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304화 (304/1,214)
  • 304화. 경하용왕

    “금 소가, 사양하지 마시오. 이런 금은 따위는 내게 아무것도 아니오. 수고스럽겠지만 그대의 숙부님 일을 내게 자세히 말해주겠소?”

    “그야 문제없지요. 숙부님께서는 사고를 당하셨을 때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고 계셨는데, 그때 성 서쪽 대안탑(大雁塔) 방향에서 무슨 기척이 난 것 같다고 하시더군요. 아무튼 제가 숙부님을 찾아갔을 때는 땅바닥에 웅크리고 바들바들 떠시면서 무슨 귀신이 있다느니 그러셨고, 아무리 불러도 깨어나지 못하셨어요!”

    금불환의 답변에 심협은 다시 캐물었다.

    “숙부님께서 그 귀물이 어떻게 생겼는지 말씀해주셨소?”

    “아니오.”

    금불환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 지금 숙부님의 상태는 어떠하시오?”

    “숙부님께서는 그 뒤로 넋이 나가셔서는 멍하니 아무 말도 하지 못하십니다. 의원 몇 명에게 진맥을 받았지만 차도가 없네요. 휴우…….”

    금불환은 또다시 근심어린 탄식을 내뱉었다.

    “내가 의술을 조금 하는데, 나중에 그대 숙부님을 보게 해주겠소?”

    심협이 조심스레 물었다. 만약 금불환의 숙부가 귀물에게 해를 입은 것이라면 이번에 그 귀물에 대한 단서를 알아낼 수 있을 터였다.

    “손님께서 의술을 아십니까?”

    금불환은 조금 의심스러워하며 심협을 보았다.

    “아우님은 오늘 수시로 왼쪽 어깨가 쑤시는 느낌을 받지 않았소? 저녁에는 손발이 마비되기도 할 텐데……?”

    심협은 신식으로 금불환의 몸을 훑은 결과 그의 왼쪽 어깨의 기혈 흐름이 조금 원활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는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손님께서 그걸 어찌 아셨습니까?”

    금불환이 놀라워하며 말했다.

    “의술을 하는 자는 보고, 듣고, 묻고, 맥을 짚으니, 자연히 많은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소.”

    “손님께서는 정말 신의시군요! 꼭 우리 숙부님을 뵈어 드리겠습니다.”

    금불환은 더 이상 의심하지 않고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좋소.”

    심협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중년 서생이 일어나 밖으로 나가는 것을 흘끗 보고는 두 사람을 물러가게 한 뒤 몸을 일으켜 그를 맞았다.

    “우리는 정말 인연이 있나봅니다. 또 만났군요.”

    “당신이오? 그대도 당황(*唐皇: 당나라의 천자, 주로 당 태종을 가리킴)이 사기를 쳐서 30년의 양수(*陽壽: 이승에서의 수명)를 얻은 이야기를 들으러 왔소?”

    중년 서생은 심협을 보고 미소 지으며 말했다.

    “사기를 쳐서 30년의 양수를 얻었다고요?”

    심협은 순간 멍해졌다.

    그는 방금 점소이, 금불환과 이야기를 나누느라 가게 안의 설서꾼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주의하지 않았고, 그저 어렴풋이 무슨 ‘저승을 떠돌던 태종의 혼이 되살아나 수륙초도(*水陸超度: 불교에서 물과 육지에서 죽은 영혼들이 극락으로 건너가는 것)하여 왕생하였다’ 같은 말 따위를 어렴풋이 들었을 뿐이었다.

    “당황은 경하용왕 대신 용서를 구해보겠다고 약조했지만, 한 입으로 두 말을 했지. 두 사람이 저승에서 시비를 가릴 때 저승 놈들이 부귀영화를 탐하여 경하용왕의 넋에게 중벌을 내렸을 뿐만 아니라, 당황에게 양수를 30년이나 더 주었고 말이오. 흥!”

    백의서생의 표정은 분하고 원통해 보였다.

    ‘경하용왕!’

    심협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일전에 저승에서 호용이 풀어주려 했던 것이 바로 경하용왕의 넋 아니던가. 당시 정교금도 그 일에 대해 입을 꼭 다물고 더 말하려 하지 않았다.

    “오, 그대는 경하용왕의 일을 모르는 것 같구려. 그럴 수 있지. 당황이 그런 죄업을 저질렀으니 사방에 떠벌리고 다니지 못하게 했을 게야. 저 설서꾼도 당시 일들의 자질구레한 이야기들만 입에 올리니 너무 재미가 없구려.”

    백의서생은 차게 웃더니 다시 걸음을 옮겼다.

    “잠깐.”

    심협은 재빨리 몸을 움직여 다시 그를 가로막았다.

    “아직 내게 볼일이 남았소?”

    백의서생이 미간을 찌푸렸다.

    “궁금한 게 있어서 그러오. 선생께서 일전에 그 어부에게 물고기를 샀을 때, 그때 그 금비늘은 어디서 얻으신 겁니까?”

    심협이 공수하며 물었으나, 서생은 쥘부채로 손바닥 한가운데를 두드리면서 담담히 말했다.

    “내가 어디서 얻었든지 귀하와 무슨 상관이오?”

    “평범한 금은이라면 저 또한 당연히 신경 쓰지 않았을 겁니다. 한데 이 금빛 용비늘에는 아주 깊은 귀기가 서려 있어 장안성의 귀환과 연관이 있는 듯하니, 꼭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심협이 말했다.

    “오, 그게 용비늘이라는 것을 느꼈다니, 그대의 안목이 썩 괜찮구려. 허나 그걸 알고자 한다면 그대 스스로 알아보면 될 일이오.”

    그 말을 남긴 백의서생은 피식 웃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가 천금루 밖에 나타났다. 그리고는 성 동쪽으로 향했다.

    심협은 안색이 변하여 즉시 사월보를 전력으로 시전해 뒤를 쫓았다.

    하지만 그 서생의 신법(身法)은 마치 귀신같아서 거의 눈 깜짝할 새에 멀어지더니 사람들 틈으로 사라져 버렸다.

    심협은 잠시 뒤쫓다가 멈춰 섰다. 하지만 상대방의 신법에 깜짝 놀라긴 했어도 어차피 영고가 있으니 놓칠 걱정은 없었다.

    ‘그 서생의 몸에는 법력의 파동이 전혀 없었는데 그리도 재빠르다니. 경지가 나보다 훨씬 뛰어난 고수인가?’

    그가 잠시 생각에 잠겨 있을 때였다.

    “귀신이야! 오지 마!”

    어디선가 여인의 날카로운 비명이 들려왔다.

    “백주 대낮에 귀신이?”

    심협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바로 이 음기다! 그 귀물이야!”

    건곤대 속에서 장군귀물이 소란을 피우며 낮은 소리로 울부짖었다.

    심협은 낯빛이 변하여 곧장 몸을 날려 소리의 근원지로 내달렸고, 눈 깜짝할 사이에 높고 커다란 누각으로 날아들었다.

    누각 입구의 편액에는 유향각(留香閣)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유흥을 즐기는 곳인 듯했다.

    심협은 신식을 뻗어 소리가 난 곳을 찾아냈고, 어느 창가 쪽 방에 이르렀다.

    “귀신이야! 가까이 오지 마! 살려줘요! 우우우…….”

    방 안에는 궁장 차림의 소녀 하나가 웅크리고 있었는데, 얼굴은 눈물범벅이 되어 무언가를 쫓아내려는 듯 겁에 질린 두 손을 허우적대고 있었다.

    “낭자, 무슨 일입니까?”

    심협이 공수하며 물었다.

    “난 아무것도 못 봤어! 난 아무것도 못 들었어! 엉엉. 너무 무서워.”

    소녀는 뭔가에 놀라 넋을 놓은 듯 전혀 소통이 되지 않았다.

    이를 본 심협은 두 손을 소녀의 면전에 대고 흔들며 열 손가락을 튕겨 천화난추(*天花亂墜: 하늘에서 꽃잎이 비처럼 흩날리는 현상)의 형상을 만들고는 마음을 안정시키는 법술을 시전했다.

    궁장 차림의 소녀는 심협의 수인(手印)에 따라 표정이 변하더니 가까스로 풀어져 두려움이 사라진 얼굴로 고개를 들어 심협을 보았다.

    “낭자, 두려워 마십시오. 저는 악한 자가 아닙니다. 그저 낭자의 비명을 듣고 와 보았을 뿐이지요. 낭자는 방금 귀신을 보았다고 하셨는데, 이 훤한 대낮에 정말 귀신이 있었단 말입니까?”

    심협은 시전하던 법술을 멈추고 다시 공수하며 말했다.

    “소녀가…… 방금 귀신이 이 아래층으로 지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머리가 없는 귀신이었어요! 귀신은 몸에서 물을 뚝뚝 떨어트리며 계속 ‘내 머리, 내 머리는 어디 있지’ 하고 중얼거렸어요! 정말…… 놀라서 죽을 뻔했어요. 흐흑!”

    소녀는 귀물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또다시 평정을 잃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엉엉 울기 시작했다.

    “연향(憐香) 아씨, 무슨 일이에요? 엇! 너는 웬 놈이냐?”

    때마침 비취색 옷을 입은 시녀 한 명이 바깥에서 뛰어 들어와 심협을 보고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경계하며 외쳤다.

    “무두귀(無頭鬼), 뚝뚝 떨어지는 물……. 잠깐, 울고 있는 소녀……. 그 도인이 말했던 곡하는 여인이 아닐까?”

    심협은 시녀를 아랑곳하지 않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다가 재빨리 그 부적을 꺼내 손가락을 탁 튕겼다. 부적은 눈에 보이지 않는 그림자로 변하여 방 안에 있는 두 사람의 시선을 피해 조용히 연향의 등에 달라붙었다.

    그 순간, 소녀, 연향의 얼굴에 어쩔 줄 몰라 하던 기색이 사라졌다.

    “주아(珠兒)야, 이게 어떻게 된 것이냐?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녀는 마치 방금 전에 벌어진 일을 완전히 잊은 듯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조금 겁먹은 표정으로 심협을 쳐다보았다.

    ‘그 귀화부(鬼畵符)가 정말 효과가 있구나!’

    심협은 잿빛 옷의 도인이 했던 세 가지 예언이 결코 거짓이 아님을 확신했다.

    “저는 방금 이곳에서 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와봤습니다. 낭자께서는 그 무두귀가 어디로 가는지 보셨는지요?”

    그가 연향에게 물었다.

    “저, 저는 모릅니다. 그 귀물은 아래층에서 번쩍하더니 그냥 사라져버렸어요.”

    ‘무두귀’ 세 글자를 듣자, 연향의 몸이 다시 사시나무 떨듯 떨리기 시작했다.

    “아래층이라…….”

    심협은 창가로 걸어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아래쪽은 번화가로, 햇빛이 찬란하고 사람들이 오갔다. 음기와 귀물의 흔적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실례 하겠습니다.”

    그는 두 여인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얼이 빠진 그녀들을 남겨둔 채 바깥으로 나갔다.

    지금 장안성은 워낙 귀환에 민감한지라 귀신이 나타났다는 소녀의 목소리에 유향각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바깥으로 도망가는 사람, 위층으로 달려 올라가는 사람 등 반응도 제각각이었다.

    심협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 곧 유향각을 빠져나와 사람들의 주의를 끌지 않고 누각 아래에 이르렀다.

    그는 신식을 뻗어 주위 상황을 살폈지만 아무것도 감지하지 못했다.

    “너는 그 귀물의 흔적을 느낄 수 있겠지?”

    그는 하는 수 없이 신식으로 건곤대 속의 장군귀물과 소통했다. 그러나 장군귀물은 오만불손하게 냉소했다.

    “내가 왜 네게 알려주어야 하느냐?”

    “너…….”

    심협은 장군귀물의 태도에 분노하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흥! 그런 얼치기 같은 순귀법으로 이 장군님을 굴복시킬 수 있을 줄 알았더냐! 아직 백 년은 이르다! 네놈이 쉬지 않고 자극한 덕에 나의 영지가 빨리 트일 수 있었으니 고맙구나. 하하하!”

    너털웃음을 웃는 장군귀물의 말투는 사람이나 다름없었다.

    심협은 그 말에 표정이 완전히 일그러졌다. 그는 그동안 순귀술로 끊임없이 이 장군귀물과 소통해왔기에, 이미 그가 절반 이상 길들여진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상황을 보아하니 이 귀물은 그동안 순종하는 척하며 오히려 그를 이용해 자신의 영지를 틔운 것이 아닌가!

    “그래? 네 영지가 이미 크게 트였다니, 아주 좋구나. 영지가 트인 응혼기 귀물은 분명 아주 좋은 값에 팔아넘길 수 있지.”

    심협은 화를 내는 대신 서늘하게 웃으며 신식으로 말을 전했다.

    그러자 장군귀물의 커다란 웃음소리가 뚝 그쳤다. 그러다가 잠시 후에 한 가지 제안을 해왔다.

    “거래를 하는 게 어떠냐? 내가 장안성의 귀환을 해결하도록 도와줄 테니 나를 자유롭게 놓아다오.”

    “그렇게는 안 되지. 너 같은 응혼기 귀물은 일단 속박에서 벗어나면 분명 무고한 생명에 손을 댈 터! 차라리 얌전히 내 건곤대에 머무는 게 좋을 것이다.”

    심협은 생각해보지도 않고 단칼에 거절했다.

    “흥! 네놈은 이 낡아빠진 주머니에 정말 나를 묶어둘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장군귀물은 벌컥 성을 내며 몸에 지닌 귀기를 폭발시켜 건곤대의 금제에 세차게 부딪쳤다. 그러자 건곤대가 진동하면서 가닥가닥 검은 빛이 떠올랐다.

    “무슨 짓이냐! 정말 죽고 싶은 게냐?”

    심협의 눈에 살기가 스치더니 손으로 건곤대를 누르며 검결을 맺었다. 그러자 순양검배가 소매에서 튀어나와 건곤대 안으로 날아 들어갔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은 누구도 이 변고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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