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301화 (301/1,214)
  • 301화. 신선을 흠모하는 마부

    얼마나 지났을까?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더니 심협이 서서히 깨어났다.

    바깥은 별빛 하나 없는 어둠뿐이라 오싹할 정도였다.

    심협은 일으켜 가부좌를 틀었다. 단약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기운이 좀 없다는 것 외에 다른 불편한 느낌은 없었다.

    그는 묵묵히 무명공법을 운공하며 눈을 감은 채 체내를 자세히 느껴보았다. 그리고는 한참 뒤에야 눈을 뜨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도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체내의 생명력이 많이 소모되었고, 수명도 다시 대폭 줄어들어 겨우 10여 년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심협은 쓰게 웃었다.

    ‘응혼기로 올라갔으니 더는 수명 때문에 근심할 일이 없을 줄 알았건만…….’

    게다가 지난번과 달리 수명을 연장할 수 있는 다른 영물(靈物)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제 수명을 연장하려면 경지를 돌파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부족한 자질로는 이제 막 응혼기에 접어든 상태에서 10년 안에 다시 돌파하기란 어려울 터였다.

    “한숨 돌리고 법맥을 개척해보려 했는데, 상황이 상황인 만큼 위험을 무릅쓸 수밖에…….”

    심협은 잠시 침울해졌지만, 곧 다시 결의를 다졌다.

    빠른 속도로 실력을 끌어올리려면 우선 자질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다행히도 그는 현음개맥결을 얻었다.

    그는 마당 곳곳을 한 바퀴 살펴보고는 별다른 이상이 없자, 그제야 마음 놓고 방으로 돌아가 다시 가부좌를 틀었다.

    현음개맥결을 시전하려면 반드시 먼저 대개박술을 연마해야만 한다.

    이 비술은 출규기에 이르러야 수련할 수 있다고 되어 있었지만, 그는 이미 꿈속에서 수련하여 적게나마 성과를 얻었기에 이 비술에 대한 이해도 깊었다.

    본래 출규기에 이르러야 대개박술을 수련할 수 있는 까닭은 이 법술을 시전하기 위해 방대한 법력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출규기에 도달해야만 온몸 곳곳에 충분한 법력을 퍼뜨려 온몸을 보호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심협은 대개박술로 온몸 곳곳을 보호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일부분만 보호함으로써 현음개맥결을 펼칠 때 잠재된 위험을 남기지 않는 정도면 충분했다.

    심협은 눈을 감고 조용히 앉아 천천히 순양검결을 운공했다. 그러자 체내 법력이 금세 반응하며 순양검결의 방식대로 운행하기 시작했다.

    그의 단전에는 작고 붉은 검이 하나 떠 있었는데, 바로 순양검배였다.

    그가 순양검결을 운공하자 검배가 웅웅 진동하면서 경쾌한 검명(劍鳴)을 냈다.

    순양검배를 완성하고부터 심협은 줄곧 그것을 단전에 담아두고 법력으로 온양(溫養)해왔지만, 순양검결을 수련하지 않아서 효과가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제 순양검결을 수련하기 시작하여 순양검배 배양도 제 궤도에 올랐다.

    또한 꿈속 경험이 생긴 덕분에 순양검결의 수련 속도도 가히 하루에 천 리를 달린다고 할 만했다.

    10여 일 뒤, 그는 두 눈을 번쩍 뜨더니 몸 앞에 늘어뜨렸던 팔을 번쩍 들어 손가락을 모으고 결인했다. 그러자 손끝에서 살짝 붉은 빛을 띤 검기가 쉬익 하는 소리와 함께 쏘아져 나왔고, 근처 공기가 윙윙 진동했다. 단전 속 순양검배의 도움을 받아 그는 순양검결을 그리 깊이 수련하지 않고도 순양검기를 발할 수 있었다.

    심협이 손을 움직이자, 손끝의 순양검기가 왼쪽 종아리로 떨어지면서 대개박술의 첫 단계인 박피(剝皮) 수련을 시작했다.

    * * *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 반년이 금방 지나갔다.

    심협은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방 안의 나무통 속에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그의 몸에서는 물결 같은 푸른 빛이 줄줄이 피어올라 용솟음치며 물결이 일렁이는 소리를 냈고, 뿜어내는 기운의 파동은 그전보다 훨씬 우렁차게 변해 있었다.

    한참 뒤, 그의 몸에서 빛나던 푸른 빛이 큰 고래가 물을 빨아들이듯 줄어들어 몸속으로 녹아들자, 심협은 눈을 떴다.

    반년 동안 그는 대개박술뿐만 아니라, 전에 남아 있던 이원진수를 이용하여 무명공법도 수련했다.

    대개박술을 수련하는 과정은 지극히 고통스러웠지만, 무명공법 수련은 아주 편안해서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던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이렇게 잔뜩 긴장했다가 느슨해졌다가 하는 것이 더욱 효율적이었다.

    하지만 꿈속 경험의 도움을 받아 그는 대개박술을 순조롭게 수련해서, 이미 살갗을 벗기는 박피와 살을 가르는 할육(割肉), 뼈를 깎는 각골(刻骨) 세 단계를 마치고 경맥을 가다듬는 연습을 시작했다.

    경맥을 가다듬는 것은 앞의 세 단계보다 훨씬 어려워서, 꿈속 경험이 있다고 해도 단번에 이룰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는 성공까지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심협은 이 고비를 넘기면 현음개맥결을 사용해 법맥을 틔울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무명공법 수련은 순조로웠고, 남은 이원진수를 이용해 수련 경지가 크게 발전해 응혼 중기로 빠르게 나아가는 중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원진수가 다 떨어지면서 철저히 자신의 자질에 의지해 수련했고, 그때부터는 수련 경지가 거북이 기어가듯 정체되고 말았다.

    ‘안 돼! 시간이 부족하다. 무명공법 수련을 멈춰선 안 돼. 대당관부는 취보당과 박물행보다 세력이 더 거대하니 이원진수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을 거야. 육화명을 찾아가 물어보자.’

    이원진수는 진귀한 물건이라 선옥이 있다고 해서 쉽게 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진귀한 보물은 세상에 나타나면 즉시 여러 세력들이 찾아 나서기 마련이니 자신의 힘만으로는 찾아낼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

    또다시 육화명에게 신세를 져야 한다는 것이 미안했지만, 목숨이 달린 만큼 어쩔 수 없었다. 나중에 신세를 꼭 갚겠노라 결심하며 심협은 벌떡 일어나 옷을 갈아입고 날골역용술로 외모를 바꾼 후에야 마차를 불러 대당관부로 향했다.

    마차 창문 너머로 바깥을 내다본 그는 약간 놀랐다.

    때는 이미 입추에 가까워져 날씨가 선선해졌지만, 한창 북적여야 할 장안성 거리의 행인들은 예전 엄동설한 때보다도 훨씬 적었다. 그나마도 대부분 급히 종종걸음을 치는 것이 겁에 질린 모습들이었다.

    “이보시오, 장안성이 많이 썰렁해진 듯한데, 무슨 일이 났소?”

    심협이 마부에게 물었다.

    “성안 곳곳에 귀신이 날뛴다는 것을 모르셨다니, 공자님께서는 외지에서 오신 모양이군요. 근래 들어 성안 곳곳 방(坊)들이 그 난리통에 모두 술렁이고 있지요. 감히 바깥출입을 하기 힘들어졌으니 외지의 행상들도 그 소문을 듣고는 발길이 끊기고 있습니다.”

    마부는 서른 언저리 쯤 되어 보이는 땅딸막한 사내였는데, 수다쟁이인지 짧은 질문에도 쉬지 않고 말을 뱉어냈다.

    “귀신들이 날뛴다고요?”

    심협은 어리둥절해졌다.

    “그렇다니까요. 한 달쯤 전부터 성안 곳곳에서 귀물들이 불시로 나타나 사람들을 해치는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습죠. 처음에는 귀물들이 저녁에만 나타났는데, 요즘은 낮에도 나타난다더군요. 관부에서 이미 명을 내렸으니 거리에 이리 사람이 적은 겁니다.”

    “한데, 설마 대당관부에서 손 놓고 있단 말이오?”

    심협은 폐관하는 동안 성안에 이런 일이 벌어졌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당연히 나섰지요. 다만 최근에 장안성에서 멀지 않은 음령산에서도 큰일이 있어 귀물들이 떼로 튀어나와 도처에서 사람을 죽이고 있답니다. 이에 대당관부에서 선사(仙師)들을 그곳으로 대거 파견하는 바람에 성안에 남은 선사가 몇 안 된다지요. 그분들이 사방으로 살피고는 있지만 아직 이곳의 귀환(鬼患)을 해결하지 못한 것이고요.”

    마부의 말에 심협은 가슴이 철렁했다.

    ‘음령산! 설마…… 그 고분의 귀물에 문제가 생긴 것인가?’

    심협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마부에게 성안과 음령산의 상황에대해 물었다.

    마부는 온종일 성안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항간의 소문들을 많이 주워들었지만 대화할 사람이 없어 적적하던 차에 오랜만에 탄 손님이 꼬치꼬치 캐묻자 신이 나서 진위를 막론하고 온갖 소식들을 쏟아냈다.

    심협은 그 말을 들을수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곳 장안성의 사정은 당시의 건업성과 퍽 닮아 있었다.

    ‘설마 또 누군가가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은 아닐까? 허나 이곳은 장안성이야. 대당관부가 진을 치고 지키는데 누가 감히 함부로 날뛴단 말인가!’

    그의 표정은 담담했지만, 마음속에는 온갖 생각이 요동쳤다.

    마부는 음령산 상황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그리 많지 않아서 대당관부 뿐만 아니라 화생사, 보타산의 수선자들도 갔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정도만 들어도 상황이 매우 심각할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마차는 금방 대당관부 근처에 이르렀다.

    심협은 마부를 보낸 뒤, 대당관부 대문 앞에 이르러 방문 이유를 밝히려 했다.

    그때 청년 수위 한 명이 심협을 알아보았는지 먼저 다가왔다.

    “심 공자 아니십니까? 또 육 선생을 찾아오셨습니까?”

    지난번 방문했을 때 말을 전해주었던 수위였다.

    “이 심모를 기억해주시다니, 영광입니다. 육형은 안에 있습니까?”

    심협은 씩 웃으며 말했다.

    “이번에는 심 공자님께서 때를 잘못 맞춰 오셨습니다. 육 선생께서는 일전에 음령산으로 파견을 나가시어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군요. 혹시 언제쯤 돌아올지 알 수 있을까요?”

    심협은 다소 실망했으나 티를 내지 않고 물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듣기로는 음령산 쪽 상황이 심각하다고 하니 육 선생께서 돌아오시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겁니다. 심 공자께서는 무슨 일로 육 선생을 찾으십니까? 괜찮으시다면 제가 대신 전해드릴까요?”

    청년은 조금 겸연쩍어 하면서 말했다.

    “아, 별것 아닙니다. 그저 한동안 못 만나서 찾아왔을 뿐이지요.”

    심협은 그 청년과 가볍게 한담을 두어 마디 나누었지만, 쓸 만한 정보를 알아내지는 못한 채 이내 인사를 남기고 자리를 떴다.

    대당관부를 떠나는 심협의 낯빛은 어두웠다. 육화명은 자리에 없고 그는 대당관부의 다른 사람들과는 친분이 없으니 이원진수에 대해 알아볼 길이 막혔다.

    그런데 얼마 가기도 전에 덜컹덜컹 마차 소리가 들려왔다. 좀 전의 땅딸막한 마부가 모는 마차였는데, 아까부터 떠나지 않고 기다린 듯했다.

    “공자님께서는 대당관부에 오시던 거였군요. 혹시 공자님도 수선자이십니까?”

    “심모도 수련 중인 사람이기는 하오. 무슨 문제라도 있소?”

    심협이 의아한 듯 되물었다.

    “아, 아닙니다! 문제라니요, 절대 아닙니다! 그저…… 소인은 어려서부터 선도(仙道)를 흠모해왔사온데,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선연(仙緣)이 없어 장안성에서 마부 노릇이나 하고 있습죠. 한데 이렇게 한 해가 다 넘도록 마차를 몰다 보니 마침내 선사님을 모시게 되는군요! 하하하!”

    땅딸막한 마부는 황급히 손을 내젓더니 잔뜩 흥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심협은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고는 몸을 돌려 자리를 뜨려 했다.

    “선사 대인, 어디로 가시렵니까? 소인이 모셔다 드리지요. 차비는 안 받겠습니다요. 방금 주신 돈도 소인이 돌려드리겠습니다. 선사 대인을 모시는 것이 저의 영광인데 어찌 돈을 받겠습니까!”

    땅딸막한 마부가 다시 마차를 몰고 쫓아와서는 품에서 아까 심협이 건넨 차비를 꺼냈다.

    “그러지 마시오. 이건 그대가 응당 받아야 할 돈이오.”

    심협은 손사래를 치고는 다시 성큼성큼 걸어갔다.

    “선사 대인, 아까 귀환에 관해 그리 많이 묻지 않으셨습니까? 혹시 귀물들을 없애러 가시려는 겁니까? 그렇다면 소인은 장안성 곳곳에 대해 빠삭하게 알고 소식도 빠르니 분명 도움이 될 것입니다!”

    땅딸막한 마부는 계속 그를 바짝 따라오면서 친한 척을 해댔다.

    심협은 전혀 상대할 마음이 없었지만, 이 사람은 예상을 뛰어넘는 찰거머리라 한참이나 쫓아오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그 와중에도 분수는 잘 지켜서 심협이 싫어할 만한 짓은 하지 않았다. 게다가 선도를 숭배하는 그 모습을 보니 병으로 골골대던 시절의 자신이 떠오르기도 해 심협은 그 마부를 모질게 대할 수 없었다.

    “좋소. 그럼 나를 성 남쪽 창평방에 데려다 주시오.”

    심협은 결국 마차에 오르며 말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편안하게 모시겠습니다!”

    땅딸막한 마부는 흥분해서 마차를 몰았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