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309화 (309/1,214)
  • 309화. 제압

    “선배님들, 이 후배에게 한 가지 의문이 있습니다. 감히 아뢰어도 될는지요?”

    문득 청화선자 곁에 있던 무씨 청년이 앞으로 나오며 공손히 말했다.

    그가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것을 보자 심협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자네는 보타산의 무명(武鳴) 현질 아닌가. 할 말이 있다면 해보게.”

    궁전이 웃으며 말했다.

    “사실 그리 큰일도 아닙니다. 그저 이 심 도우란 분이 그날 저승 임무에 참가하셨었는데, 오늘은 또 모든 사람보다 먼저 경하용왕의 종적을 발견했다 하니, 지나치게 딱 들어맞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뿐입니다.”

    무명은 여전히 공손한 태도로 말했으나,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의 시선에도 일말의 의심이 서렸다.

    심협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무명을 노려보았으나, 상대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 시선을 맞받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저는 그저 의문이 들어 말씀드렸을 뿐이지, 심 도우를 헐뜯을 마음은 결코 없었습니다. 그러니 심 도우의 이해를 바랍니다.”

    “아, 그렇소? 나는 무 도우께서 예전 완구성에서 제게 패한 일에 앙심을 품고 그러는 줄 알았지 뭡니까. 하지만 아무 사심이 없다니, 다행입니다.”

    심협이 정말로 다행이라는 듯 환하게 웃으며 말하자 무명의 표정이 순간 일그러졌다. 실수를 눈치챈 무명이 재빨리 본래의 표정을 되찾았으나, 경지가 높은 그 자리의 사람들이 이를 놓칠 리가 없었다. 자연히 심협에 대한 의심은 조금 약해졌고, 대신 무명을 바라보는 눈빛이 약간 달라졌다.

    “그만 되었네. 그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하고, 우선 대당관부로 돌아가세. 청화 도우, 면월 도우, 두 분도 함께 가시지요. 이 일을 좀 상의합시다.”

    황목상인은 그렇게 말했으나, 그 말투는 약간 언짢은 듯했다. 특히 무명을 바라보는 눈길은 곱지 않았다. 대당관부의 고위층으로서 가장 보고 싶지 않은 것이 바로 아랫사람들의 불화와 신경전이었다.

    “예. 황목 선배님의 말씀에 따르지요.”

    청화선자와 면월거사는 황목상인의 불쾌함을 알아차리고는 재빨리 답했다.

    특히 청화선자는 무명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그러자 무명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옆으로 물러났다.

    “궁전, 자네는 탐사술(探査術)에 능하니, 이곳에 남아 사람들과 함께 주변을 좀 살펴보게나.”

    이어진 황목상인의 지시에 궁전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예, 상인 어른, 안심하십시오.”

    황목상인은 사람들을 이끌고 대당관부로 향했다. 물론 심협도 함께였다.

    “심형, 걱정 마시오. 황목상인의 눈빛은 횃불과 같으니 소인배의 이간질 따위 믿지 않으실 것이오.”

    육화명이 심협에게 다가와 낮은 소리로 말했다.

    “나야 당연히 황목상인을 믿소. 다만 나조차도 지나치게 공교롭다고 생각하긴 하오. 연이어 두 번이나 경하용왕과 마주치다니 말이오.”

    심협이 자조하듯 말했다.

    “그런 말 마시오. 오늘 그대가 없었다면 더 많은 백성이 해를 입었을 것이오. 그랬다면 폐하께서도 죄를 물으셨을 테지. 그대는 우리 대당관부를 또 한 번 크게 도운 셈이오.”

    “그저 우연이었을 뿐이오. 육형은 혹시 음령산에 갔었소?”

    심협은 씩 웃더니 화제를 돌렸다.

    “그렇소. 그곳 고분의 귀신들이 갑자기 밖으로 나와 사람을 해치는 바람에 다시 쫓아 보내는 데 며칠이나 걸렸지.”

    육화명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심협은 음령산 고분의 일에 대해 더 물어보고 싶었으나 참을 수밖에 없었다. 무명 때문에 귀물과 공모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와중에 자신이 얼마 전에 음령산 고분에 갔었다는 사실까지 알려지면 어떻게 되겠는가.

    “참, 심형의 수련 경지가 벌써 응혼기에 접어들었구려! 정말 경사스럽고 축하할 일이오.”

    육화명은 심협을 위아래로 슬쩍 훑어보고는 웃으면서 말했다.

    “운이 따라서 요행히 돌파했을 뿐이오.”

    심협 역시 웃으며 답했고, 두 사람은 길을 가는 내내 한담을 나누었다.

    일행은 곧 대당관부에 도착했다. 황목상인은 상의할 중대한 일이 있는 듯, 청화선자와 면월거사 등 주요 인사들과 주전(主殿)으로 향했다. 그전에 육화명에게는 나중에 다시 부를 때까지 심협과 함께 물러가 휴식을 취하라 명했다.

    육화명은 심협을 자기 처소로 안내했고, 방에 들어가자마자 술 주전자를 끌어안고 후련할 만큼 술을 마셨다. 심협도 그와 함께 술잔을 기울였다.

    피로 때문인지 술기운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육화명은 얼마 지나지 않아 식탁에 엎드려 잠이 들고 말았다.

    심협은 그를 내실의 침실에 들여보내 쉬게 하고는 바깥 응접실에 앉아 그날의 일을 머릿속으로 정리해보았다. 이는 그가 수선계에 발을 들인 이후 줄곧 유지해온 습관으로, 그렇게 하루를 정리하고 자신에게 부족한 점을 찾아냈다. 오직 끊임없이 자신을 끌어올려야만 이 위험한 수선계에서 더 멀리 갈 수 있을 것이었다.

    ‘아까는 상황이 긴박해서 이걸 자세히 살펴볼 겨를이 없었지.’

    그는 우선 손을 뒤집어 노란 부적이 변해 만들어진 구리방울을 꺼냈다. 그리고 그 안에 신식을 집어넣었는데, 이내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방울 안에는 뜻밖에도 금제가 없었고, 등급도 그리 특별한 구석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이 방울이 귀물들의 넋을 쏙 빼놓기에 등급이 매우 높은 법기일 것이라 여겼는데 평범한 방울일 줄이야.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평범한 것만은 아니었다. 방울 안에는 한 줄기 기이한 힘이 담겨 있었다. 단지 그 양이 많지 않을 뿐.

    심협은 잠시 망설이다가 법력을 움직여 이 방울을 울려보았다.

    딸랑, 딸랑…….

    맑은 방울 소리가 방 안에 메아리치는 것이 듣기 좋았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헛!”

    방울이 울린 뒤, 그 안에 담긴 기이한 힘이 단숨에 대폭 소모되었던 것이다.

    “이, 이놈아! 어서…… 멈춰라…….”

    고통스러운 비명은 허리춤에 달린 건곤대, 장군귀물의 것이었다.

    황급히 신식을 건곤대에 집어넣은 심협은 또다시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건곤대 안에서는 장군귀물이 잔뜩 고통스러운 얼굴로 비틀거렸고, 온몸의 귀기가 거세게 일렁이며 빠르게 풀어지고 있었다.

    심협은 재빨리 방울을 거두려 했지만 방울은 아예 그의 통제를 벗어나 여전히 제멋대로 울려댔다.

    바로 그때, 장군귀물의 얼굴에서 고통스러운 빛이 갑자기 사라지더니 멍해지기 시작했다. 그의 눈빛은 활기가 없이 텅 비었으며, 마치 강기슭에서 보았던 귀물들처럼 뭔가가 모든 영지(靈智)를 앗아간 듯했다.

    지금껏 순귀술로 장군귀물을 길들이려 했던 차라 그 영향이 아직 남아 있어서 심협은 지금 이 귀물의 상태를 더 분명하게 감지할 수 있었다. 장군귀물의 영지는 그 방울소리의 영향으로 완전히 혼돈 상태가 되어 모든 저항력을 상실했다.

    ‘이 방울이 이토록 대단하다니! 응혼기 여귀조차 이 방울 앞에서는 전혀 저항할 수가 없구나. 허나 이 안에 남은 힘이 많지 않아 기껏해야 한두 번 더 울릴 수 있겠어.’

    심협은 방울의 효력을 두 번째 보는 것이었지만, 여전히 감탄했다.

    ‘이놈은 이제 영지가 어두워졌으니 순귀술로 완전히 굴복시키기 딱 좋겠어!’

    그는 즉시 건곤대를 꺼내 손에 들고 두 손에 검은 빛을 한 겹 띄워 수레바퀴처럼 결인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무수한 검은 부적 문양이 그의 손끝에서 쏘아져 날아가 폭우가 내리듯 주머니 안으로 몰려들더니 장군귀물의 머릿속으로 스며들었다.

    장군귀물은 영지가 텅 비어버린 상태라 체내의 귀기도 산만하게 흐트러져서 전혀 저항하지 못했다.

    검은 부적 문양은 장군귀물의 머릿속 깊은 곳까지 쉽게 들어가더니 한데 뭉쳐 차츰 검은 부적 문양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이는 통령역요 법술의 통령 표식과 매우 비슷했다.

    사실 귀신을 부리든 요괴를 부리든 원리는 마찬가지였다. 상대방 몸속에 자신의 표식을 심어서 상대방을 조종하는 것.

    심협은 기뻐하면서 두 손을 계속 빠르게 결인했고, 검은 부적 문양은 천천히 온전해져 곧 형태를 이루려 했다.

    바로 그때, 방 안에 울려 퍼지던 방울 소리가 갑자기 줄어들더니, 곧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이에 장군귀물의 텅 비었던 눈빛에 파동이 일며 다시 맑고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큰일이다!’

    심협은 이 상황을 감지하고 가슴이 철렁했다. 그는 순귀술을 이제 갓 익히기 시작한 터라 장군귀물이 영지를 회복한다면 분명 필사적으로 벗어날 터였다.

    심협은 이를 악물고 다시 한번 방울을 흔들었다.

    딸랑!

    또다시 방울소리가 울렸다. 동시에 장군귀물은 몸을 부르르 떨더니, 약간 회복되었던 눈빛이 다시 공허해져 우두커니 서 있었다.

    심협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 쉬고는 두 손으로 계속 결인했다.

    잠시 후, 그는 입가에 한 줄기 미소를 지으며 결인한 두 손을 거두었다.

    장군귀물의 이마 위에 한 차례 검은 빛이 떠오르더니 이내 완전한 검은 부적 문양이 그 속에 나타났다.

    그 무렵, 방울소리는 천천히 멈추더니 곧 다시 사라졌다.

    다음 순간, 구리방울에 갑자기 노란 빛이 한층 떠올랐고, 몇 번 흔들렸다. 그러더니 방울은 별안간 이전의 노란 부적으로 변해 스스로 불타올랐다.

    심협은 손을 뻗어 막아보려 했지만, 노란 부적은 순식간에 재로 변해 바람을 타고 흩어졌다.

    이 광경을 본 그는 한숨을 내쉬며 어쩔 도리 없이 손을 내렸다.

    “이, 이게 어찌 된 일이지? 몸이 말을 듣지 않아!”

    얼마 안 있어, 건곤대 속의 장군귀물이 정신을 차리고는 경악했다.

    “내가 순귀술로 네 몸속에 신혼의 표적을 심었다. 오늘부터 나를 잘 보필한다면 내 너를 홀대하지 않을 것이다.”

    심협은 신식으로 장군귀물과 소통하면서 결인하여 건곤대를 가리켰다. 그러자 건곤대 안에서 장군귀물의 몸을 휘감고 있던 무수히 많은 검은 실들이 전부 풀어지면서 빠르게 건곤대 속으로 녹아들었다.

    장군귀물은 자유를 되찾았지만, 심협의 말에 멍해졌다가 뒤이어 분노로 표정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그의 머리에 검은 부적 문양이 갑자기 밝아지더니 기이한 힘이 의식 속으로 침입해 정신을 조종했다. 그러자 저도 모르게 심협에 대한 복종심이 생겨났다. 이에 장군귀물은 얼굴에서는 노기가 천천히 사라지고 망연해졌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눈에는 다시 노여움이 떠올랐고, 곧이어 이마의 표식이 밝아지면서 노기가 다시금 진정되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마침내는 평온해져, 주머니 속에 반쯤 무릎을 꿇은 채 완전히 굴복한 모습으로 심협에게 예를 갖추었다.

    “주인님을…… 뵈옵니다.”

    장군귀물의 표정 변화를 눈여겨보던 심협은 순귀술의 정묘함에 감탄했다.

    “좋다. 오늘부터 너를 귀장(鬼將)이라 부르마.”

    그는 검붉은 해골 등 세 귀물이 지녔던 음기의 핵심을 꺼내 건곤대 안으로 던져 넣었다.

    “주인님의 후한 선물에 감사드립니다!”

    세 물건을 받아 든 귀장은 얼굴에 희색을 띠며 다시 한번 감사를 표했다.

    심협은 드러나지 않은 커다란 근심덩어리를 제거했을 뿐만 아니라, 강력한 응혼기 조수를 얻게 되자 가슴이 살짝 떨려왔다.

    그는 건곤대에서 신식을 회수했고, 눈을 감은 채 정신을 가다듬어 순귀술을 쓰느라 소모한 신혼의 힘을 회복했다.

    그때, 대당관부의 복식을 한 시종 하나가 문밖에 와 공손히 말했다.

    “육 선생, 국공 대인께서 선생과 심 공자를 대전에서 뵙기를 청하십니다.”

    심협은 벌떡 일어나 내실을 훑어본 후 소리 높여 답했다.

    “알겠소. 곧 가겠소이다.”

    시종은 응접실에 심협 홀로 있는 것을 흘끗 보고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이내 대답하고 돌아서서 떠났다.

    심협이 내실로 향했을 때, 육화명은 여전히 눈을 감은 채 단잠에 빠져 있었다. 바깥의 기척을 못 들은 듯했다.

    “육형, 일어나시오. 국공 대인께서 우리를 찾으신다 하오.”

    그는 육화명을 가볍게 흔들었다. 한데 육화명은 깊이 잠든 모양인지 깨어나지를 않았다.

    심협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수련하는 사람은 심지어 연기기 수련자라 해도 이토록 깊이 잠드는 경우는 찾기 힘들었다.

    “육형!”

    심협은 더 크게 소리쳤다.

    육화명은 그제야 몸을 부르르 떨더니 일어나 천천히 눈을 떴는데, 그 눈동자에 희뿌연 빛이 한 겹 떠올라 있고 눈빛이 텅 빈 것이 무언가 이상했다.

    “육형…….”

    심협은 화들짝 놀랐다.

    그때, 육화명이 갑자기 고개를 홱 돌리더니 심협의 얼굴을 향해 한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실체를 지닌 듯한 장풍이 성난 파도처럼 몰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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