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325화 (325/1,214)

325화. 지원군은 어디에

백성을 돌려보낸 심협은 다시 통령역요술을 운공했다. 그러자 물구멍이 갑자기 배로 커지더니 안에서 붉은 빛을 띤 요기가 솟구쳐 나왔다.

촤르륵!

우람한 형체가 안에서 껑충 뛰쳐나와서는 요란하게 몸을 털어 물기를 털어냈다. 키가 족히 1장에, 검붉은 비늘갑옷을 입은 용맹스러운 새우병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적백(赤白)이 엇갈린 두 가닥 수염은 제법 굵었고, 두 손에는 날이 맷돌만 한 도끼 두 자루를 들고 있었다.

이 요괴는 그가 최근 굴복시킨 새우병사로, 온몸에 강력한 요기를 휘감고 있는 것이 경지가 이미 응혼 후기에 도달해 있었다.

“이장(二壯) 도우, 이번에 수고스럽게도 나를 좀 도와주어야겠소.”

심협의 말에 용맹스런 새우 병사가 고개를 끄덕이고 뭐라 답하기도 전에, 무수한 강시 떼가 몰려오면서 피비린내 나는 바람이 훅 끼쳐왔다.

심협이 손을 뒤집고 푸른 단부를 꺼내 공격하려 하는데 이장이 먼저 뛰쳐나가더니 커다란 도끼를 휘둘러 허공을 갈랐다. 그러자 날카로운 바람소리와 함께 거의 문짝만 한 도끼 그림자가 허공을 가르고 곧장 10여 장을 날아간 뒤에야 흩어져 사라졌다.

도끼 그림자가 지나간 길에는 토막 난 강시들이 널브러졌다.

이장이 커다란 도끼를 연거푸 뒤집자 도끼 그림자가 줄줄이 튀어나와 골목 전체로 뻗어나갔다. 강시들은 모조리 두 토막이 나 낙엽처럼 휘날렸다. 골목 안의 강시들이 모두 이장에게 가로막힌 것이다.

심협의 눈빛이 흡족해졌다. 이장은 예상보다 더 강자였다. 이곳을 그에게 맡겨도 아무 문제없을 것 같았다.

그는 멀지 않은 곳, 수선자들이 없는 골목으로 몸을 날렸다. 그곳에도 많은 강시들이 습격해오는 중이었다.

심협은 허공에 뜬 채 한 손을 번쩍 치켜들고 푸른 단부로 허공을 베었다. 굵직한 푸른 번개 10여 줄기가 터져 나와 10여 마리의 강시를 관통했다.

펑! 펑! 펑!

번개가 꽂힌 강시들은 몸뚱이가 터져 나가면서 피비린내 진동하는 혈우(血雨)로 변해 하늘을 뒤덮었다.

이어서 심협이 결인하여 강시 떼를 가리키자, 이번에는 순양검배가 소매에서 쏘아져 나와 긴 검홍이 되더니 멀지 않은 다른 골목의 강시들 틈으로 날아갔다. 무언가 잘려 나가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고, 검홍이 지나가는 곳마다 수많은 강시들이 두 동강으로 베여져 나갔다.

심협 쪽은 그래도 아직 버틸 수 있었지만, 주맹과 조정생 등이 있는 곳은 곤란한 지경에 처해 있었다. 성난 파도처럼 밀려드는 강시들의 공세에 그들은 차츰 밀려나 이제 방어선을 지키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다행히도 강시 대군들 사이에서 검은 강시가 나타날 때마다 귀장이 나타나 도와주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벌써 누군가는 목숨을 잃었을 것이었다.

주맹을 비롯한 사람들이 물러나자, 심협과 이장도 적에게 포위되지 않도록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수사들이 물러난 이상 지상의 수비군들도 퇴각해야만 했다.

잠깐 사이에 광덕방의 절반 가까이가 강시 대군에 점령당했다.

‘관부에서는 어찌하여 아직도 지원군을 보내지 않는 것인가! 이대로는 곧 광덕방 전체를 잃게 될 지경이었다!’

심협은 점점 초조해져 푸른 단부와 순양검배를 미친 듯이 다그쳤다.

번개와 검기가 줄줄이 날아가 강시 대군 사이에 내리 꽂혔고, 그때마다 피바람과 혈우가 일어났다. 하지만 강시 대군의 공세를 막아낼 수는 없었다.

그때, 근처 어느 담벼락 뒤에서 은빛 그림자가 튀어나오더니 고양이처럼 조용하고 민첩하게 심협의 등 뒤로 다가와 손가락으로 갈고리처럼 등을 잡아챘다.

심협은 화들짝 놀라 몸을 기울이며 피한 뒤, 푸른 단부를 등 뒤로 휘둘렀다.

은빛 그림자는 기이할 정도로 민첩하게 옆으로 피했으나, 순양검배의 붉은 검영이 하늘에서 떨어져내려 번개처럼 휘감았다.

피슉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은빛 그림자는 허리가 동강난 채 쓰러졌다. 뜻밖에도 사람과 같은 크기의 은빛 강시였다.

이 귀물은 비교적 체구가 작았음에도 온몸에 은빛 비늘갑옷이 돋아나 있어 다른 강시들보다 오히려 더욱 건장해 보였다.

‘실력이 거의 벽곡 후기 수사와 맞먹는 강시로군!’

심협은 내심 경악했다.

그가 은빛 강시에게 잠시 얽매인 틈에 강시 대군이 다시 적잖이 밀고 들어왔다.

심협이 인상을 찌푸리며 강시들을 격퇴시키려 할 때였다.

피융! 피융!

허공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빽빽한 화살비 같은 푸른 빛이 쏟아져 내리면서 하늘 반쪽을 밝게 비추며 강시 대군 속으로 떨어져 내렸다.

폭우가 나뭇잎을 때리는 듯한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고, 근처 예닐곱 개 골목 안의 강시 대군이 줄줄이 나가떨어지면서 커다란 빈터가 생겨났다.

이 푸른 빛줄기는 수가 많았을 뿐만 아니라 정확히 강시들이 들어찬 곳만 공격했기에 부근의 민가들은 조금도 파괴되지 않았다.

심협이 놀라서 고개를 들어보니, 서릿발 같은 얼굴에 청의를 입은 아름다운 여인이 손에 푸른색 작은 번(幡)을 들고 허공에 떠 있었다. 일전에 두 번이나 만났었던 보타산의 청화선자였다.

그녀는 심협을 흘끗 보고는 푸른 무지개가 되어 다른 지역으로 날아갔다. 그녀가 날아가는 곳마다 푸른 화살비가 떨어져 강시들을 날려 보냈다.

한편, 청화선자 뒤로 줄줄이 밝은 빛이 날아들었다. 드디어 원군이 도착한 것이다!

심협은 그제야 긴장이 약간 풀렸다.

그 무렵, 두 줄기 그림자가 하늘에서 내려와 심협 근처에 내려섰다. 청의를 입은 두 도사로, 청년은 벽곡 후기였고, 노인은 응혼기였다.

두 사람 모두 이장을 보고 흠칫 놀라더니 옅은 적개심을 드러냈다.

“자소관(紫霄觀) 도우들이셨군요. 이 새우병사는 제 영수(靈獸)입니다. 이쪽은 괜찮으니 번거로우시겠지만 두 도우께서는 다른 곳을 도우러 가시지요.”

심협은 이 두 사람의 차림새를 알아보고는 목소리 높여 말했다.

푸른 옷의 노인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인 뒤, 청년을 이끌고 다른 곳으로 날아갔다.

지원병들이 합류하자 질풍 같았던 강시 대군은 결국 가로막혔다.

아침 햇살이 동쪽에서 떠오르자, 꼬박 하룻밤 동안 격전을 벌이던 강시 대군은 무슨 신호라도 받은 것처럼 물러갔다.

이 무렵, 심협의 안색은 이미 창백했다. 체내에는 법력이 1할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물러가는 강시 대군을 보며 재빨리 단약을 꺼내 삼켰다.

새우병사 이장도 이미 온몸이 만신창이였지만, 정신 상태는 심협보다 훨씬 나아 보였다. 응혼 후기인 만큼 요력이 심협보다 훨씬 두터웠던 덕이다.

“적들이 퇴각하였군. 내 이번에는 이장 그대에게 신세를 졌구려.”

심협의 말에 새우병사는 무뚝뚝한 말투로 말했다.

“괜찮소이다. 나를 동해로 돌려보내주시오. 나는 육지의 공기가 익숙지 않소.”

심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을 흔들어 이장을 떠나보낸 뒤, 사방을 둘러보았다.

강시들은 물러간 듯했지만, 그는 감히 방심할 수 없어서 묵묵히 공법을 운공해 단약을 정제하면서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 * *

문득, 두 줄기 그림자가 빠른 속도로 나란히 달려오더니 황색 옷의 수사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선배님, 지난밤 고전을 치르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저희가 명을 받고 교대하러 왔으니 이제 뒷일은 저희에게 맡기시지요.”

도사 한 명이 심협에게 공수하며 말했다.

곧이어 광덕방의 다른 거리에도 수사들이 하나둘 날아와 수비 진영에 합류했는데, 푸른 옷을 입은 도사의 수하임이 틀림없었다.

“그럼 후토문(厚土門)의 두 도우께 폐 좀 끼치겠습니다.”

심협은 두 사람에게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몸을 돌려 주맹과 조정생 등을 찾으러 갔다. 그들이 무사한지 궁금했다.

한데 조금 가다 보니 두 토막 난 은빛 강시가 앞에 나타났다. 자신이 처음 죽였던 그 은빛 강시였다.

은빛 강시는 그 뒤에도 두 마리가 더 나타났다.

심협은 이 강시를 지나쳐 갔다가 갑자기 흠칫 놀라 발걸음을 멈추고는 다시 돌아와 그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강시는 얼굴 피부가 갈라져 누런 진물이 잔뜩 흘렀고, 입안에는 이빨이 들쑥날쑥한 것이, 아주 흉물스러워 보였다.

그런데 이 추한 강시의 얼굴이 어쩐지…….

“낯이 익은데…….”

눈을 가늘게 뜨고 강시의 얼굴을 꼼꼼히 뜯어보던 심협의 표정이 차츰 어두워졌다.

이 무시무시한 강시의 얼굴을 유심히 보다 보니 통통하고 온화한 어떤 얼굴이 떠올랐다. 일전에 심협에게 선도(仙道)를 흠모한다며 선인이 되고 싶다던, 바로 그 땅딸막한 마부의 얼굴이었다!

“틀림없이 그 사람이야! 이 사람이 어떻게 강시가 되었지? 잠깐! 설마…… 갑작스레 튀어나온 이 강시들이 모두 장안성 주민들이 강시로 변한 것이었단 말인가!”

주변 여기저기에 가득 널려 있는 강시들을 바라보는 심협의 눈빛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때, 검은 그림자 하나가 그의 앞에 번쩍하고 나타났다. 귀장이었다.

밤새 격전을 벌였음에도 귀장은 심협과 달리 피곤한 내색은커녕 오히려 활력이 넘쳤다. 음기도 조금 더 짙어진 모습이었다.

“심 선배님!”

귀장 뒤로 주맹과 조정생 등이 빠른 걸음으로 걸어왔다. 두 사람은 괜찮아 보였지만, 수하는 줄어든 상태였다. 주맹 뒤에는 두 사람이, 조정생 곁에는 단 한 사람이 붙어 있을 뿐이었다.

“다들 수고가 많았소. 여러분들의 희생을 위에 보고할 것이오. 대당관부에서는 여러분들의 피해를 외면하지 않을 것이니, 이후에 반드시 보상이 있을 것이오.”

심협은 남몰래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감사합니다. 심 선배님.”

이에 주맹과 조정생은 침통한 얼굴로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관부로 돌아간 심협은 수하들을 먼저 보내고, 자신은 장병전에 가서 임무상황과 인명피해를 보고했다. 하지만 그 강시들이 일반 백성들이 변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하문정에게 보고하지 않았다.

장병전을 나선 그는 곧장 육화명의 처소로 향했다. 한데 절반쯤 가던 중 그림자 하나가 그에게 다가왔다. 육화명이었다.

“심형, 나도 마침 그대를 찾아가던 길이었소.”

육화명은 심협을 보고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나도 때마침 일이 있어 육형을 찾던 참이었소.”

심협도 인사를 건넸지만, 그리 기쁜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무슨 일 있소?”

육화명이 어리둥절한 듯 물었다.

“성안에 난데없이 강시들이 나타난 것은 육형도 이미 알고 있을 거요. 내가 그 강시들에 대해 알아낸 것이 조금 있는데, 혹시 국공 대인을 알현하게 해줄 수 있소? 직접 그분 앞에서 보고 드리고 싶어 그러오.”

“그럼 마침 잘되었소. 내가 심형을 찾던 것도 사부님의 분부였으니 말이오. 그대와 의논할 일이 있다고 하시더이다.”

“국공 대인께서 나를 부르신다고요? 무슨 일인지 아시오?”

심협이 눈썹꼬리를 찡그리며 물었으나, 육화명은 고개를 저었다.

“나도 모르오. 허나 사부님의 진중한 기색으로 보아 아주 중요한 일인 듯했소.”

“중요한 일이라니, 어서 가봅시다.”

심협이 고개를 끄덕였고, 두 사람은 대당관부의 정전(正殿)으로 향해 이내 대전 안에 도착했다.

그러나 정교금은 없었고 노란 옷의 동자 한 명만 그곳에 서 있었다.

“소령(小令), 네가 어찌 여기 있느냐? 사부님은?”

육화명이 물었다.

“두 분 사형, 국공 대인께서 저에게 여기서 사형들을 기다렸다가 내전으로 안내하라 하셨습니다.”

노란 옷의 동자가 두 사람에게 예를 갖춘 뒤 말했다.

‘이곳 대전에서 말하는 것도 불안하다고 여긴 것인가? 실로 중요한 일인 모양이군.’

심협은 그렇게 생각하며 동자를 따라 대전 깊숙한 곳으로 걸어갔고, 복도 하나를 지나 은밀한 석실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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