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327화 (327/1,214)
  • 327화. 중대한 사명

    “심 소우의 추측대로네. 화생사와 보타산 모두 최근 심각한 변고가 생겼어. 화생사 휘하의 장로 여러 명이 종문을 배신하고 종내에 독을 풀어 제자들을 대거 중독시킨 후 떠났네. 반면 보타산에서 제압하고 있었던 어느 요괴 소굴에서 갑자기 폭동이 일어나는 바람에 많은 제자들이 진압에 나선 상황이지. 하여, 이 두 종문에게서 큰 원군은 기대할 수 없게 됐다네.”

    “뭐라고요!”

    심협 등 다섯 사람은 황목상인의 말에 크게 놀랐다.

    “외부의 원군을 바랄 수 없게 됐으니 우리 힘으로 귀물들을 해결해야만 하는 상황이오.”

    정교금이 침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국공 대인, 결례를 용서하십시오. 바깥의 귀물들은 수가 많고 연신단의 간악한 자들이 그 속에 몸을 숨기고 있기는 하나, 지금까지 절정의 고수가 나타난 적은 없습니다. 대인과 황목상인의 경지라면 그들을 쳐부술 수 없을는지요?”

    줄곧 입을 열지 않고 있던 갈천청이 물었다.

    “바깥의 귀물들뿐이라면 우리 같은 늙은이들이 나서서 멸해버릴 수 있지.”

    정교금은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그럼 어찌……?”

    “그대들은 모르겠지만 이번 귀환은 그리 간단하지가 않소이다. 연신단이 무슨 방법을 썼는지, 이미 음령산 고분 속의 귀왕(鬼王) 여러 마리가 장안성으로 소환되었고, 연신단 자체의 힘도 그대들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소. 게다가 얼마 전에 놓친 경하용왕까지 더하면 저들은 매우 강력하오. 사실 우리 늙다리들이 그들과 암암리에 수차례 맞붙었지만 승부가 나질 않았소.”

    정교금의 가벼운 탄식에 심협은 문득 깨닫는 바가 있었다. 귀환이 일어난 지 한 달이 넘도록 대당관부의 진정한 고수들이 전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이상하게 여겼더니, 그들은 이미 은밀하게 대치 중이었던 것이다.

    “승부가 나질 않기는, 분명 우리가 열세에 처해 있었지요. 지난번 대전에서 국공 대인께서 나서서 돕지 않았더라면, 이 늙은 몸뚱이가 벌써 그 악룡의 손아귀에 산산조각 났을 것이외다.”

    황목상인은 또다시 두어 번 기침을 하고는 탄식했다.

    그 말에 다섯 사람의 안색이 또다시 어두워졌다.

    “한데 국공 대인께서는 저희에게 어떤 일을 맡기시려는 겁니까?”

    단양자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이번 적은 강력하긴 하나 빈틈이 없는 것은 아니오. 성안의 귀물이든 음령산 고분 속의 귀왕이든 모두 연신단이 일종의 소환법진으로 불러낸 것이지. 그러니 그 법진을 파괴할 수 있다면 상대방의 전력을 크게 약화시킬 수 있고, 우리 쪽의 승산은 크게 늘어날 것이오.”

    정교금의 설명에 다섯 사람은 잠시 서로를 멀뚱히 쳐다보았다.

    “국공 대인, 설마 저희가 가서 그 소환법진을 파괴해야 합니까?”

    적수진인이 물었다.

    “맞소이다.”

    정교금이 고개를 끄덕였다.

    심협은 예전에 봤던 소환법진을 떠올렸다. 장안성 안에 그런 법진이 분명 아주 많으리라.

    허나 연신단에서도 소환법진의 중요성을 알고 있을 테니 분명 고수가 지키고 있을 터였다. 다만 그 고수들이 창목노도나 여천 같은 수준이라면 여기 모인 다섯 사람이 상대하기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얻은 정보에 따르면 성안에는 소환법진이 무려 백 개에 가깝지만, 대부분은 외곽의 작은 법진일 뿐이오. 게다가 강력한 귀물은 불러낼 수 없다고 하니, 사실 큰 의미가 없소.성 남쪽의 지극히 은밀한 핵심 소환법진과 연결되어야만 귀물을 불러낼 수 있다 하더군. ”

    정교금이 잠시 말을 끊었을 때, 적수진인이 더듬더듬 말했다.

    “국공대인……. 대인께서는 설마…… 저희더러 그 핵심 소환법진을 파괴하라는 말씀이신지……?”

    “그렇다네. 나와 정국공이 자네들을 보내 파괴하려고 하는 것이 바로 그 핵심 법진일세.”

    황목상인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으나, 다섯 사람은 말문이 탁 막혀 멍하니 서 있었다. 어쩌면 이들의 재주가 남달라서 동급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자신의 경지를 조금 능가하는 수사까지도 대적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허나 어쨌거나 그들은 응혼기였고, 수선계 전체에서는 어린아이에 가까웠다.

    “사부님, 황목 선배님. 저희가 담이 작은 것이 아니오라, 저희들의 실력으로는 잠입을 시도해봐야 얼마 못 가 강력한 귀물이나 고수에게 발각되고 말 것입니다. 그리되면 헛되이 죽으러 가는 것일 뿐입니다.”

    육화명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다들 걱정할 필요 없네. 그대들에게 이 임무를 수행하게 하는 이상, 우리는 당연히 주도면밀하게 고민했으니까. 사흘 뒤, 대당관부에서는 전면적으로 반격에 나설 것이네. 우리 같은 늙은이들도 나서서 상대의 모든 출규기 이상 고수들을 붙잡아둘 터. 자네들은 그 틈에 성 남쪽으로 잠입하여 핵심 법진을 파괴하게.”

    황목상인의 이어진 설명들 듣고서야 다섯 사람의 안색은 조금 나아졌다.

    “한데 저희가 어찌 성 남쪽에 잠입합니까? 귀물들은 인간의 기운을 아주 민감하게 감지하지 않습니까? 적진에 고수들이 없다 해도 잠복해 들어가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더욱이 핵심 소환법진이 그리도 중요하다면 분명 매우 은밀한 곳에 숨겨 놓았을 터. 설령 잠입해 들어갈 수 있다 해도 짧은 시간에 찾기란 불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심협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 문제들은 우리도 일찍이 고려해보았다네. 내게 음령부(陰靈符) 다섯 장이 있는데, 이걸 몸에 차면 인간의 기운을 가리고 기운과 외모 모두 귀물처럼 변하게 해줄 것이네. 출규기, 심지어 대승기 귀물이라고 해도 알아차릴 수 없지.”

    황목상인은 검은 부적 다섯 장을 꺼내 손을 흔들었다.

    손바닥만 한 이 부적들은 다섯 줄기 검은 빛이 되어 날아가 다섯 사람 앞에 하나씩 떨어졌다. 부적 위에는 검은 무늬가 몇 갈래 새겨져 있었다. 복잡한 무늬는 아니었지만, 부적 한가운데 부분에 연꽃 같은 특이한 문양이 하나 있어 유달리 현묘해 보였다.

    심협은 부적을 받아 들고 황목상인을 슬쩍 본 뒤, 법력을 부적에 주입했다.

    음령부에서 검은 빛이 스쳐 지나면서 놀랍게도 번쩍 하고 그의 몸속으로 녹아들어 자취를 감추었다.

    심협은 흠칫 떨었다. 차갑고 음산한 영력 한 가닥이 체내로 녹아드는 것이 느껴졌다. 영력은 평온하게 그의 법력과 하나로 어우러졌다. 이내 법력이 음침하고 싸늘해지기 시작했다.

    몸 표면에는 가닥가닥 검은 무늬가 떠올랐고, 곧 가느다란 검은 기운이 그 속에서 솟아 나와 금세 그를 완전히 집어삼켰다. 바깥에서 보면 그는 이미 망령 같은 귀물로 변해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음령부의 효과를 발휘하여 심협과 비슷한 귀물로 변했다.

    “이 음령부는 정말이지 신기하군요.”

    심협은 그 기묘함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어서 신식을 동원해 살펴보니, 음기 아래에 감춰진 다른 사람들의 육신은 아예 탐지되지 않았다. 그들 모두 완전히 귀물로 변한 것만 같았다.

    “실로 신묘합니다. 이 부적이 있으면 정체가 탄로날 우려는 없겠군요. 한데 핵심 법진의 위치는 혹시 이미 찾아내셨는지요?”

    단양자의 물음에 황목상인이 느릿느릿 답했다.

    “연신단은 그동안 줄곧 대당관부에 침투하려고 시도해왔네. 우리도 물론 넋 놓고 있던 것은 아니라서 연신단에 사람을 하나 심어두었지. 자네들이 잠입하면 그가 핵심 법진으로 안내할 걸세.”

    심협은 이 임무를 위해 대당관부에서 주도면밀하게 준비했음을 깨달았다.

    다만 다섯 사람의 얼굴에는 여전히 망설이는 기색이 있었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된다는 보장도 없고, 여전히 위험한 임무였으니 말이다.

    “이번 임무는 워낙 위험하니 강요하지는 않을 걸세. 찬찬히 생각해보고 결정들 하시오. 다만 정보가 바깥으로 새어나가는 것은 막아야 하니 임무를 맡지 않더라도 반드시 여기 머물다가 이번 대전투가 끝난 후에 떠나야 하오.”

    정교금이 눈으로 사람들을 훑으며 말했다.

    심협 등은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국공 대인, 황목 선배님. 선배님들께서 이미 모든 것을 준비해 놓으셨는데 어찌하여 우리 같은 응혼기 수사들을 찾으신 겁니까? 출규기 수사 몇 사람을 보내면 성공률이 더 크지 않겠습니까?”

    갈천청의 이 물음은 심협도 진즉부터 궁금했던 터라 귀를 기울였다.

    “출규기 수사들을 파견할 수 있었더라면 나와 국공 대인이 자네들을 귀찮게 하지도 않았겠지. 음령부의 은닉 효과가 뛰어나긴 하나 응혼기 이하 수사의 기운만 숨길 수 있다네.”

    황목상인이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고민에 빠져들었다.

    이 쥐죽은 듯한 고요를 깬 것은 한 사람의 목소리였다.

    “사부님, 황목 선배님.”

    육화명이 성큼 나서며 근엄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자가 가겠습니다!”

    정교금은 육화명을 지긋이 들여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빙긋 웃었다.

    “좋다. 여러 해 동안 스승으로서 너를 가르친 것이 헛되지 않았구나. 하하하!”

    “장안성 백성들을 모진 고통에서 구출하기 위해 저도 참여하겠습니다.”

    심협도 한 걸음 나서며 공수했다.

    “심 소우, 그 뜨거운 진심에 대당관부를 대신해 고마움을 표하겠네.”

    육화명과 심협이 앞장서자 다른 세 사람도 하나둘 응했다.

    “좋소! 여러 도우들이 마음에 나라와 천하를 위하는 의기가 높으니, 이 늙은이가 탄복하였소. 대당관부는 그대들을 그냥 보내지 않을 것이오. 여기 있는 몇 가지 보물을 하사하니 이것으로 그대들의 기세를 북돋우시오.”

    정교금이 그렇게 말하며 손을 흔들자 하얀 부적 다섯 장이 날아와 이번에도 다섯 사람 앞에 하나씩 내려왔다.

    반사적으로 받고 보니, 부적 위에는 주머니 비슷한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부적의 힘을 빌려 잠시 동안 저물법기와 비슷한 공간을 만들어내는 저물부(儲物符)였다. 저물부는 딱 한 번밖에 사용할 수가 없기에 효과는 저물법기보다 훨씬 떨어지지만, 만들어내기는 비교적 쉬웠다.

    심협은 저물부 안으로 신식을 집어넣었다. 검푸른 원형 방패 하나가 있었는데, 상당히 튼튼해보였다. 그 위에는 살아 있는 듯 생생한 현귀(*玄龜: 산해경에 나오는 검붉고 커다란 거북)가 부조되어 있었다.

    방패 옆에는 하얀 종이가 한 장 있었고, 그 위에는 짧은 글이 쓰여 있었다.

    신식으로 하얀 종이를 훑은 심협은 감격했다.

    이 검푸른 방패에 대한 소개였다. 이 방패의 이름은 묵갑순(墨甲盾)으로, 현귀의 혈통을 지닌 천년 묵은 늙은 거북이의 등딱지를 정련하여 만든, 12도 금제가 담긴 극품법기였다. 방어능력에 있어 금갑선의보다도 훨씬 뛰어났다.

    ‘대당관부에서는 금갑선의가 부서졌다는 것을 알고 내게 이 묵갑순을 하사한 모양이군.’

    심협은 그렇게 생각했다.

    살펴보니 다른 사람들도 흥분한 기색이었다. 대당관부에서 그들에게 하사한 것들은 하나같이 각자가 간절하게 원하던 물건임에 틀림없었다.

    “사부님, 이제 어찌 합니까? 여기서 때를 기다립니까?”

    육화명이 물었다.

    “황목 도우, 다음은 도우께 맡기겠소.”

    정교금이 그렇게 말하자 황목상인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지팡이로 바닥을 찍었다. 그러자 지팡이에서 노란 빛이 한 가닥 솟아나와 바닥을 타고 뻗어나갔다. 이 빛은 이내 지름 1장 정도의 노란 법진을 이루었다.

    심협은 이 노란 법진이 조금 낯익다는 느낌이 들어 잠시 생각에 잠긴 채 기억을 되짚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깨달았다. 분명 그가 꿈속 장수촌에 설치했던 을목선둔의 보조 법진과 비슷했던 것이다.

    “다들 이리로 와 법진 안에 서게나.”

    황목상인의 부름에 다섯 사람은 하나둘 다가가 법진 위에 섰다.

    황목상인이 지팡이로 다시 한번 바닥을 찍자 다섯 사람의 눈앞에 노란 그림자들이 무수히 떠오르더니 종잡을 수 없이 빠르게 변하여 눈을 어지럽게 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오래가지 않았고, 몇 호흡 뒤 그들의 눈앞이 환해졌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는 어느 어두컴컴한 석실 안이었다.

    심협이 둘러보니 석실 앞쪽에는 커다란 문이 하나 있었다. 그 문은 굳게 닫혀 있었는데, 그 위로 법력이 어렴풋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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