쏟아부었다.

    무영옥이 별안간 밝게 빛나며 겹겹이 물결 같은 빛을 뿜어내 결계의 빛 장막 위를 비추었고, 두 빛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군데군데 흐릿한 부분이 생겨났다.

    사우흔은 그 부분으로 손을 뻗었는데, 그러자 놀랍게도 손바닥은 빛 장막을 그대로 뚫고 결계를 파고들어갔다.

    그녀는 눈에 희색이 스쳐 지났다. 그녀는 온몸을 솟구쳐 빛 장막을 뚫고 지나가 커다란 구덩이 속으로 뛰어들었다.

    이 모습을 본 현효는 격노하여 심협을 향해 크게 고함을 내질렀다.

    “꺼져라!”

    동시에 그의 온몸에서 살기가 종횡무진 쏟아져 나왔다. 동시에 온몸의 기운이 빠르게 변하기 시작하면서 몸에서 전해지는 법력 파동 역시 출규 초기에서 차츰 출규 중기에 육박했다.

    심지어 체구도 빠르게 커지고 얼굴도 변하기 시작해, 잠시 후에는 키가 거의 3장에 달하는 흉악하고 추한 용모의 거인이 되어 있었다. 지금의 그는 귀왕보다 더 귀왕 같아 보였다.

    그가 손을 휘두르자 거대한 손바닥에서 검은 빛 다섯 줄기가 날카로운 낫처럼 심협을 비스듬히 베었고, 비할 데 없이 강한 바람도 뒤따라 불었다.

    챙!

    묵갑순이 거대한 힘에 휩쓸리면서 그대로 심협의 손을 벗어나 바닥을 굴렀다.

    현효는 다섯 손가락을 모아 심협의 가슴팍을 곧장 찔러왔다.

    묵갑순을 잃은 심협은 전력으로 사월보를 시전해 피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의 발아래 달빛은 밝아지자마자 꺼지고 말았다. 바닥은 어느새 시커먼 살기에 잠겨 있었고, 그의 두 다리는 검은 안개 소용돌이에 휘감겨 옴짝달싹할 수조차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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