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330화 (330/1,214)
  • 330화. 폭로된 계획

    “현효(玄梟) 장로님, 다녀왔습니다.”

    우록이 앞으로 나서며 포권을 하자 결계의 빛 장막 안에 있던 검은 옷의 중년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그는 심협에서부터 사람들의 몸을 슥 훑어보고는 고개만 끄덕일 뿐 별다른 말은 없었다.

    “우록, 그리 오랫동안 나가 있었는데 고작 이깟 것들을 데리고 돌아온 거야?”

    날카로운 이빨이 입안 가득 자라 있는 못생긴 동자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급하게 구하느라 고를 만한 틈이 없었다.”

    우록은 그를 흘끗 보고는 다소 언짢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우록도 돌아왔겠다, 우리도 거의 다 준비되었으니 시작해도 되겠어.”

    백발의 노부인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줄곧 눈을 감고 침묵하던 건장한 청년이 천천히 두 눈을 떴다.

    한편, 심협은 그들의 대화에 약간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우록에게는 들은 바가 없는데, 저들은 무엇을 하려는 걸까?

    그는 불쑥 의심이 들어 육화명이 알려준 해공법(解控法)을 언제든 시전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묘(苗) 부인, 무엇을 시작하신다는 겁니까?”

    우록이 의아한 듯 물었다.

    “네게는 말하지 않았다만, 잠시 후에 우리는 힘을 합쳐 칠등인혼진(七燈引魂陣)을 작동시켜 음령산 고분의 가장 큰 귀왕을 소환해 올 것이다. 너와 봉수가 함께 밖에서 법진을 지켜야 해.”

    백발 노부인이 말했다.

    “그랬군요. 제게 맡기시지요.”

    우록이 포권하며 답했다.

    “이번에 대당관부에서 돌연 반격을 해와 그 기세가 맹렬하니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이리 하자. 노경(盧慶), 너도 저 두 사람과 함께 바깥을 지켜라. 소환대진은 우리가 작동시키겠다.”

    현효라는 검은 옷의 사내가 불쑥 말하자 건장한 청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결계 빛의 장막 언저리에서 멈춰 섰다.

    이어서 현효가 손목을 돌리자 손바닥 한가운데에 검은 옥결(*玉玦: 옥으로 만들어 허리에 차는 고리)이 나타났다. 그가 엄지로 그 위를 가볍게 누르자 옥결 겉면이 빛나면서 노경 앞 빛의 장막에 사람 키만 한 틈이 갈라졌다.

    노경은 고개를 살짝 숙여 틈새를 지나 단숨에 큰 웅덩이 밖으로 뛰쳐나왔고, 묵묵히 한쪽 옆에 가부좌를 틀었다. 이내 빛의 장막에 갈라진 틈이 닫혔다.

    한쪽에 서 있던 봉수는 잠깐 망설이더니 다른 쪽으로 가서 가부좌를 틀었다.

    우록은 구리종을 가볍게 흔들고는 두 사람 맞은편으로 걸어갔고, 심협과 사람들도 산송장처럼 그 뒤를 따랐다.

    우록 역시 앞의 둘처럼 가부좌를 틀더니 신식으로 심협 일행에게 물었다.

    ‘지금 칠 것이오?’

    ‘원래는 출규기 하나에 응혼기 셋이라 했는데, 이제 벽곡기 하나가 더 늘었으니 처리하기 쉽지 않을 것 같구려.’

    조금 걱정이 되는 듯 단양자의 한숨으르 내쉬었다.

    ‘갈 도우, 저 출규기 수사를 좀 붙잡아둘 방법이 있습니까? 그 틈에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제압한 뒤 그대를 도와 힘을 합쳐 저 현호라는 자를 죽이는 겁니다.’

    육화명의 목소리가 울렸다.

    ‘현효라는 자가 출규 초기 수사라면 내 잠시 붙잡아둘 수 있지만, 중기 이상이라면 우리가 힘을 합쳐도 당해내지 못할 것이오.’

    갈천청이 긴장한 목소리로 답했다.

    ‘나도 저자를 거의 본 적이 없어 그의 정확한 경지를 판단하기 어렵소.’

    곧이어 우록의 목소리가 사람들의 마음속에 울렸다.

    ‘그럼 도박을 하는 수밖에 없겠구려.’

    적수진인이 말했다.

    ‘그전에 어떻게 저 결계의 금제를 뚫을지 상의해야 맞는 것 아닙니까?’

    심협이 의문을 제기했다.

    ‘그건 내게 방법이 있으니 걱정할 필요 없소. 다만 그대들이 나 대신 시간을 좀 벌어주어야 하오.’

    우록의 답에 육화명이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 계획을 설명했다.

    ‘당장은 나서기에 좋은 때가 아니니 저들이 법진을 운행하기 시작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소환의 중요한 시기가 되면 일제히 나서서 운행을 끊어 놓읍시다. 그리 되면 법진 안의 사람들은 벗어날 수 없을 테고, 법진 바깥의 두 수사는 도마 위의 생선 꼴이지요. 그때 우리가 둘로 나뉘어 한쪽에서는 이 두 사람을 제압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결계를 열고 법진에 들어갑시다.’

    ‘좋소, 육 도우의 계획이 좋을 듯하오.’

    단양자가 찬성하자 이번에는 적수진인이 나섰다.

    ‘그 두 무리의 인원은 어찌 나눌 것이오? 될 수 있으면 나는 결계를 여는 쪽에 들어가고 싶은데……. 그리 되면 저 혈동자(血童子)는 내게 맡기시오.’

    ‘안 될 것 없지요. 제 견해로는 갈 도우께서 적수진인, 우록 도우와 편을 이루어 결계를 깨뜨리는 일을 맡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나머지 우리 셋이 한편이 되어 단양자 도우께서 벽곡기 수사를 죽이는 동안 저와 심 도우가 노경을 상대하지요. 여러분들 의향은 어떻습니까?’

    육화명의 계획에 단양자가 약간 비웃는 듯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내가 한낱 벽곡기 수사를 맡는 것은 소 잡을 칼로 닭 잡는 격 아니겠소?’

    단양자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식해 속에 문득 심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솔직히 말해 저는 저 벽곡기 수사와 한 차례 붙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의 수련 경지는 변변치 않으나 달아나는 솜씨가 영악하니 도우께서는 얕잡아보지 않길 바랍니다.’

    단양자는 그 말을 듣고 잠깐 멍해졌다. 이번에 심협은 그 한 사람에게만 목소리를 전해왔기 때문이다.

    ‘알겠네. 주의를 주어 고맙네.’

    그는 짧게 대꾸했다.

    다들 육화명의 계획에 별다른 이의가 없어서 숨죽이고 기다렸다.

    곧 결계 안의 사람들은 각자 결인하여 법진을 작동시키기 시작했다.

    뒤이어 뜻을 알 수 없는 읊조림이 들려왔고, 칠등인혼진 속의 작은 백골 경관들도 하나둘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 속에 있는 모든 두개골의 눈구멍에서 검푸른 귀린(*鬼燐: 무덤가 등에서 귀신이 낸다고 하는 검푸른 불빛)이 번득였다.

    무리지어 희미하게 흔들리는 불꽃 속에서 검은 연기 한 가닥이 어렴풋이 흩날려 법진 위 3장 높이쯤 되는 곳에 자욱하게 퍼지더니, 조금씩 모여들어 검은 구름을 이루었다.

    이 검은 구름 안쪽에는 음살의 기운이 가득했고, 점차 혼돈의 소용돌이가 생겨나는 것이 희미하게 엿보였다.

    그때, 현효가 두 눈을 번쩍 뜨고는 두 손가락을 모아 앞쪽을 가리켰다. 손끝에서는 곧 한 방울 핏빛이 날아가 법진 속 어느 경관 제단에 꽂혔다.

    묘 부인과 혈동자도 차례로 나서서 다른 제단에 핏빛을 떨어뜨렸다.

    이들이 일련의 동작을 마치자, 일곱 개의 경관 제단 위에서 동시에 핏빛 기둥이 솟아올라 검은 구름과 곧바로 연결됐다.

    그 순간, 구름 안쪽에서 붉은 빛이 떠올랐고, 이제 막 형성된 핏빛 소용돌이가 빠르게 회전하면서 강력한 흡인력이 뿜어져 나왔다.

    제단 주위에 앉아 있던 현효와 두 사람의 몸에서는 순간 법력이 밀물처럼 솟구쳐 핏빛 기둥을 타고 올라가 높은 하늘의 혈운(血雲)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갔다.

    “일곱 개의 별이 등불을 켜고 혈살(血煞)로써 인도하나니, 소환!”

    현효가 크게 고함을 질렀다.

    그러자 허공의 혈운이 일시에 미친 듯이 요동치면서 더없이 짙은 음살의 검은 기운이 소용돌이에서 솟구쳐 나와 결계 공간 전체를 가득 채웠다.

    심협은 정신을 집중하여 빛의 장막을 통해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혈운 사이로 청자색의 거대한 발바닥 두 개가 천천히 아래로 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 위에는 각각 커다랗고 하얀 구슬 발찌가 채워져 있었다.

    ‘엄청난 살기다! 이것이 바로 음령산 고분의 가장 강력한 귀왕인가?’

    심협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그는 그제야 두 발바닥에 채워진 하얀 발찌가 구슬 따위를 꿴 것이 아니라 눈처럼 새하얀 해골임을 알아차렸다.

    그 거대한 존재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면서 법진 속 현효와 두 사람의 몸을 뒤덮은 핏빛도 더욱 거세졌다. 이들은 적지 않은 압력을 받고 있는 듯 표정이 힘겨워 보였다.

    그때, 육화명의 목소리가 울렸다.

    “지금입니다! 공격!”

    일찍이 준비를 마치고 있었던 심협과 단양자의 몸이 동시에 움직여 각각 왼쪽과 오른쪽으로 중간의 결계를 돌아가 노경과 봉수에게 달려들었다.

    심협은 발밑에 달빛을 반짝이면서 잔상으로 변해 단양자보다 배는 빠른 속도로 노경에게 돌진했다. 그가 손으로 철썩 내려치자 노란 인장이 쏜살같이 날아가 허공에서 환하게 빛을 발했다.

    위잉! 위이잉!

    간간이 기이한 소리가 울리면서 겹겹이 산악의 허상이 나타나 오악(五岳)의 진짜 모습으로 시각화되면서 노경을 짓눌렀다.

    한데 산악의 형상이 머리에 가까워진 순간, 노경이 두 눈을 번쩍 떴다. 그의 손바닥 한가운데에는 어느새 커다란 검은 우산이 생겨나 있었는데, 그는 그 우산을 땅에 내리꽂으며 단숨에 펼쳤다.

    펼쳐진 검은 우산의 표면에는 상의를 벗은 채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세 명의 역사(力士)가 살아 있는 듯 생생하게 그려져 있었다. 그 위로는 검은 빛이 짙게 뿜어져 나와 내리누르는 산악을 그대로 떠받쳤다.

    노경은 그 아래에서 곧장 뛰쳐나와 거의 바닥에 딱 붙은 채 빠르게 돌진하여 심협 앞에 이르더니 주먹으로 그의 얼굴을 내리 꽂았다.

    심협은 그와 푸른 빛의 소용돌이가 휘감긴 주먹이 난데없이 날아오는데도 전혀 물러서지 않고 주먹을 마주 휘둘렀다.

    쿵!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두 사람 사이에서 강력한 폭풍이 터져 나왔다.

    심협은 산과 바다를 뒤엎을 듯한 엄청난 힘이 팔뚝을 타고 전해져 오는 것을 느꼈고, 팔 전체가 거의 마비될 지경이 되어서는 인상을 찌푸리며 물러났다.

    그러나 노경은 그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는지 발끝으로 땅을 구르더니 이번에도 거의 땅에 달라붙은 자세로 쫓아와 명치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그의 주먹이 막 심협의 명치에 꽂히려는 찰나, 위에서 푸른 검광이 날아와 노경을 막아섰다. 육화명이 사뿐히 날아 내려와 발끝으로 가볍게 검자루를 딛고 선 채 물었다.

    “심형, 괜찮으시오?”

    “나는 괜찮소. 저놈 힘이 참 장사요.”

    심협은 팔을 가볍게 털며 답하고는 힐끗 시선을 돌려 단양자 쪽을 바라보았다. 봉수가 한주먹에 명치를 뚫리고 나가떨어져 고목에 부딪히는 게 보였다.

    그런데 그놈은 곧 또다시 바닥에서 기어 일어났다. 뜻밖에도 명치의 구멍에서는 피 한 방울 나지 않았다. 게다가 상처도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회복되기 시작했다.

    그때, 그 역시 심협을 보았고, 심협의 몸에 붙은 음령부의 위장이 사라지면서 본모습이 드러났다.

    “너, 너는…… 심협!”

    봉수는 깜짝 놀라더니 곧 분노를 참지 못하고 외쳤다.

    심협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지만 고개를 돌려 이번에는 갈천청 쪽을 흘끗 돌아보았다. 우록이 손으로 주먹만 한 회색 돌을 결계에 대고 누른 채 쉬지 않고 법력을 주입하고 있었다.

    “저 돌은…… 무영옥!”

    심협은 한눈에 그 돌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시선을 돌리다가 언뜻 본 우록의 뒷모습이 눈에 익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미처 제대로 분간하기도 전에 쾅 하는 폭발음이 결계 쪽에서 들려왔다.

    폭발한 곳에는 검은 빛이 사방으로 흩어졌고, 갈천청을 포함한 세 사람은 뜻밖에도 동시에 밀려났다. 무영옥마저 날아가 한쪽 옆에 떨어져 있었다.

    “예전에는 귀신이 사람으로 변장한 것만 보았는데 오늘 정말이지 견문을 크게 넓혔다. 처음으로 사람이 귀신 변장한 것을 보았으니 말이야. 크크크.”

    비웃음 가득한 목소리가 결계 속에서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놀랍게도 아까까지 전력으로 법진을 작동시키던 현효와 두 사람이 빛의 장막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갈천청 등은 이 광경을 보고 즉시 심협 곁으로 물러났다.

    “보아하니 이미 발각된 모양이오.”

    육화명도 검을 들고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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