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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321화 (321/1,214)

321화. 진심을 얻다

거대한 흡인력이 심협 일행을 검은 소용돌이 한가운데로 끌어당겼다.

그때, 심협의 시선이 사내의 손에 끼워져 있는 세 개의 저물 반지에 닿았고, 그는 문득 모든 상황을 깨달았다.

“초석 화약은 저자의 저물 반지 안에 있소! 저놈은 우리를 끌어들여 함께 생을 마감하려는 거요!”

속세의 화약은 위력에 한계가 있지만, 수사의 법력과 결합하면 그 위력이 결코 만만치 않았다. 또한 이렇게 가까이서 위력을 발산한다면 심협도 온전히 빠져나갈 수 있다고는 감히 장담하지 못할 터였다.

가슴이 철렁해진 심협은 곧바로 온몸의 법력을 운행하여 그들을 끌어당기는 검은 빛에서 벗어나려 애썼다.

멀지 않은 곳에서는 주맹도 온몸에서 금빛을 번쩍이며 소용돌이의 흡인력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기껏해야 제자리에서 겨우 버틸 수 있었을 뿐, 달아나지는 못했다.

조정생은 더욱이 버틸 수가 없어서 한 걸음씩 사내 곁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심협은 싸늘한 표정으로 물러나면서 두 손으로 각각 주맹과 조정생의 팔을 붙잡고 온몸의 법력을 움직여 두 사람을 곧장 마당 바깥으로 냅다 내던졌다.

“저들을 데리고 곧장 떠나시…….”

하지만 그의 말은 채 끝이 나기도 전에 하늘을 뒤흔드는 굉음에 묻혀버렸다.

“심 선배님!”

주맹과 조정생은 놀란 목소리로 크게 외쳤다.

퍼펑! 콰르릉!

폭발음이 울린 곳의 대지가 격렬하게 요동치면서 폭죽 공방 전체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렸고, 사방에서 먼지와 연기가 풀썩 일어났다.

주맹 등은 멀리 피할 틈도 없이 튕겨나가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예상치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폭죽 공방에서는 불빛이 하늘로 치솟는 광경 따위는 전혀 나타나지 않았고, 그들도 더 강력한 파동에 타격을 받지 않았던 것이다. 이 폭죽의 위력은 예상보다 한참 약했다.

“이게 어찌 된 일이지?”

조정생이 낯빛을 굳히고 중얼거렸다.

주맹은 말없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먼지구름을 빤히 노려보았다.

먼지구름이 완전히 가라앉자, 비로소 폐허 속에서 거대한 황색 종 그림자가 빛을 발하는 것이 보였다. 그 위로는 여러 마리 용 그림자가 노닐었다.

“심 선배님!”

주맹이 외쳤다.

그 황색 종 그림자 옆에는 한 사람이 두 손을 앞으로 떠미는 동작으로 서 있었으니, 바로 심협이었다.

사람들은 황급히 그에게 다가갔다.

심협은 그제야 끙 하고 신음하더니 무너져 내리며 반쯤 무릎을 꿇었다. 그와 동시에 거대한 종 그림자도 파르르 떨리더니 쩌적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노란 구리종 위로 균열이 벌어지면서 예닐곱 조각으로 부서져 떨어져 내렸다.

주맹과 사람들은 근처까지 달려간 뒤에야 종 그림자가 사라진 땅바닥에 거대한 검은 구멍이 나타난 것을 보았다. 그 안은 온통 어둠이라 바닥을 볼 수가 없었다.

그들은 그제야 방금 심협이 고급 법기를 희생한 대가로 그 폭발에서 모두를 구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심 선배님!”

조정생이 다가와 심협을 부축하려 했다.

심협은 손을 저어 만류하더니, 입가의 핏자국을 문질러 닦고는 스스로 일어섰다.

“여기는 오래 머물 곳이 못 되니 서둘러 떠나야겠소.”

어느새 주위로 흙먼지가 치솟으면서 많은 귀물들이 몰려들었다.

심협은 체내에서 요동치는 기운을 잠시 잠재우고는 사람들과 함께 왔던 방향으로 빠르게 도망쳤다.

그들이 영평방으로 도망쳐 들어가자 귀물들이 앞을 막아서기 시작했다. 이후 몇 차례의 전투가 벌어졌지만, 결국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성 북쪽 안전지대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심협과 일행들은 관부의 장병전으로 돌아가 임무를 보고했다.

그는 무리의 인솔자로서 이번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해 영패에 20점의 공적을 쌓았고, 주맹과 조정생은 각각 15점을, 다른 사람들은 각자 10점씩을 받았다.

그밖에 연신단의 벽곡기 수사 두 사람을 죽인 보상으로 심협과 두 사람은 각각 20점씩을 추가로 얻었다.

평범한 임무로 공적점을 40점이나 쌓는 상황은 결코 흔하지 않았지만, 심협은 전혀 유쾌하지 않았다. 부상을 당한 데다가 금갑선의를 잃었으니 아무리 봐도 밑진 장사였다.

하지만 얻은 것은 또 있었다. 이번 일로 주맹과 조정생이 심협을 진심으로 믿고 따르게 된 것이다.

심협은 인사를 남기고는 홀로 아집원의 목루(木樓)로 되돌아갔다.

이후로 한 달 동안 심협과 일행들은 여러 차례 임무에 참가했지만, 정보를 캐내는 것과 소규모 전투뿐이었다.

이 한 달 동안 심협은 육화명을 거의 보지 못했고, 때때로 관부에서 우연히 마주치더라도 몇 마디 나누는 게 고작이었다.

심협은 대당관부 쪽에서 전력만 배치했을 뿐이고, 어떤 이유에서인지 성 남쪽을 점거한 귀물들과 연신단도 ‘암묵적’으로 세력을 더는 확장하지 않고 있음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양측은 미묘한 균형을 유지한 채 소규모 교전들을 치렀을 뿐이다.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그러나 심협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평소 관부에서 임무를 받는 것 외에도 스스로 성 남쪽에서 귀물들을 죽였다. 음살의 기운을 거둬들여 계속 현음개맥결을 수련하기 위해서였다.

수차례 실패를 거쳐, 그는 마침내 십이정경 중 두 경맥을 또 뚫었다. 이제 본래의 네 줄기 주맥(主脈)과 한 줄기 곁가지 경맥까지, 벌써 일곱 줄기의 법맥을 뚫은 상태였다.

덕분에 그의 수련 속도는 적잖이 빨라져서 이미 응혼 초기의 난관을 어렴풋이 볼 수 있었다.

또한, 몇 번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순양검배와 뇌부로 귀물을 멸하는 데 이름이 난 덕에 산권종과 고영종에서 그를 포섭하려 했다. 심지어 성안의 다른 종문들에서도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심협은 스스로 춘추관 제자라 여겼으니 다른 종문에 들어가지 않았다.

어느 날, 그가 처소에서 수련을 하고 있는데 마수수가 갑자기 찾아왔다.

“심 공자님, 오늘 방문한 것은 다름 아니라 공자님께 억몽부 세 장을 구입하고자 함입니다.”

마수수는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그럼 지난번…….”

심협은 말을 맺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지난번 부적은 실패하여 아버지를 구출해낼 수 없었답니다. 그래서 세 장을 더 구하러 온 것이지요.”

마수수가 길게 탄식했다.

“허나 현재 수중에 억몽부가 없으니 시일이 좀 필요합니다.”

심협은 돈벌이를 거절하지 않았다.

“네, 기다리겠습니다. 한데 가격이……?”

“마 소저는 저를 적잖이 도와주셨으니 가격은 협상이 가능합니다. 유영단처럼 수련 경지를 증진시킬 영약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요.”

현재 심협에게 가장 진귀한 물건은 경지를 증진시킬 수 있는 영단묘약이었다.

“그런 영단(靈丹)은 찾기 어렵겠지만, 최선을 다해 찾아보겠습니다.”

마수수는 굳은 얼굴로 약속했고, 심협은 고개를 끄덕였다.

“심 오라버니께서도 이제 벼슬을 하시는 몸인데, 관부의 임무는 어떻습니까?”

마수수는 급히 떠나려는 기색 없이 웃으면서 물었다.

“그저 잔심부름을 하는 것일 뿐, 별로 말할 게 없습니다.”

심협도 웃으며 짧게 답했다.

마수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가 심협이 더 말을 하지 않자 눈치껏 몇 마디만 더 나눈 뒤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심협은 떠나는 마수수를 눈으로 배웅한 뒤, 곧바로 방으로 돌아와 수련했다.

눈 깜짝할 새에 보름이 지나갔다.

방 안에서 나지막한 울부짖음이 울리더니 보이지 않는 힘이 창문들을 흔들어 열어젖혔다.

심협이 방 안에 눈을 감은 채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있었는데, 몸에서는 아홉 가닥의 푸른 빛줄기가 반짝였다. 또 그의 몸에서는 강렬한 법력 파동이 뿜어져 나왔는데, 예전보다 3할은 더 강해진 모습이었다.

심협이 천천히 눈을 뜨자 눈동자에 한 가닥 희색이 스쳐 지났다.

그간의 노력으로 다시 법맥 두 개를 더 뚫어 이제 그의 몸에는 아홉 줄기의 법맥이 있었다. 이는 평범한 도체(道體)의 자질에 견줄 만했다.

그는 두 가지 법맥을 결코 대충 고르지 않았다. 풍부한 개맥(開脈) 경험으로 그는 일부러 꿈속에서처럼 수삼양경맥을 택했고, 단전의 법력을 두 손으로 곧장 관통시켜 법술을 펼치는 속도를 최대한도로 끌어올렸다.

심협이 다섯 손가락을 흔들자, 손가락이 펼쳐지기도 전에 다섯 줄기 푸른 수인(水刃)이 몇 장 너머의 벽에 꽂혔다. 법술을 시전하는 속도도 예전보다 몇 배는 빨라져서 가히 전광석화라 할 만했다.

푹! 푹! 푹!

벽 위에 다섯 개의 구멍이 뚫렸고, 그 틈으로 고운 모래가 흘러내렸다.

심협은 시험 삼아 법기를 작동시켰다. 그 속도가 엄청나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중요한 경맥을 법맥으로 바꿀 수 있어 이후의 수련에 미치는 영향을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이 현음개맥결의 두려운 점이었다.

법맥이 많아지자 수련 경지도 빠르게 발전하여 심협은 이미 응혼 초기 정점에 도달해 있었다.

심협은 천천히 숨을 고르며 마음을 가다듬고는 어떻게 응혼 중기를 돌파할지 생각했다. 만약 성공한다면 아홉 줄기 법맥과 강력한 법기들로 실력을 즉시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릴 수 있을 터였다.

허나 자질이 크게 발전했다고는 해도, 한 단계 올라서는 것은 쉽지 않았기에 다른 사물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았다.

그때, 밖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한 차례 들려왔다.

심협은 신식으로 훑어본 뒤 눈썹 꼬리를 움찔 치켜세우고는 일어나 문을 열었다. 뜻밖에도 마수수가 다시 방문한 것이다.

“심 공자님, 실례하겠습니다.”

마수수가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이 여인은 별말을 하지 않았지만, 심협은 그녀의 눈동자 속에서 일말의 간절함을 볼 수 있었다.

“들어오시지요. 억몽부는 그려놓았습니다. 이 부적들을 그리는 데 심혈을 기울였지요.”

심협은 마수수를 방 안으로 안내하고는 앓는 소리를 했다.

“소녀도 심 공자님의 노고를 압니다. 이번에 물건을 좀 가져왔는데, 틀림없이 공자님 마음에도 들 겁니다.”

마수수는 청백의 옥병을 하나씩 꺼내 심협 앞으로 밀어놓았다.

“이것들은……?”

심협이 우선 푸른 옥병을 집어 들면서 물었다.

“푸른 옥병에는 남심단(藍心丹)이, 하얀 옥병에는 광령단(廣靈丹)이 들어 있습니다. 모두 응혼기 수사의 수련 속도를 높여주는 단약이지요. 심 공자님께도 쓸모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마수수의 설명을 들으며 푸른 옥병을 열어보니 물빛 단약 여덟 알이 들어 있었다. 표면에 물줄기 같은 푸른빛이 감돌았다. 짙은 영력으로 보아 매우 좋은 고본배원(*固本培元: 근본을 튼튼히 하고 원기를 북돋우다) 단약임이 확실했다.

이어서 하얀 옥병도 열어보았는데, 그 안에는 눈처럼 하얀 단약 여섯 알이 들어 있었다. 영력은 남심단과 거의 비슷할 정도였다.

“단약은 훌륭합니다만, 수량이 좀 적군요.”

심협이 조금 망설이며 말했다.

“귀환 때문에 장안성의 물자가 너무나 빠듯합니다. 특히 단약은 더욱 부족하니 심 도우께서 너그러이 봐주시지요. 소녀가 선옥과 다른 물건들도 좀 더 가져왔으니, 심 공자님께서 기쁘게 받아주셨으면 합니다.”

마수수가 손을 털자 하얀 빛이 번쩍 스치더니 탁자 위에 물건 한 무더기가 와르르 쏟아졌다. 선옥 한 무더기와, 푸른 정석 한 덩이, 붉은 요단(妖丹) 한 알 그리고 검노랑 영초(靈草) 한 포기였다.

심협은 마수수의 행동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사실 단약만으로도 그럭저럭 만족했고, 억몽부 몇 장 그리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마수수의 눈빛에서 간절함을 읽고 가볍게 흥정이나 해볼까 했던 것인데, 이렇게 많은 물건들을 꺼내 놓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사실 이 정도면 뜻밖의 횡재라 할 만했다.

심협은 그런 심정을 내색하지 않고 물건들을 훑어보았다. 선옥은 수가 무려 200개였고, 푸른 정석은 그가 모르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그 위에 더없이 순수한 푸른 빛이 번쩍이는 것이 최고급 물 속성 영재임이 분명했다. 또한 붉은 요단은 응혼기 요단인 듯했다.

마지막으로 검노랑 영초는 구불구불한 형태가 마치 자그마한 용 같았고, 한쪽 끄트머리에는 용의 뿔과 꼭 닮은 주홍색 돌기 두 개가 돋아 있었다.

“주룡초(朱龍草)!”

심협은 푸른 정석과 붉은 요단에는 그다지 관심이 가지 않았지만, 이 영초를 보고는 무의식중에 외쳤다.

“심 공자님께서는 정말 박학다식하시군요. 맞습니다. 이 영초는 바로 주룡초랍니다. 그것도 300년이나 묵은 것이지요.”

마수수가 감탄한 듯 웃으며 말했다.

“마 소저께서는 너무 예의를 차리시는군요. 이 물건들은 아주 만족스러우니 억몽부를 받으시지요.”

심협은 더는 욕심을 내지 않고 노란 부적 세 장을 건넸다.

마수수의 얼굴에 억누르기 힘든 기쁨이 떠올랐지만, 금세 사그라들었다.

그녀는 부적을 받아들고 몇 마디 한담을 나눈 뒤 인사하고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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