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314화 (314/1,214)
  • 314화. 귀신을 뒤쫓다

    심협은 골목 사이의 어느 사찰을 지나면서, 문득 사찰의 외곽 전체가 엷은 금빛 불광(佛光)에 덮여 있는 것을 보게 됐다. 금빛 불광은 빛의 장막이 한 겹 덮은 것처럼 바깥의 흑암이 침범하는 것을 막고 있었다.

    키가 10여 장에 달하고 머리에는 날카로운 뿔이 돋은 거대한 귀물 두 마리가 굵고 커다란 늑대이빨 몽둥이로 사찰의 정문을 세게 내려치고 있었다.

    쾅! 쾅!

    커다란 소리가 울릴 때마다 사찰을 뒤덮은 금빛 장막이 진동했지만, 부서지지는 않았다.

    사찰의 산문(*山門: 절의 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안에서는 간간이 승려들이 불경을 외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가 커질수록 사찰 주위의 금빛 장막도 더욱 빛났다.

    심협은 잠깐 망설이다가 황급히 달려가 낙뢰부 한 장으로 두 귀물을 죽이고는 그들이 지닌 음살의 기운을 빨아들였다. 현음개맥결을 수련하려면 귀장의 도움이 필요하여 귀물을 죽여 귀장이 음살의 기운을 흡수하도록 했다.

    그는 그곳을 떠난 뒤로도 끊임없이 귀물들을 마주쳤다. 어떤 것들은 그가 쫓아가 죽였고, 어떤 것들은 운 나쁘게 마주쳐 죽임을 당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귀장은 손실되었던 음살의 힘을 회복했고, 이제 귀물을 죽이는 것도 도울 수 있다고 말을 전해왔다.

    하지만 심협은 급히 정국공부로 달려가야 했기에 대답할 틈이 없었다.

    그는 상락방 입구에 이르자마자 피가 강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보게 됐다. 그곳을 지키던 관병들은 모두 죽은 것인지 사람을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한편 방문(坊門) 바깥에는 온몸이 시커멓고 머리에 사슴뿔이 돋은 커다란 귀물이 심협을 등진 채 어딘가로 손짓하고 있었다. 그 동작은 뻣뻣하고 느려서 몹시도 기괴해보였다.

    심협은 방문 바깥을 힐끗 보고는 머리카락이 쭈뼛 곤두섰다.

    방문과 멀지 않은 통제거(*通濟渠: 수나라 때 개통된 황하와 회하를 잇는 운하) 기슭에는 썩어 문드러진 몸이 수초와 진흙으로 범벅된 귀물들이 기어 올라와 무리지어 달려오고 있었다. 이들은 온몸이 축축하게 젖은 상태라 땅바닥에 길게 물자국을 남겼다.

    대강 세어 봐도 이 물귀신은 족히 백 마리가 넘었으나, 기운은 그다지 강하지 않았다. 방문 바깥의 사슴뿔 귀물만이 벽곡 후기 수사와 비등할 것으로 보였다.

    만약 그들이 방(坊)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면 그가 겨우 정리한 상락방은 또다시 귀물 천지가 될 것이었다. 그리 된다면 또 얼마나 많은 무고한 백성들이 죽어나갈지 알 수 없었다.

    심협은 어쩔 도리 없이 한숨을 내쉬고 우선은 그곳에서 저 귀물들을 막기로 했다.

    한데 그때, 사슴뿔 귀물도 심협을 발견했다. 녀석은 몸은 그대로 둔 채 사슴뿔이 달린 머리만 천천히 비틀어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심협은 그제야 그냥 사슴뿔만 돋아 있는 것이 아니라 얼굴이 완전히 수사슴의 모습임을 알 수 있었다. 다만 목 부분을 한 바퀴 휘감은 검붉은 핏자국 위로 살갗을 봉합한 흔적이 분명히 보였다.

    사슴머리 귀물은 검붉은 한 쌍의 눈동자를 몇 번 굴리더니, 화를 내지도 그렇다고 심협의 시선을 피하지도 않은 채 마주보며 천천히 몸통까지 돌아섰다. 앞서 상대한 귀물들과는 달리 적잖이 영지가 깨인 것이 분명했다.

    녀석은 즉시 달려들지 않고 뒤로 몇 걸음 물러서서 심협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방금 통제거에서 기어 나온 귀물들이 미쳐 날뛰며 심협에게로 돌진해왔다.

    심협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그저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몸 앞에 한 줄기 붉은 빛이 번득이더니 순양검배가 맑은 검명과 함께 긴 검광을 내뿜으며 폭포처럼 날아갔다.

    검광이 지나가는 곳마다 붉은 빛의 물결이 일렁였고, 귀물들은 가까이 달려들기가 무섭게 맹렬한 불길에 불타는 것처럼 고통스럽게 울부짖으며 물러났다. 하지만 방문이 워낙 좁은 탓에 피할 공간이 부족했고, 귀물들은 뒤죽박죽 뒤엉켜버렸다.

    붉은 검광은 파죽지세로 날아가더니 곧바로 검끝을 돌려 바늘에 실을 꿰듯 이리저리 오가며 순식간에 귀물 십여 마리를 흩어버렸다. 검광이 지나간 자리에는 진흙자국만 남았다.

    심협은 발아래로 달빛을 흩뜨리면서 눈 깜짝할 새 방문을 지나 사슴머리 귀물에게로 돌진했고, 거리가 가까워지자 낙뢰부를 귀물의 뒷목을 향해 날렸다.

    사슴머리 귀물은 두 눈에서 핏빛을 번뜩이더니, 양손으로 몸 앞에서 법인(法印)을 맺었다. 그러자 온몸에서 갑자기 혈광이 치솟더니 구(球) 형태의 빛 장막이 되어 귀물을 보호했다.

    콰르릉!

    낙뢰부가 핏빛 장막에 꽂히자 폭발음이 울렸다.

    팔뚝 굵기의 벼락이 밤하늘을 밝게 물들였고, 눈처럼 새하얀 번갯불이 핏빛 장막에 부딪치면서 천둥번개를 동반한 불꽃을 터뜨렸다. 가느다란 번개 줄기가 무수하게 뻗어 나와 사방팔방으로 퍼졌다.

    하지만 핏빛 장막은 잠시 심하게 흔들렸을 뿐, 붕괴될 조짐은 없었다.

    사슴머리 귀물이 허공에 손을 흔들자 핏빛 장도(長刀)가 소매에서 미끄러져 나와 심협의 허리를 베려 했다.

    심협은 눈빛을 번득이며 즉시 결인했다.

    위잉!

    무언가가 울리는 소리와 함께 눈부신 노란 빛이 심협의 머리 위에서 번득였고, 뒤이어 노랗고 커다란 종이 떠올랐다. 그 위로는 실체가 있는 듯한 노란 광채가 넘실거리며 뻗어나가 거대한 황종(黃鐘) 보호덮개를 이루어 그의 몸을 감쌌다.

    그때, 사슴머리 귀물의 핏빛 장검이 금갑선의의 보호덮개에 충돌하면서 굉음이 울렸다.

    거대한 황종 덮개는 쉬지 않고 진동했고, 표면의 빛도 빠르게 수그러들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귀청이 터져나갈 것 같은 종소리가 울렸다.

    댕!

    이 커다란 소리와 함께 노란색 법력 물결이 황종 보호덮개 위에서 파도처럼 일렁이더니 사슴머리 귀물과 장도까지 함께 격퇴시켰다. 심지어 주위에서 달려들던 다른 귀물들도 이 거대한 진동에 비틀거리며 나동그라졌다.

    “공격!”

    심협이 의식을 움직이자 허공에서 쉬익 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고, 순양검배가 변한 붉은 빛이 사슴머리 귀물을 쫓아가 머리를 찌르려 했다.

    이 귀물은 자세를 가다듬기가 무섭게 핏빛 장도를 치켜들었다.

    쨍강!

    쇳소리가 울렸지만 순양검배는 거의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은 것처럼 핏빛 장도를 잘라버렸고, 기세를 멈추지 않고 사슴머리 귀물의 목을 그었다.

    귀물의 머리가 높이 떠올랐다가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져 데굴데굴 굴렀고, 검은 피안개가 뿜어져 나와 방장(*坊墻: 방(坊)과 방 사이 경계를 나누는 벽)까지 붉게 물들였다.

    심협은 금갑선의와 순양검배를 거두어들였고, 손 가는 대로 건곤대를 툭 쳐서 사슴머리 귀물이 지닌 음살의 기운을 모으려 했다.

    한데 건곤대에서는 빛이 번쩍였지만, 사슴머리 귀물의 음살의 기운은 전혀 흩어지지 않았다.

    심협이 자세히 바라보니 이미 머리가 사라진 귀물이 비척비척 기어서 일어나더니 땅바닥을 더듬어 사슴머리의 긴 뿔을 잡고는 그 머리를 다시 제자리에 올려두었다. 그러자 목이 잘려나간 부분에서 곧 연충(*蠕蟲: 지렁이, 거머리 같이 발 없이 기어 다니는 벌레)같은 붉은 줄이 올올이 뻗어 나와 빠르게 봉합했다. 다만 급하게 봉합해서인지 반대 방향으로 꿰매져 심협을 등진 채였다.

    심협이 가까이 다가서려는데 주위에서 물귀신들이 잇달아 그를 향해 돌진해 왔고, 그 사슴머리 귀물은 강기슭을 따라 멀리 달아나기 시작했다.

    “어딜 도망가려고!”

    심협은 차게 웃으며 손목을 돌려 다시 순양검배를 꺼내려 했다.

    그러나 이내 생각을 바꾸어 손을 거두고는 건곤대를 툭 두드렸다. 그러자 한 줄기 검은 연무가 흘러나오더니 귀장이 나타났다.

    “이곳의 귀물들은 네게 맡기겠다. 저들을 죽여 음살의 힘을 흡수한 후 방(坊) 안으로 돌아가라. 귀물들을 마주치는 족족 처단해버려라. 단, 무리해서는 안 된다. 인간 수사와 마주치게 되면 그냥 피해서 처소로 돌아가 나를 기다리도록.”

    심협의 당부에 귀장은 즉시 깍듯하게 포권을 했다.

    “명 받들겠습니다.”

    심협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곧장 뛰어올라 물귀신들 위를 지나 사슴머리 귀물을 쫓아갔다.

    귀장은 그가 떠나자 도리어 숨통이 트이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는 눈앞의 귀물들을 쓱 훑어보고는 눈을 희미하게 빛내며 먹잇감이라도 본 것처럼 참지 못하고 침을 꿀꺽 삼켰다.

    심협은 이내 사슴머리 귀물을 따라잡았다. 하지만 심협은 그 귀물을 곧장 죽이는 대신 적당한 거리를 두고 뒤를 쫓아가기로 했다. 놈이 어디로 달아나는지 살펴보려는 속셈이었다.

    그 귀물은 어느 정도 달아나다가 갑자기 자기 머리를 감싸 안고는 우드득 하고 비틀어 돌리더니, 한쪽 방향으로 속도를 높여 도망치기 시작했다.

    “과연 본거지로 도망치려는 게로군.”

    귀물은 담장과 지붕들을 뛰어넘어 상락방에서 멀어진 뒤, 또 곧바로 두 거리를 뛰어넘어 영흥방 경계로 들어갔다.

    영흥방에는 각지에서 장안으로 온 행상들이 머물고 있었는데, 그중에는 외국에서 온 이방인들이 적지 않았다. 또한 유동인구가 많고 구성원들이 다양한, 다소 특수한 곳이었다.

    심협이 귀물을 따라 영흥방으로 들어가 보니 이곳 역시 엄청난 숫자의 귀물들이 습격하여 도처에 불빛이 번득였고, 간간이 부르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멀지 않은 어느 저택에서는 몇 마리 귀물이 눈썹 뼈가 높고 눈이 움푹 들어간 이방인 무리를 둘러싼 채 죽이는 모습이 보여, 심협은 잠시 망설였다. 저들을 구하러 간다면 사슴머리 귀물을 놓칠 수도 있지만, 그들을 구하러 가지 않는다면 두고두고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니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방장 바깥에서 질서정연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성을 지키는 병사들 한 무리가 검은 옷을 입은 두 수사의 인솔아래 방(坊)으로 뛰어 들어와 그 집을 향해 돌진했다.

    “관부에서 움직이기 시작한 것 같군.”

    심협은 약간 마음을 내려놓고 곧 다시 사슴머리 귀물을 쫓았다.

    이 귀물은 변두리의 청화호 기슭에 이르러 영흥방을 벗어나려는 참이었다. 그리고 호수 맞은편 기슭은 바로 선화방이었다.

    심협이 백여 장 거리까지 쫓아갔을 때, 사슴머리 귀물이 호수로 뛰어들었다.

    그는 표정이 살짝 변하여 황급히 속도를 높이면서 피수결을 맺어 곧바로 호수 안으로 잠겨 들어갔다.

    심협은 물속에 들어가자마자 신식을 풀었다. 그의 신념(神念)은 충만한 물 속성의 영기를 빌려 더욱 예민해져서 금세 사슴머리 귀물의 종적을 발견하고 물 밑바닥으로 잠행하며 쫓아갔다.

    그렇게 호수 속에서 반 시진 넘게 가다보니 그 귀물은 갑자기 갈대숲으로 방향을 틀어 어느 강줄기 속으로 들어갔다.

    심협이 강줄기로부터 위로 수백 보를 따라가 보니, 뜻밖에도 어느 사택(私宅)의 화원에 이르렀다.

    그는 곧 목적지에 도착하리라는 것을 예감하고는 신식을 거두어들인 뒤, 법력 파동을 억누르고 조심스레 뒤따라 들어갔다.

    강줄기는 집을 가로질렀는데, 그중 한 토막은 사택에서 작은 호수로 확장되었다. 경치가 아름다운 호숫가에는 탁 트인 지역이 있었는데, 높고 큰 희루(*戱樓: 옛날 절과 사원에서 공연에 이용하던 발코니식 누각)와 정면으로 마주보고 있었다.

    사슴머리 귀물은 작은 호숫가에 도착하자 곧장 기슭으로 올라가 탁 트인 광장으로 향했다.

    조심스럽게 사방을 둘러보니 호숫가 둘레에는 잡초가 무성했고, 크고 높은 희루도 조금 무너져 내린 듯했다. 주위에는 낙엽이 가득해 이 사택이 버려진 곳임을 알 수 있었다.

    바로 그때, 의아해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찌 된 일이지? 이놈이 왜 되돌아온 거야?”

    심협이 소리가 난 쪽을 돌아보니 붉은 비단 장포를 입은 땅딸막한 중년 남자 하나가 사슴머리 귀물 앞에 서서 의심 가득한 표정으로 녀석을 훑어보았다.

    “설마 강적을 만나 본능적으로 도망쳐 온 건가?”

    또 다른 목소리도 뒤이어 들려왔다. 푸른 단포(*緞袍: 비단으로 만든 긴 중국식 웃옷)를 입은 늘씬한 여인이었다. 그녀의 자태는 버들가지처럼 가냘프고 용모 또한 아름다웠지만, 드러난 팔뚝에는 검푸른 비늘이 한 층 맺혀 있어 섬뜩해 보였다.

    여인은 문득 눈초리가 길게 치켜 올라간 봉안(鳳眼)을 돌려 작은 호수 쪽을 훑어보았다.

    심협은 무의식적으로 몸을 가라앉히며 기운을 거둬들이고 돌덩어리처럼 물 밑바닥에 가라앉아 꼼짝도 하지 않았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