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329화 (329/1,214)
  • 329화. 음택(陰宅)법진

    마당의 잡초 덤불을 헤치고 검은 장포 차림의 청년이 걸어 나왔다. 몸은 호리호리했고, 빛이 날 정도로 안색이 창백해 핏기라고는 거의 없었지만, 두 눈만은 밝게 빛났다.

    “당신이 연락책이면, 이자는……?”

    육화명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잘못 뛰어든 귀물이오. 영지가 높지는 않은데…… 허나 그대와 별 차이는 없어 보이는구려.”

    청년은 그렇게 말하고는 심협부터 시작해 사람들을 하나하나 훑어보았다. 그러는 동안 번개 한 줄기가 번득이는 듯싶더니 목을 맨 귀신이 재로 변해 사라졌다. 갈천청이 손끝으로 귀신의 머리를 꿰뚫은 것이다.

    “큼큼! 도우는 이름이 어찌 되시오?”

    육화명이 마른기침을 두어 번 하고는 머쓱하게 물었다.

    심협은 이 상황에 웃음이 나올 뻔해 겨우 참았다.

    “우록(于錄). 그대들은 지금 모두 귀물이니, 이따가 나를 따라 움직일 때 멋대로 입을 열어서는 아니 되오.”

    우록이라 밝힌 사내가 당부하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각자 간단히 자기소개를 했다.

    “법진 쪽은 어떠하오?”

    갈천청이 엄숙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곳의 법진은 연신단에게 매우 중요한 곳이라 본래 대승기 장로가 지키고 있었소. 허나 아침에 대당관부에서 수사들을 동원해 대대적으로 전투를 일으켰고, 그 공세가 워낙 맹렬해 그 대승기 수사도 전투에 참가하러 갔소. 지금은 그의 출규기 제자가 응혼기 수사 세 사람을 데리고 지키고 있소.”

    “출규기 하나에 응혼기 셋이라. 이번 싸움이 쉽지는 않겠구나.”

    단양자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더니 말했다.

    “우 도우, 그들 각자가 수련하는 공법의 속성은 어떻게 되는지 아시오?”

    심협이 물었다. 상대를 알고 나를 알아야 백전백승할 수 있는 법. 그들의 공법 속성을 미리 안다면 상대할 수단을 준비하기 좋을 터였다.

    “나는 그 대승기 수사가 귀수(鬼修)라는 것만 아오. 그의 제자들도 아마 그럴 테지. 나머지 세 명은 모두 임시로 파견한 이들이라 잘 알려져 있지않아 모르겠소.”

    우록의 말에 적수진인이 참지 못하고 투덜댔다.

    “거참…… 쓸모 있는 정보도 너무 적지 않소?”

    “내가 잠입했을 때의 임무는 본디 법진과 그 핵심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었소. 연신단 구성원에 대한 조사는 그저 보조적인 임무였지. 더구나 전세가 순식간에 바뀌어 우리의 배치가 바뀌었고, 상대편도 마찬가지였소. 전에 지키던 수사들 모두 임시로 불려갔으니 그들에 관한 정보 또한 소용없고, 새로 온 이들은 처음 보는 자들이니 나도 어쩔 도리가 없지요.”

    “우 도우가 위험을 무릅쓰고 연신단에 잠입한 것만으로 쉽지 않았을 테니 무리한 요구를 해서는 안 되오.”

    우록이 싸늘한 목소리로 답하자 육화명이 재빨리 분위기를 수습했다.

    “그런 인사치레나 하는 것보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이야기해보는 게 낫겠소만.”

    갈천청이 무표정하게 말했다.

    “핵심이 되는 소환법진은 멀지 않은 장부(張府)에 있소. 이전에 호부(戶部) 관원의 저택이었는데, 성 남쪽에서도 서쪽에 가까운 곳으로 남명장음(南明藏陰)의 땅이라 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음택(*陰宅: 사람이 사는 집인 양택에 빗대어 무덤가를 이르는 말)을 만들기에 적당한 자리요.”

    우록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남명장음이라……. 허참, 그 장씨 호부 관원이 터 하나는 기똥차게 골랐소이다. 무덤 위에 살고 있었으니. 허허!”

    적수진인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풍수적으로 보아 음택 같은 곳은 음양이 충돌하니 가정이 불화하고, 육축이 불안하며, 사람의 수명을 단축시킬 뿐이라 사람이 살기에 적당하지 않았다.

    “진인 그대가 몰라서 하는 말이오. 이곳은 장안성으로, 천자의 발밑이니 수도 근처에는 자연히 마음대로 무덤을 만들 수 없소. 이 장씨 관원은 아마 이 땅을 사 저택을 지었지만, 여기 살지 않고 뒤로 뭔가 꿍꿍이 수작을 부렸을 거요.”

    단양자는 귀도(鬼道)에 정통하여 음양 간의 금기사항도 두루 섭렵하고 있었다.

    “맞소. 이 저택은 줄곧 비어 있었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연신단 사람들이 은밀하게 점거하고 있었소.”

    우록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특별히 주의해야 할 것이라도 있소?”

    심협이 물었다.

    “당연하오. 남명은 불이고, 오행에서 양(陽)에 속하오. 그 한가운데에는 지하의 수맥이 현무문(玄武門)에서부터 뻗어 나와 음살의 기운이 숨겨진 땅이 만들어졌고, 원래는 장씨 관원 집안의 조상들이 묻혔던 곳이오. 지금은 연신단 수사들이 소환법진으로 개조했지만. 우리는 바로 이곳에서 그 법진을 파괴해야 하오.”

    “지체해서 좋을 게 없으니 당장 갑시다.”

    적수진인이 그리 말하며 앞으로 나서는데, 우록이 입을 열었다.

    “모두들 가기 전에 이것부터 붙이시오.”

    말을 마친 그가 손목을 돌리자 청상지에 그린 부적 다섯 장이 나타났다.

    부적 중앙에 그려진 사람 모양 도안을 본 심협이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우 도우, 우리에게 이 괴뢰부를 붙여 무얼 하려고 그러시오?”

    그의 말에 단양자와 다른 사람들의 안색도 어두워졌다.

    “나는 법진을 지키는 괴양상인(槐楊上人)에게 쓸 만한 괴뢰귀물들을 찾아오겠다는 핑계로 나온 거요. 그러니 이를 구실 삼지 않으면 어찌 그대들을 데리고 돌아갈 수 있겠소?”

    우록의 차분한 설명에도 사람들은 잠시 침묵에 잠겼다.

    “제가 먼저 시험해 보지요.”

    육화명이 우두머리답게 먼저 나서더니 우록의 손에서 괴뢰부를 집어 들어 곧바로 자신의 가슴팍에 붙였다. 그러자 괴뢰부가 빛을 발하더니 푸른 빛이 한 층 뻗어 나와 그의 온몸을 감쌌다.

    그는 이내 뻣뻣하게 굳어 움직일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신식과 의식에는 영향을 받지 않았다.

    우록이 한 손으로 결인하더니 입으로 가볍게 몇 마디 읊조리자 육화명의 몸에서 빛나던 푸른 빛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스스로 행동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이오?”

    육화명이 물었다.

    “법진을 지키는 이들 중에 얼빠진 놈은 하나도 없소. 만약 가짜 괴뢰부를 쓰다가 발각된다면 다된 밥에 코 빠트리는 격이오. 하여, 임무에 착수하기 전에 그대들의 신식은 스스로 움직일 수 있겠지만, 몸은 꼭두각시와 다름없이 내게 통제당할 것이오.”

    “내 몸의 통제권을 넘기라니, 미안하오만 나는 받아들일 수 없소이다.”

    적수진인이 즉각 반대의사를 표했다.

    “나도 승낙할 수 없소.”

    단양자도 뒤이어 말했다.

    심협도 의심과 걱정이 들기는 마찬가지였다. 부적을 통제하는 자가 육화명이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이상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누구든 자기 생사가 달린 일을 남의 손에 온전히 맡기고 싶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그저 괴뢰부일 뿐이오. 그대가 감히 배반할 마음을 품는다면 나는 개의치 않고 그대를 먼저 죽일 것이오.”

    갈천청은 차갑게 내뱉고는 우록의 손에서 부적을 건네받았다.

    그때, 심협의 마음속에 육화명의 목소리가 울렸다.

    ‘심형, 이 부적은 진짜이긴 하나 푸는 방법을 내 알고 있으니, 이따가 그대에게 가르쳐주겠소. 그러니 지금은 일단 응낙해주시오. 임무를 생각해야지요.’

    이에 심협도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관부에서 파견한 자이고, 암호도 알고 있었으니 믿어보지요. 임무를 수행하기도 전에 우리끼리 뜻이 어긋난다면 이번 임무는 볼 것도 없이 실패할 겁니다.”

    말을 마친 심협도 부적을 받아 손에 쥐었다.

    우록은 의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처음으로 얼굴에 미소를 내비쳤다.

    단양자와 적수진인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는 신식으로 이야기를 좀 나눴는지, 이내 괴뢰부를 받아 들었다.

    모두가 부적을 붙이자 우록은 소매에서 손바닥만 한 구리종을 꺼내 몇 번 가볍게 흔든 뒤, 심협 일행의 몸을 조종하여 후원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고택 뒷문으로 나가 골목을 하나 지나더니 금세 장부의 대문 앞에 이르렀다.

    썰렁한 대문 앞에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귀물조차 보이지 않아 대당관부의 수사들이 공격해온대도 이곳은 빠뜨리고 넘어갈 듯했다.

    심협이 눈을 좌우로 굴려보니 기세가 범상치 않은 저택 문 앞에 사람 허리춤까지 올 듯한 돌사자 두 개가 놓여 있었다. 어찌나 정교하게 조각했는지, 그 위세가 대단했다. 다만 이상하게도 사자의 두 눈은 붉을 비단으로 가려져 있었다.

    ‘과연 음택으로 쓰였구나.’

    그는 풍수를 깊이 연구하지는 않았지만, 속세의 금기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우록은 곧바로 문을 열고 들어가지 않고, 손을 들어 문 위에 새겨진 사자가 입에 문 둥근 고리로 문을 가볍게 몇 번 두드렸다.

    탁! 탁! 탁!

    이내 붉은 칠을 한 대문에 노란 빛이 물결처럼 일렁이며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역시 문에도 금제가 있었어!’

    심협은 속으로 생각했다.

    잠시 기다리자 대문이 끼익 하고 안쪽으로 열렸다.

    곧이어 심협은 문 뒤에 퍽 낯익은 그림자 하나가 서 있는 것을 보았다. 푸른 장포를 입었고 안색이 병든 것처럼 파리한 그는 바로 그날 대력산 천갱에서 달아났던 봉수였다.

    심협은 거의 반사적으로 공격에 나서려 했으나, 가까스로 참았다. 어차피 괴뢰부로 통제당하고 있으니 공격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뒤이어 자신이 지금 귀물의 모습을 하고 있어 저쪽에서는 알아볼 수 없음을 깨달았다.

    선두의 위록도 봉수를 보고는 의아한 듯 물었다.

    “너는 웬 놈이냐?”

    “나는 봉수라 하오. 명을 받고 이곳을 지키는 것을 도우러 파견되었소.”

    봉수가 공수하며 말했다.

    “아, 그렇구려. 봉 도우, 수고하셨소.”

    우록은 표정 변화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봉수가 길을 비켜주자 우록은 손에 든 구리종을 흔들어 심협 일행을 데리고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이곳 장부에는 평소 사람이 살지 않았지만, 내부는 좀 전까지 머물렀던 고택보다 훨씬 나았다. 회랑 바닥에는 먼지가 많았지만, 최소한 잡초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청소하는 사람이 자주 왔었다는 의미이리라.

    심협 일행은 봉수를 따라 곧장 회랑과 뜨락을 지나 마지막으로 저택 후원 서남쪽 구석의 어느 화원에 도착했다.

    화원에 들어가기 전에 심협은 화원의 권문(*券門: 아치형 문)바깥에 서서 입구를 지키는, 흉악한 귀물 일곱 마리를 보았다. 몸을 좌우로 한들한들 흔드는 것이 꼭 물속의 부평초 같았다.

    권문 위에는 편액이 하나 걸려 있었는데, 위에는 검게 왕생(往生)이라는 두 글자가 적혀 있었다.

    권문을 지나자 땅 위에 봉토가 여러 무더기 쌓여 있었다. 그 위에는 군데군데 썩은 뼈들이 널려 있었는데, 어떤 것들은 이미 밟히고 부서져 부스러기가 된 상태였다.

    대충 세어보니 대략 일고여덟 구 정도였는데, 모두 장씨 집안 선조들의 유골인 듯했다.

    ‘관운이 형통하려고 음택을 지었을 텐데 결국은 시신이 바깥에 나뒹굴고 유골을 보전하기 어렵게 되었으니. 정말이지 득보다 실이 크구나.’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우록의 통제 아래 벌써 화원 한가운데에 와 있었다.

    화원 중앙지역에는 둘레가 10여장 쯤 되는 커다란 흙구덩이가 파여 있었고, 안에는 사람 머리로 쌓은 경관을 기초로 하여 일곱 개의 법단 모양 진추(*陣樞: 법진의 핵심 부분)가 북두칠성 형태로 설치되어 있었다.

    격언에 이르길 ‘남두육성은 탄생을 관장하며, 북두칠성은 죽음을 주관한다(南斗注生, 北斗注死)’고 했다. 연신단이 남명장음의 땅인 이곳에 북두사진(北斗死陣)을 세웠으니 이곳은 과연 핵심 법진이 있는 곳이었다.

    주변을 훑어본 심협의 동공이 살짝 움츠러들었다.

    앞쪽 구덩이 밖에는 일종의 결계인 듯한 엷은 황색 빛의 장막이 드리워져 있었고, 그 안에 네 사람이 가부좌를 틀고 있었던 것이다.

    그중 우두머리는 깡마른 체구에 검은 옷을 입은 중년 남자였는데, 광대뼈가 툭 불거졌고, 눈은 움푹 꺼졌으며, 코는 매부리코라 꼭 매와 같은 얼굴이었다.

    그 맞은편에는 법진을 사이에 두고 각각 짝달막한 동자와 백발의 노부인 그리고 건장한 청년이 앉아 있었다.

    자그마한 동자는 무척 못생겼는데, 이목구비가 거의 한데 모여 있었고, 입이 다물어지지 않아 검붉은 잇몸과 톱니처럼 날카롭고 섬뜩한 이빨이 드러났다.

    백발의 노부인은 자상하고 온화한 얼굴이었지만 앞가슴에는 새하얀 손뼈를 걸고 있었다. 크기로 보아 어린아이의 것인 듯한 손뼈의 손가락마디는 온전하고 그 위로 맑은 빛을 띠는 것이, 어떤 법기인 듯했다.

    건장한 청년은 줄곧 두 눈을 감고 있었는데,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얼굴에 표정도 변화가 없었다. 어떤 일에도 그다지 흥미가 없는 것 같아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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