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302화 (302/1,214)
  • 302화. 방생

    덜컹거리며 나아가는 마차에 앉아 심협은 창평방 쪽을 바라보면서 사우흔이 돌아왔을지 생각했다. 그녀를 만나게 된다면 지금껏 받은 도움에 보답하고자 <연신비전>을 선물할 생각이었다.

    애초에 그는 비전을 얻었을 때부터 사우흔에게 줄 생각이었지만, 당시는 취보당에서 창평방 쪽 거처를 감시하고 있을까 염려되어 그간 찾아가지 않았다.

    허나 이제 수련 경지가 크게 오른 터라 취보당을 크게 개의치 않게 됐다. 게다가 심협은 이번에도 사우흔에게 이원진수의 단서에 대해 부탁할 생각이었다.

    마차는 여러 거리들을 지나 강을 낀 어느 도로에 이르렀다. 이 길을 지나면 곧 창평방이다.

    한데 그때, 심협의 안색이 급변했다. 건곤대 표면에서 갑자기 검은 빛이 한 층 떠오르더니 흥분에 찬 울부짖음이 들려온 것이다. 장군귀물이 내는 소리였다.

    반년 동안 그는 수련하는 틈틈이 순귀술로 이 장군귀물을 길들였고, 이미 꽤 효과를 본 터였다. 그런데 지금 왜 갑자기 폭동을 일으킨단 말인가!

    심협은 황급히 순귀술로 장군귀물을 진정시켰다.

    “선사 대인, 무슨 일 있으십니까?”

    땅딸막한 마부가 안의 동정을 들었는지 마차를 멈추고는 물었다.

    “별일 아니오. 창평방이 바로 앞이니 여기까지 데려다준 것만으로 충분하오.”

    심협은 바깥을 슬쩍 내다보고는 마차에서 뛰어내렸다.

    “선사 대인…….”

    땅딸막한 마부는 그를 배웅하며 뭔가를 말하려다 멈추었다.

    “그대가 무엇을 바라는지 알지만, 수선계는 그리 좋은 곳이 아니오. 그리고 그대의 자질은 이 길에 전혀 맞지 않소. 가시오.”

    마부가 내내 따라온 목적을 어찌 모르겠는가. 하지만 그는 담담히 그 한마디를 남기고는 걸음을 옮겼다.

    마부는 낙담한 표정으로 멀어지는 심협을 바라보며 그 자리에 멀거니 한참을 서 있다가 시무룩하게 마차를 몰고 떠났다.

    심협은 강가를 따라 걸으면서도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는 방금 순귀술로 장군귀물을 진정시키다가 귀물이 갑자기 날뛴 이유를 알게 되었다. 장군귀물은 같은 근원의 귀기를 감지했고, 그 귀기가 범상치 않았던 것이다.

    “이 근처에 강력한 귀물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니겠지?”

    심협은 신식을 주변으로 뻗었다. 이제 막 응혼기에 접어든 터라 그의 신식이 뒤덮을 수 있는 범위는 반경 10장이 채 되지 않았다. 비록 그 범위는 넓지 않아도 주변에 대한 그의 감응은 이전보다 훨씬 예민해진 터였다. 특히 기운 파동에 대한 감지는 이전보다 열 배는 더 예민했다.

    하지만 아무리 신식으로 감지해보아도 아무런 이상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 귀기는 어디 있느냐?”

    심협의 신식이 장군귀물과 소통했다.

    “번쩍 스쳐 지났을 뿐, 지금은 나도 감지할 수 없으니 사라져 버린 듯하다.”

    완전히 복종하지 않은 장군귀물은 잠시 뒤에야 약간 귀찮은 듯 답했다.

    “그럼 진작 말했어야지!”

    심협은 화가 났지만, 그냥 억누르는 수밖에 없었다.

    이 장군귀물은 고집이 아주 셌다. 홍련업화로 위협하며 복종시키려 했지만, 이 장군귀물은 절대 굴복하지 않았다. 심협으로서도 어쩔 방법이 없었지만, 어쨌든 그렇다고 해서 이 귀물을 죽여 버릴 수도 없었다.

    귀기가 사라졌다니 심협도 더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창평방으로 향했다.

    잠시 걷고 있노라니 저 앞에서 우렁찬 외침이 들려왔다. 어느 청년 어부가 길거리에서 고기를 팔고 있었다.

    “지나가도, 거쳐 가도, 놓치지는 마시오. 비단잉어는 날마다 보지만, 신어(神魚)는 날마다 볼 수 있는 게 아니오!”

    “신어?”

    심협은 우뚝 발걸음을 멈추고 청년 쪽을 바라보았다.

    청년 앞에는 나무 대야가 하나 놓여 있었는데, 그 안에는 금빛 비단잉어 한 마리가 들어 있었다.

    이 비단잉어는 퍽 비범했다. 입가에는 기다란 금홍빛 수염 두 갈래가 자라나 있었고, 비늘은 전체적으로 황금빛이라 햇살 아래 금괴처럼 반짝였다. 다만 물을 떠난 지 오래되었는지, 입을 맥없이 뻐끔거리며 눈이 풀어진 것이 곧 죽을 모양새였다.

    “아불자비(我佛慈悲), 시주는 이 물고기가 즐거이 노닐게 해주지도 않고, 그렇다고 방생해주지도 않으면서 이렇듯 전시를 하니, 어찌 참고 볼 수 있겠소?”

    짧은 승포(僧袍)를 입은 어린 승려가 자비로운 표정으로 어부에게 예를 갖추어 말했다. 열 살이 채 되어 보이지 않았는데, 입술이 붉고 이가 새하얀 것이 아주 예쁘장해 보이는 동자승(童子僧)이었다.

    “헛소리! 이 비단잉어는 온몸이 황금빛이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내게 적잖은 돈을 벌어다줬지. 소사부(小師傅)께서 눈 뜨고 못 봐주겠으면 돈을 주고 사시든가. 은자 석 냥만 받을게.”

    어부가 헤헤 웃으면서 말했다.

    “이…….”

    어린 승려가 그리 많은 돈이 어디 있겠는가? 그저 분을 못 이긴 작은 얼굴이 새빨개졌지만, 그 모습마저도 심협의 눈에는 퍽 귀여워 보였다.

    “훠이! 돈 없으면 여기서 장사 방해하지 말고 저리가! 여러분, 사지 않으셔도 볼 수는 있습니다. 신어가 속세에 강림하여 보는 사람에게는 복이 있답니다!”

    어부는 어린 승려를 한쪽으로 떠밀고는 손님들을 끌어모았다.

    “이 물고기는……?”

    심협의 눈썹꼬리가 움찔했다. 지극히 옅기는 했지만 이 금빛 비단잉어의 몸에는 한 가닥 요기가 생겨 곧 영지(靈智)가 트이려는 참이었으나 안타깝게도 붙잡히고 만 것이다.

    “여기 은자 세 냥이오. 이 물고기는 내가 사리다.”

    심협은 작은 백은 한 덩이를 꺼내 어부에게 건넸다. 곧 영지가 트일 영물을 이렇게 죽도록 놔두기에는 안타까웠다.

    “손님께서는 안목이 좋으십니다! 허나 은자 석 냥은 조금 싼 것 같군요. 응당 은자 열 냥쯤은 받아야겠습니다. 하나라도 모자라면 저도 안 팔 겁니다!”

    어부는 심협이 시원스레 값을 치르자 눈알을 굴리며 속물처럼 웃었다.

    “갑자기 값을 그리 터무니없이 올리는 법이 어디 있소?”

    심협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으나, 어부는 뻔뻔스레 웃었다.

    “아이고, 여기 손님께서는 마음이 보살 같으시니 밥 한 끼 덜 드시면 그 돈이 생길 테지요. 은자 열 냥이면 정말 싼 것이니 선심 쓰는 셈 치지요.”

    심협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에게 은자 열 냥은 대수롭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사기를 당해 날릴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때, 맑고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놈이 보기엔 이 금비늘이 은자 열 냥 값이 되겠느냐?”

    이어서 퍼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금빛으로 반짝이는 무언가가 어부 발밑에 떨어졌다. 동전만 한 금빛 비늘조각이었다.

    “이건……?”

    심협은 다소 놀란 기색으로 금빛 비늘이 날아온 곳을 돌아보았다.

    쉰 살가량 되어 보이는 백의서생(白衣書生) 하나가 느릿느릿 걸어오고 있었다. 손에는 쥘부채를 들었고, 짧은 수염 세 가닥을 앞가슴에 늘어뜨린 것이 무척 기품 있었다.

    어부는 잽싸게 금비늘을 집어 들고 손가락으로 한번 튕겨보았다. 맑고 깨끗한 소리가 나는 것이 놀랍게도 순금으로 만든 물건이었다.

    “아이구야, 되지요! 되고말고요! 선생님, 이 고기는 선생님 것입니다요.”

    어부는 금비늘을 품 안에 챙겨 넣고는 그 서생을 향해 연거푸 읍(揖)했다.

    반면 하얀 옷의 서생은 그 어부를 신경도 쓰지 않고, 금빛 비단잉어를 대야 째 들어 곧장 근처 강가로 걸어갔다. 그러더니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고 그 비단잉어를 강에 풀어주었다.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이람? 은자 열 냥으로 산 비단잉어를 저렇게 버리다니!”

    “선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겠지. 자네와는 다르게 말이야.”

    주위에서 사람들이 조용히 수군거렸으나, 백의서생은 그들에게는 신경조차 쓰지 않고 강물 속의 비단잉어를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가시오. 모진 벌일랑 다시는 받지 말고.”

    비단잉어는 고개를 돌려 백의서생을 바라보고 고개를 짧게 끄덕인 뒤, 강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사람들은 이 광경에 놀라고 감탄했다.

    “아낌없이 주머니를 털어주시다니, 정말이지 자비로운 분이시군요.”

    심협도 그 물고기를 샀더라면 방생해줄 생각이었기에 서생에게 진심으로 감탄하며 다가가 공수했다.

    “예전에 나도 도마 위의 생선처럼 다른 사람 손에 목숨을 내맡긴 신세였기에 남 일 같지 않았을 뿐이오. 하물며…… 내가 다하지 못한 책임이야…… 말해 무엇 하겠소?”

    중년 서생의 담담한 말에 심협은 어리둥절했다. 무슨 뜻일까?

    서생은 심협과 더 이야기할 마음이 없는지 탄식하고는 몸을 돌려 떠나갔다.

    청년어부는 중년 서생의 뒷모습을 보며 눈알을 두어 번 굴리더니 옆에 둔 어구를 메고 총총히 가버렸다.

    볼거리가 사라지자 구경꾼들도 하나둘 자리를 떴다.

    하지만 심협은 가만히 서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모두 떠나가자 뒷짐 지고 있던 손을 꺼냈다.

    그의 손가락 사이에는 금비늘 하나가 끼워져 있었다. 중년 서생이 물고기 값으로 치른 물건이었는데, 방금 법력으로 어부의 품에서 몰래 꺼내온 것이다. 대신 은자 열 냥을 품에 넣어주었으니 거저 가져온 것은 아니었다.

    “틀림없어. 이건 용의 비늘이다!”

    그는 금비늘을 미간에 가져다 대고 자세히 느껴보고는 중얼거렸다.

    이 용비늘 위에는 희미한 음기가 한 가닥 휘감겨 있었다.

    “그 서생, 어딘가 이상해. 따라가 살펴보아야겠어.”

    심협은 고개를 들고 서생이 멀어져간 방향을 바라보다가 번쩍 하고 몸을 날려 쫓았다.

    그때 사람 그림자 하나가 옆 골목에서 불쑥 튀어나와 부딪힐 뻔했으나, 심협은 발아래에 회전력을 사용해 옆으로 비켜났다. 그렇게 가까스로 피하긴 했지만, 상대가 손에 든 물건에 닿고 말았다.

    쨍그랑!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상대가 받쳐 들고 있던 술단지가 땅에 떨어지면서 산산조각이 났고, 짙은 술내음이 훅 뿜어져 나왔다.

    “내 백일취(百日醉)! 어디서 온 개놈의 새끼가 눈도 안 뜨고 다니는 게야? 감히 이 도야(道爺)의 흥취를 깨다니, 낯짝이나 보자꾸나!”

    그 사람은 잿빛 옷을 입은 도인으로, 술단지가 박살나자 심협을 가리키며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심협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대꾸를 하려다가, 갑자기 표정이 급변하더니 예를 갖춰 공수했다.

    “대사님이셨군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잿빛 옷의 도사는 그가 천년영유를 찾을 수 있도록 조언해준, 백화산 아래에서 만난 점쟁이 승려였다. 다만 보아하니 또다시 신분을 바꾼 듯했다.

    “너는……?”

    잿빛 옷의 도인은 심협의 말에 다소 곤혹스런 기색이었다.

    “대사께서는 이미 저를 잊으신 겁니까? 그날 당추현 백화산 밑에서 헤어졌는데 오늘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심협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는 그날 당추현성에서 이 사람을 한참이나 찾아다녔지만, 안타깝게도 다시 만나지 못했다. 그런데 오늘 여기서 맞닥뜨리게 될 줄이야! 그는 놀랍고 기쁜 마음에 중년 서생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말았다.

    “오, 생각났습니다. 그대였군요. 내가 그날 그대에게 봐준 점이 퍽 잘 들어맞았던 모양이오?”

    도인도 심협을 두어 번 훑어보고는 이내 기억해낸 듯 고개를 끄덕였다.

    “대사님의 괘상(*卦象: 주역에서 길흉을 상징하는 모양)이 신통하여, 가르침대로 따랐더니 제가 찾고자 하는 물건을 순탄하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심협이 감사를 표했다.

    “나의 점술은 상고시대의 대가인 귀곡자(鬼谷子)께 전수받았으니, 괘상이 당연히 영험하지요. 한데 그대는 겉보기에는 멀쩡해도 명줄이 허약한 것이 지난번 만났을 때보다도 심해졌군요. 혹시 찾으신 물건이 효과가 없었습니까?”

    잿빛 옷의 도인은 씩 웃은 뒤 심협의 안색을 살펴보고는 깜짝 놀라며 말했다.

    “한눈에 제 상태를 알아보시다니, 과연 대사님은 안목이 예리하십니다.”

    진심으로 감탄한 심협이 잿빛 옷의 도인에게 막 뭔가를 말하려던 때였다. 키가 크고 건장한 사내들 몇 명이 손에 곤봉을 든 채 골목 안에서 튀어나왔다.

    “찾았다, 이 술 도둑놈!”

    “어서 포위해! 절대로 놓쳐서는 안 돼!”

    그들은 시끌벅적 고함을 질러대며 잿빛 옷의 도인을 에워쌌다.

    “아이고, 얘기하느라 정신이 팔려서 도망치는 걸 잊었네! 심 소자(小子) 제가 점을 한 번 봐드렸으니, 이번에는 저를 좀 구해주시지요.”

    잿빛 옷의 도인이 이마를 탁 치며 한탄하더니 심협 뒤로 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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