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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323화 (323/1,214)
  • 323화.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네

    일행은 금세 광덕방 근처에 도착했다.

    “어서! 저쪽 길목을 지켜라! 강시들이 뚫고 들어오게 해서는 안 된다!”

    “아아악!”

    “살려줘!”

    격렬한 전투 소리가 들려왔다. 상황이 긴박한 듯했다.

    조정의 대군은 성안 곳곳에 주둔하면서 귀물들의 침입을 막았다. 이 병사들은 법력을 지니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무기는 모두 대당관부를 거쳐 특별히 만든 것이라 귀물들에게 부상을 입힐 수 있었다.

    “내 먼저 가볼 테니 서둘러 뒤따라오시오!”

    심협은 발밑에 붉은 검광을 번뜩이면서 말을 마치기도 전에 하늘로 날아올랐다.

    하지만 머지않아 그의 안색이 돌변했다.

    멀리 앞쪽 골목에 강시들이 다닥다닥 붙어 서 있었던 것이다. 이 강시들은 하나같이 몸이 퉁퉁 부어서 보통 사람보다 배는 컸고, 피부 표면에는 누런 고름이 줄줄 흘러 보는 것만으로도 역겨웠다. 또한 입에는 짐승처럼 뾰족한 이빨이 가득했고, 손톱은 더없이 날카로웠다. 병사들은 특별 제작한 무기를 들고도 당해내지 못했고, 벌써 몇 군데나 위태로운 상황에 처해 있었다.

    특히 너비가 10여 장에 달할 정도로 널찍한 광덕방의 주요 길목으로는 무수한 강시들이 물밀듯이 밀려들고 있었다. 그곳을 지키는 군사들은 방진(*方陣: 병사들을 네모꼴로 배치하는 진형)을 치고 막아보려 했지만, 강시들의 힘이 막강한 데다 피부가 거칠고 두꺼워 칼로 베어도 별 효과가 없어 방어선이 곧 뚫릴 듯했다.

    심협의 발아래 순양검배가 번개처럼 튀어나가 붉은 검홍으로 변해 휙 하고 강시 대군 한가운데로 파고들었다. 그리고는 수많은 강시들의 울부짖음 속에 갑자기 섬뜩한 붉은 빛의 고리가 되어 공작이 꼬리를 펼치듯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반경 10여 장의 강시들이 부르르 몸을 떨더니 두 토막이 나면서 썩은 피비린내가 진동을 했다.

    심협은 조금 의문이 생겼다. 이 강시들의 몸은 그가 전에 맞닥뜨렸던 강시 귀물들보다 훨씬 약했다. 겉으로는 강해 보이지만 속은 텅 빈 수수깡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선사 대인이시다!”

    “우린 살았어!”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살아난 병사들이 흥분에 찬 환호성을 내질렀다.

    심협은 병사들을 내버려둔 채 손을 흔들어 순양검배를 불러들인 뒤, 곧장 위기에 처한 곳으로 날아갔다.

    한편, 귀물들이 점령한 골목 깊은 곳에서는 허공에 파동이 일어나더니 온몸을 검은 장포로 휘감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빌어먹을! 코앞까지 쳐들어갔었는데……. 웬 놈이 거치적거리는…… 아니, 저자는……?”

    검은 그림자는 증오 섞인 목소리로 짜증을 내다가 심협을 보고는 깜짝 놀라 외쳤다.

    “여천, 이게 어찌된 일이냐? 단에서 광덕방에 전력을 가장 많이 투입했는데, 왜 아직까지도 그곳의 방어선을 쳐부수지 못하는 것이야?”

    그림자 두 줄기가 골목 깊은 곳에서 또다시 날아왔다.

    이 두 사람은 일전에 심협과 교전을 치렀던 연신단의 수사 창목노도와 전통이었다.

    “누가 우리를 방해하고 있소. 그대들이 직접 보시오.”

    검은 옷의 그림자는 머리 위 두모(兜帽)를 벗고 요염한 얼굴을 드러냈다. 바로 여천이었다.

    “그놈이잖아!”

    창목노도와 전통은 여천이 가리키는 곳을 보고는 이를 갈았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뜻밖에 여기서 저놈을 만나게 되었구려. 흐흐. 지난번에는 저놈을 놓쳤지만 이번에는 내 반드시 저놈 모가지를 비틀어버리고야 말겠소.”

    전통이 차게 웃었다.

    그는 지난번 심협의 꾀에 넘어가 하마터면 홍련업화에 목숨을 잃을 뻔했기에 심협에 대한 원한이 깊었다.

    “우린 지금 임무를 수행하는 중이니 모든 것에 임무를 우선시해야 하오. 쓸데없이 말썽 일으키지 마시오.”

    창목노도가 손을 뻗어 전통을 막아서며 싸늘하게 말했다.

    전통은 그 말에 걸음을 멈추었지만, 불끈 쥔 주먹과 두 눈에서는 분노가 느껴졌다.

    세 사람 중에 창목노도의 경지가 가장 높았고, 이번 임무 역시 그를 우두머리로 했으며, 연신단은 상하 구분이 엄격했기에 우두머리의 명에는 절대 복종해야 했다.

    “허나 창목 도우, 저자는 대당관부에서 이곳을 수호하라고 보낸 수사들의 우두머리 같아 보이니 우리 계획을 실행하려면 저자도 처치해야 할 것 같군요.”

    여천이 아미를 찡그리며 말했다.

    그녀의 말에 전통의 눈에는 다시 희망의 빛이 절로 떠올랐다.

    “흠, 그건 그렇군.”

    창목노도는 잠시 생각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이번에는 내가 선봉에 서겠소.”

    전통은 크게 기뻐하며 즉시 자진해서 말했다.

    “안 되오. 전 도우 그대의 수법은 너무 눈에 띄오. 저자의 실력은 약하지 않으니 분명 금세 알아챌 거요. 아무래도 여천이 먼저 나서는 게 낫겠군. 너의 귀영환행(鬼影幻行)이라면 분명 쉽게 저놈에게 다가갈 수 있을 테니까.”

    창목노도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그자에게 다가가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창목도우 그대도 알다시피 나의 공격으로는 저자를 어찌하지 못할 것이오.”

    여천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회룡섭혼표(回龍攝魂鏢)를 빌려주지. 이 침은 특별히 몸을 보호하는 온갖 영광(靈光)을 꿰뚫을 수 있다. 또한 맹독이 들어 있어 피부에 살짝만 스치기만 해도 저놈은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될 게야.”

    창목노도는 3촌 길이의 검은 세침(細針)을 꺼내 여천에게 건넸다.

    세침 위로는 작고 가느다란 비늘무늬가 무수히 새겨져 있었고, 끄트머리에는 시퍼런 빛이 번뜩여 보기만 해도 무시무시했다.

    “고맙소, 창목 도우.”

    여천은 일찍이 창목노도의 법기에 대해 들어본 바 있었기에 크게 기뻐하며 받아들었다.

    세 사람은 곧 번쩍하고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 * *

    심협은 광덕방 곳곳을 쉴 새 없이 누볐다. 주맹 등이 도착했을 무렵, 그는 이미 방어 관문 일곱 곳을 위기에서 구한 상태였다.

    이런 빠르고 압도적인 모습에 주맹과 사람들은 혀를 내두르며 심협에게 더욱 탄복했다.

    광덕방은 거의 곳곳마다 강시들이 습격해 왔고, 심협은 주맹 등을 분산시켜 방의 병사들과 연합해 부하들을 투입함으로써 구역을 나누어 지키게 했다. 그리고 자신은 주요 길목으로 돌아와 중간에서 지휘하며 전세가 긴박한 곳이 있으면 곧바로 지원했다.

    어림군들도 도착하여 곧 수비군들에 합류했다.

    사람들이 전력을 다해 싸운 끝에 마침내 광덕방은 상황이 가까스로 안정됐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사 대인이 아니었다면 이곳의 방어벽은 뚫렸을 겁니다. 그랬다면…… 저는 백 번 죽어도 그 죄를 씻지 못했겠지요.”

    전세가 조금 안정되자, 칼날같이 날카로운 눈썹에 용맹함이 넘쳐흐르는 중년 장군이 다가와 감사를 표했다. 보아하니 이곳 수비군의 수장인 듯했다.

    “이 심모 역시 명을 받고 왔으니 장군께서는 고마워하실 것 없습니다. 한데, 저 강시들은 어디서 왔는지 혹시 단서라도 있는지요?”

    심협은 손사래를 치며 궁금한 일을 물었다.

    “그건 저도 잘 모릅니다. 이 짐승 같은 놈들은 어찌 된 일인지 난데없이 튀어나왔지요. 다른 귀물들은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중년 장군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렇군요.”

    심협은 답을 하고는 다른 것을 더 물어보려는데, 그때 저쪽 골목에서 또 한 무리의 강시들이 몰려나와 돌진해왔다.

    심협은 이 대규모의 강시 무리 속에 두 마리의 검은 강시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녀석들은 보통 강시들보다 몸집이 훨씬 더 크고 건장했으며, 움직임도 더욱 민첩하여 순식간에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공격!”

    심협이 결인하자 순양검배가 쐐액 하고 하늘로 날아올라 용처럼 몸을 뒤틀더니, 한 차례 부르르 떨고는 무수한 붉은 검영이 되어 하늘을 뒤덮은 검우(劍雨)처럼 천지를 뒤덮으며 쏟아져 내렸다.

    검기가 공기를 가르고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내면서 가까이 달려드는 강시들을 모조리 집어삼켰다.

    몸뚱이가 터져나가는 파열음이 끊임없이 울렸고, 강시 떼는 마치 밀밭의 밀처럼 일제히 잘려나가며 거의 괴멸됐다.

    순양검배를 수련하기 시작한 뒤로 그 위력은 갈수록 대단해졌다.

    병사들은 이 광경을 보고 모두들 놀라움 가득한 탄성과 환호성을 내질렀다.

    하지만 심협의 눈빛은 차갑게 굳었다. 아까 그 검은 강시 두 마리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것이다. 녀석들은 몸에는 적잖은 검흔이 있었지만, 손발 모두 온전한 상태로 계속해서 돌진해왔다.

    ‘실로 단단한 몸이로구나!’

    심협은 속으로 중얼거리고는 소매를 휙 하고 떨쳤다. 그러자 하늘을 뒤덮었던 검영이 별안간 하나로 합쳐져 붉은 검홍이 되어 번쩍하고 두 강시들 앞에 나타나 목을 휙 긋고 지나갔다.

    두 강시의 머리통은 하늘 높이 떠올랐다. 머리 없는 시체는 달려오던 힘 때문인지 몇 걸음을 더 돌진하다가 그제야 땅에 엎어졌다.

    심협은 손을 들어 순양검배를 다시 부른 뒤, 주맹과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보려 했다. 그들 쪽에도 이런 검은 강시가 나타났다면 주맹 등이 대적할 방법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때였다. 그의 등 뒤 허공이 일렁이더니 흐릿한 검은 그림자가 유령처럼 나타났다. 바로 여천으로, 그녀는 손가락을 굽혔다가 심협을 향해 튕겼다.

    검고 가느다란 바늘이 그녀의 손끝을 떠나 잔상을 남기며 쏜살같이 심협의 등 한복판을 향해 날아갔다.

    심협은 그제야 위기를 감지하고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의 신식은 광덕방에 들어온 이후로 줄곧 풀려나와 있던 탓에 이 검은 그림자의 존재를 제대로 감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깜짝 놀란 와중에도 그는 망설임 없이 발 위로 달빛을 세차게 내뿜으며 앞으로 내달렸다.

    허나 검은 세침이 날아오는 속도는 번개처럼 빨랐고, 그는 사월보를 막 시전한 터라 속도가 오르기 전이었다. 둘 사이의 거리는 빠르게 좁혀졌고, 곧 검은 세침이 그의 몸을 찌를 것만 같았다.

    그때, 청록색 빛 한 줄기가 번쩍 스쳐 지나갔다.

    쨍강!

    금속이 맞부딪히는 가벼운 울림과 함께 검은 세침은 튕겨져 나갔고, 수 척 길이의 비취색 여의가 심협 뒤에 나타나 검은 세침의 공격을 막아냈다.

    “이럴 수가!”

    여천은 경악하며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녀의 귀영환행은 속도를 끌어올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운까지 없앨 수 있어 신식으로도 감지할 수 없다. 그래서 심협도 자신을 발견하지 못한 것 아니던가! 그런데 어떻게 제때 법기를 꺼내 회룡섭혼표를 막아낼 수 있었단 말인가?

    심협은 침착하게 검은 침을 튕겨냈지만, 내심 두려움이 밀려왔다.

    금갑선의가 망가져 강력한 호신법기가 없어진 후로는 전장에 나갈 때면 늘 다소 불안했고, 그 때문에 일부러 비취색 여의를 등에 숨겨 비상시에 대비했다.

    막 돌진하려던 심협은 멈춰 서서 손만 등 뒤로 돌려 뒤편을 가리켰다. 그러자 비취색 여의가 강한 빛을 발하며 유성처럼 여천에게 가서 부딪쳤다.

    다행히 양손의 경맥을 법맥으로 바꾼 덕에 비취색 여의의 힘을 이토록 빨리 움직일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됐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여의의 눈부신 빛에 휩싸인 채 그의 오른팔 보호대도 여천을 향해 날아갔다.

    여천은 깜짝 놀랐지만, 즉시 정신을 차리고 재빨리 양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칠흑처럼 어두운 빛이 번쩍 스쳐 지나더니 흑금철패 하나가 그녀 앞에 나타나 비취색 여의를 막아섰다.

    펑!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녹색과 검은색의 빛이 세차게 뿜어져 나왔고, 허공에는 한차례 광풍이 휘몰아쳤다.

    흑금철패 위의 짙은 검은 빛은 뜻밖에도 비취색 여의의 힘을 견뎌냈다.

    여천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재빨리 물러나려고 했다.

    한데 그때, 별안간 흑금철패 아래에서 하얀 빛이 번쩍이더니 하얀 치마를 입은 소녀가 나타나 땅바닥에 납작 엎드리면서 입에서 하얀 빛을 뱉어냈다.

    쉭!

    한 줄기 번개 같은 하얀 빛이 여천에게로 쏘아져 갔다.

    둘의 거리는 겨우 1장에 불과해 하얀 빛은 여천이 미처 대비할 틈도 없이 꽂히더니 순식간에 그녀에게 흡수되듯 들어가 버렸다. 다음 순간, 여천의 온몸에 하얀 빛이 떠오르더니 피식 하는 가벼운 소리와 함께 온몸이 하얀 불가사리로 변해 바닥에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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