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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306화 (306/1,214)
  • 306화. 용혼(龍魂)

    심협은 잠시 숨을 고른 후, 마음을 다잡고 나니 많은 의문이 생겨났다.

    “저 금색 빛기둥은 무엇일까? 그 안에 검영들은 검진을 이루고 있는 것 같았는데……. 혹시 저게 바로 서생이 말했던 참룡검의 검기가 변하여 만들어진 법진인가? 그렇다면 위징은 왜 이곳에 이 법진을 설치했고, 또 그 서생은 왜 백성들을 강으로 끌어들여 검진을 작동시키려 한 것일까?”

    그 무렵, 주위로는 많은 백성이 몰려들었다.

    “봐, 저기에 선사 대인이 계셔!”

    “저 금빛은 뭐지? 보기만 해도 무서운 걸!”

    강기슭의 백성들은 심협과 강 속 금색 빛기둥을 가리키며 수군거렸다.

    하지만 조금 담이 큰 사람들은 강 속의 빛기둥을 보물이 세상에 나타난 것으로 여겼는지 강으로 몸을 날려 검진을 향해 헤엄쳐가기도 했다. 금빛 검진이 10여 명을 죽였지만, 그들의 시신은 강바닥으로 가라앉았고, 빛기둥이 너무 눈부셨으니 보통 사람들은 이곳의 상황을 제대로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여러분, 저 금빛은 위험합니다! 가까이 가지 마십시오!”

    심협이 황급히 외치며 손을 들고 강물을 가리켰다. 그러자 몇 장에 이르는 물의 벽이 솟아올라 강으로 뛰어든 백성들을 막아섰다.

    그때, 금빛 검진 안에 다시 이변이 생겨나더니 갑자기 끈적한 혈광을 줄줄이 쏘아냈다. 진한 피비린내가 자욱히 퍼져 나갔고, 금빛 검진 안에서는 으르렁거리며 울부짖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이 울부짖음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사람의 마음을 두렵게 만드는 힘이 담겨 있는 것인지 주위의 백성들은 두 손으로 귀를 막고 고통스런 표정으로 그제야 멀리 달아나려 했다.

    하지만 그들은 마치 두 발이 못 박힌 것처럼 아무리 용을 써도 걸음을 뗄 수 없었다. 심지어 몸 전체가 통제를 잃은 듯 말을 듣지 않았다.

    심협도 당연히 그 울부짖음을 들었다. 그러자 조금 어지러웠지만, 법력을 운공해 몸을 감싸자 그 느낌은 곧 사라졌다.

    ‘이 울부짖음…… 어쩐지 낯이 익다.’

    그는 그렇게 다른 생각을 하면서도 어수지술로 백성들을 피신시키려 했다.

    그때였다.

    “크아아아!”

    금빛 검진 안의 울부짖음이 갑자기 열 곱절은 커졌다. 심협은 별안간 묵직한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고, 안색도 새하얗게 질렸다.

    기슭에 있던 백성들은 처참한 비명을 내지르며 족히 수십 명이 땅에 거꾸러져 일어나지 못하고 머리를 감싼 채 비명을 질러댔다.

    금빛 검진 속 강물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듯 용솟음치면서 마차만 한 무언가가 천천히 수면 위로 떠올랐다. 놀랍게도 커다란 금빛 짐승의 머리였다.

    이 짐승의 머리에는 금빛 비늘이 가득했고, 정수리쯤에는 산호 같은 금빛 뿔이 두 개 자라나 있었다. 그 눈은 구리 방울 같았고, 아래턱에는 수염이 자라 있는 것이 분명 용의 머리였다.

    다만 이 용의 머리는 핏빛을 띠어 더없이 요사스러워 보였다.

    “이럴 수가!”

    심협이 경악하는 와중에 어디선가 차가운 목소리가 울렸다.

    “홀로 남은 용 머리가 과연 여기에 있었군! 위징 네 이놈! 정말 파렴치하기 짝이 없구나!”

    이어서 금빛 빛기둥 근처의 허공이 일렁이더니 난데없이 그 백의서생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는 차갑게 웃더니, 두 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두 줄기 검은 빛이 그의 손바닥 한가운데에서 쏘아져 나와 집채만 한 검은 용의 발로 변하더니 곧장 빛기둥으로 들어가 용의 머리를 움켜쥐려 했다.

    빛기둥 안의 검진에서는 즉각 크고 작은 무수한 검영이 환한 금빛을 내뿜으며 검은 용의 발을 베었다.

    콰콰쾅! 콰쾅!

    커다란 굉음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검은 용의 발이 순식간에 쪼개지면서 검은 기운이 솟구쳤고, 부들부들 떨렸다. 그러나 곧바로 사라지지는 않았고, 힘겹게 버티며 금빛 검진 안으로 뻗어 들어가 용의 머리를 잡으려 했다.

    심협은 직접 금빛 검진의 위력을 겪어봤는데, 중년 서생은 놀랍게도 검진에 정면으로 맞섰다. 애초에 자신이 상대할 실력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강에 남겨진 금빛 법진은 정기(正氣)가 당당한 반면 이를 억누르고 있었던 용의 머리는 사악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런 위험한 것을 저 중년 서생에게 빼앗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협은 대당관부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아무도 오는 이가 없는 것을 보면 아직 이곳의 상황을 알아차리지 못한 게 분명했다.

    심협은 이를 악물고 푸른 단부(短斧)를 꺼내 허공을 내리쳤다. 그러자 줄줄이 굵고 커다란 푸른 번개가 뿜어져 나와 순식간에 하나로 모이더니 사람 물통보다 굵은 푸른 번갯불을 이루었다.

    그리고는 마치 천둥번개로 만들어진 성난 용처럼 중년 서생에게 돌진했다. 응혼기에 접어든 심협은 푸른 단부의 위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데 중년 서생 앞에 검은 그림자가 스쳐 지나더니, 키가 5장에 이르는 검은 유혼(幽魂) 귀물이 나타나 입을 쩍 벌렸다. 그러자 굵직한 푸른 번개는 순식간에 귀물의 입으로 빨려 들어가 사라졌다.

    “이, 이게 무슨……?”

    심협이 눈이 휘둥그레졌다.

    단부에 담긴 푸른 번개는 홍련업화만큼 강력하지는 않아도 귀물에 대한 억제 효과는 제법이었다. 그런데 상대에게 눈곱만큼의 부상도 입히지 못한 것이다.

    그 사이에 검은 용의 발 두 개가 억지로 빛기둥 속 무수한 검영을 뚫고 검진 안의 용 머리를 잡아 바깥으로 끌어내려 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우웅!

    날카로운 검명이 울리더니 수십 장 크기의 기이한 금빛 검영이 검진 안에 나타났고, 그 검기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

    거대한 검영은 위풍당당한 참마(斬魔)의 기운을 뿜어내면서 나타나기가 무섭게 하늘 높이 솟아올라 검은 용의 발들을 내리찍었다.

    쫘악!

    마치 종이가 찢겨나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검은 용의 발은 가뿐하게 잘려나갔고, 곧 검은 기운이 되어 금빛 검망(劍芒)에 의해 증발해버렸다.

    중년 서생도 검영의 일격에 튕겨나가 나무다리 위에 떨어졌다.

    심협은 내심 기뻐하며 잠깐 망설이다가 나무다리 위에 내려섰다. 그러나 중년 서생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 30여 장 거리를 뒀다.

    검은 유혼귀물도 빠르게 날아와 중년 사내 곁에 내려서서는 경고의 뜻이 가득 담긴 시뻘건 눈으로 심협을 빤히 노려보았다.

    “위징이 과연 지독하구나. 이미 세상을 뜬 지 오랜 세월이 지났건만, 금광검진(金光劍陣)의 위력이 여전하여 고(孤: 고대 중국에서 왕이나 제후가 자신을 낮춰 부르던 말)가 다가서지도 못하게 한단 말인가. 하는 수 없지. 그들의 생각대로 탐욕스러운 인간족의 목숨을 바쳐 법진을 뚫는 수밖에…….”

    중년 서생은 금색 빛기둥을 보며 담담한 표정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귀하는 대체 누구십니까? 이렇게 잔인한 수법으로 법진을 깨뜨리려 하다니요! 한 마리 비단잉어에게는 자비심을 가져놓고 이토록 사람 목숨도 아랑곳하지 않다니, 천벌을 받을까 두렵지도 않으시오!”

    심협은 멀리서 상대의 혼잣말을 듣고는 노여움을 참지 못하고 꾸짖었다.

    “흥! 위징 그놈은 고를 베어 죽이기 전에 금빛 검기로 고의 용 머리를 강바닥에 가라앉혔지. 이 씨 천하가 하늘의 명령에 순응했다고 해서 나의 경하족 사람들 모두가 도마 위에 누워 얌전히 처분을 기다려야 하겠느냐?”

    중년 서생의 차디찬 대꾸에 퍼뜩 심협의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고를 베어 죽였다고? 용 머리? 당신은…… 경하용왕의 혼령! 아니지, 그날 저승에서 우리가 분명 당신을 봉인했는데……”

    “인간족 녀석아. 고는 오늘 해야 할 일이 있느니라. 네가 그날 고가 곤경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준 공로를 보아 오늘 네 목숨은 거두지 않으마. 그러니 눈치껏 물러나라. 계속 성가시게 군다면 인정사정 봐주지 않을 것이다!”

    중년 서생은 싸늘하게 한마디를 남기고는 심협에게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리 위에 가부좌를 튼 채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그러자 그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맹렬히 피어올라 전신을 완전히 뒤덮으며 물결처럼 세차게 용솟음치기 시작했다.

    마치 무슨 비술을 펼치는 것처럼 알아들을 수 없는 주문이 검은 빛 가운데에서 간간이 들려왔다. 이어서 금빛 검진 안에 있던 용의 머리가 울부짖음을 멈추었고, 그의 온몸에서는 검은 기운이 떠올라 용의 머리에서 뿜어져 나온 혈광과 한데 뒤엉켰다.

    쾅!

    굉음과 함께 마치 불에 기름을 끼얹은 것처럼 혈광이 거칠게 솟구쳤고, 동시에 용 머리의 두 눈도 가닥가닥 혈광을 띤 채 되살아난 것처럼 끊임없이 검진에 부딪혔다.

    용 머리의 울부짖음이 그치자 양쪽 강기슭의 백성들은 통제력을 회복하고는 허겁지겁 달아나 이내 모두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심협의 예상과는 달리 중년 서생은 도망치는 백성들을 놔둔 채 계속해서 주문을 읊조렸다. 그러자 그의 몸 주위를 휘감은 검은 기운이 갑자기 땅바닥으로 퍼져 나가면서 눈 깜짝할 사이에 반경 10여 장을 검은 기운으로 물들여 버렸다.

    검은 기운은 너무나 짙어서 땅바닥에 시커멓고 거대한 동굴이 생겨난 것처럼 보여 보는 것만으로도 간담이 서늘해졌다.

    심협은 화들짝 놀라 즉시 뒤로 피해 거리를 벌렸다.

    검은 기운 속에서는 무수한 검은 부적 문양이 나타나 빠르게 한데 뭉치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법진 도안을 이루며 끊임없이 번쩍거렸다. 여러 줄기의 귀신 그림자가 법진에서 튀어나와 순식간에 수십 마리 귀물로 변하더니 중년 서생을 가운데 두고 겹겹이 에워쌌다.

    이 귀물들의 기운은 모두 벽곡기 이상이었는데, 그중 몇 마리의 귀기는 유달리 강력한 것이 분명 응혼기 단계인 듯했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귀물이 점점 많아진다. 이쪽의 동정이 이러하니 대당관부에서 느끼지 못했을 리 없건만 어찌 아무도 오지 않는 것인가.’

    심협은 점점 초조해졌다. 그 혼자서는 이토록 많은 귀물을 상대할 방법이 없었고, 중년 서생이 용 머리를 거두어가는 것은 더더욱 막을 수 없었다.

    그때였다. 양쪽 강기슭에서 발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백성들이 커다란 무리를 이루어 몰려오고 있었다.

    “다들 여기서 뭐 하는 겁니까? 여기는 위험하니 어서 떠나시…….”

    그는 다급하게 고함을 질렀으나, 미처 말을 마칠 수도 없었다.

    백성들의 눈은 이지를 상실한 듯 멍했고, 검은 기류가 작은 용처럼 그들의 몸을 휘감은 채 빠르게 빙빙 돌고 있었다. 누군가가 이술(*異術: 사악한 법술)로 조종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이들은 심협의 목소리에 전혀 반응하지 않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강 속의 금빛 검진을 향해 걸어갔다.

    이를 차마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심협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뱉으며 몸을 날렸다.

    그러나 그 순간, 눈앞에 검은 그림자가 번뜩이더니 유혼귀물이 번쩍 하고 나타났다. 그 신법은 불가사의할 정도로 빨라서 말 그대로 귀신처럼 심협의 가슴팍을 향해 발길질을 해댔다.

    심협은 화들짝 놀라 사월보를 펼쳐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몇 장 밖에서 나타나 푸른 단부를 휘둘렀다.

    파지직!

    우렛소리가 크게 일더니 굵직한 푸른 번개가 뿜어져 나와 유혼귀물을 향해 날아갔다.

    동시에 심협이 다른 손으로 검결을 맺자 붉은 검광이 그의 몸에서 쏘아져 나와 반대 방향에서 유혼귀물을 향해 날아들었다. 이 검광은 순양검배였다.

    유혼귀물은 피하는 대신 입을 쩍 벌렸다. 그러자 소용돌이 같은 검은 빛 고리가 그 입에서 나타나 거센 흡입력을 발했고, 주위 공기가 거세게 일그러졌다.

    푸른 번개와 순양검배는 두 마리 물고기처럼 유혼귀물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가 뱃속으로 꿀꺽 집어삼켜졌다.

    유혼귀물의 몸속에는 건곤대 내부와 비슷해 보이는 검은 공간이 하나 있었다. 수많은 가느다란 검은 기운이 그곳에서 넘실거리며 푸른 번개와 순양검배를 겹겹이 감싸고 빠르게 안으로 침식해 들어갔다.

    푸른 번개는 금세 흩어져 이 공간 속에 녹아든 것 같았고, 가닥가닥 검은 실이 순양검배를 휘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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