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311화 (311/1,214)
  • 311화. 꿈에서 용을 베다

    심협과 육화명은 각자 오늘의 일을 다시 한 번 상세하게 이야기했다.

    정교금은 이야기를 다 듣고 한숨을 내쉬었다.

    “정 국공. 그해의 일에 나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저들 말대로 그자가 경하용왕이 확실하오?”

    황목상인이 잠시 생각해보더니 정교금에게 물었다.

    “분명 그자요. 그가 정말 돌아왔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군. 어쩐지 오늘 궁 안의 금종이 절로 울리고 여러 짐승들이 슬피 운다고 폐하께 불려가는 바람에, 성 동쪽의 일을 제때 처리하지 못했습니다. 다행히도 황목 선생 일행이 일찍 돌아와 큰 화는 면했지요.”

    정교금이 탄식했다.

    “사부님, 그 경하용왕은 도대체 어찌된 것입니까? 위공께서는 왜 그의 머리를 베어 강에 진압해두신 것이며, 그는 또 왜 폐하께 복수하겠다 큰소리를 친단 말입니까?”

    이 질문은 심협도 매우 궁금했기에 귀를 쫑긋 세우고 귀를 기울였다.

    정교금은 주저하는 기색으로 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곁에서 황목상인이 거들었다.

    “정 국공, 빈도가 생각하기에 저들에게 알려주어도 무방할 듯하오. 육 사질과 심 소우는 경하용왕 사건에 두 번이나 연달아 휘말렸으니, 모두 인연이 있는 자들이겠지요. 어쩌면 저들이 나서야만 끝나게 될지도 모르지 않소.”

    그러자 정교금은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정관(*貞觀: 당태종의 연호) 13년, 성안에 원수성(袁守誠)이라는 점쟁이 선생 있었다. 그는 오로지 사람들을 위해 점을 보았지. 말하는 바에 따르면 음양을 알 수 있고 생사를 판단할 수 있다고 하더구나.

    성 바깥에 낚시꾼 노인 한 사람이 매일 같이 원수성에게 금빛 비단잉어를 한 마리씩 잡아 보내고는 어디에 그물을 치고 어디에 낚싯대를 던져야 할지 봐달라고 청했지. 하여 점을 쳐줬는데, 그 족족 백발백중이라 낚시꾼은 경하의 수족을 적잖이 잡았지. 이에 경하용왕은 대노하여 원수성을 찾아와 담판을 지으려 했다.”

    정교금이 느릿느릿 말했다.

    “원수성…….”

    심협은 미간을 찌푸리고 경하용왕이 떠나기 전 외쳤던 이름이 원천강이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원천강과 원수성은 혈연 관계였던 걸까?

    “경하용왕은 원수성을 찾아와 이튿날의 날씨를 두고 내기를 했다. 원수성의 점괘가 틀리면 장안성을 떠나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는 조건이었지.”

    정교금의 말은 계속됐다.

    “자고로 용족은 구름을 운행하고 비를 내리는 직분을 담당해왔고, 경하는 장안성 밖에 위치해 있으니, 경하용왕이 장안성 근처의 비바람을 다스릴 것 아닙니까? 날씨로 내기를 하다니, 원수성을 장안성에서 쫓아내기로 단단히 마음먹었던 모양이군요. 정말이지 불한당이 따로 없습니다.”

    육화명이 입을 비죽이며 말참견을 했다.

    심협은 경하용왕과 몇 번 마주쳤던 터라 그의 성정을 조금 파악하고 있었다.

    경하용왕의 그런 행동은 모두 경하의 수족들을 위한 것이었으니 비난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원수성도 퍽 이상한 것이, 왜 낚시꾼 노인에게 경하 수족의 동향을 알려주었단 말인가?

    혹시 그가 원한 그 금빛 잉어에 어떤 특이점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경하용왕에게는 분명 그럴 뜻이 있었으나, 원수성의 점술은 위로 천도에 통했고, 천정에서는 갑자기 성지(聖旨: 임금의 명령)를 내려 경하용왕에게 이튿날 비를 내릴 것을 요구했다.

    성지에 적힌 시각과 원수성의 예측은 일치했지. 허나 경하용왕은 이기고픈 마음에 몰래 비가 올 시간을 바꾸어 천상의 법률을 위배했고, 결국 천정에 발각되어 참수당하고 말았다.”

    정교금의 설명에 육화명은 고개를 끄덕였으나, 이내 다시 물었다.

    “그리 된 것이군요. 한데 경하용왕이 어찌하여 폐하를 찾아 복수하려 하는 것입니까?”

    “경하용왕은 자신이 천상의 법을 범했음을 알고 원수성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원수성은 이튿날 오시(午時: 오전 11시~오후 1시) 3각(刻)에 재상인 위징이 하늘을 대신해 경하용왕을 참수할 것을 예측했고, 그에게 폐하께 찾아가 도움을 구하라 했지.

    폐하께서는 경하용왕의 정성을 생각하시어 이튿날 위징을 침궁으로 부르셔서는 줄곧 곁에 머물게 하셨다. 본래는 시간을 끌어 위징이 궁을 떠나 경하용왕을 처결할 틈이 없게 하려고 하신 게지.”

    심협과 육화명은 옛날이야기를 듣는 아이들처럼 흥미진진하게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시간을 끌면서 두 임금과 신하가 대국을 하다 보니, 국사로 피로했던 위징이 탁자에 엎드려 잠이 들어버렸고, 폐하께서는 그를 깨우지 않으셨다. 때가 오시 3각이 되자 폐하께서는 경하용왕이 화를 피한 줄로 아시고 마음을 놓으셨지. 한데 잠든 위징의 이마에는 땀이 가득 맺혀 있었고, 초조한 표정이었다.

    폐하께서는 날이 더워 그러는 줄 알고 신하를 아끼시는 마음에 친히 위징에게 부채질을 해주셨다. 바로 그때, 누군가 알현을 청하였고, 서무공(徐茂功)과 진숙보(秦叔寶) 등이 용의 머리를 들고 침전에 든 게야! 나도 그들 사이에 있었지. 그 용 머리는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졌는데, 폐하께 아뢰어야겠다는 생각에 특별히 폐하께 고하러 갔던 것이다.”

    여기서 말을 맺은 정교금은 그날 상황을 회상하듯 추억에 잠긴 표정이었다.

    “위징 대인께서는 궁 밖으로 나가지 않으셨는데, 경하용왕이 누구에게 참살 당한 것입니까?”

    육화명이 의아한 마음에 자기도 모르게 다그쳐 물었다. 심협 역시 궁금해하던 바였다.

    “그때 위징도 잠에서 깨어나 사죄한 뒤, 그 용을 꿈속에서 참살하였노라고 아뢰었지. 알고 보니, 그의 몸은 폐하 앞에서 대국을 하고 있었지만, 꿈에서는 황궁을 떠나 구름을 타고 검을 든 채 그 용을 쫓아갔던 게야.

    경하용왕이 황급히 도망치는 바람에 위징이 잠시 따라잡지 못하여 애를 태우던 찰나, 폐하께서 그를 위해 부채질을 해주셨고, 그 세 번의 시원한 바람을 빌려 요사스런 용을 따라잡고 단칼에 머리를 베어버렸다. 그래서 그 용 머리가 허공에서 떨어진 게지.”

    정교금의 말에 육화명은 무릎을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된 것이로군요.”

    한편, 심협은 속으로 탄식했다. 경하용왕은 본디 동족을 보호하려던 것뿐인데, 안타깝게도 승부욕이 지나쳐 비극적인 말로를 맞게 되었으니 말이다.

    “경하용왕이 참수당한 뒤, 그의 귀혼은 분개하여 법술을 써서 폐하의 신혼을 저승으로 끌고 가 대질을 했다. 자신을 구해주겠노라 약조했으나 결국 구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위징이 자신을 참살하도록 도운 셈이니 한 입으로 두말을 한 것이라고, 폐하께 목숨 값을 갚으라 한 게지.”

    정교금은 고개를 두어 번 내젓고는 말을 이었다.

    “허나 결과적으로는 그리 됐을지 몰라도 폐하의 행동은 고의가 아니었다. 게다가 대당의 주인이시며 양수(陽壽)가 아직 다하지 않으신 데다 어느 고수가 법술을 쓴 덕에 저승에서는 폐하를 저승에 구류하지 않고 돌려보냈지.

    그리고 경하용왕이 다시 찾아가 폐하께 누를 끼치지 못하도록, 그 고수가 나서서 경하용왕을 저승 모처에 봉인해두었다. 그곳이 바로 지난번 너희가 갔었던 곳이다. 또 위징은 금광검진으로 경하용왕의 머리를 장안성에 제압해두었지.”

    “도대체 어떤 고수이시기에 경하용왕의 귀혼을 봉인할 수 있단 말입니까?”

    육화명이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그는 경하용왕 귀혼의 실력을 직접 느껴본 터였다. 정교금이 직접 나선다 해도 반드시 당해내리란 법이 없거늘, 그를 봉인할 수 있는 자가 있다니, 믿기 힘들었다. 설마 선인이란 말인가?

    “너도 아는 사람이다. 바로 국사 원천강이시니라.”

    심협은 그제야 경하용왕이 떠나기 전에 원천강에게 복수하겠노라 외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장안성에 오랜 시간 머물면서 그 또한 국사 원천강에 대해 들은 바가 있다. 국사는 과거와 미래를 알 수 있고, 길흉화복을 예측하며, 말하는 것이 꼭 신인(*神人: 도교에서 득도한 사람을 이르는 말로 진인‘眞人’과 비슷한 개념)과 같다고 하였다.

    심협은 지금껏 그 이야기가 과장되고 허황된 뜬소문인 줄로만 알았는데, 정교금의 말대로라면 실로 대단한 고수인 것이다.

    “국사 대인께서는 비실비실해 보이셨는데, 뜻밖에 그리도 대단한 분이셨군요!”

    육화명이 중얼중얼 말했다.

    “헛소리 말아라! 국사 대인의 신법(神法)은 하늘에 통하니, 너희들이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느냐? 그분이 계시지 않았다면 우리 대당도 오늘날처럼 강성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예, 제자가 잘못했습니다.”

    정교금이 근엄하게 꾸짖자 육화명은 화들짝 놀라 허리를 숙였으나, 표정만은 여전히 믿지 못하겠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정교금도 더는 자신의 뺀질이 제자를 상대하려 하지 않았다.

    그때, 잠시 망설이던 심협이 공수하며 말했다.

    “정 국공 대인, 황목 선배님. 후배가 한 가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그리 예의 차릴 필요 없네. 할 말이 있으면 바로 하게나.”

    황목상인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원천강 국사라는 분과 점쟁이 원수성은 무슨 관계입니까? 직언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원수성이 낚시꾼 노인에게 경하 수족의 위치를 점쳐주었던 것으로 보아 다른 꿍꿍이가 있었던 것 같아서 말입니다.”

    심협의 말에 황목상인이 감탄한 듯 설명했다.

    “심 소우의 머리가 아주 영민하구먼. 이 늙은이도 같은 생각이라네. 한데 그 원수성이란 자는 경하용왕이 참수당한 뒤로 행방이 묘연하다네. 나도 사방으로 사람을 보내 찾아보았지만, 조그마한 종적도 찾아내지 못했지. 아마도 원 국사와는 별 관계가 없는 듯하네. 이 늙은이가 원 국사에게 물어본 적도 있지. 국사는 원수성이라는 자를 모른다더군.”

    심협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 일은 정말 의문점이 산더미였다.

    “폐하께서도 연루된 일이니 두 사람은 결코 다른 이들에게 누설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정교금이 엄숙히 당부하자 심협과 육화명은 당연히 그러겠노라고 답했다.

    뒤이어 심협은 인사를 하고 물러났다. 정교금과 나머지 사람들은 상의할 일이 남았는지 그를 붙잡지 않았다.

    심협은 대당관부를 나와 마차를 잡아타고 거처로 돌아가려 했다.

    한데 그때 낭랑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심 도우, 오랜만에 뵙습니다.”

    하얀 옷을 입은 아리따운 소녀 하나가 서 있었다. 오랫동안 만나지 않았던 마수수였다.

    “마 소저셨군요. 오랜만입니다. 취보당은 역시 대당 3대 상회 중 하나라 그런지 벌써 여기를 알아냈군요.”

    심협은 살짝 당황했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고 태연자약하게 말했다. 응혼기에 접어든 뒤, 취보당에 대한 그의 두려움은 어느새 많이 줄어든 터였다. 다만 감정이 사라진 것은 아니라서 그의 말에는 가시가 있었다.

    “심 도우께서는 성 동쪽에서 신과 같은 위력을 떨치시어 경하용왕의 귀혼을 격퇴시켰다지요. 그 일이 벌써 성안에 파다하게 퍼졌답니다. 우리 취보당도 인맥이 있는 편이니 자연히 듣게 됐지요.”

    마수수는 심협의 말에 담긴 가시를 느끼지 못했는지 웃으면서 말했다.

    “그랬군요. 한데 마 소저께서는 어쩐 일이십니까?”

    “심 도우께서 잊으신 모양입니다. 도우께서는 제게 억몽부를 만들어주기로 약조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이제 일 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갔는데, 어떤 실마리라도 잡으셨는지요?”

    마수수가 조금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 미안하오. 억몽부는 이미 그려냈으나, 최근 일이 바빠 제때 보내드리지 못했을 뿐이니 마 소저께서 이해해주십시오.”

    심협은 이마를 탁 치고는 노란 부적 한 장을 꺼냈다. 그것은 억몽부로, 그동안 틈틈이 그린 것이었다.

    마수수는 눈빛이 확 밝아지더니 예절도 신경 쓰지 않고 부적을 확 낚아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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