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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315화 (315/1,214)
  • 315화. 입막음

    잠시 후, 바깥의 소리가 사라지자 그는 그제야 다시 위로 조금 떠올라 호숫가 쪽을 살펴보았지만, 이미 텅 비어 사람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았다.

    심협은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이동했고, 호숫가에 도착해서야 천천히 수면으로 떠올라 몸을 수그리고 먼 곳을 살폈다.

    수십 장 너머 광장 한가운데에 두 사람이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몸 앞에는 높이 3척의 제단 법진이 쌓여 있었는데, 그 주위를 검붉은 해골로 한 바퀴 둘러싼 상태였다. 그 범위가 족히 10장은 넘었고, 양의혼원(*兩儀混元: 양의는 음과 양 혹은 천지를 가리키고, 혼원은 천지 또는 우주를 가리키는 말)의 모습을 이루고 있었다.

    제단의 한가운데에는 피로 범벅이 된 사람 머리 9개로 자그마한 경관(*京觀: 큰 구경거리라는 뜻으로, 전쟁이 끝난 뒤 무공을 과시하기 위해 적군의 시체를 쌓아올리고 흙으로 덮은 커다란 무덤)을 쌓아놓고 사면에는 붉은색의 작은 삼각기를 꽂았다. 깃발 위에는 검은색 기괴한 부적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제단 바깥에 마주보고 앉은 두 사람은 좀 전의 땅딸막한 사내와 호리호리한 여인이었다. 두 사람은 각자 손으로 법결을 맺은 채 쉬지 않고 경관 옆 사면에 꽂힌 깃발로 법력을 불어넣고 있었다.

    깃발이 펄럭펄럭 흔들리자 대량의 검은 안개가 솟구쳐 나왔고, 법진 한가운데에 끊임없이 회전하는 검은 안개 소용돌이가 응집되었다.

    소용돌이 정중앙에서는 어렴풋하게 형상이 제각각인 귀물들이 하나하나 튀어나와 땅에 내려섰고, 멍한 눈으로 사방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처 멀리 가기도 전에 경관에서 여러 줄기 핏빛이 뿜어져 나와 이 귀물들의 미간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좀 전까지 넋이 나간 것처럼 보이던 귀물들의 눈에서 시뻘건 빛이 번득였고, 몸에 지닌 흉살의 기운이 크게 불어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중 많은 이들이 곧장 강으로 뛰어들어 물길을 따라 성안 곳곳으로 향했다.

    ‘이곳이 성안을 점령한 귀물들의 근원이 분명하군!’

    하지만 귀물들을 소환하는 이러한 법진 제단이 이곳 한 곳만은 아닐 터였다.

    심협은 두 사람이 지닌 기운의 파동을 자세히 살펴보았고, 그들이 벽곡 후기인 듯하다는 것을 알고서는 이곳의 법진을 곧바로 부숴야 할지 조금 망설였다.

    ‘두 사람을 생포할 수 있다면 더 좋겠지.’

    그러던 중 심협은 갑자기 경각심이 발동해 신식을 풀어 살펴보고는 곧바로 주변 물속에서 수백 줄기 법력 파동이 빽빽하게 전해져오는 것을 발견했다. 뜻밖에 그는 수백 마리 귀물들에게 포위되어 있었던 것이다.

    “하! 들켜버렸군.”

    심협은 가볍게 탄식하고는 물 밖으로 번쩍 튀어나오려 했다.

    한데 그때, 머리 위쪽에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도우, 그 길은 통하지 않소이다!”

    회백색 도포(道袍)를 입은 초췌한 노인이 갑자기 상공에 나타나 한 발을 들어 약간의 거리를 둔 채 심협이 있는 방향을 꾹 내리밟았다.

    위쪽에서 푸른 빛이 폭발하더니 둘레가 무려 10장이 넘는, 빛으로 된 거대한 푸른 발이 난데없이 떨어져 내렸다. 동시에 세차고 거대한 힘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심협의 머리 위를 내리찍었다.

    심협은 수면으로 뛰쳐나가자마자 강력한 압박이 떨어지는 것을 느끼고는, 급작스레 한쪽 주먹에 온몸의 법력을 모아 올려쳤다. 그러자 아래 수면에서 순간 하늘을 뒤덮을 듯 거대한 물보라가 솟구쳐 올랐고, 물이 모여 만들어진 커다란 푸른 주먹이 힘차게 허공으로 돌진하여 거대한 푸른 발자국과 충돌했다.

    꽝!

    푸른 주먹은 폭발하면서 무수한 수증기가 사방으로 흩어졌고, 한바탕 폭우가 쏟아져 내렸다.

    심협의 몸은 곤두박질치면서 운석처럼 수면에 부딪혀 커다란 물결을 일으켰다. 그는 거대한 발자국에 짓밟혀 물속으로 들어가면서 등을 암초에 세게 부딪히는 바람에 참지 못하고 신음했다.

    ‘응혼 중기 수사!’

    심협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곧바로 다시 피수결을 맺었다.

    그의 온몸에 푸른 빛의 장막이 덮이자마자 사방의 물살이 다시 되돌아오면서 수백 마리 음살과 귀물들이 물결을 타고 달려들었다. 귀물들의 눈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심협은 가볍게 콧방귀를 뀌고는 무언가를 읊조리며 한 손으로 기이한 법결을 맺었고, 다른 손은 들어 올려 팔 전체를 짙푸른 빛으로 한 겹 감쌌다.

    “베어라!”

    그가 낮게 외치며 팔을 앞으로 뻗었다. 그러자 눈부신 푸른 빛줄기가 그의 팔에서 쏘아져 나와 반달 모양의 호를 그리며 밀려오는 물결 속으로 들어갔다.

    하늘을 뒤덮으며 치솟던 물결이 잠시 주춤하더니, 그 사이로 눈부시게 아름다운 파란 빛줄기가 마치 새벽이 처음 밝아올 때처럼 심협의 눈앞에 반짝였다.

    세차게 치솟던 물결은 파란 빛줄기가 반짝인 곳에서 갑자기 쩍 갈라져 거대한 골짜기를 이루더니 호수를 반으로 갈라놓을 때까지 계속 퍼져갔다.

    물속에 있던 귀물들도 이 분수결(分水訣)에 제압되어 물속에 갇힌 채 뛰쳐나오지 못했다.

    반면 심협은 호수 밑바닥 암초 위에 서서 입가의 핏자국을 쓱 문질러 닦고는 다시 뭔가를 읊조렸다.

    다음 순간, 양쪽 호수 물에서 파도가 일더니 맷돌만 한 수인(水刃) 두 줄기가 나타나 회전하며 갈라진 양쪽 호수를 각각 휘저어 거대한 두 줄기 물결을 일으켰다. 수백 마리의 귀물이 그 물결에 휩쓸려 조각조각 찢겨나갔다.

    심협은 허리춤의 건곤대를 툭 쳐서 주위에 있는 음살의 기운을 흡수하는 동시에 하늘을 향해 두 손을 휘둘렀다.

    쿠르르.

    호수에서 사나운 소리가 울리면서 거대한 두 갈래의 소용돌이가 위로 솟구쳐 올랐다.

    초췌한 노인은 커다란 연잎 하나를 밟은 채 고개를 숙여 심협을 내려다보며 피식 비웃었다.

    “흥! 하찮은 재주로구나.”

    말을 마친 노인이 한 팔을 세차게 휘두르자 펄럭이는 소매에서 푸른 회오리 두 줄기가 튀어나와 각각 소용돌이 수인과 맞부딪쳤다.

    펑! 펑!

    두 차례의 폭발음이 울리면서 허공에서는 푸른 빛이 터졌고, 두 줄기 수인도 폭발했다.

    심협은 인상을 찌푸렸다. 자신과 저 도인의 격차를 깨달은 그는 물러나고픈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한편, 초췌한 도인은 두 눈을 가늘게 뜬 채 손을 크게 휘둘렀다. 펄럭이는 소매 사이로 금빛 광채가 쏜살같이 뿜어져 나와 허공에서 기다란 금빛 밧줄로 변하더니 심협을 결박하려 했다.

    심협의 발아래에는 달빛의 잔상이 어른거리는가 싶더니 뒤로 훌쩍 물러났다. 동시에 그가 손을 휘두르자 소매에서 똑같이 거센 바람이 일며 뱀 모양 장검이 도인에게로 곧장 날아들었다.

    검신(劍身)의 푸른 빛이 갑자기 불어나면서 푸른 뱀이 하늘에서 노닐 듯 순식간에 도인 앞에 다다랐다.

    “겨우 이깟 능력으로 홀로 여기까지 오다니, 죽고 싶은 게로구나!”

    도인은 비웃는 눈길로 장검을 바라보다가 손을 들어 앞으로 휙 휘둘렀다. 그러자 손바닥 한가운데에서 빛이 일렁였고, 빛으로 된 파랗고 거대한 손이 나타나 비검을 그대로 막아냈다.

    심협은 금빛 밧줄의 추격을 피하면서 장검을 다시금 돌진시켰지만, 마치 빛으로 된 푸른 장벽에 막히기라도 한 것처럼 비검은 조금도 나아가질 못했다.

    한데 어쩐 일인지 심협은 갑자기 입꼬리를 올리며 씨익 웃었고, 결인한 손을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푸른 빛이 치솟던 장검에서 순간 쩌적 하는 소리가 났다.

    가느다란 푸른 빛 두 갈래가 별안간 장검에서 분리되어 나와 각각 푸른 손바닥의 좌우를 휘돌아 번개 같은 기세로 도인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

    “자모검!”

    노인은 눈썹을 치켜 올리며 외쳤지만, 놀란 기색은 아니었다. 돌연 그의 옷자락이 부풀어 오르더니 그를 중심으로 거칠고 사나운 기세가 폭발했다.

    파란 소검(小劍) 두 자루는 보이지 않는 기운의 장벽에 부딪혀 튕겨나갔다.

    도인은 이를 보고 썩 만족한 얼굴로 손의 푸른 빛을 다시 폭증시키더니, 단숨에 힘을 돋우어 함부로 뛰어든 애송이를 일거에 때려죽이려 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갑자기 안색이 변해 재빨리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어느틈에 붉은 검광이 그의 몸 아래쪽을 휘감은 채 세찬 빛을 내뿜으며 불쑥 솟아오르려 했다. 그 검끝에는 푸른 빛도 한 줄기 번쩍이는 듯했다.

    도인은 그제야 두 차례에 걸친 자모검의 공격은 모두 눈속임에 불과했으며, 저 붉은 비검이야말로 진정한 필살기임을 깨달았다.

    하지만 깨달음이 너무 늦었다. 비검의 붉은 빛은 이미 발아래의 푸른 연잎을 통과하여 새어나오는 중이었다.

    다음 순간, 검끝 한 마디가 연잎을 뚫고 나와 그의 하복부로 돌진했다.

    도인의 눈에 노기가 번득이더니 한 손으로 기묘한 법결을 맺었다. 그러자 손바닥 주위에 푸른 빛이 뿜어져 나와 순식간에 둥근 빛의 방패가 되어 불쑥 솟구쳐 올라오는 순양검배를 내리쳤다.

    꽈르릉!

    푸른 빛이 폭발하면서 요란한 우렛소리가 울렸다!

    순양검배의 끄트머리를 감싸고 있던 낙뢰부가 돌연 폭발하며 팔뚝 굵기의 새하얀 벼락이 불쑥 뚫고 나왔고, 빛 방패에 닿는 순간 무수한 번개 줄기가 터져 나왔다.

    도인의 팔뚝이 얼얼하게 마비되었고, 손바닥 한가운데의 둥근 방패의 빛은 빠르게 어두워졌다.

    쩌적!

    방패가 순식간에 쪼개졌고, 붉은 검광이 도인의 아랫배를 찌르기 직전이었다.

    그때, 도인의 회백색 도포가 강렬하게 번득이더니 그 안에서 태극쌍어(*太極雙魚: 검고 흰 두 마리 물고기가 태극 문양으로 얽혀 있는 그림) 문양이 장막처럼 앞을 가로막았다.

    순양검배의 뾰족한 날은 쌍어 문양을 찔렀지만, 단번에 뚫지는 못해 그대로 교착 상태에 빠졌다.

    ‘제기랄, 저 늙은이는 명줄을 부지하는 수단이 정말 많기도 하구나.’

    심협은 그답지 않게 속으로 욕까지 내뱉고는 네 줄기 법맥에 빛을 번득이며 단전의 법력까지도 가동했다.

    모검과 순양검배가 날카로운 검명을 내며 노도를 향해 돌진했다. 동시에 쉭 하는 소리가 두 차례 들리면서 방금 격퇴당했던 두 자루의 쌍검이 좌우에서 도인의 관자놀이를 향해 날아들었다.

    한데 도인의 머리에서 불과 한 치 정도 거리까지 다가들었던 비검들이 문득 돌진하던 기세를 멈추고 빠르게 물러났다. 뿐만 아니라 순양검배와 모검까지도 동시에 공세를 거두고 심협 곁으로 날아 돌아갔다.

    심협이 경계하는 눈빛으로 사방을 쓱 훑어보자 머리 위에 금빛이 반짝이더니 금갑선의도 나타났다.

    도인과 싸우면서도 심협은 주위를 주시하고 있었는데, 방금 전 갑자기 광장의 법진 곁에 있던 남녀가 갑자기 흐릿해지며 사라지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는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면서 그 두 사람이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린놈인데도 경계심은 보통이 아니구먼.”

    걸걸한 남자 목소리에 이어 수십 장 밖에서 비단장포의 땅딸막한 사내가 나타났다. 얼굴에는 여전히 사근사근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창목노도(*蒼木老道: 노도는 나이 든 도사를 가리키는 말) 혼자서 처리할 수 있다 하지 않았소? 어찌 녀석이 아직 살아 있는 것이오? 그냥 허풍이었던가?”

    다른 쪽에서 아름답고 요염한 여인이 뒤따라 나타나더니 비아냥거렸다.

    그러나 도인은 화를 내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여천(女釧), 비아냥거리지 마라. 저놈은 보기보다 상대하기 쉽지 않다.”

    “창목 도우, 우리가 살펴보았는데 이놈은 혼자 온 것이 확실하오. 주위에 다른 수사는 없었소.”

    땅딸막한 사내가 창목노도에게로 시선을 떨구며 말했다.

    “좋소, 전통(錢通) 도우. 그럼 우리 함께 나서서 최대한 빨리 저놈을 죽이고 입막음을 합시다.”

    창목노도가 재촉하자 전통이라는 땅딸막한 사내가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허허! 여천 도우가 있으니 도망칠 걱정도 없건만, 급할 것 없지 않소? 난 이놈에게 흥미가 좀 있으니 조금 가지고 논 후에 다시 이야기하지요.”

    그러더니 그는 크게 한 걸음 내딛으며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소매 사이로 금빛 한 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 빛 안에서 금빛 찬란한 금원보(*金元寶: 고대 중국에서 화폐로 쓰이던 말발굽 모양 금덩이)가 나타나 바람을 타고 불어나면서, 호흡 몇 번 하는 동안 집채만 하게 변해 심협의 머리 위를 짓눌렀다.

    심협은 급히 사월보를 시전해 자리를 피했지만, 그 금원보 위로 갑자기 거대한 금빛이 뒤덮이면서 알 수 없는 무형의 힘이 생겨나 그를 제자리에 붙들어 놓는 바람에 벗어날 수가 없었다.

    “헤헤, 돈의 유혹은 아무나 이길 수 없지. 때로는 그대가 도망치고 싶어도 도망칠 수 없다오.”

    전통이 아래턱을 문지르며 얼굴 가득 미소를 띠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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