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328화 (328/1,214)
  • 328화. 만 번의 죽음도 불사하겠습니다!

    “이곳은 성안과 가까운 지하석실이라네. 우선 자네들은 여기서 잠시 쉬고 있다가 문의 금제가 사라지면 곧장 성 남쪽으로 잠복해 들어가게. 우리 쪽 사람과 어찌 만날지는 이 옥간에 있네. 육 현질, 이 물건은 자네에게 맡기겠네.”

    황목상인은 옥간을 하나 꺼내 육화명에게 주었다.

    다른 네 사람은 이 선택을 충분히 납득했다. 다섯 사람 중 육화명만이 대당관부 사람이니 정교금과 황목상인이 그를 가장 신임하는 것도 당연했다.

    “여러 소우들, 뱀도 머리가 없으면 못 나아간다고 하지 않던가. 육 현질의 경지가 그대들 중 가장 높다고는 할 수 없으나 임무를 수행한 경험이 가장 많고 적에 대처하는 능력도 매우 뛰어나니, 이번 임무에 육 현질을 우두머리로 삼고자 하네. 어떤가?”

    황목상인은 다른 네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육형은 국공 대인께 가르침을 받았으니 더없이 믿음직하지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선택인 듯합니다.”

    심협이 그렇게 말하자 다른 세 명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고개를 끄덕였다.

    황목상인은 미소를 띤 채 이를 보고 있다가 몸에서 노란 빛을 번쩍이더니 이내 석실에서 사라졌다.

    “이 육모, 여러분의 신임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절대로 혼자서는 완수할 수 없는 임무이니 다 같이 힘을 합칩시다!”

    육화명이 다른 네 사람을 향해 공수했다.

    “육 아우, 격식 차릴 필요 없네. 황목상인께서 임무의 지휘권을 자네에게 맡기셨으니 우리는 반드시 자네의 지시에 따를 걸세.”

    단양자가 웃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앞서 사부님과 황목상인께서 말씀하셨듯, 임무 시작까지는 사흘을 기다려야 하니 그동안 휴식을 취하도록 하지요.”

    육화명의 말에 모두 석실 여기저기 자리를 잡고 앉아 눈을 감고 운기조식을 했다.

    심협 역시 석실 한쪽 구석에 앉은 뒤, 저물부 속에서 묵갑순을 꺼내 구구통보결을 운공하여 제련하기 시작했다.

    힐끗 보니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곧 닥쳐올 큰 전투를 위해 준비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 * *

    미묘한 긴장 속에 사흘이 지난 이른 새벽. 자은사(慈恩寺)의 종소리가 장안성의 고요를 깨트렸다.

    성 북쪽 황성의 주작문(朱雀門) 밖에는 우림군(*羽林軍: 옛날 황제의 근위군)과 용무위(*龍武衛: 당나라의 중앙군인 12위 중 하나)가 각각 대열을 이루어 성문 양쪽 광장을 지키고 있었다.

    인원은 각각 만여 명에 달했는데, 하나같이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든 것이 무장을 갖추고 출발을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대열 앞 빈터에는 장안 곳곳에서 온 수사 수백 명이 있었는데, 이전의 분대대로 정렬하여 상관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맹 등도 대오에 있었지만, 그들의 십장은 이미 나이가 꽤 있는 잿빛 옷의 노인으로 바뀌어 있었다.

    “조 아우, 이게 어찌된 일인가? 형세를 보아하니 큰 움직임이 있을 것 같은데…….”

    주맹이 곁에 있는 조정생에게 조용히 물었다. 처음에는 서로를 경계하던 이들도 오랜 시간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우면서 생사를 함께하다 보니 이제는 형제만큼이나 친해진 상태였다.

    “아우도 모르지요. 어젯밤에야 느닷없이 집결하라고 알렸지, 사전에 아무 소식도 없었으니까요.”

    조정생은 고개를 저었는데, 다소 굳은 표정이었다.

    “내 한 바퀴 찾아보았는데, 심 선배님이 안 보이시더군. 사실 심 선배님과 임무를 수행한 것도 꽤 되지 않았는가.”

    주맹은 또다시 주위를 휘휘 둘러보고는 입을 열었다.

    “심 선배님이야 우리와는 다르지요. 아마 뭔가 특별한 임무를 수행하러 가셨을 겁니다.”

    조정생이 턱을 문지르면서 추측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심 선배님을 따라가는 게 더 안전할 것 같은데…….”

    주맹이 실없이 웃으며 말하자 조정생도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 앞에 서 있던 출규기 표장 한 사람이 그들을 힐끗 돌아보고는 경거망동하지 말고 조용히 있으라는 눈짓을 해보였다. 이에 주맹과 조정생은 입을 다물고 앞을 바라보았다.

    그때, 높은 하늘에서 여러 줄기의 붉은 빛이 한들한들 내려와 주작문 꼭대기에 내려앉더니 사람들을 내려다보았다.

    2만의 군사들은 이를 보고 너도나도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리며 일사불란한 동작으로 주작문 꼭대기를 향해 군례를 갖추었는데, 그 기세가 자못 웅장했다.

    “정 국공 대인과 여러 선배님들을 뵈옵니다.”

    수백의 수사들 역시 너도나도 주작문 꼭대기를 향해 포권하며 소리 높여 외쳤다.

    뒤이어 2만의 군사들이 더욱 큰 목소리로 외쳤다.

    “위풍도 당당하다! 위풍도 당당하다! 위풍도 당당하다!”

    소리 높은 외침이 울리기 시작하자 맹렬한 전의가 온 광장에 퍼져 나갔다.

    “모두들 들으라! 장안에 귀환이 들끓은 지 오래되어 모두들 불같은 화를 참아왔음을 나는 알고 있다! 오늘이 바로 그대들이 분노를 터뜨릴 날이요, 우리가 일거에 귀환을 해결할 날이다! 나를 따라 함께 성 남쪽으로 쳐들어가 그 더럽고 추잡한 것들을 장안성에서 완전히 몰아내겠는가?”

    정교금이 성 아래 사람들을 훑어보며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국공을 따라 귀물들을 멸하길 원하니, 만 번의 죽음도 불사하겠습니다!”

    “만 번의 죽음도 불사하겠습니다!”

    “만 번의 죽음도 불사하겠습니다!”

    호기로운 함성이 끊임없이 울려 퍼지며 하늘을 찔렀다.

    정교금은 흡족한 표정으로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미소를 띤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 옆에 있던 황목상인 등도 서로를 돌아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장안의 귀환을 모두 없애고 나면 그대들을 위해 승리의 축배를 들 것이다. 출발하라!”

    정교금이 커다란 손을 휘두르며 명령을 내리자, 광장의 수사 대오와 대당 군졸들은 일제히 성 남쪽으로 출발했다.

    * * *

    성 남쪽 어느 고택 지하의 어두운 석실.

    심협 일행은 여전히 각자 눈을 감고 가부좌를 튼 채 좌선하는 중이었다.

    그때, 석실 문에서 문득 노란 빛이 번쩍이며 복잡한 금제 부적 문양이 문 표면에 떠올라 반딧불이 빛처럼 희미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변화를 가장 먼저 알아차린 것은 사람들 중 수련 경지가 가장 높은 갈천청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를 잠시 쳐다보다가 다시 두 눈을 감고 계속해서 수련하며 온몸에서 뿜어내던 검은 번개줄기를 차츰 몸속으로 거두어들였다.

    잠시 후에는 심협도 눈을 떴다. 그의 시선은 문에 있는 금제의 부적 문양에 닿았지만, 무의식중에 부적 문양의 변화를 관찰하느라 다른 사람들을 일깨우는 것을 잊고 말았다.

    하지만 곧이어 육화명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문 위의 금제가 곧 사라지려는 것을 보니 우리가 나설 때가 되었나 봅니다.”

    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단양자와 적수진인도 정신을 차리고 시선을 모았다.

    문 위의 부적 문양은 몇 번 반짝거리고는 빛이 차츰 흐려지기 시작하다가 결국 사라졌다.

    심협은 두 눈을 감고 잠시 기억을 되살리며 머릿속으로 그 금제 부적을 다시 한 번 그려보고, 그 모양을 머릿속에 기억해두었다.

    그가 다시 눈을 뜨자, 육화명과 사람들이 음령부를 꺼내 작동시키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이들의 몸 표면에 검은 무늬가 줄줄이 나타나더니 검은 안개에 물들어 잇달아 귀물의 모습으로 변했다.

    심협도 즉시 자신의 음령부를 작동시켰다.

    “갑시다!”

    육화명은 사람들이 준비를 마치자 지시를 내리고는 앞장서서 문으로 향했다.

    그가 문을 휙 열어젖히자 캄캄한 통로가 나타났다. 통로는 갈림길 없이 곧장 앞을 향해 뻗어 있었다.

    그들은 망설임 없이 성큼성큼 나아갔다.

    처음에는 두 사람이 나란히 걸어갈 수 있었지만, 통로가 점점 좁아져서 나중에는 한 사람만, 그것도 허리를 굽히고 머리를 숙여야 겨우 지나갈 수 있었다.

    통로는 그리 길지 않아서 30여 장을 걷자 앞에 둥그런 동굴 입구가 나타났다.

    육화명은 동굴 입구에 이르러 머리를 빼꼼 내밀고 바깥을 살핀 후, 동굴 입구가 뜻밖에도 수직으로 뻗은 우물의 옆쪽 벽면에 뚫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래로는 잔잔하게 일렁이는 맑고 깨끗한 물결이 보였다.

    그는 곧장 몸을 날려 앞장서서 동굴 입구를 뛰쳐나갔다. 몸이 채 떨어져 내리기 전에 이미 발밑에 물결이 솟아올라 두 발을 떠받치고 그를 우물 입구로 올려 보냈다.

    육화명은 정말 물귀신처럼 우물 입구로 쑥 올라오더니 몸의 반절을 우물 밖으로 내밀고 사방으로 한 바퀴 돌아보았다. 이곳은 버려진 지 오래된 고택이었다. 주위에는 온통 무너진 탁자와 걸상뿐이었고, 잡초들이 가득 자라나 있었다.

    잠시 살펴본 뒤 아무런 위험이 없는 듯하자 그는 비로소 우물 입구에서 뛰어나와 신식으로 우물 아래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전했다.

    이내 심협과 사람들도 우물 바깥으로 올라왔다.

    갈천청은 사방을 둘러보고는 주변에 다른 사람이 없자 인상을 찌푸렸다.

    “접선할 우리 쪽 첩자는 어디 있소?”

    “갈 도우께서는 조급해하지 마시지요. 바로 연락해보겠습니다.”

    육화명은 그렇게 말하더니 손목을 돌려 저물계(儲物戒)에서 기다랗고 푸른 향 세 가닥과 짙은 청록색 사발 하나를 꺼냈다.

    “심형, 물 좀 주시오.”

    육화명이 팔꿈치로 심협을 쿡 찌르며 웃었다.

    심협은 그가 뭘 하려는 것인지는 몰랐지만, 어쨌든 손을 가볍게 휘둘러 우물에서 물을 끌어와 작은 사발 안에 넣었다.

    “고맙소.”

    육화명은 짧게 고개를 까닥이고는 사발을 바닥에 내려았다. 이어서 기다란 향의 끄트머리를 손가락으로 쥐고 가볍게 몇 번 비비자 향 끝에 붉은 빛이 반짝였고, 곧이어 연푸른 연기 세 가닥이 피어올랐다.

    육화명은 불이 붙은 향을 물이 담긴 사발에 꽂았다. 그러자 놀랍게도 세 가닥 향이 모두 수면 위에 꼿꼿이 섰고, 세 가닥 수증기가 향의 몸체를 휘감고 올라가 피어오르는 연기와 한데 뒤엉켰다.

    그 순간, 방금 전까지 가물가물 흔들리던 연기가 곧게 하늘로 치솟아 1장쯤 더 올라가더니, 한쪽 방향으로 빙글 돌아 마침내 흩날리며 사라져버렸다.

    “됐습니다. 잠시 기다리면 연락책이 스스로 찾아올 것입니다.”

    일을 마친 육화명은 몇 걸음 물러나 아직 완전히 무너지지 않은 돌탁자로 다가가더니 소매로 먼지를 툭툭 털어내고는 걸터앉았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허리춤으로 가져가다가 술병을 가져오지 않았음을 떠올렸다. 이번 임무가 워낙 중요하다 보니 정교금이 술을 엄금했기 때문이었다.

    육화명은 입맛을 쩝쩝 다시고는 어쩔 수 없이 팔짱을 낀 채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택 앞마당에서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심협과 사람들은 벌떡 일어나서 그쪽으로 달려갔다.

    앞마당과의 경계 지점에 다다랐을 때, 그들은 목이 가늘고 길며 바깥으로 혀를 축 늘어뜨린, 목을 매 죽은 귀신이 천천히 날아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안색은 몹시 창백했고, 눈가는 온통 검푸른 빛이었으며, 튀어나온 긴 혓바닥은 푸르뎅뎅해서 보고 있자니 꺼림칙했다.

    “이게…… 연락책?”

    적수진인이 미간을 치켜 올리며 의아한 듯 물었다.

    “음령부를 쓴 건가? 거 모습이…… 꽤나 그럴듯하군.”

    단양자도 아래턱을 매만지며 칭찬인지 아닌지 모를 말을 툭 내뱉었다.

    “이건 약속한 모습과는 다른데…….”

    육화명은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일단 목매 죽은 귀신 앞으로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

    “구유(*九幽: 저승, 지옥, 대지의 밑바닥 등을 뜻하는 말)에 내리는 비는 갈수록 거세지는구나.”

    그 말에 목매 죽은 귀신의 기다란 혀가 펼쳐졌다 오그라들었다 하면서 뭔가를 말하려는 듯했지만, 큰 혀 때문에 발음이 불분명했다.

    육화명은 잘 알아듣지 못하자 인상을 찌푸리며 어쩔 수 없이 이번에는 신식으로 목소리를 전했다.

    그러나 한참을 기다려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우우우아아.”

    이번에도 불분명한 소리만 들려오자 육화명이 난감하게 한숨을 내쉬고 있는데, 별안간 부드러운 목소리가 뒤쪽에서 들려왔다.

    “황천에는 건너는 이 없는데 배만 홀로 흔들리네.”

    심협 일행은 화들짝 놀라 급히 고개를 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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