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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319화 (319/1,214)
  • 319화. 첫 임무

    가는 도중 관부 수비병들을 마주쳤으나, 허리춤에 달린 영패 덕인지 앞을 막기는커녕 도리어 예를 갖춰 경례를 했다.

    아집원은 대당관부 남서쪽에 있었다. 심협은 별원의 개울을 따라 남서쪽 귀퉁이에 있는 자신의 작은 건물을 찾아냈다.

    건물은 꽤 외진 곳에 있어서 주위에 담장 같은 것은 없었다. 나무로 된 작은 건물만 덩그러니 서 있을 뿐이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깨끗하게 청소가 되어 있었고, 탁자 위에는 세 발 향로가 하나 놓여 있었다. 향이 피워져 있지 않았음에도 방에는 옅은 향기가 맴돌았다.

    약간 피로했던 심협은 1층에 법진을 설치하고는 곧장 2층으로 향했다.

    2층은 정실(*靜室: 조용하고 그윽한 곳에 있는 방)로, 창문 앞에 높인 책상과 벽 가까이에 연탑(*軟榻: 의자와 침상을 겸한 푹신한 걸상) 하나가 전부였다.

    심협은 연탑 위에서 좌선하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한참 뒤, 천천히 두 눈을 떴을 때는 온몸의 원기가 마침내 완전히 회복된 상태였다.

    심협은 손을 대강 흔들었다. 그러자 도자기 병 하나가 나타났다. 그 안에 든 것은 부상을 치료하는 유영단이었다.

    그는 다시 현음개맥결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이번에는 곁가지 경맥이 아니라 십이정경 중 수양명대장경(手陽明大腸經)을 개척해볼 생각이었다.

    곁가지 경맥에 비해 십이정경은 흘러 들어가는 혈자리가 더 많고, 맥락의 경로가 더 길어 인체에 더 중요한 만큼 훨씬 위험했다. 그러나 꿈속에서의 많은 경험과 지난번의 성공 덕에 제법 자신이 있었다.

    그가 허리춤의 건곤대를 툭툭 두드리자 귀장의 모습이 유유히 나타났다. 그의 몸에는 검은 빛이 탄탄했고, 전체적인 기운이 굳건한 것이 이전보다 조금 더 강해진 것 같아 보였다.

    “보아하니 공력이 또 발전한 듯하구나.”

    심협은 신식으로 귀장을 훑고는 물었다.

    “주인님께 아룁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지난번 주인님께 체내 음살의 기운을 거의 다 뽑힌 후 다시 보충하자 속도가 예전보다 훨씬 더 빨라졌습니다. 육신과 혼백 또한 더욱 굳건해진 듯합니다.”

    귀장은 곧바로 포권하며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답했다.

    “그래? 그런 일도 있단 말이냐?”

    “틀림없습니다! 주인님께서는…… 언제 다시 그 법술을 연마하실 생각이십니까?”

    신기해하는 심협의 반응에 귀장이 조심스레 물었다.

    “지금 수련할 참이다. 원래는 건곤대에 모아둔 음살의 기운을 사용하려 했는데, 지금 네 상태를 보아하니 주머니에는 음살의 기운이 얼마 안 남았겠구나?”

    “주인님께 아룁니다. 음살의 기운은 이미 속하가 모조리 흡수했습니다만, 속하의 체내에 들어온 음살의 기운이 더 순수하니 마음대로 쓰셔도 됩니다.”

    귀장이 즉시 포권하며 말했다.

    “좋은 일이로구나. 앞으로 귀물들을 죽일 임무가 적지 않을 테니, 음살의 기운을 보충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예!”

    귀장은 포권하며 답한 뒤 스스로 심협의 맞은편에 가부좌를 틀었다.

    심협은 눈빛을 집중한 채 손가락을 모으고 팔뚝에 부적 문양을 새기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무늬가 빽빽하게 밀집된 핏빛 부적 법진이 그려졌다.

    심협이 두 손가락으로 귀장 쪽 허공을 가리키자 순수한 음살의 기운 한 가닥이 그의 팔뚝 위 부적 분양으로 날아들기 시작했다. 이어서 부적 문양의 빛이 밝아지더니 개미 문양이 빽빽하게 물어뜯는 듯한 통증이 엄습해왔다. 심협은 곧 정신을 가다듬고 조심스럽게 현음개맥결을 시전했다.

    * * *

    어느덧 사흘이 흐르고, 이른 아침이 되었을 때, 작은 건물 안에서 낮고 억눌린 포효가 울렸다. 이어서 굳게 닫혀 있던 2층 창문이 벌컥 열렸다.

    창가에 선 심협의 두 눈에는 맑은 기운이 가득했고, 체내의 기운은 세차게 용솟음치며 파동을 일으켰으며, 팔뚝 위의 양명대장경에서는 푸른 빛이 은은하게 반짝였다. 법맥을 뚫어낸 것이 분명했다.

    이 법맥을 트기 위해 심협은 꿈속에서의 경험을 포함해 지금껏 맥을 틔웠던 그 어느 때보다 큰 고생을 했다. 수양명대장경은 세 차례나 끊어졌고, 곡지혈(*曲池穴: 팔꿈치를 구부리면 생기는 오목한 부분의 혈자리)과 합곡혈(*合谷穴: 엄지와 검지 사이의 혈자리)도 한 번씩 터져 나갔다.

    경맥이 세 차례 끊어진 것은 그래도 대개박술로 회복했지만, 혈자리가 터져나간 것은 끔찍하고도 아찔한 경험이었다. 곡지혈이 터져나가면서 팔뚝 반쪽이 거의 그대로 날아갔고, 가슴과 배의 심맥(心脈)까지도 중상을 입어, 만약 제때 유영단을 먹지 않았더라면 죽거나 수도(修道)의 길이 끝장났을 터였다.

    하지만 얼마나 고생을 했건, 결국 법맥은 응결되었다.

    심협은 창가에 서서 잠시 바람을 쐬며 멀리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보다가, 마음이 차츰 안정되자 다시 바닥에 앉았다. 눈을 감고 호흡을 고르며 황정경 공법을 수련했다. 그리고 잠시 후 두 눈을 번쩍 떴는데,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과거 황정경을 수련할 때 헤매던 느낌이 뚜렷하게 줄어들었고, 체내 법력의 운행 속도가 크게 증가했을 뿐만 아니라 훨씬 원활해졌다.

    ‘과연 법맥의 많고 적음이 수행 자질에 영향을 미치는구나. 만약 십이정경의 모든 법맥을 뚫는다면 분명 수련 속도를 천지가 개벽할 정도로 끌어올릴 수 있겠지?’

    심협은 그렇게 생각한 것만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한데 그가 수련을 더 이어가려는데, 허리춤에서 비취색 빛이 번득였다. 재빨리 고개를 숙여보니 관부 요패 위의 검푸른 정석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심협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으나, 하는 수 없이 수련을 멈추고 일어나 장병전으로 향했다.

    대전에 들어서보니 썰렁했던 며칠 전과 달리 오늘은 사람이 제법 많았다. 하문정과 두 병부문서 외에 10여 명의 수사가 더 있었다.

    이 수사들은 두 무리로 나뉘어 있었는데, 각자 우람한 체격의 건장한 남자와 허리가 구부정한 노인이 선두에 서 있었다.

    건장한 사내는 용모가 거칠고 괄괄해 보였고, 뒤에 선 사람들도 하나같이 탄탄하고 우람한 체격이었다. 그들은 복식 또한 간편한 푸른 옷으로 통일되어 있었는데, 가슴께에는 산권(山拳)이라는 두 글자가 수놓아져 있었다.

    한편, 구부정한 노인은 눈빛이 조금 혼탁해 보였고, 피부는 바싹 말라 쭈글쭈글 했다. 그러나 두 손만은 약관의 소년처럼 매끄럽고 보드라웠다.

    그 뒤를 따르는 네 사람은 모두 열서너 살밖에 안 된 모습으로, 하나같이 눈이 밝고 영민하며 외모가 준수했다. 옷차림들은 제각각이었지만, 손에는 자줏빛 뱀 무늬 장갑을 한 켤레씩 끼고 있었다.

    “심 선사님, 오셨군요.”

    하문정이 곧바로 일어서며 공수하자 다른 사람들도 심협을 향해 공수했다.

    “하 대인, 도우 여러분.”

    심협도 포권하며 예를 갖추었다.

    “여기 열 분의 선사님들이 바로 심 선사님 대오입니다.”

    하문정이 소개하자 이번에는 건장한 사내가 앞장서서 포권했다.

    “심 선배님, 저는 산권종(山拳宗)의 장로 주맹(周猛)입니다. 이들은 모두 문하의 제자들로, 이번에 함께 징집에 응하여 종문을 대신해 장안을 위해 힘쓰고자 합니다.”

    이에 심협도 깍듯하게 공수했다.

    다음으로는 구부정한 노인이 포권을 하며 소개를 이어갔다.

    “심 선배님, 저는 고영종(枯榮宗) 제자 조정생(趙庭生)입니다. 이들은 우리 문중의 사형제들이온데, 선배님께서 잘 보살펴주십시오.”

    심협은 그 말에 약간 놀라서 노인을 잠시 빤히 쳐다보느라 답례가 늦고 말았다.

    “아, 미안하오. 초면에 결례를 범했소.”

    그는 정신이 들자 황급히 말했다.

    “괜찮습니다. 제가 지금 이런 모습이니 누가 봐도 놀랄 만하지요.”

    노인 모습을 한 조정생은 손을 설레설레 흔들며 말했다.

    심협은 문득 장안에 오기 전에 사우흔에게서 들었던 고영종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녀는 그곳의 수사들을 마주치면 피하고 멀리하는 편이 좋다고 했다. 그들이 독을 쓰는 데 능하여 쥐도 새도 모르게 사람을 죽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조 도우, 혹시 귀종(貴宗)의 비술인 고골심법(枯骨心法)을 수련했소?”

    심협이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묻자 조정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맞습니다. 때마침 고목기(枯木期)라 선배님께서 미혹되신 게지요.”

    심협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의문이 들었다. 지금 이 조정생이라는 자의 언행은 사우흔이 말했던 고영종 수사들과 너무도 달랐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고영종 수사들은 대부분 성깔이 괴팍해 사소한 원한이라도 반드시 갚으며, 정파인지 사파인지 모를 분위기를 풍겨야 하지 않는가?

    “나는 심협이라 하오. 소모산 일맥인 춘추관의 수사요. 앞으로 잘해봅시다.”

    심협은 포권하고 여러 사람들을 둘러보며 짧게 자신을 소개했다.

    그러자 주맹을 비롯한 사람들은 표정이 묘하게 변했고, 포권을 하기는 했으나 꽤나 무성의해 보였다.

    심협은 기분이 살짝 상했으나, 춘추관이 워낙 알려지지 않은 곳이기에 이런 반응이 이상할 것도 없으니 굳이 따지고 들지는 않았다.

    “서로 안면을 트셨으니 이제 임무를 전달드리겠습니다.”

    하문정이 입을 열었다.

    “말씀하시지요. 하 대인.”

    “여러분께서는 성 서남쪽의 돈의방(敦義坊)으로 가셔야 합니다. 그곳에는 장안성 최대의 폭죽 공방이 있사온데, 그 안에 대량의 초석(*硝石: 화약의 재료 중 하나)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만약 악당들의 손에 들어간다면 피해가 막심할 터이니, 여러분이 그곳에 잠입하여 소각해 버리시길 바랍니다.”

    하문정의 설명에 사람들은 다소 멍해졌으나, 이내 주맹이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그게 답니까?”

    그들 모두 처음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라 귀물과 싸우러 가는 것이라 여겼건만, 이런 임무라니…….

    “초석을 불살라 없애는 것이 전부입니까?”

    심협도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 물건들을 소각하는 것이 핵심이나, 혹시라도 그 과정에서 귀물들의 흔적을 발견하거나 위험에 빠진 백성을 만나게 되면 구조해야 합니다.”

    하문정이 덧붙였다.

    “그런 일이라면 우리 오(伍)의 산권종 제자들만으로도 충분하오!”

    주맹이 인상을 찌푸리며 거칠게 따지듯 외쳤다.

    “산권종 선사님들의 실력이 대단하다는 거야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만, 지금은 모든 임무가 다 이런 식입니다. 모두가 힘을 합쳐 만전을 기해야 하지요.”

    하문정의 설명에 심협이 잠깐 생각해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위에서 그리 안배하셨으니 그 또한 이유가 있을 터. 게다가 이번에 온갖 귀신들이 장안에 나타난 배후에는 연신단의 음모가 있으니 알 수 없는 위험이 많소. 그러니 함께 움직이는 것이 더 안전하오.”

    “심협 선배님 말씀이 옳습니다.”

    조정생이 찬성하며 나서자 주맹도 더는 말하지 않았고, 일행은 장병전을 떠나 돈의방으로 향했다.

    이들은 곧장 서쪽으로 향해 회원방(懷遠坊)에 도착한 뒤에야 남쪽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가는 길 곳곳에 무장한 병사들이 열을 지어 순찰을 돌았는데, 일행의 요패를 보고는 다들 멀리서 경례를 했다.

    회원방과 영수방(永壽坊), 가화방(嘉和坊)까지 세 개의 방은 상황이 그래도 괜찮은 편이었다. 성 남쪽 난민들이 쳐놓은 장막이 적잖긴 했지만, 대부분 그럭저럭 질서가 정연했다.

    가화방 남쪽 경계를 넘자, 많은 곳에서 짙은 연기가 솟아올랐다. 환란이 아직 멈추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더 먼 곳의 하늘에는 짙고 두터운 구름이 마치 철판처럼 내려앉아 가슴이 묵직하고 불쾌했다.

    가화방을 지나 영평방(永平坊)에 들어서니 사람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곳곳마다 가옥들이 무너져 있었고, 사람과 가축의 시신이 보였다. 어떤 이는 무너진 기왓장에 뒤덮여 있었고, 또 어떤 이는 그대로 길가에 늘어진 채였다.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조정생은 사형제들에게 누르스름한 가루를 꺼내 시신들의 몸과 주위에 뿌리게 했고, 가는 길에 우물을 발견했을 대도 똑같이 가루를 뿌리게 했다.

    심협과 사람들이 의아해하는 듯하자 그가 설명했다.

    “이 백성들의 시신은 한동안 거둘 사람이 없지요. 자칫하면 역병이 돌까 하여 힘이 닿는 데까지 방호한 것입니다.”

    그 설명에 심협의 의문은 더욱 커졌다. 이런 고영종을 어찌 정파인지 사파인지 알 수 없는, 올바르기도, 사악하기도 한 자들이라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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