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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307화 (307/1,214)

307화. 귀신 떼와의 악전고투

심협은 침착했다. 아니, 오히려 미묘하게 미소를 짓기까지 했다. 그러더니 손의 검결을 갑자기 바꾸어 손끝에서 붉은 빛을 강하게 내뿜으며 허공을 가리켰다.

그러자 유혼귀물의 뱃속으로 빨려 들어갔던 순양검배에서 붉은 불꽃이 일었다. 바로 홍련업화였다.

검은 실들은 홍련업화에 단번에 불타 마디마디 끊어져 연기로 흩어졌고, 한순간 자유를 되찾은 검배는 검광을 거세게 일렁이면서 사납게 앞을 베며 튀어나왔다.

“끼이야악!”

유혼귀물은 처참한 비명을 내질렀다. 순양검배에 베인 그의 등줄기에는 1장 크기의 상처가 생겨났고, 그곳에서 가닥가닥 귀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때, 심협이 한 손으로 푸른 단부를 휘둘렀다. 그러자 굵직한 푸른 번개가 쏘아져 나와 유혼귀물의 몸에 꽂혔다.

꽈르릉!

푸른 번개가 폭발하며 유혼귀물의 몸을 거의 절반 가까이 찢어발겨 검은 기운으로 흩어버렸다.

순양검배는 유혼귀물의 몸속에서 나오지 않고 영광(靈光)을 번쩍이며 반대 방향을 매섭게 베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무언가 찢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귀물의 몸에 더욱 큰 검흔(劍痕)이 생겨났다.

이 일격으로 유혼귀물의 몸은 완전히 폭발하며 허무로 되돌아갔고, 귀기 속에서 검고 둥근 구슬이 하나 떠올라 놀라운 음기를 뿜어냈다.

“어서! 저 구슬을 내게 줘!”

건곤대가 끊임없이 요동치면서 그 안의 장군귀물이 흥분하여 소리쳤다.

심협은 손을 흔들어 구슬을 손에 넣고는 손 가는대로 건곤대 안으로 던져 넣은 뒤, 곧장 강기슭의 백성들을 향해 날아갔다.

쉬쉬쉭!

또다시 두 마리 귀물이 앞을 가로막았다. 머리에 뿔 두 개가 나 있고 엉덩이에 긴 꼬리가 달린, 어린아이만 한 핏빛 귀물과, 반대로 키가 2장쯤 되는 데다 검푸른 얼굴에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흉악한 강시였다.

두 귀물의 귀기는 좀 전의 유혼귀물에 미치지는 못했지만 같은 응혼기 단계라 큰 차이는 아니었다.

녀석들은 앞을 막아서는 동시에 각각 공격을 해왔다.

핏빛 귀물이 한쪽 발에서 강한 혈광을 내뿜으며 허공을 움켜쥐자 길이가 3장에 이르는 핏빛 발이 짙은 피비린내를 풍기며 날아왔다.

한편 검푸른 얼굴의 강시는 눈이 아플 정도로 노란 빛이 번득이는 커다란 주먹을 휘둘렀는데, 웅장하고 거대한 힘이 미친 듯이 용솟음쳤다.

심협은 곧바로 머리 위의 금갑선의를 작동시켰다. 그러자 종 모양 보호막이 나타나 두 귀물의 공격에 맞섰다.

댕! 댕!

두 번의 굉음이 울리면서 귀물의 핏빛 발이 부서졌고, 검푸른 얼굴의 강시도 몸을 크게 떨며 나가떨어졌다.

하지만 두 귀물의 공격도 강력했기에 보호막이 웅웅 울렸고, 그 안에 있던 심협의 몸도 함께 진동했다.

심협은 이 상황에 탄식했다.

‘금갑선의를 지녔다고는 하나 나의 자질이 평범하여 같은 경지의 존재에 비하면 법력이 뒤처지는군.’

그때, 뒤에서 잿빛 그림자가 어른거리더니 검붉은 해골이 느닷없이 나타났다.

이 해골은 보통 사람만 한 크기였고, 눈에는 시퍼런 빛 두 덩이가 번득였으며, 몸뚱이는 너덜너덜했다.

그러나 귀기는 좀 전의 유혼귀물보다도 강해 거의 응혼기 정점에 다다라 있었다. 또한 그 귀기는 화약처럼 유달리 거칠고 사나웠다.

해골이 뼈만 남은 두 손을 가슴 앞으로 뻗는 시늉을 하자, 붉은 빛이 번쩍였고, 손바닥 사이에서 맷돌만 한 불덩어리가 나타났다.

그 안에서는 흉악한 해골 머리가 어른거리며 기이하고 뜨거운 기운이 밀려나왔다. 마치 땅속에 천만 년 동안 깊이 묻혀 있던 관이 타올라서 만들어진 듯 짙은 원한의 기운도 띠고 있었다.

검붉은 해골은 붉은 불덩이가 응집되자마자 양손으로 즉시 떠밀었다. 그러자 거대하고 붉은 불덩어리가 별똥별처럼 튀어나와 심협이 반응할 틈도 없이 금갑선의의 보호막을 매섭게 두들겼다.

꽈르릉!

굉음이 천지를 뒤흔들었다.

이어 불구름이 검붉은 버섯 모양으로 솟아오르며 보호막을 뒤덮었다.

나무다리 주위는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리기 시작했고, 뜨거운 열기가 휘몰아쳐 근처 지면을 한 겹 깎아냈다. 이어 무수한 자갈이 화살처럼 사방으로 튀었다.

검붉은 불구름 깊은 곳에서 종 모양 보호막이 격렬하게 진동하면서 빠르게 희미해졌고, 여러 갈래의 균열이 나타났다.

심협은 창백하게 변한 얼굴로 일사불란하게 결인했다. 그리고는 보호막을 꽉 누른 채 체내의 법력을 있는 대로 주입했다. 덕분에 보호막은 본래의 노란 빛을 되찾았고, 균열들도 빠르게 메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때, 한 가닥 붉은 불꽃이 날아들어 심협의 종아리에 떨어졌고, 순식간에 그의 옷을 태우고 종아리 안으로 녹아들었다.

전심전력으로 금갑선의를 유지하느라 정신이 없던 심협이 그 불꽃의 존재를 눈치챘을 때는 이미 몸속으로 스며든 뒤였다.

화르륵!

붉은색 불꽃 한 무더기가 심협의 다리 위에 떠오르면서 주위의 살갗이 금세 시커멓게 변했다.

마치 독사가 혀를 날름거리는 것처럼 붉은 불꽃은 혈육의 정기를 집어삼키며 빠르게 커지더니 주위로 퍼져 나갔다.

“헛!”

심협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아 황급히 법력을 운공해 붉은 불꽃을 막았다.

하지만 이 불꽃은 그의 혈육에 착 달라붙은 상태라 법력으로는 불꽃의 확산을 막을 수 없었다.

“이것은 무슨 불꽃이기에 이렇게 지독하단 말인가! 이렇게 된 이상 대개박술을 쓰는 수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심협은 아직 완전히 익히지 못한 대개박술을 운공했다.

부드러운 하얀 빛이 그의 종아리 주위에 나타나 상처를 뒤덮자 붉은 불꽃은 일순 더는 퍼져 나가지 않았다.

한숨 돌린 심협은 즉시 온몸의 법력을 종아리로 모았다. 눈부신 푸른 빛이 그의 다리 위에 떠올랐고, 세찬 충돌에 이어 붉은 불꽃은 순식간에 꺼졌다.

심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대개박술로 손상된 몸을 회복하다가 별안간 안색이 굳어졌다.

그의 대개박술은 이미 살갗을 벗기고, 살을 가르며, 뼈를 깎는 세 단계를 완성했다. 그렇기에 근육과 피부, 뼈에 입은 부상은 순식간에 좋아지기 시작했으나, 이 불꽃의 위력은 이미 종아리의 족소음신경(足少陰腎經)에 침투해 있었던 것이다. 족소음신경은 빠르게 오그라들고 있었다.

애가 탄 심협은 아직 경맥을 가다듬는 단계를 완전히 익히지 못했음에도, 물불 가리지 않고 온 힘을 다해 대개박술의 힘을 불러일으켜 경맥에 쏟아부었다.

경맥 안에서는 수만 개의 쇠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극심한 통증이 일었고, 심협은 참지 못하고 신음을 흘렸다.

대신 격렬한 통증 덕에 머리가 맑아졌고, 대개박술의 모든 내용이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마치 강둑이 터지듯 쏟아졌다.

그 찰나의 순간, 심협은 어떤 난관을 돌파한 듯 대개박술에 대한 이해가 완전히 새로운 차원에 도달했다.

대개박술의 힘을 순조롭게 주입해 넣자 족소음신경에 하얀 빛이 한 겹 떠올랐고, 오그라들었던 경맥이 순식간에 원래 상태를 되찾았다. 뒤이어 거대한 법력이 벌떼처럼 몰려들면서 경맥 안에 남은 불꽃의 힘은 곧 사라져버렸다.

대개박술의 난관이 뜻밖에도 전투 중에 뚫려 경맥을 가다듬는 수준에 이르렀으니, 이제 현음개맥결을 수련할 수도 있게 된 심협은 기뻐했다.

다만 그 모든 것은 이 전투를 끝낸 후에야 가능한 일이었다.

심협은 대개박술을 운공해 종아리의 부상을 회복하는 한편, 손으로 검결을 맺었다. 그러자 붉은 빛이 번쩍이며 난데없이 순양검배가 나타났다.

심협이 다시 한번 손목을 떨치자 순양검배는 길이가 10여 장에 이르는 붉은 검홍(劍虹)으로 변했다.

이 검홍 위로 새빨간 불꽃이 나타나 고리 형태의 빛 자국을 남기며 검붉은 해골을 포함한 세 귀물을 단숨에 베었다.

심협이 순양검결을 수련하면서 순양검배를 움직이는 속도가 훨씬 빨라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세 귀물은 심협의 반격이 이렇게 빠를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지 완전히 피해내지 못하고 검홍에 부상을 입고 말았다.

핏빛 귀물은 왼팔이 잘려나갔고, 검푸른 얼굴의 강시는 가슴에 커다란 상처가 생겨나 내장이 훤히 드러났다. 심협에게서 가장 가까이 있던 검붉은 해골은 두 손이 깎여 나갔다.

특히 세 귀물의 상처에는 홍련업화가 약간 물들었는데, 모든 귀물과 상극인 이 불은 방금 검붉은 해골이 붉은 불꽃을 내뿜었던 것처럼 빠르게 타들어갔다.

세 마리 귀물은 황급히 몸에 붙은 홍련업화를 꺼보려 했으나, 심협이 이를 보고 있을 리가 없었다. 그가 손에 검결을 바꾸자 거대한 검홍이 수십 갈래의 자그마한 검홍으로 나뉘어 폭우처럼 세 귀물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하지만 이 세 귀물은 본디 실력이 약하지 않았기에 심협이 전력을 다해도 쉽게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러는 동안 양쪽 강기슭에서는 이미 몇 사람이 강으로 뛰어들더니 불길 속으로 날아드는 불나방처럼 검진을 향해 거침없이 돌진했다.

금빛 검영이 번쩍 스치더니 이들은 두 토막 나 사방으로 피를 뿌리며 즉사했다. 동시에 그들의 몸 주위를 휘감았던 검은 기운은 시체 속으로 녹아들었고, 시체는 금세 칠흑 같이 시커멓게 변하더니 그대로 폭발해 검붉은 핏자국이 되어 금색 빛기둥에 달라붙었다.

그러자 빛기둥 속 금빛이 번쩍이면서 검기가 와르르 터져 나와 즉시 핏자국을 절반 이상 날려 보냈지만, 여전히 검붉은 자국이 그 위에 철썩 달라붙어 있었다.

눈부신 빛을 발하던 금색 빛기둥은 이내 조금 어두워졌고, 그 안을 맴돌던 검영도 조금 느려졌다.

“하하하! 역시 효과가 있군! 어리석은 인간놈들, 고(孤)의 용 머리가 곤경에서 벗어나도록 제물이 되어라. 크하하하!”

중년 서생의 커다란 웃음소리가 검은 기운 안에서 들려오자 주위의 검은 기운이 크게 일렁이며 금빛 검진을 향해 몰려갔다. 이 기운은 지금까지보다 훨씬 묵직해 거의 액체처럼 보일 정도였다.

검은 기운은 눈 깜짝할 사이에 10여 장을 뛰어넘어 금빛 검진을 겹겹이 포위했고, 빛기둥에 들러붙은 핏자국을 통해 그 안으로 스며들었다.

금빛 검진이 번쩍 밝아지면서 굵은 검영 수십 줄기가 주위의 검은 기운을 베자 검은 기운에는 수십 개의 구멍이 생겨났다.

하지만 이 검은 기운들은 즉시 합쳐져 계속 금빛 검진으로 스며들었고, 빛기둥은 다시 조금 더 어두워졌다.

그때였다.

“어느 간악한 놈이 감히 장안성에서 방자하게 날뛰느냐!”

천둥 같은 고함이 멀리서 울리는가 싶더니, 반응하기도 전에 멀리서 여러 줄기 둔광(遁光)이 날아왔고, 그곳에서 네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심협은 화색이 도는 얼굴로 그들을 힐끗 돌아보았다.

네 사람 중 우두머리는 바로 육화명이었고, 다른 세 사람도 대당관부의 복장이었는데 하나같이 경지가 약해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날아온 방향은 대당관부 쪽이 아니라 성 입구 쪽이었다. 막 성에 돌아오자마자 이곳의 동정을 알아채고 살펴보러 온 듯했다.

“심형! 이게 어찌된 일이오?”

육화명이 곧바로 심협을 알아보고는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육형, 때마침 잘 왔소이다!”

심협은 세 귀물과 싸우면서도 일의 경위를 간단하게 이야기했고, 이를 들은 육화명과 일행은 안색이 돌변했다.

“여러분, 정국공께서 말씀하시길, 이 금광하 아래에는 위공께서 직접 설치하신 금광검진이 사악한 물건 하나를 억누르고 있다 하셨소. 보아하니 저 용 머리를 말씀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육화명의 뒤에 있던 늘씬한 체격의 수려하고 우아한 젊은 여인이 말했다.

다른 두 사람은 젊은 남자들이었다. 한 사람은 눈썹이 짙고 입술이 붉은, 매우 수려한 청년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건장한 체구에 기골이 장대했다.

심협의 말에 의심이 들던 두 청년은 여인의 말에 의심을 거두고 곧장 경하용왕이 있는 곳으로 달려들려고 했다.

“잠깐! 나와 임(林) 사매가 경하용왕의 귀혼을 맡겠네. 왕(王), 손(孫) 두 사제는 백성들이 물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으시게!”

육화명이 재빨리 지시하자 세 사람 모두 그를 믿고 따르는 듯 즉시 답하고는 각자 역할을 하기 위해 날아갔다.

“버러지 같은 놈들! 저놈들을 막아라!”

검은 기운 속에서 중년 서생의 목소리가 울리자 근처의 귀물들이 즉시 달려 나가 육화명 일행을 막아서면서 한데 엉켜 싸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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