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303화 (303/1,214)
  • 303화. 금불환(金不換)

    “이게 뭐하는 짓들이오?”

    도인에게 청할 것이 있었던 심협은 곧장 앞으로 나서서 사내들에게 말했다.

    “너는 누구냐? 이 도둑놈은 간덩이가 부어 백주 대낮에 감히 우리 주장(酒庄)에 몰래 들어와 술을 훔쳤다. 그놈을 관가에 넘기려 하니 괜한 일에 참견하지 마라!”

    덩치 좋은 사내 하나가 화를 내며 말했다.

    “에이, 훔쳤느니 도적이니, 그 얼마나 듣기 안 좋은 말이오? 어차피 마시라고 빚은 술 아니오? 그리고 그대들의 주장에서 마당에 좋은 술들을 그리도 많이 벌여놓고 볕을 쬐어 그 향기가 진동을 하는데 어찌 참을 수 있겠소?”

    잿빛 옷의 도인이 심협의 등 뒤에서 고개를 쏙 내밀고는 외쳤다.

    “저 개망나니 새끼가! 아직도 생억지를 부린단 말이냐!”

    사내는 화가 나서 펄펄 뛰며 그를 붙잡으려 했다.

    “이보시오. 그저 술 한 단지에 굳이 주먹질까지 할 필요가 있겠소? 술값이 얼마요? 내 대신 변상하리다.”

    상황을 파악한 심협은 곤란해져 재빨리 그렇게 말했다.

    “네가 이놈 대신 내겠다고? 이 도사놈이 훔친 것은 백일취다. 거기다 주장 안의 다른 술도 세 단지나 깨먹었지. 다 합쳐 은자 열다섯 냥이야.”

    사내가 심협을 쓱 보고는 말했다.

    “여기 있소. 이거면 되겠소?”

    심협이 족히 20냥은 되어 보이는 은자 한 덩이를 꺼내 건넸다.

    “여기 공자께서 화통하시니 그 체면을 보아 이 일은 이쯤하고 말지. 가자.”

    사내는 은자의 무게를 가늠해보고는 손을 흔들며 다른 이들을 데리고 떠났다.

    “이번에는 아주 감사했습니다. 아까 그 주장을 지나가는데 안에서 풍겨오는 술내음이 아주 진하더이다. 한데 수중에 마침 돈이 없지 뭐요? 그래서 몰래 한 단지 슬쩍했는데 그만……. 그래도 그대를 만나 다행이오. 하하하!”

    잿빛 옷의 도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심협에게 감사를 표했다.

    “별것 아닙니다. 대사님 사정이 어려우시다면 일단 이거라도 받으시지요.”

    심협은 50냥짜리 커다란 은덩이를 꺼내 도인에게 건넸다.

    “그럼 사양치 않겠습니다. 허나 거저 받기는 송구하니 공자님 병에 대해 점을 봐드리지요. 그럼 복채라 칠 수 있겠지요. 어떻겠습니까?”

    도인이 웃으며 묻자 안 그래도 점을 보려던 심협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제가 바라던 바입니다. 그럼 대사님께 신세 좀 지겠습니다.”

    다만 이곳은 점을 보기 좋은 곳이 아니었기에, 잿빛 옷의 도인은 곧 심협을 근처의 조용한 차관(茶館: 중국의 옛날 찻집)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죽통과 동전을 꺼내 점을 치기 시작했다.

    도인은 점을 치고 나서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무슨 난제라도 만난 것처럼 말없이 앉아 있다가 다시 한번 죽통을 흔들어 점을 쳤다.

    심협은 그를 방해하지 않고 묵묵히 기다렸다.

    한데 이번에도 도인은 점을 치고 난 뒤 한참이나 말없이 고민하더니 또 한 번 점을 친 뒤에야 손을 멈추었다.

    “선배님, 제 팔자가 어떻습니까?”

    심협은 도인이 손을 거두는 것을 보고 재빨리 물었다.

    “이상한 괘로다! 이렇게 이상한 괘는 실로 오랫동안 본 적이 없습니다. 저의 천강신산(天罡神算)이 뜻밖에 공자님의 명운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군요.”

    심협이 황당해했으나 도인의 표정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조급해하지 마십시오. 내 공자님의 명운을 정확히 점치지는 못했으나, 연달아 세 번 점을 쳐보고 묘책을 몇 가지 알아차렸습니다. 제 말대로만 하시면 틀림없이 전화위복하여 눈앞의 곤경을 타파하실 수 있을 겁니다.”

    도인의 말에 심협은 공손히 공수했다.

    “선배님께 가르침을 청합니다.”

    “괘상으로 보아, 공자님께서는 앞으로 세 가지 일을 하셔야만 합니다. 첫 번째로는 곡하는 여인을 만나게 되시거든 이 부적을 그녀의 등에 붙이십시오.”

    잿빛 옷의 도인이 소매에서 누런 영부(*靈符: 신령이 깃든 부적)을 한 장 꺼내 심협에게 건넸다.

    심협은 영부를 받아들었다. 그 위에는 복잡하게 얽힌 여러 갈래의 부적 문양이 그려져 있었는데, 그저 꼬불꼬불할 뿐 현묘하다기보다는 마치 손길 닿는 대로 낙서를 해놓은 것 같았다. 심지어 가만히 법력을 움직여 주입해보아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심협은 실망한 내색 없이 부적을 챙겼다.

    “반드시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그럼 두 번째 일은요?”

    “두 번째로, 훗날 구리방울 소리를 듣게 되면 공자님께서 지닌 비취색 옥돌을 깨뜨리셔야 합니다.”

    잿빛 옷의 도인이 계속해서 말했다.

    “비취색 옥돌…….”

    심협은 멍하니 넋이 나갔다. 비취색 여의를 가리키는 것인가?

    ‘아니지. 비취색 여의는 창청현정(蒼靑玄晶)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옥돌이 아닌데. 그렇다면 설마……?’

    그의 신식이 임랑환 안으로 들어갔다.

    그 한쪽 구석에는 비취색 물건이 하나 있었는데, 음령산 고분에서 얻은, 음기를 품은 옥돌이었다.

    “그럼 세 번째 일은 뭡니까?”

    “세 번째로, 누군가 그의 아버지를 위해 공자님께 용서를 빈다면, 측은하다 하여 용서해주셔서는 아니 됩니다.”

    잿빛 옷의 도인이 말했다.

    “알겠습니다. 대사님의 가르침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심협은 하나같이 알쏭달쏭한 말에 머릿속은 혼란스러웠지만, 잿빛 옷의 도인에 대한 믿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점을 다 쳤으니 저는 물러가겠습니다.”

    잿빛 옷의 도인은 몸을 일으켜 밖으로 향했다.

    “대사님께서는 어디에 머물고 계신지요? 훗날 반드시 찾아뵙겠습니다.”

    “인연이 닿는다면 자연히 다시 만나게 될 것이요, 인연이 없다면 또 굳이 다시 만날 필요가 있겠습니까? 하하하!”

    심협이 황급히 따라붙으며 물었으나 잿빛 옷의 도인은 껄껄 웃으며 성큼성큼 문을 나섰다.

    “구중궁궐의 정문이 열리니, 만국의 사신들이 의관을 갖추고 황제께 절을 올리는구나(*九天閶闔開宮殿, 萬國衣冠拜冕旒: 당나라 때 시인 왕유의 시 중 한 구절). 이 화려한 겉껍데기 아래 암류(暗流)가 용솟음치니, 누구든 제 한 몸만 깨끗이 돌보기는 어렵다네.”

    잿빛 옷의 도인이 소리 높여 노래를 부른 탓에 차관의 손님들이 모두 돌아보았다. 그들을 잠시 둘러본 심협이 퍼뜩 정신을 차렸을 때, 잿빛 옷의 도인은 이미 종적을 감춘 뒤였다.

    그는 뒤따라 차관에서 나갔지만, 도인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번화한 거리에 서서 도인의 마지막 말을 떠올리는 심협의 눈빛은 얼떨떨했다.

    마겁이 곧 다가올 테니 이 번화한 장안성은 말할 것도 없고, 온 대당, 남첨부주, 심지어는 제천만계(*諸天萬界: 불교에서 말하는 여덟 하늘과 온 세상)까지 휩쓸려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터였다.

    “하아!”

    심협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세상사가 이러하니, 자신은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가?

    심협은 잠시 우두커니 서 있다가 곧 정신을 차렸다.

    ‘미래야 어떻든 우선 눈앞에 일부터 잘하자.’

    그는 인적이 끊긴 골목길에서 또다시 외모를 바꾼 뒤, 창평방으로 향했다. 사우흔의 은신처에 이르렀으나 그곳은 텅 비어 있었고, 주철도 보이지 않았다.

    심협은 실망하긴 했지만, 그래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상황을 보아하니 사우흔은 지난번 외출에서 별 탈 없이 평안히 장안성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다만 그녀가 거처를 옮기는 바람에 연락이 끊겼으니 언제 다시 만나게 될지 알 수 없었다.

    심협도 더는 그곳에 머물지 않고 창평방을 떠났으나, 곧장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대신 중년 백의서생을 만났던 곳으로 가서 용비늘을 꺼낸 뒤 영고에게 냄새를 맡게 했다.

    “이 사람을 찾아라.”

    그가 낮은 목소리로 명하자 영고가 꾸룩꾸룩 두 번 소리를 내더니 코를 허공에 대고 세차게 냄새를 빨아들였다. 그리고는 네 발을 움직여 앞으로 쏜살같이 나아갔다.

    심협은 슬며시 미소를 짓고는 그 뒤를 바짝 쫓았다.

    * * *

    심협은 성안의 번화가인 평강방(平康坊)의 어느 주루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영고는 심협을 향해 두 번 울더니 녹색 작은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다.

    “여기 있는 모양이군. 천금루(千金褸)라…….”

    주루의 편액을 읽는 심협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는 이 주루에 관해 들어본 적 있었다. 이곳은 장안성에서 유명했는데, 특히 호로계(*葫蘆鷄: 닭을 삶은 뒤 튀겨서 만드는 중국 섬서성의 전통요리)는 명신(名臣)인 위징(魏徵: 당나라 때의 정치가) 대인도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생전에 자주 와서 먹었고, 궁정 연회 자리에도 이 요리를 올린 적이 있다고 한다.

    심협은 식도락을 즐기는 편이라 줄곧 맛보러 와보고 싶었지만, 그간 시간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곧장 안으로 들어가 보니 마침 식사시간이라 사람이 꽤 많았고, 1층 대당에는 한 사람이 설서(說書: 중국의 민간 예술로, 악기의 반주 없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를 하고 있어 아주 시끌벅적했다.

    “손님, 안쪽으로 드시지요.”

    점소이가 황급히 나와 그를 맞이했다.

    심협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그 서생을 발견했다. 그는 대청(大廳) 한쪽 탁자 옆에 앉아 홀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심협은 곧바로 다가가지 않고 빈 식탁을 찾아 자리를 잡았다.

    “손님, 어떤 음식을 드시겠습니까?”

    점소이가 사근사근하게 물었다.

    “이 집의 이름난 호로계 하나와 간단히 곁들일 만한 음식 두 가지 그리고 좋은 술 한 주전자 주시오.”

    심협이 탁자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그러나 점소이는 바로 가지 않고 난처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내가 돈이 없을까봐 그러시오?”

    심협은 콧방귀를 뀌며 은자 한 덩이를 꺼내 식탁 위에 올려두었다.

    “아닙니다! 절대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우리 주루에서 호로계를 만들던 주방장 어른께서 며칠 전 귀신과 맞닥뜨렸는데 병으로 그만 몸져 눕고 말았답니다. 지금은 그의 제자 몇 명이 주방을 책임지고 있는데, 다른 요리는 괜찮지만 이 호로계는 맛이 조금 떨어집니다. 손님께서 너그러이 이해해주십시오.”

    점소이가 황급히 웃으며 말했다.

    “귀신과 맞닥뜨렸다고? 어찌 된 일이오?”

    심협의 눈빛이 굳어졌다. 장안성의 귀환이 이다지도 심각하단 말인가!

    “그, 그것은 소인도 잘 모릅니다.”

    점소이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주루에서 누가 그 일을 알고 있는지 좀 물어봐주시겠소?”

    심협은 이 일을 확실히 물어보고 싶은 마음에 작은 은자 하나를 꺼내 점소이에게 건넸다.

    “우리 주루의 점원인 금불환(金不換: 금으로도 바꾸지 않는다는 뜻)은 주방장 어른의 조카입니다. 그는 며칠 전부터 줄곧 휴가를 청했었는데, 방금 제가 그를 보았으니 손님께서 잠시 기다리시면 바로 가서 불러오겠습니다.”

    돈을 받은 점소이는 싱글벙글하며 달려갔고, 잠시 후 열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푸른 옷을 입은 소년 하나를 끌고 왔다.

    “손님, 이 아이가 바로 금불환입니다. 이 아이가 그 일을 제일 잘 알고 있으니 하실 말씀 있으시면 이 아이에게 물어보십시오.”

    점소이가 말했다.

    “난 또 무슨 일이라고……. 또 그 얘기예요? 귀찮지도 않아요? 주루 주방장의 조카라는 이유만으로 모두가 제게 와서 묻는데 진짜 미치겠네요. 제가 오늘 온 건 주인어른께 우리 숙부님을 치료하도록 삯을 미리 달라고 하려는 것이지, 당신들 호기심이나 만족시키려는 게 아니란 말이에요!”

    금불환이라는 어린 점원은 그 일로 어지간히 시달렸는지 짜증 가득한 얼굴로 툴툴댔다. 그러자 점소이가 버럭 화를 내며 꾸짖었다.

    “너 손님께 그게 무슨 말본새냐!”

    “괜찮소. 금 소가(*小哥: 작은 형이란 뜻으로 상대적으로 어린 남자를 부를 때 쓰는 호칭)의 효심이 아주 갸륵하구려. 그대의 숙부를 치료하는 데 이 정도면 충분하겠소?”

    심협은 화를 내지 않고 웃으며 식탁 위에 자그마한 금덩이를 꺼내놓았다.

    점소이는 금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 금덩이는 적어도 대여섯 냥쯤 되어보였으니 백은으로 바꾸면 60냥인 셈이다.

    금불환도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곧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정말 의협심이 넘치시는군요. 돈은 받을 수 없습니다만, 물어보신 일은 제가 아는 대로 전부 말씀드리지요!”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