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313화 (313/1,214)
  • 313화. 번화가에 일어난 귀환(鬼患)

    심협은 아직도 벌벌 떨며 바닥을 기고 있는 노점상에게 다가가 어깨를 두드렸다. 그러자 상인은 소스라치게 놀라 몸을 움찔 떨고는 납작 엎드린 채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연신 외쳐댔다.

    “귀신 나리 살려주십시오, 살려주세요. 귀신 나리…….”

    “나는 귀신이 아니니 고개를 좀 들어 보시오.”

    심협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으나, 노점상은 이미 간담이 오그라들어 어떤 말도 귀에 들리지 않는지 그저 쉬지 않고 용서를 빌었다. 오줌을 지렸는지 지린내가 풍겨왔다.

    심협이 상인의 어깨를 가볍게 어루만지자 따뜻하고 강한 양기가 그의 몸속에 들어갔다.

    문득 온몸이 따스해진 것을 느낀 상인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두려움 가득한 눈으로 고개를 들어 심협을 바라보았다.

    “소…… 손님? 손님이 어찌 여기……?”

    상인이 바들바들 떨면서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오?”

    심협은 대답 없이 입을 열고는 물었다.

    “귀, 귀신…… 귀신이 있습니다!”

    심협의 질문에 상인은 또다시 두려워졌는지 울먹거렸다.

    “귀신은 사라졌으니 말씀해보시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거요?”

    심협이 재차 묻자 노점상은 그제야 뒤편 골목을 건너다보고는 귀신이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은…… 손님이 평소보다 많아 준비한 물이…… 동이 났습니다요. 저, 저는 이쪽 늙은 홰나무…… 아래서 물을 좀 기, 길어오려고…… 했습죠. 누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물통을 우물에 넣자마자 어, 얼굴이…… 온통 새하얀 악귀가 두, 두레박줄을 타고…… 기어 올라오는 겁니다! 저는 물통을 내던지고 달아나다가 넘어졌는데…… 다리가 분질러졌는지 주, 죽어도 못 일어나겠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이…….”

    상인은 더듬더듬 설명을 이어갔는데, 보아하니 그저 다리를 바닥에 찧으면서 피가 좀 났을 뿐 뼈는 부러지지 않았다. 너무 놀란 나머지 다리가 풀린 것이리라.

    “그대의 다리는 부러지지 않았소. 바닥을 기면서 쓸린 탓에 벗겨진 것뿐이오.”

    심협은 그렇게 말하며 노점상을 부축해 일으켰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상인은 그제야 다리를 살피고 심협의 말이 사실임을 알고는 허리를 굽혀 연신 감사 인사를 했다. 여전히 가볍게 떨고 있었으나, 더는 말도 더듬지 않았다.

    심협은 사방을 휘 둘러보고는 곳곳에 음살의 기운이 떠도는 것을 느끼고 상인에게 말했다.

    “거리에 귀물이 적잖으니 성급하게 집으로 돌아가지 말고 문에 도부(桃符)가 걸려 있는 집을 찾아들어가 몸을 숨겼다가 날이 밝거들랑 돌아가시오.”

    상인은 그 말을 듣고 얼굴이 또다시 새하얗게 질리더니 울먹였다.

    “아니 됩니다. 마누라와 어린 것이 집에 있으니 당장 돌아가야 합니다요.”

    심협은 상인의 말에 조금 뭉클해져 한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그러자 진귀부(鎭鬼符)와 소뢰부가 소매에서 날아가 각각 노점상의 앞가슴과 등에 붙었다.

    “돌아가는 길에 대문에 문신(*門神: 음력 정월에 잡귀를 쫓기 위해 대문에 붙이던 귀신 형상)이 붙어 있고 문머리에 구리거울이 걸려 있는 집들을 골라 지나가도록 하고, 가는 길에 멈추지 마시오. 집에 돌아가거든 몸에 붙은 부적을 떼어 문틀에 붙이도록 하고…….”

    심협의 당부에 노점상은 퍼뜩 상황을 깨닫고는 황급히 바닥에 무릎을 꿇고 거듭 머리를 조아렸다.

    “제가 선사님을 만났군요. 감사합니다, 선사님. 정말 감사…….”

    그가 고개를 들었을 때, 그곳에는 이미 아무도 없었다.

    “내 마누라! 내 새끼!”

    상인은 또다시 울먹이더니 벌떡 일어나 달려갔다.

    * * *

    골목 끄트머리, 수령(樹齡)이 오래된 늙은 홰나무 아래에는 시커먼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림자 아래로는 3척 높이로 돌을 둘러쌓아 만든 울타리가 있었고, 그 안쪽에는 깊은 우물이 하나 보였다.

    심협은 우물가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안쪽은 온통 어둠뿐이었지만, 우물 바닥에는 달빛이 반사되어 물결이 맑게 반짝였다.

    심협은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우물 아래에서 갑자기 물소리가 들리더니 우물바닥에서 나선형 수인(水刃)이 일어나 물이 분수처럼 솟구쳐 나왔다.

    심협은 손을 들어 물줄기를 헤집더니 솟아나오는 분수에서 수액 덩어리 하나를 잡아채 눈앞에 두고 찬찬히 훑어보았다.

    “음기가 이리도 짙단 말인가?”

    잠시 들여다보던 그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그때, 우물가의 홰나무 위에서 나뭇가지와 잎사귀들이 들썩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심협이 살짝 뒤로 물러서자 커다랗고 시커먼 그림자가 위에서 그의 발치로 뚝 떨어 내렸다.

    힐끗 그림자를 바라본 그의 미간에는 주름이 더 깊어졌다.

    그것은 이미 꼴이 말이 아닐 정도로 뒤틀린 한 남자의 시체였다. 온몸은 물어뜯겨 성한 곳이 없었고, 시커먼 피가 덕지덕지 들러붙어 있어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몰골이었다.

    심협은 안력을 돋운 채 곧장 몸을 날려 발끝으로 나뭇가지를 박차고 올라 마침내 늙은 홰나무의 꼭대기에 올라섰다.

    담벼락 너머 골목을 본 그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갖가지 노상들로 왁자지껄했던 골목은 난장판이었고, 선혈이 낭자한 시신들이 바닥 곳곳에 널브러져 있었다. 골목 끄트머리에는 건장한 몸집에 흉악한 얼굴을 한 악귀가 한 젊은 사내의 목을 물어뜯고 있었다.

    이 악귀는 심협의 시선을 알아챈 듯 고개를 홱 치켜들어 노려보았다.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악귀는 분명치 않은 발음으로 외치다가 느닷없이 야수처럼 몸을 날리더니, 손발을 동시에 휘저어 심협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담벼락 아래쪽에 다다를 때 즈음 하늘로 솟구쳐 올라 두 발로 담벼락을 박차고 돌진해왔다. 눈처럼 하얀 담벼락 위에 섬뜩한 두 줄기 핏자국이 새겨졌다.

    심협은 쯧 하고 혀를 차더니 나지막하게 주문을 읊조리며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나무 아래 우물에서 요란한 굉음이 울리더니 기다란 물줄기가 하늘을 찌를 듯 솟구쳐 올라 거대한 회오리 수인(水刃)을 이루면서 쏜살같이 튀어나갔다.

    쉬익!

    악귀가 담 꼭대기를 박차고 오르기가 무섭게 수인이 가로로 베고 지나가 허리를 그대로 끊어버렸다. 거대한 푸른 빛의 소용돌이가 빠르게 회전하면서 순식간에 악귀는 산산조각이 났다.

    심협은 허리춤의 건곤대를 툭툭 쳐서 다시 악귀의 몸에 남은 음살의 기운을 주머니 속으로 거두어들였다.

    뒤이어 그의 시선은 골목의 다른 끝으로 뻗어나갔다. 어느 민가에서 불빛이 세차게 일어났는데, 그 속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그는 곧장 발끝으로 나무 꼭대기를 찍어 그쪽으로 날아갔다.

    심협은 담벼락들을 날쌔게 뛰어넘어 이내 그 집 뜰에 이르렀는데, 그곳에는 머리를 산발한 하얀 옷의 여자 귀신이 시뻘건 혀를 날름거리면서 어린 여자아이에게 달려드는 중이었다. 귀신의 검은 머리칼이 몇 갈래로 나뉘면서 몇 장이나 뻗어가더니 두 중년 사내와 한 여인 명의 목을 휘감아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세 사람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고 두 눈이 툭 튀어나왔으며, 입과 코에서는 피가 줄줄 흘렀다. 두 팔이 미미하게 떨리는 것이, 이미 죽음이 임박하여 몸부림칠 힘조차 곧 사라질 게 분명해 보였다.

    심협은 즉시 여자 귀신 위를 스쳐가며 몸을 거꾸로 홱 뒤집어 한 손으로 머리를 냅다 내리쳤다.

    그의 손바닥이 막 닿으려는 순간, 귀신이 갑자기 고개를 쳐들고 그를 노려보았다. 귀신의 두 눈은 온통 핏빛으로, 원한이 가득했고, 이때 검은 머리카락이 갑자기 살아난 듯 하늘로 솟구쳤다.

    심협이 손을 거두기도 전에 그 짙고 빽빽한 머리칼이 그의 팔뚝을 타고 온몸을 휘감았다.

    심협은 재빨리 피수결을 맺어 자신의 온몸을 감쌌다. 다음 순간, 검은 머리카락들이 미친 듯이 그의 입과 코를 향해 거세게 파고들려 했으나 피수결로 응결한 빛의 장막에 막혀 뚫고 들어올 수 없었다.

    한데 바로 그때, 심협의 얼굴을 감쌌던 검은 머리칼이 좌우로 갈라지며 양쪽으로 흩어졌다. 그 사이로 길고 시뻘건 혀가 핏빛 장검처럼 쑥 뻗어왔다.

    쨍!

    시뻘건 혀가 그대로 심협의 이마 위쪽 장막에 부딪히자 달궈진 쇳덩이에 물을 부은 듯 치지직 소리와 함께 하얀 연무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부식능력도 있단 말인가?”

    심협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법술을 쓰려 했으나 손발이 모두 묶인 상태라 법결을 맺을 수도, 부적을 꺼낼 수도 없었다.

    그는 반사적으로 순양검기를 불러일으켰다. 그러자 혈규에서 기이한 붉은 빛이 느닷없이 뿜어져 나와 그의 몸을 휘감은 검은 머리카락을 끊어내고는 앞으로 날아갔다.

    다음 순간, 그 기이한 붉은 빛이 허공에서 한 바퀴 회전하더니 쏜살같이 되돌아왔고, 그 위에서 붉은 불꽃이 화르르 불타오르면서 곧장 귀신의 가슴팍을 꿰뚫었다.

    “끼야앗!”

    날카로운 비명이 울렸고, 귀신의 몸이 화염에 휩싸여 이내 재로 변해 흩날렸다.

    심협은 남은 음기를 빨아들이고 순양검배를 거둬들인 뒤,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그중 나이가 가장 많은 사람은 이미 두 눈이 풀린 것이 생기가 없었다.

    다른 사내 한 명과 여인도 혼절한 상태였지만, 아직 한 가닥 생기가 남아 있었다. 이에 심협은 재빨리 순양의 기운을 두 사람에게 주입하여 그들이 생기를 되찾도록 도왔다.

    그제야 심협은 아까 겁에 질려 울고 있던 여자 아이가 지금은 울음을 멈추고 멍하니 앉아서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음을 알게됐다.

    ‘놀라서 혼이 나간 것은 아니겠지?’

    심협은 황급히 소녀에게 다가가 머리를 가볍게 어루만졌다. 그러자 따스한 힘이 스며들어 동요한 영혼을 진정시켰다.

    잠시 후, 여자 아이는 다시 와앙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무서워 말거라. 이제 괜찮아졌으니 울음을 그치려무나. 가족들은 잠든 것뿐이란다. 너와 가족들을 방으로 데려다줄 테니 네가 잘 돌봐주렴. 날이 밝기 전까지는 밖으로 나오면 안 돼. 알았지?”

    심협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다독이자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으나 여전히 흐느꼈다. 그의 말을 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심협도 당장은 많은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기에 숨이 붙어 있는 두 사람과 어린 소녀를 방 안으로 잘 데려다 놓고 방문에 진귀부를 한 장 붙인 뒤, 다시 지붕 위로 뛰어올라 떠나갔다.

    그가 공중제비를 돌아 어느 거리에 내려서자 맞은편에서 시퍼런 얼굴의 귀신과 기다란 혀를 가진 귀신이 동시에 돌진해왔다.

    심협은 손목을 돌려 자모검(子母劍)을 꺼내 휘둘렀다. 한 줄기 검광이 빠르게 튀어나와 쉭 하는 가벼운 소리를 내며 귀물들을 참살했다.

    이어서 그가 건곤대를 두드리자 곧 모든 음살의 기운이 말끔히 흡수되었다.

    그때, 앞쪽 길모퉁이에서 도움을 청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심협이 황급히 달려가 길모퉁이를 돌아보니 수십 명이 우왕좌왕하며 도망치는 중이었고, 놀랍게도 10여 마리의 귀물이 그 뒤를 쫓고 있었다. 키가 4장에 이르는 귀물, 몸이 허상인 듯 희미한 귀신, 몸에 쇠사슬을 휘감은 채 땅에 붙어 기어가면서 쩔그렁거리는 소리를 울리는 괴물, 시퍼런 얼굴에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귀신, 팔다리가 잘려나간 귀물 등 각양각색이었다.

    이 귀물들은 기괴해 보이긴 해도 느껴지는 기운은 그리 강하지 않아 연기기 수사 정도였다. 앞서 장발의 귀신보다 훨씬 뒤떨어졌다.

    키가 4장에 이르고 몸이 희미한 귀물은 손에 3장에 달하는 가느다란 낫을 한 자루 들고 있었는데, 그 위에서는 검붉은 핏물이 쉬지 않고 뚝뚝 떨어졌다. 녀석은 가장 앞장서서 쫓아가면서 양손으로 낫을 휘둘러 백성들의 목숨을 거두어 가려 했다.

    심협은 곧장 몸을 날려 귀신 떼 한가운데에 운석처럼 떨어졌고, 동시에 두 손으로 일고여덟 장의 소뢰부를 사방으로 휙휙 날렸다. 치지직 하는 소리에 이어 번갯불이 번쩍이며 곧 우렛소리가 들려왔다.

    우르릉! 쾅!

    줄기줄기 새하얀 번갯불이 귀신들 한가운데에서 폭발하며 사방을 휩쓸었다.

    귀신 무리는 처참하게 울부짖었고, 하나같이 번갯불에 갈가리 찢겨 음살의 기운으로 변해 사방으로 흩어졌다.

    심협은 얼른 건곤대를 두드려 모든 음살의 기운을 흡수했고, 거리는 다시 맑고 깨끗해졌다.

    뿔뿔이 흩어져 달아났던 백성들은 이 모습을 보고 하나둘 “선사님!” 하고 외치며 무릎을 꿇고 절을 올렸다.

    “다들 함부로 돌아다니지 말고, 문신이 지키는 집을 찾아 들어가 몸을 숨기시오. 날이 밝기 전에는 다시 나와서는 아니 되오.”

    심협은 한 마디 당부하고 또다시 급하게 떠나갔다.

    그는 지금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뜻밖에 장안성에서 이런 백귀야행(*百鬼夜行: 수많은 귀신과 요괴들이 한밤중에 나타나 떠돌아다니는 것) 같은 상황이 나타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하물며 대당관부는 무얼 하느라 꾸물대고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어찌 되었든 우선 정부(程府) 쪽으로 가자. 이 일을 정 국공 대인과 육화명에게 알려야 해.”

    심협은 생각을 정하고 황성 방향으로 쏜살같이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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