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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322화 (322/1,214)
  • 322화. 백성(白星)이 변신하다

    마수수가 떠난 뒤, 심협은 탁자 위의 물건들을 챙기고는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그는 근처 광장에 이르렀다.

    광장에는 많은 수사들이 좌판을 벌여놓았는데, 곳곳마다 인파가 북적였다. 규모가 좀 작다는 점만 빼면 귀환이 있기 전 서시의 풍경과도 비슷했다.

    수사들이 모인 곳은 필연적으로 온갖 거래가 일어나기 마련이었다.

    심협은 여러 좌판들을 지나 커다란 바위로 지어진 간이 돌집으로 향했다.

    안에는 허름한 가게가 들어서 있었다. 규모는 바깥의 좌판들보다 훨씬 컸다. 여러 재료를 거래하는 곳인데, 특히 각종 요수(妖獸)의 재료들이 많았다.

    땅딸막한 주인이 가게를 돌보고 있었다.

    심협은 주룡초를 툭 던져주며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말했다.

    “왕 도우, 내 이미 주룡초를 찾았소. 환칩요단(幻蟄妖丹)은 아직 있겠지요?”

    “심 도우셨군요. 주룡초를 벌써 구하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땅딸막한 사내는 영초를 받아 들고 놀라면서도 기뻐했다.

    “확실히 주룡초로군요! 햇수도 충분하고요! 환칩요단 여기 있습니다. 가져가십시오!”

    땅딸막한 사내는 주룡초를 두어 번 자세히 살펴보더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옥합 하나를 꺼내 심협에게 건넸다.

    옥합 안에는 주먹만 한 은백색 요단이 한 알 있었다. 표면에는 몽롱한 하얀 빛이 감긴 채 빠르게 반짝거렸는데,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어질어질 현기증이 났다.

    “훌륭하오.”

    심협은 미소 지으며 옥합 뚜껑을 덮었다.

    “이 환칩요단은 응혼기 환칩해요(幻蟄海妖) 한 마리를 참살해 얻은 것으로, 온 방시에서도 이것 하나뿐입니다. 단약을 만드는 데 쓰든, 법기를 만드는 데 쓰든 효과가 아주 크지요. 심 도우께서는 이 단약으로 무얼 하실 겁니까? 단약을 만드실 거라면 제가 가까운 연단사가 있으니 소개시켜드릴 수도 있습니다.”

    땅딸막한 남자가 친절하게 말했다.

    “괜찮소. 심모는 이 요단을 다른 용도로 쓸 것이라서 말이오. 한데 지난번에 말했던 또 다른 응혼기 요단은 실마리가 좀 있소?”

    옥합을 챙긴 심협은 은근 기대감이 담긴 목소리로 물었다.

    “본디 맹독을 품은 요단은 워낙 드물기도 하고, 심 도우께서는 응혼기 급을 원하시니…… 여기저기 알아봤지만 아쉽게도 아직…….”

    땅딸막한 사내가 얼굴을 찌푸리며 답했다.

    “왕 도우만 믿겠소. 찾을 수만 있다면, 내 값은 더 얹어줄 수도 있소.”

    “안심하십시오. 제가 꼭 서둘러 찾아보겠습니다! 하하하!”

    땅딸막한 남자가 가슴팍을 두드리며 장담했다.

    * * *

    심협은 곧장 처소로 되돌아와 침상 위에 가부좌를 튼 채 환칩요단을 잠시 만지작거리다가 결인하여 물줄기를 불러내 통령역요술을 시전했다.

    그가 환칩요단을 구매한 것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백성(白星)의 수련 경지를 대신 끌어올려주기 위함이었고, 또 다른 맹독성 요단을 구하는 것은 무춘(茂春)의 실력을 높여주기 위함이었다.

    그는 응혼기에 들어선 뒤 자연히 더 강력한 바다 요괴들과 통령할 수 있었지만, 백성이나 무춘의 능력은 매우 유용했기에 그는 버리고 싶지가 않았다. 오히려 낭생은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아 얼마 전 그와 통령 계약을 해지하고 다른 응혼기 새우병사로 바꿔 계약했다.

    그 외에, 그의 수련 경지가 상승함에 따라 통령지수(*通靈之獸, 통령 계약을 맺은 짐승)의 수도 한 마리 늘었다. 다만 현재의 통령지수들 만으로도 충분했기에 그는 그 자리를 남겨두었다.

    곧 허공에 검은 물구멍이 나타나면서 촤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하얀 불가사리가 물보라를 사방으로 튀기며 미끄러져 나왔다.

    “주인님, 저를 부르시다니 또 전투가 있는 것입니까?”

    백성은 몸의 물기를 털어내고 두 ‘손’으로 사람처럼 심협에게 공수했다. 지난번 음령산 고분에 다녀온 뒤로 백성은 심협에게 더욱 예를 차렸다.

    “그게 아니다. 지난번에 네가 불가사리 일족은 수련이 느려 돌파하려면 외력의 도움에 의지해야만 한다고 하지 않았느냐? 내가 네게 주려고 응혼기 요단을 하나 구했다. 어떠냐? 쓸모가 있을 것 같으냐?”

    심협은 환칩요단을 백성에게 건네며 물었다.

    “이것은 환칩해요의 요단! 이는 우리 흰 불가사리 일족의 요력과 아주 비슷해, 이 요단이 있으면 8할의 확률로 응혼기를 돌파할 수 있지요. 주인님의 후한 선물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백성은 요단을 받아들고는 감격하여 울먹였다.

    “예의 차릴 것 없다. 너는 나의 영수(靈獸)이니 네 경지가 향상돼야 나도 도움을 받을 것 아니겠느냐.”

    심협이 웃으며 말했다.

    백성은 다시 한 번 감사를 표한 뒤, 입을 벌리고 환칩요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요력으로 정제하자, 몸에서 하얗고 가느다란 빛줄기가 피어올랐다.

    “바로 여기서 돌파하려고?”

    심협은 조금 놀랐다.

    “주인님께서 계신 이곳은 천지의 영기가 짙어 돌파하기에 딱 좋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주인님께서 저를 도와주신다면…….”

    백성은 요력으로 요단을 정제하면서 심협에게 힘겹게 설명했지만, 크게 예의를 차리지는 않았다.

    심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백성을 방해하지 않고 일어나서 방 곳곳에 또다시 금제를 설치했다. 백성의 요기가 밖으로 새어나가 근처 다른 사람들의 주의를 끌지 않도록 신경 쓴 것이다.

    이후 그는 다시 백성 곁으로 돌아가 앉아 수련하면서 호법(護法)을 섰다.

    그는 막 대당관부의 임무를 완수한 터라 이틀은 휴식이 주어진 상태이므로 시간은 넉넉했다.

    * * *

    시간이 흘러 순식간에 하루 밤낮이 지나갔다. 백성의 몸에서는 하얀 빛이 더욱 밝아져 몸을 거의 전부 뒤덮었다.

    심협은 옆에 조용히 앉아 수련을 멈추고 백성을 호법하는 데에 전념했다.

    바로 그때, 백성의 몸에서 하얀 빛이 갑자기 일렁이더니 뿜어내는 기운도 높아졌다 낮아지며 요동쳤다.

    하얀 빛을 통과해 백성의 몸 아래에서 갑자기 크고 작은 돌기들이 울룩불룩 솟아나왔다. 마치 수많은 작은 쥐들이 몸안에서 뛰어다니듯 백성은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백성!”

    심협은 이런 상황을 보고 황급히 신식으로 소리를 전달해 물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요단의 힘을 융합하는 중이니…… 저를 좀 도와주세요.”

    백성이 고통스럽게 답했다.

    심협은 고개를 끄덕이고 두 손을 결인한 뒤, 허공을 떠밀었다.

    푸른 빛 두 줄기가 그의 손바닥에서 쏘아져 나가 백성의 몸으로 주입되었다. 그러자 백성은 고통스러워하던 표정이 많이 약해졌고, 몸의 하얀 빛은 더욱 밝아지더니 머리 쪽으로 몰려들어 빛 덩어리를 이루었다.

    빛 덩어리 속에서 무수한 하얀 빛들이 빠르게 흐르면서 쉭쉭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백성 몸의 근육들은 더욱 심하게 꿈틀거렸고, 안색도 은회색으로 변했다가 새하얗게 변했다가 계속해서 바뀌는 것이 무척 기이했다.

    꼬박 반 시진쯤 지나자 백성의 몸에서 하얀 빛이 미친 듯이 솟아나와 그의 몸을 완전히 파묻었고,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도 크게 불어나 심협을 약간 밀어냈다.

    그러나 심협은 놀라기는커녕 기뻐했다. 백성이 경지를 끌어올리는 데 성공한 것이다!

    잠시 후, 백성의 몸에서 빛이 한 차례 반짝이더니 천천히 사라졌고, 하얀 치마를 입은 소녀의 모습이 드러났다. 이 소녀는 이목구비가 수려했고, 용모가 절색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온순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주었다.

    소녀는 심협에게 치맛자락을 살짝 들고 예를 갖추었다.

    “주인님, 저는 이미 돌파에 성공했습니다. 주인님의 은혜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백성은 앞으로 더욱 노력하여 주인님께 충성을 다할 것입니다.”

    소녀의 목소리는 그 용모만큼이나 온유했다.

    “사람으로 둔갑한 것이냐? 아니면 정말 육신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냐?”

    심협이 백성을 잠시 살피다가 물었다.

    “육체를 변하게 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저의 행동 반경이 크게 늘어나 예전처럼 느릿느릿 기어 다니지 않아도 됩니다.”

    빠른 걸음으로 방을 왔다 갔다 하는 백성의 얼굴에는 흥분이 가득했다.

    심협도 크게 기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백성이 응혼기에 이른것에 기뻐했을 뿐만 아니라, 이제 자신과 건곤대 안의 귀장까지 더해져 응혼기가 셋이 된 것도 기뻤다.

    요즘 그는 한가할 때 망산오우에게서 얻은 운수진을 연구하기도 했다. 이 법진은 벽곡기 수사 여섯 명이 있어야 작동시킬 수 있지만, 응혼기 수사가라면 세 명으로도 충분했다. 응혼기 수사는 법력이든 신식이든 벽곡기 수사를 훨씬 넘어 섰기에 한 사람이 진기(陣旗) 두 개를 통제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 그는 운수진을 작동시키고 유지하는 방법을 백성과 귀장에게 알려주고 조금 연습해 호흡을 맞추기만 한다면 큰 도움이 될 것임을, 나아가 지금 이 위험한 만귀장안(萬鬼長安)에서 스스로를 지킬 힘도 더 커질 것임을 믿었다.

    그때였다.

    댕! 댕!

    경종이 연거푸, 다급하게 울렸다.

    심협은 안색이 살짝 변했다. 이 익숙한 경종 소리는 귀물들의 움직임이 있다는 신호로, 지금까지 몇 차례 울린 적이 있었다.

    과연 허리춤의 관부 요패도 비취색으로 빠르게 반짝이기 시작했다.

    “주인님, 일이 생긴 것입니까?”

    백성이 황급히 물었다.

    “그래. 너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으니 전에 했던 대로 하거라.”

    심협은 짧게 답하고는 오른 팔을 들어 올리며 빠른 걸음으로 방을 나섰다.

    백성도 두말없이 몸에서 하얀 빛을 반짝이더니 모습을 감췄다가 하얀 보호대가 되어 심협의 오른팔 위를 덮었다.

    * * *

    장병전은 사람들 목소리로 떠들썩했는데, 각 부대의 수사들이 어수선하게 임무를 받고 있었다.

    주맹과 조정생을 비롯한 수하들도 도착해 있었다.

    “하형, 무슨 일입니까? 이번 임무는 무엇입니까?”

    심협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물었다.

    “귀물들이 느닷없이 대대적으로 공격해 와서 각 방(坊)들 모두 습격을 받았습니다. 게다가 이번 귀물들은 이전과 달리 강력하고 방어력이 높은 강시들이 많아 상대하기가 까다롭다고 합니다.”

    하문정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강시?”

    “심 십장의 임무는 광덕방(光德坊)으로 가서 그쪽 군대와 협력해 광덕방을 지키는 것입니다.”

    하문정의 설명에 주맹이 몸을 부르르 떨고는 무슨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심협은 주맹의 표정 변화를 눈여겨보고는 문득 드는 생각이 있어 하문정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형은 안심하십시오. 우린 반드시 욕되지 않게 사명을 완수할 것입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심형.”

    하문정은 심협에게 공수한 뒤 몸을 돌려 다른 대오에 임무를 하달하러 갔다.

    “갑시다.”

    심협은 곧장 부하들을 이끌고 바깥으로 나와 길을 따라 광덕방으로 달렸다.

    거리에는 백성들이 집집마다 문을 걸어 잠갔고, 훌륭한 무기를 든 채 화려한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황궁에서 달려 나와 성 안 곳곳으로 향했다.

    심협은 이 광경에 내심 놀랐다. 그 병사들은 바로 황궁을 지키는 어림군이었기 때문이다. 이들까지 밖으로 내보내다니, 이번 귀물의 습격은 전에 없이 위험한 모양이었다. 아니면 드디어 결전의 순간이 닥친 것인가?

    다른 사람들의 안색도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주 도우, 아까 임무를 받을 때 표정이 좋지 않던데, 광덕방에 무슨 문제라도 있소?”

    심협이 주맹에게 묻자 조정생도 궁금했는지 시선을 고정했다.

    “우리 산권종의 힘은 화생사나 보타산 같은 큰 종파들에는 훨씬 못 미치지만, 본문은 장안에 자리 잡은 지 오래라 인맥이 넓고 소식이 빠른 편입니다. 저는 장병전에 오기 전에 이번에 귀물들이 중점적으로 공격한 몇몇 지역을 이미 들어 알고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광덕방입니다.”

    주맹은 잠시 머뭇거렸지만 결국 입을 열었다.

    “광덕방이 그리 위험한데 하문정이 왜 우리에게 주의를 주지 않았을까요? 우리가 겁을 집어먹을 까봐 그랬던 걸까요? 아니면 우리가 가서 화살받이나 하도록 속이려 한 것일까요?”

    조정생이 불만스러운 듯 투덜거렸다.

    “조 도우, 말을 삼가시오.”

    심협이 미간을 찌푸리고 조용히 꾸짖었다.

    조정생은 말을 내뱉자마자 후회던 터라 심협의 꾸짖음에 멋쩍게 손을 맞비볐다.

    “지금 우리는 장안성과 동고동락하고 있소. 그러니 가장 꺼려야 할 것이 서로를 의심하고 미워하는 것이오. 하형은 대당관부 사람인데 어찌 우리를 음해하려 하겠소?”

    “예,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심협이 정색하고 말하자 조정생이 순순히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허나 광덕방에 귀물이 아주 많다 하니 모쪼록 조심들 하고, 경솔하게 뛰어들지는 마시오.”

    심협은 또다시 신신당부했다.

    “예!”

    사람들이 입을 모아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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