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316화 (316/1,214)
  • 316화. 비밀스런 거래

    벗어날 수 없음을 감지한 심협은 몸을 휙 비틀어 수면에서 온몸을 팽이처럼 회전시켰다. 그러자 가닥가닥 법력의 파동이 그의 움직임을 따라 바깥으로 솟아나와 차츰 잠잠해져 가던 호수의 수면에 다시 성난 파도를 일으켰다.

    그는 힘이 솟자 주먹을 꽉 움켜쥐고 하늘을 향해 휘둘렀다. 그러자 체내 법력이 강물처럼 요동쳤고, 그의 법력이 휘저은 호수의 물결도 빠르게 소용돌이치며 하늘로 치솟았다.

    땅 위로 우뚝 솟은 물결은 거세게 회전하며 마치 한 마리 푸른 창룡(蒼龍: 동쪽을 상징하는 신화 속 신령한 동물, 청룡이라고도 함)처럼 떨어져 내려오는 금빛 원보에 가서 부딪혔다. 이에 금원보의 금빛이 크게 진동하면서 끊임없이 부들부들 떨렸다.

    하지만 금원보가 떨어져 내리던 기세는 잠시 주춤했을 뿐, 곧 다시 계속 밀고 내려왔다.

    “이놈이 물의 법술에는 실로 만만치 않구나.”

    전통도 자신의 법기에서 전해져오는 격렬한 파동을 느끼고는 조금 놀란 듯 말했다. 그러나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다시 법결을 맺어 공중의 금원보를 가리켰다.

    밝게 빛나던 금원보 위로 검은 기운 한 가닥이 떠오르기 시작하더니 빠르게 퍼져 나가 금원보 전체를 새카만 빛깔로 물들였다.

    투둑!

    심협은 문득 이마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검은 액체 한 방울이 그의 머리 위에서 갑자기 소리도 없이 떨어져 내린 것이다.

    한 가닥 음살의 기운이 눈 깜짝할 새에 그의 미간으로 스며들었다.

    곧이어 똑, 똑 하는 소리가 연달아 울리면서 새카맣게 변한 금원보가 빠르게 녹아 검은 빗물처럼 쏟아져 내려 순식간에 심협의 온몸을 집어삼켰다.

    심협은 피수결을 맺을 새도 없이 온몸이 끈적끈적한 검은 액체에 휩싸였고, 온몸 곳곳에서는 섬뜩한 음살의 기운이 그의 피부를 뚫고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러나 그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눈에 희색이 감돌았다.

    그가 생각을 번개처럼 움직이자 체내에서 법력이 일어났고, 허리춤에 걸린 건곤대가 곧바로 입을 쩍 벌려 세찬 검은 빛을 뿜어냈다.

    가닥가닥 그의 몸 바깥을 휘감았던 음살의 기운이 요동치면서 건곤대에서 소용돌이치는 검은 빛에 흡수되어 주머니 속으로 빠르게 흘러들어가기 시작했다.

    “허허! 건곤대를 가지고 있었군. 창목 도우, 여천 도우, 저놈을 죽이면 저 법기는 내 거요. 빼앗으려 하지 마시오.”

    이를 본 전통은 얼굴의 희색이 더욱 짙어지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쯧쯧! 저런 으스스한 물건은 그쪽이나 좋아하지.”

    여천이 가볍게 눈을 흘기고는 코웃음을 쳤다.

    “전통 도우, 적당히 놀고 어서 처리하시오. 우린 해야 할 일이 있잖소.”

    창목노도가 인상을 쓰며 말하자 전통도 웃음기를 거둬들이고 살짝 엄숙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뒤이어 그가 손목을 돌리자 손바닥 한가운데에서 짙은 보랏빛 부적이 한 장 나타났다. 윗면에는 이상한 문양이 있었는데, 꼭대기 부분은 명(冥: 저승)으로 시작해 끝부분에는 음산한 귀신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그가 손 가는대로 던지자, 자줏빛 부적은 곧장 날아가 검은 수액 속으로 떨어졌다.

    텅!

    가볍게 울리는 소리와 함께 자줏빛 부적에서 불꽃이 튀어나와 세차게 타오르기 시작했고, 난데없이 부적지의 화염 속에서 짙은 검은 그림자가 생겨났다.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내자 주위의 검은 수액이 검은 그림자 속으로 잇달아 몰려들어 금세 거대한 체구의 칠흑같이 시커먼 귀물이 되었다. 이 귀물은 온몸에서 짙은 죽음의 기운을 뿜어내며 입을 딱 벌려 심협을 물어뜯으려 했다. 쩍 벌린 입은 높이가 무려 10여 장이었고, 그 안에는 시커먼 소용돌이가 나타나 빠른 속도로 회전했다.

    심협이 막 사월보를 시전해 달아나려는데, 허리춤의 건곤대가 갑자기 급속도로 부풀어 올랐다. 그 안에는 짙은 음기가 쉬지 않고 충돌하는 게 어렴풋이 보였고, 마치 소용돌이의 영향을 받은 듯 그를 거대한 입으로 끌고 갔다.

    심협은 눈빛을 굳히고 몸속 법력을 빠르게 운행하여 반대 방향으로 맹렬히 돌진했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전통이 나타나 빙글빙글 웃으며 가볍게 손을 휘둘렀다.

    심협은 황급히 법력을 운공해 막으려 했지만, 당해내지 못하고 그 손바닥에 맞아 뒤로 날아갔다. 다음 순간, 거대한 귀물은 심협을 꿀꺽 집어삼켰다.

    “내 살귀(煞鬼)의 뱃속에 들어갔으니 머지않아 살기에 침식당해 신혼과 영지가 소모되어 산송장으로 전락할 것이오. 총단으로 데려가면 성주(聖主)께서도 시고(*屍蠱: 시체를 먹여 기르는 고충‘蠱蟲’)가 하나 늘어날 테니 물건이 제 가치를 충분히 다한 셈이지요.”

    전통은 손뼉을 치며 아주 득의양양하게 말했다.

    “기왕 그를 잡았으니 그대가 좀 더 지켜보시오. 나는 여천과 현음대진(玄陰大陣)의 작동을 좀 가속화하겠소. 법진이 스스로 운행되어 저승에서 귀물들을 불러오는 것만으로는 아무래도 속도가 조금 느려져서 말이지.”

    창목노도의 고저가 없는 목소리에 익숙한 듯 전통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안심하고 가시오.”

    “전통 도우, 건곤대는 그대 것임이 분명하나, 다른 물건들은 몰래 숨길 생각 마시오. 일이 끝난 다음에 나눕시다.”

    여천이 재빨리 눈을 돌리고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그야 여부가 있겠소?”

    전통은 눈알을 굴리면서 천박해 보일 정도로 가볍게 웃었다.

    여천이 손을 흔들자, 반경 백 장 너머 허공에 어두운 빛이 번쩍이더니 검고 투명한 가느다란 실이 나타나 마치 거미줄처럼 종횡으로 얽혔다. 뒤이어 검지에 낀 검은 반지가 번득이자, 거미줄이 곧 다시 오그라들더니 반지 안으로 스치듯 들어가 사라졌다.

    그녀와 창목노도가 기슭으로 돌아가자 전통은 눈썹을 살짝 치켜 올렸는데, 눈에는 간교한 빛이 스쳤다. 그는 소매에 덮인 손바닥으로 갑자기 이상한 법결을 맺었고, 곧 두 눈에 옅은 금빛이 번득였다. 그는 그 상태로 살귀의 몸속을 탐색했다.

    그가 앞서 건곤대를 원한다고 말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사실 더 원하는 물건은 따로 있었다. 심협이 창목노도와 싸울 때 잠깐 나타났던 붉은 비검이었다. 그는 그 비검에서 뭔가 특별한 기운을 느꼈고, 다른 두 사람이 나서는 것을 막고는 살귀의 몸으로 엄호하여 그 보물을 혼자 꿀꺽하려 한 것이다.

    그의 두 눈에 살귀 체내의 상황이 나타났다.

    한편, 심협은 무수한 검은 점액에 손발과 등이 달라붙었고, 주위에 음살의 기운이 끊임없이 침식해 와서 아무리 몸부림쳐도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때, 심협의 머릿속에 문득 전통의 목소리가 울렸다.

    “이보시오, 도우. 우리 협상을 하는 것이 어떠하오? 그대가 보물 하나를 내놓기만 한다면 내 그대를 무사히 보내줄 수도 있는데…….”

    이어서 쉬지 않고 그에게 침투하던 음살의 기운도 살짝 주춤하며 멈췄다.

    “그대가 뭔가를 원한다면 나를 죽이고도 가져갈 수 있을 터. 굳이 나와 협상할 필요가 있소?”

    심협은 상대가 진심으로 하는 말임을 알고는 발버둥 치던 것을 멈추고 냉정하게 물었다.

    “내가 원하는 물건은 다르오. 그 검배는 그대가 몸속에 품고 기르는 것이니 그대가 죽어버리면 그 물건도 보존하기 어렵지 않겠소?”

    전통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심협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나의 순양검배를 가지려 하다니, 욕심이 많은 놈이로구나!’

    “그 말이 맞소. 내가 자진해서 갖다 바치지 않는 한, 그대가 나를 죽이고 시체를 가른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지. 한데 검배를 받은 후에 그대가 약조대로 나를 놓아줄 거라고 어찌 믿는단 말이오?”

    “나는 칼과 도마요, 그대는 도마 위의 물고기인데, 지금 그대에게 나를 믿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더 있소?”

    전통은 심협의 날카로운 물음에도 태연자약하게 답했다.

    “그렇소? 그렇다면 나는 차라리 죽기를 각오하고 싸울지언정 그대의 계략에 말려들지 않을 것이오.”

    심협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곧바로 말했다.

    한데 그러자마자 심협의 식해 속 공간이 적막에 휩싸였다.

    “굳이 그럴 필요 있소? 나는 저 연신단 놈들과 달리 일편단심으로 성주를 위하겠다는 포부 따위는 없소. 나는 그저 장사치일 뿐이라 이익만을 꾀한다오. 그대가 얌전히 검배를 넘긴다면, 내 장안법(障眼法)으로 그대를 살아서 도망치게 해주겠소. 푸른 산만 남아 있다면 땔나무 걱정은 하지 않는다는 이치는 도우 또한 잘 알고 있을 테지요.”

    잠시 뒤, 전통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을 때, 심협의 눈빛이 날카롭게 번득였다.

    ‘과연 또 연신단이 일을 벌이고 있구나.’

    그러면서 심협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도우, 그대에게는 생각할 시간이 많지 않소. 저 둘도 속여 넘기기 쉬운 이들은 아니라오.”

    전통은 심협이 말이 없자 재촉했다.

    “검배만 넘기면 나를 정말 놓아줄 것이오?”

    심협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물었다.

    “장사치에게는 신용이 우선이오. 더구나 이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인데 내가 왜 원하지 않겠소?”

    전통은 심협이 동요하는 듯하자 곧바로 웃으면서 말했다.

    심협은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우선 어떻게 나를 무사히 달아나게 해줄 것인지 말해보시오.”

    “그야 간단하오. 그대가 내게 검배를 넘겨주기만 한다면, 내가 살귀에게 빈틈을 하나 내주도록 할 것이오. 그대는 기운을 감추고 스스로 달아나기만 하면 되오. 그 둘은 대진을 작동시키느라 이쪽은 의심하지 않을 거요.”

    그렇게 말하면서 전통이 손을 살짝 흔들자 심협의 온몸에 휘감겨 있던 검은 점액들이 분분히 흩어지면서 1장 정도 움직일 공간이 생겨났다.

    “귀하가 이렇게 성의를 보였으니……. 나도 헛되이 목숨을 잃을 필요는 없겠지요. 다만 나의 검배는 일단 풀어놓으면 파동이 바깥으로 퍼져 나갈 테니 그들에게 들키게 될 것이오.”

    심협이 조금 걱정스러운 듯 말하자 전통은 일찍부터 모든 것을 계획한 듯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답했다.

    “그건 걱정 마시오. 나도 살귀의 몸속으로 들어갈 것이니, 검배가 살귀의 몸을 벗어나지 않고 내가 거둬들이기만 한다면 그들도 알아차릴 수 없소.”

    “역시 도우의 생각이 주도면밀하오. 그럼 그리합시다.”

    심협이 목소리를 전했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주위의 검은 점액들이 또다시 성큼 물러나면서 공간에는 더욱 여유가 생겼다.

    그때, 살귀의 복부에 갑자기 틈이 하나 갈라지더니 전통이 번쩍하고 들어와 심협과 몇 장 간격을 두고 서서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아직 도우를 어찌 불러야 할지 모르겠소만?”

    전통이 물었다.

    “내 성은 심씨로, 벽수문의 하찮은 사람일 뿐, 이야기할 가치도 없소.”

    심협은 포권하며 답했다. 앞서 줄곧 물의 법술을 써왔으니 벽수문 사람이라는 말로 둘러댔다.

    “오, 도우가 벽수문 제자였소?”

    전통은 그 말에 조금 의아한 듯 물었고, 심협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우린 인연이 좀 있는 셈이구려. 나는 그대 문파의 장로 한 사람과 막역한 사이이니, 오늘 그대를 놓아주는 것도 다 그런 연이 작용한 듯하오.”

    전통이 더 환하게 웃으며 말하자 심협이 불쑥 물었다.

    “나는 도우를 뭐라 불러야 할지요?”

    “나는 음재신(陰財神) 전통이오. 심 도우가 들어본 적 있는지 모르겠구려.”

    “아! 돈으로 귀신도 부린다던 전통 도우셨구려. 말씀 많이 들었소.”

    심협은 가볍게 포권을 했다.

    실제로 그는 상대의 명성을 익히 들은 바 있었다. 죽은 사람의 재물을 전달하는 귀수(鬼修)라는 것도 알고 있으나, 평소 늘 홀로 다니는 산수라는 소문이 있어 연신단 휘하에 들어갔다는 것은 의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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