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326화 (326/1,214)
  • 326화. 일시적인 시변(屍變)

    석실에는 이미 두 명의 수사가 서 있었는데, 모두 낯이 익었다. 한 사람은 단양자였고, 다른 한 사람은 그전에 헌원각 경매를 진행했던 적수진인이었다.

    “단양자 대사님, 적수진인. 두 분께서 이곳에는 어인 일이십니까? 혹시 사부님께서……?”

    육화명이 어리둥절한 목소리로 말끝을 흐리자, 단양자가 허허 웃었다.

    “맞네, 국공 대인께서 청하시어 안 올 수가 없었다네.”

    그는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옆에 있는 심협을 보았다.

    “심 도우. 오랜만일세. 도우의 경지가 벌써 응혼기를 돌파했구먼. 축하하네.”

    단양자는 눈빛을 어렴풋이 빛내며 웃으면서 인사를 건넸다.

    “단양자 대사님, 오랜만입니다.”

    심협은 슬쩍 고개를 끄덕여 답했지만, 얼굴에 웃음기는커녕 희미한 냉기마저 감돌았다. 그러나 이는 진강의 수기에서 단양자와 관련된 일들을 읽었기 때문이지, 단양자가 진강에게 천년영유에 대한 정보를 알리고 은근한 위협으로 거래를 강요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사실 단양자가 심협의 기분을 상하게 하면서까지 그랬던 이유는 간단치가 않았다. 단양자와 진강 사이에는 또 다른 중대한 연관성이 있었던 것이다.

    저 노인은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위엄 있고 올곧으며, 만인의 존경을 받는 연단의 대가였지만, 실제로는 지극히 음흉했다. 줄곧 오귀부혼(五鬼附魂)이라는 사공(邪功)을 연마하여 음년(陰年) 음월 음일 음시에 태어난 어린아이의 혼백을 제물로 바쳐야 했던 것이다. 연단의 대가답게 지켜보는 눈이 많다 보니 악행을 저지르기가 불편했고, 그의 수련에 필요한 어린아이의 혼백은 모두 진강이 그를 위해 남몰래 구해주었다.

    수기의 기록에 따르면, 진강은 이미 단양자 대신 아이 넷을 찾았다고 하였다. 그러니 둘 모두 양심이라곤 털끝만큼도 없는 사람이라 할 만했다.

    단양자는 심협의 쌀쌀맞은 모습에 얼떨떨했으나, 곧 나름 이유를 깨달았다.

    ‘그때 일로 그러는 것인가? 허파에 바람이 잔뜩 든 애송이로군. 응혼기에 들어섰다고 이 몸에게 대들 수 있다고 여기다니 말이야. 정국공의 일이 마무리되면 내가 어찌 네놈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는지 두고 보아라!’

    단양자는 속으로 차게 웃었지만, 겉으로는 조금도 내색하지 않았다.

    한편, 옆에 있던 적수진인도 육화명과 정답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는 심협과 아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처세술에 능통하여 금세 오랜 벗을 만난 것처럼 심협과도 한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그러니 심협 역시 거들먹거리지 않고 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밖에 없었다.

    적수진인과 내화를 나누던 심협의 눈에 기이한 기색이 번쩍 스쳐 지났다.

    장안성의 귀환이 심각한 탓에 모든 수사들은 물론 단양자와 적수진인 같은 연단사와 연기사들 역시 전장에 나갔다. 특히 적수진인은 최근 전장에서 크게 활약했는데, 손에 엄청난 위력의 화선(火扇) 하나를 든 채 같은 경지, 심지어 조금 더 높은 경지의 귀물까지 거듭 죽임으로써 큰 공을 세웠던 것이다.

    물론 그의 손에 있는 화선 역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칭송받았다.

    다른 사람들은 그 화선의 내력에 대해서 모르겠지만 심협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진강이 적수진인에게 만들어 달라고 청한 것이었다.

    진강은 본래 심협을 해치운 후에 화선을 가지러 갈 계획이었지만, 그가 죽음을 맞는 바람에 그 화선이 적수진인의 손에 떨어지게 된 것이다.

    수기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오화선은 16도 금제가 걸려 있는 극품 법기로, 위력이 막강했다. 심협은 욕심이 과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이 법기에는 마음이 동했다.

    그때, 바깥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손에 자줏빛 불진(拂塵)을 든 청의의 도사였는데, 나이는 대략 마흔 전후쯤 되어 보였고, 얼굴은 말처럼 긴 데다 얽은 자국이 가득해 퍽 추한 외모였다.

    “갈(葛) 도우, 자네도 왔구먼.”

    단양자와 적수진인은 약속이라도 한 듯 푸른 옷의 도사에게 인사했다.

    ‘육형, 이 도사 분은 누구시오?’

    심협이 육화명에게 신식으로 소리를 전해 물었다.

    ‘이분은 박물행의 갈천청(葛天靑) 공봉이시오. 보기 드문 암뢰(暗雷)의 몸으로, 그의 천둥 속성 도법은 장안에서 대단히 유명하오.’

    육화명도 신식으로 소리를 전해 답했다.

    ‘암뢰의 몸!’

    심협은 반사적으로 갈천청을 다시 살폈다.

    그 역시 암뢰의 몸이 일종의 특수한 도체(道體)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암뢰의 몸은 천성적으로 천둥 속성 공법을 수련하기에 적합하여 조금만 수련해도 보통 수사들의 열 곱절은 위력적이었다.

    더욱이 암뢰를 발산할 수 있다는 것은 위력이 평범한 천둥번개를 훨씬 능가하는 매우 강력한 도체라는 뜻이었다.

    ‘갈천청 공봉은 수련 경지도 심오하셔서 이미 응혼기 정점에 도달하셨소. 들리는 말대로라면 출규기를 돌파할 준비 중이시라는데, 일단 성공하면 그의 신분은 곧 크게 상승할 거요.’

    육화명이 또다시 목소리를 전해오자 심협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수선계에서는 연기기 수사가 가장 밑바닥이라면 벽곡기와 응혼기는 잘 쳐줘야 중간층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단 출규기에 도달하면 수선계의 상층부에 발을 딛게 되는 셈이었다. 출규기 수사 한 사람이 자리 잡고 지키는 종문이야말로 수선계에 진정으로 발을 붙일 수 있는 것이다.

    출규기 수사가 취보당이나 헌원각, 대당관부 등의 세력에 들어가기를 원한다면, 공봉이나 장로 자리는 따 놓은 당상이어서 수련 자원도 확보할 수 있었다.

    육화명은 웃음을 머금은 채 갈천청과 인사를 나누었다.

    갈천청은 퍽 냉담한 사람 같아 보였는데, 세 사람에게 그저 고개만 살짝 끄덕여 보이고는 혼자 한쪽에 가서 섰다. 육화명 등은 다들 갈천청의 성격을 알고 있는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인사를 나눈 뒤, 다섯 사람은 조용히 기다렸다.

    단양자와 적수진인이 함께 서 있었고, 심협과 육화명이 함께였으며, 괴팍한 갈천청은 네 사람과 떨어진 곳에 홀로 서 있었다.

    “다들 왔구먼.”

    드디어 석실 깊은 곳에서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정교금과 황목상인이 옆문으로 걸어 들어왔다.

    황목상인의 낯빛은 조금 안 좋아 보였는데, 바싹 마른 늙은 얼굴은 창백했고, 때때로 가볍게 기침을 하기도 했다.

    “정 국공과 황목상인을 뵙습니다!”

    심협과 육화명은 말할 것도 없고, 단양자와 적수진인도 깍듯이 허리를 굽혔다. 이들은 지체 높은 사람들이었지만, 정교금은 조정의 중신이자 대당관부를 관장하는 사람이며 경지 또한 속세의 그것을 뛰어넘은 장안성 수선계의 진정한 거장이었다. 그러니 어찌 그 앞에서 예를 갖추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의 못난 제자를 제외한 여러분 모두 우리 장안성 수선계의 뛰어난 준걸들이니 인사치레할 필요 없겠구려.”

    정교금은 손을 휘휘 내저으며 아래쪽의 육화명에게 가볍게 눈을 흘겼다. 그러고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손을 흔들었는데, 그러자 손바닥에는 노란 빛이 스쳐 지나갔다.

    석실의 대문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빈틈 하나 없이 굳게 닫혔다.

    이 광경에 육화명을 제외한 다른 네 사람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걱정들 마시게. 워낙 중요한 일이라 이러는 것일세. 믿을 만한 소식통에 따르면 성안에 연신단의 첩자가 잠복해 있다더군. 그러니 대당관부 안도 반드시 안전하다고는 할 수 없어 방비에 만전을 기하려는 것뿐일세.”

    황목상인이 두어 번 기침을 하더니 입을 열었고, 그제야 사람들도 평정을 되찾았다.

    “국공 대인과 황목 선배님께서는 어인 일로 저희를 부르셨는지요?”

    단양자는 적수진인과 눈을 한 번 맞추고는 공수하며 물었다.

    “그대들을 부른 것은 한 가지 중요한 임무를 맡기기 위해서요.”

    정교금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부님, 말씀하시기 전에 제자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심형이 사부님께 중요한 일을 보고드리고자 한다고 합니다.”

    육화명이 가볍게 기침을 한 번 한 뒤, 앞으로 한 걸음 나와서 말했다.

    “오, 심 소우 말하려는 일이 무엇인가?”

    정교금은 제자가 감히 자신의 말을 끊자 두 눈썹을 치켜세웠지만, 말을 다 듣고서는 자상한 미소를 띠며 심협에게 물었다.

    ‘성안에 느닷없이 나타난 강시들에 관한 일입니다. 정 국공 대인과 황목 선배님께서는 소인의 결례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심협이 앞으로 두어 걸음 나서며 신식으로 소리를 전했다.

    ‘괜찮으니 말해보아라.’

    정교금이 고개를 끄덕였다.

    심협은 잠깐 멈췄다가 오늘 맞닥뜨린 강시 대군의 상황과 마지막으로 은빛 강시의 정체를 알아낸 것까지 상세히 설명했다.

    정교금과 황목상인은 그의 말을 다 듣고 나서도 놀란 기색이 아니었다.

    ‘두 분 선배님들께서는 알고 계셨습니까?’

    ‘그 강시들의 겉모습은 일반 강시와 다를 게 없지만, 핵심 부위의 시기(屍氣)가 짙지 않고, 평범한 사람의 기운이 여전히 미약하게 남아 있지. 일시적인 시변(屍變: 시체가 갑자기 살아 움직이는 현상)으로 만들어진 게 분명해. 신식이 강력한 사람이라면 쉽게 알아낼 수 있기에 우리는 눈치채고 있었다네.’

    황목상인이 신식으로 목소리를 전해 답했다.

    ‘그랬군요. 저는 우연히 이를 발견하고 중대한 비밀인 줄로만 알았는데, 선배님들께서는 이미 모든 것을 통찰하셨으니 소인이 그만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심협은 조금 부끄러운 듯 고개를 살짝 숙였다.

    ‘아닐세. 겨우 응혼기 경지인데 이를 예리하게 알아차린 것이 실로 대단한 일이라네.’

    황목상인의 말에 심협은 두 사람에게 예를 갖추고는 물러났다.

    다른 사람들은 신식으로 대화했다는 것을 알아채고 방해하지 않았다. 다만 심협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은 약간 달라져 있었다.

    특히 갈천청은 심협에 대한 정교금의 태도 때문인지, 지금까지와 달리 심협을 제대로 살펴보았다.

    “임무 내용을 설명하기 전에 여러분에게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소. 장안성의 상황은 다들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을 터. 지금의 전세에 대해 그대들은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소?”

    정교금이 다섯 사람에게 물었으나, 다들 잠시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이 자리에 모인 이들 모두 떳떳한 사내대장부들이니 어색해할 것도, 꺼려할 것도 없소. 할 말이 있거든 편하게 하시오.”

    정교금이 웃으며 이렇게 말하자 마침내 석실 안의 엄숙했던 분위기도 조금 부드러워져, 다섯 사람의 마음도 꽤 느슨해졌다.

    “그렇다면 제가 솔직히 말씀드리지요. 성 남쪽에는 현재 귀물들이 창궐하고 있습니다만, 우리 대당은 국력이 튼튼하고 기이한 인사가 많습니다. 또한 정 국공께서 통솔하시니 그 귀물들을 넉넉히 막아내고도 남음이 있지요. 외부에서 지원군이 당도하면 그 귀물들은 곧 완전히 와해될 것이라 믿습니다.”

    단양자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분명 다들 비슷한 생각을 가진 것 같았다. 심협 또한 그러했다.

    “지원군? 화생사와 보타산 사람들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정교금이 말했다.

    “화생사와 보타산은 우리 대당과 줄곧 한 형제처럼 지냈습니다. 장안성에 이리 심각한 귀환이 발생하였는데 두 종문에서 좌시하고 있지만은 않을 테지요.”

    단양자가 고개를 끄덕였으나, 정교금과 황목상인은 묵묵부답이었고, 심지어 안색도 조금 어두워졌다.

    “설마…… 두 종문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것입니까?”

    심협은 두 사람의 이런 모습을 보고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아주 중대한 일이니 입단속을 철저히 해주게.”

    황목상인이 정교금과 눈빛을 한 번 교환한 뒤 무거운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다섯 사람은 황목상인의 진지한 표정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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