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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320화 (320/1,214)
  • 320화. 함정

    주맹이 가까이 다가서며 이렇게 말했다.

    “심 선배님, 그의 말을 좋게만 여기지 마십시오. 그들이 뿌린 것은 취시분(聚屍粉)이라는 것인데, 전문적으로 시기(屍氣)를 사그라들게 하는 것입니다. 시독(屍毒)과 화시단(化屍丹)을 정제하기에 좋지요. 이따 돌아오는 길에 분명 회수할 겁니다.”

    심협은 잠시 의아해했다가 곧 웃으며 말했다.

    “모든 일에는 장단점이 있는 법. 역병을 피할 수 있다면 시기를 사그라들게 하는 것도 좋은 행동이니 큰 문제는 없을 듯하오.”

    그러자 오히려 조정생이 그 말에 다소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 고영종 제자들을 악의적으로 넘겨짚으려 해왔기 때문이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길에는 온갖 참상이 더욱 많아져서 고영종 제자들이 가지고 온 취시분이 부족할 지경이었다.

    “곧 돈의방이오. 이곳은 이미 귀물들이 점거하고 있으니, 임무를 완수하기 전까지는 최대한 그들과 부딪치지 않도록 조심하시오.”

    심협의 당부에 모두 공수하며 답했다.

    돈의방 건물들은 태반이 파괴되어 본래의 길도 찾기 힘들었기에, 어쩔 수 없이 하문정이 준 지도를 들고 폐허 더미 속에서 화약 공방을 찾기 시작했다.

    정오에 가까운 시간이었지만 먹구름 아래 있던 터라 때때로 귀물들이 거리와 골목을 떠돌아다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심협은 귀물들을 관찰한 결과 그 활동 궤적에 흥미를 느꼈다. 대다수가 반경 백여 장 안에서만 왔다갔다 노닐 뿐이었고, 문제의 그날 밤 흉악하고 사나웠던 것과 달리 평온해 보였던 것이다.

    마침내 돈의방 서북쪽 귀퉁이에 가까운 곳에서 폭죽 공방을 찾아냈다.

    한데 기이하게도 그 지역의 거의 모든 건물이 파괴되었음에도 오직 그 폭죽 공방 건물만은 멀쩡했고, 그 주위에 백여 마리나 되는 귀물들이 모여 있었다.

    “저리 많은 귀물이 지키고 있다니, 관부의 걱정에 일리가 있었던 것 같소. 연신단 놈들이 이곳을 이용하려 하는 듯하오.”

    심협은 일행들과 함께 백여 장 떨어진 한 폐허 담벼락에 몸을 숨긴 채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고작 백여 마리 정도는 저희에게 맡겨주십시오.”

    주맹이 가슴팍을 두드리며 말했다.

    “뜰 안이 어떤 상황일지 그대가 분명히 말할 수 있소?”

    조정생이 주맹에게 물었다.

    “거리가 멀어 신식으로도 안쪽 상황을 살필 수가 없으니 섣불리 공격해서는 안 되오.”

    심협도 고개를 저으며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으나, 주맹은 껄껄 웃었다.

    “하하하! 그게 문제라면 노침(魯琛)과 함께 가까이 가셔서 한 차례 살펴보시면 될 일 아닙니까?”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산권종 문하에서 키는 작달막하지만 가무잡잡하고 건장한 청년이 앞으로 나섰다.

    “심 선배님, 제가 토둔(*土遁: 도가 은신술의 하나로 술법을 부려 땅속으로 잠적하는 것)하는 법을 좀 알고 있으니 선배님을 모시고 지하로 갈 수 있습니다. 한데 얼마나 가까이 가야 할지요?”

    그 사람은 심협을 향해 공수하고는 말했다.

    “10장 안으로 들어가야만 신식으로 살펴볼 수 있소.”

    “문제없습니다.”

    노침은 기세등등하게 답하더니 품에서 황지 부적을 한 장 꺼내 두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는 심협의 등을 가볍게 쓸었다. 이어서 한 손으로 결인하고 뭔가를 읊조리자 몸에서 노르스름한 빛이 반짝였다. 다음으로 그가 손을 들어 심협의 어깨를 누르자, 그의 몸에 맺혀 있던 빛이 심협의 온몸까지 뒤덮었다.

    “가랏!”

    그가 낮게 외치자, 담 모퉁이 땅바닥에 쩍 하고 3척 길이의 틈이 생겨나더니, 그 사이로 노란 빛이 쏟아져 들어갔다. 다음 순간, 두 사람의 모습은 이미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심협은 온몸이 부드러운 빛에 뒤덮인 느낌이 들었다. 단단한 바위들도 마치 녹아버린 듯 흐르는 물처럼 부드러워져서 그의 몸 주변으로 빠르게 흘러갔다. 과거 구혼마면이 그를 데리고 땅속을 내달렸을 때와 똑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잠시 후, 두 사람은 멈춰 섰다.

    “선배님, 폭죽 공방이 머리 10장 정도 위에 있습니다.”

    노침의 말에 심협은 고개를 끄덕인 후,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여 신식을 조심스레 통해 위쪽을 살피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는 다시 두 눈을 뜨고 말했다.

    “되었소. 돌아갑시다.”

    노침은 별말 없이 곧바로 다시 결인했고, 두 사람은 폐허의 벽 뒤로 빠르게 돌아갔다.

    “어떻습니까?”

    주맹이 이들을 맞으며 물었다.

    “바깥에 있는 귀물들의 경지는 연기기에 불과하고, 공방 안에는 벽곡기 수사 두 사람이 지키고 있을 뿐, 귀물은 없소. 주 도우, 조 도우, 그대들은 나와 함께 안으로 들어가고, 다른 사람들은 밖에서 저 귀물들을 해결하기로 합시다.”

    심협의 말에 사람들은 일제히 “예” 하고 답했다.

    “최대한 그 수사 두 명을 생포하도록 하되 이번 임무의 핵심은 화약 소각이니, 일을 성사시킨 뒤에는 전투에 연연해하지 말고 즉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시오.”

    심협의 당부에 사람들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움직입시다.”

    심협이 명을 내리자, 열한 줄기의 그림자가 나란히 담장을 뛰어넘어 폭죽 공방으로 돌진했다.

    사람들의 영혼 냄새를 맡은 귀물들이 하나둘 몰려들었다.

    심협이 선두에서 내달리며 손을 휘두르자, 순양검배가 휙 하고 날아가 파죽지세로 귀물 무리를 파고들어 단숨에 일고여덟 마리를 꿰뚫었다. 거의 동시에 그의 그림자가 그 사이를 뚫고 지나가 곧바로 폭죽 공방 외벽으로 날아들었다.

    주맹은 마치 황금갑주를 두른 것처럼 온몸에서 금색 빛을 내뿜으며 심협을 따라 공방 안으로 들어섰다.

    조정생은 구부정한 노인 같아 보였지만 원숭이처럼 날렵하게 몸을 날려 똑같이 높은 담을 뛰어넘었다.

    쿵!

    공방에 내려선 심협은 뜰 안의 어느 건물로 달려가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산 모양 인장이 하늘로 날아올라 노란 빛을 발했다.

    빛 속에서 겹겹이 산악의 허상이 떠오르면서 하나하나 연이어 떨어져 내렸다.

    콰쾅!

    산악 허상이 떨어지자 건물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면서 가루가 되어 버렸다.

    뜰 안에는 거대한 먼지 폭풍이 휘몰아쳤고, 그 속에서 욕을 퍼붓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곧 두 사람이 튀어나와 허둥대며 땅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이들은 두어 번 나뒹굴고서야 제대로 섰다.

    뒤이어 먼지 폭풍이 흩어지자 황갈색 단삼을 입은 거칠고 사납게 생긴 사내와 짙은 화장을 한 붉은 치마의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그들 뒤에 그림자가 하나 나타나더니 태산이 내리누르는 기세로 떨어져 내렸다. 주맹이었다.

    “건방진!”

    사내가 낮게 고함을 지르며 두 손을 하늘로 치켜들자, 몸 바깥에 검은 강기(罡氣)가 솟구쳐 나와 패왕이 커다란 솥을 들어 올리듯 주맹을 하늘로 밀어 올렸다.

    주맹의 두 다리와 사내의 두 손이 맞부딪혔다.

    쿠웅!

    굉음과 함께 뜰 전체가 격렬하게 흔들렸고, 황금빛과 검은 강기가 세차게 충돌하면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히 맞섰다.

    붉은 치마의 여인은 이를 보고 즉시 손목을 돌렸는데, 그러자 손바닥 한가운데에 피처럼 붉은 빛을 번쩍이는 날카로운 고리가 나타나더니 주맹의 목을 가를 듯 날카롭게 날아들었다.

    허나 그 고리가 막 주맹의 목에 닿으려는 순간, 그녀의 움직임이 갑자기 굳어졌다. 둥근 고리를 휘두르던 팔뚝에서는 갑자기 어두운 푸른 빛이 솟아올랐고, 놀랍게도 피부가 빠르게 짓무르면서 화려한 빛깔의 작은 꽃들이 송이송이 피어났다.

    “끼야악!”

    붉은 치마의 여인은 비명을 지르면서 재빨리 손을 거두어들였고, 그제야 방금 본 것이 허깨비에 불과하며 자신의 팔뚝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음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녀가 다시 나서려했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투명하고 깨끗한 두 손바닥이 불쑥 목 뒤에서 뻗어 나와 단숨에 그녀의 목덜미를 휘감았다. 그 팔뚝에서 검은 시기(屍氣)가 흘러나와 순식간에 그녀의 피부로 침투했다.

    여인은 피부가 급속도로 검게 변했고, 온몸이 완전히 굳어버려 옴짝달싹 하지 못했다.

    상황을 눈여겨보던 심협도 이 광경에 약간 놀랐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달그림자를 흩뿌리면서 순식간에 사내에게 다가가 손을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순양검배가 쏜살같이 날아가 사내의 미간에서 멈춰 섰다.

    “멈춰라! 그러지 않으면 당장 네놈의 식해(識海)를 짓뭉개버리겠다!”

    심협이 싸늘한 목소리로 위협하자 사내의 눈빛이 번쩍였고, 몸의 검은 빛이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이어서 몸도 순식간에 작아지더니 그대로 주맹에게 짓눌려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네놈들은 관부 사람이냐?”

    사내가 경계심이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주 도우, 조 도우, 이들을 지켜보고 있으시오. 내 가서 초석을 찾아보겠소.”

    심협은 상대의 질문을 들은 척도 않고 그렇게 한마디를 남긴 뒤, 몸을 번쩍 날려 뜰 안 깊은 곳으로 화약을 찾으러 들어갔다.

    하지만 뜰 어디에서도 화약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지하 창고까지도 텅텅 빈 것이 벌써 누군가가 전부 옮긴 듯했다.

    “초석 화약은 어디 있느냐?”

    심협은 뜰로 돌아와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이 안에 있으니 네놈이 가서 찾아봐라. 찾을 수 있다면 말이야. 하하하!”

    사내가 차게 웃으며 내뱉기가 무섭게 주맹의 몸에서 노란 광채가 빛났다. 그리고 다음 순간, 거대한 힘이 그를 아래로 짓눌렀다. 사내는 주맹의 발에 꾹 짓밟혀 끙 하고 신음했다.

    “얌전히 협조하는 게 신상에 좋을 것이다.”

    주맹이 잔뜩 인상을 쓰며 협박했다. 그럼에도 사내는 기이한 미소를 지을 뿐, 답하려 하지 않았다.

    “저자가 말하려 하지 않으니 네가 알려주면 되겠구나,”

    조정생이 손으로 붉은 치마 여인의 목을 감싸쥐며 웃었다.

    여인의 새하얀 피부는 거의 모두 갈색으로 변했고, 두 눈은 흐릿하게 풀렸으며, 가슴이 심하게 일렁였다. 매우 고통스러운 게 분명했다. 그녀는 입을 벌리고 무슨 말을 하려는 것 같지만,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이를 본 조정생의 손바닥 한가운데에서 검은 빛이 반짝이자, 여인의 얼굴을 맴돌던 검은 기운이 살아 있는 것처럼 그의 손바닥으로 몰려들었다. 그러자 그녀의 안색은 차츰 원래 색깔을 되찾기 시작했다.

    붉은 치마 여인은 왈칵 숨을 몰아쉬었고, 눈에는 한 가닥 날카로운 빛이 스쳐 지났다.

    “안 돼.”

    심협은 일이 잘못 됐음을 알아차리고 황급히 그녀를 저지하려했지만, 한 발 늦고 말았다.

    여인의 입꼬리가 쫙 찢어지면서 몇 배로 크게 벌어졌다.

    “끼야아악!”

    고막을 찢을 듯 날카로운 비명이 순식간에 온 돈의방에 울려 퍼졌고, 사방을 돌아다니던 귀물들이 순간 굳어지더니 하나둘 폭죽 공방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달려왔다.

    낯빛이 변한 조정생의 눈에 독기가 감돌더니 한 손을 불쑥 뻗어 곧장 붉은 치마 여인의 입으로 찔러 넣었다. 그러자 날카로운 울부짖음이 뚝 끊겼다. 뒤이어 그의 손에서 검은 안개가 미친 듯 솟아나와 여인의 몸속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여인의 얼굴은 곧 흉악하게 변하고, 검푸른 핏빛이 울툭불툭 돋아나 얼굴 가득 퍼지더니, 얼마 후에는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지며 죽고 말았다.

    사내는 동료가 죽는 것을 보고는 자신도 살 가망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갑자기 두 주먹으로 땅바닥을 세차게 내리쳤다. 그의 온몸에서는 검은 빛이 폭발하며 뜻밖에도 그의 몸을 밟고 있던 주맹의 발을 그대로 튕겨냈다.

    “네놈들은 화약을 찾으러 온 것이 아니더냐? 지금 당장 주마!”

    말을 마치고 그는 검은 단환(丹丸) 하나를 입 속으로 던져 넣고 꽉 깨물어 부쉈다. 곧이어 그의 몸에서 검은 빛이 미친 듯이 솟구쳐 나와 거대한 검은 소용돌이로 변하더니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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