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299화 (299/1,214)
  • 299화. 부적을 터뜨리다

    육진편은 시커먼 빛을 세차게 내뿜더니 이글이글 타오르는 검은 태양빛이 되어 허공을 선회하면서 떨어져 내리는 청자색 번갯불을 막아냈다.

    파지직!

    간간이 번개 소리가 크게 울렸고, 청자색 번개 채찍이 허공을 맴돌던 태양에서 뿜어져 나와 사방으로 내리꽂혔다.

    심협이 눈을 떼지 않은 채 손가락을 모아 왼손을 치켜들자 푸른 부적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이 부적은 문양을 번득이더니 사방으로 내리꽂히는 채찍을 향해 뻗어 나갔다.

    부적에 담긴 힘은 번개를 갈가리 찢어발겨 녹여내기 시작했고 시간이 흐를수록 푸른 부적 표면의 빛이 갈수록 더 강해졌다.

    이를 흐뭇한 눈으로 살피던 심협은 부적이 흡수한 번개의 힘이 극한에 달했을 때 재빨리 손을 흔들어 부적을 불러오려 했다.

    그러나 부적은 번개 채찍에 단단히 붙잡힌 듯 허공에서 몇 차례 흔들릴 뿐, 심협이 아무리 불러들여도 돌아오지 못했고, 이내 눈부신 빛 속에 산산이 부서져버렸다.

    심협은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세 번째 부적으로 다시 시도해보려 했다 그런데 그때, 머리 위의 청자색 벼락이 갑자기 환하게 밝아지더니 더없이 강력한 압박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대로 아래로 곤두박질치며 육진편을 몰아붙였다.

    ‘아직 위력이 남아 있었단 말인가?’

    심협은 다소 놀랐으나, 즉시 두 손을 움직였다. 양손 한가운데에서 푸른 빛이 번득였고, 그대로 두 손을 위로 밀어 올리자, 육진편의 검은 태양이 폭발했다.

    콰르릉!

    커다란 굉음과 함께 검은 빛에 청자색 번갯불이 뒤섞인 채 전부 터져나갔다.

    청자색의 무수한 번개줄기가 허공에서 깜빡이며 사방으로 흩날렸다.

    심협은 안타까운 눈으로 이를 보다가 손을 흔들어 마지막 낙뢰부를 하늘로 날려 흩어지는 번개들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잠시 뒤, 번개의 여파는 대부분 부적에 흡수됐고, 나머지는 차츰 허공에서 사라져갔다.

    “이 낙뢰부는 지금껏 그렸던 것들과는 전혀 다르군. 법력으로 효력을 발휘시키지 않았는데도 이미 번개의 위력이 흘러넘치지 않는가! 게다가 이 청자색 번개 문양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 부적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대부분의 음살과 귀물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 게 분명했다.

    심협은 기뻐하며 부적을 챙겼다. 그리고 잠시 망설이다가 칠성필을 휘두르자, 허공에 자주색 빛 한 줄기가 스쳐 지나더니, 그가 매우 아끼는 자운지 몇 장이 나타났다.

    ‘청상지는 등급이 높지 않다 보니 천뢰(天雷) 위력을 온전히 감당할 수 없었던 건지도 몰라. 어쩌면 자운지는 감당할 수 있을지도…….’

    결단을 내린 심협은 주저하지 않고 붓을 놀려 낙뢰부 문양을 그려나갔다.

    방금 진선기로 올라서면서 몸의 기운이 정점에 이르렀기 때문인지 몰라도 연달아 부적 네 장을 그려냈는데, 놀랍게도 전부 단숨에 성공했다.

    붓을 멈춘 뒤, 심협은 칠성필을 거둬들이고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십자 법진 위에 한 줄기 하얀 빛이 홀연히 나타나 반짝이고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타는 듯 뜨거운 감각이 엄습해와 감히 정면으로 쳐다볼 수도 없었고, 거의 반사적으로 몸을 날려 피했다.

    바로 다음 순간, 요란한 소리와 함께 새하얀 번갯불이 하늘에서 폭포처럼 떨어져 내렸다.

    심협의 주위로 금빛이 용솟음치면서 네 마리의 거대한 코끼리와 금룡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빛이 번쩍이며 체내로 들어가자 몸이 갑자기 배로 불어나더니 두 다리가 금빛 코끼리 다리로 변했고, 두 손은 금룡의 거대한 발이 되었다.

    심협은 체내 법력을 회전시키면서 하늘을 향해 용의 발을 휘둘렀다. 온몸 바깥에서는 나선형의 금빛이 한 줄기 솟아나는 듯하더니, 팔뚝으로 뿜어져 나와 거대한 금빛 용의 발로 변해 벼락을 맞이했다.

    콰르릉! 콰쾅!

    빽빽한 벼락이 폭발하는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새하얀 번갯불이 금룡의 발과 맞부딪치면서 은빛 불꽃이 튀었고, 줄줄이 번개 기둥이 금룡의 발 사이로 튀어나와 사방으로 날아갔다.

    작열하는 양기가 스며드는 듯한 느낌에 심협은 온몸이 불타는 듯 뜨거웠다. 체내의 순양검기도 뭔가를 느꼈는지 법맥 속에서 흥분한 듯 좌충우돌 날뛰었다.

    대전 곳곳에 번개가 꽂히면서 연기와 먼지가 사방으로 피어올랐고, 흙과 돌 조각들이 튀었다. 금갑천장만이 손에 든 금탑에서 떠오른 빛으로 감싸여 쏜살같이 날아오는 번갯불들을 차단했다.

    번개 폭포는 쉬지 않고 떨어져 내렸지만, 심협은 한 걸음도 물러나지 않았다. 그는 체내의 순양검기가 법맥을 타고 왼쪽 손바닥 한가운데에 이르러 손바닥의 속박을 뚫고 튀어나오게 했다.

    그와 동시에 높이 치켜든 용의 발에서도 금빛이 모여들어 금색 빛 덩어리를 이루면서 끊임없이 팽창하다가, 끝내 콰르릉 하는 폭발음과 함께 터져나갔다.

    폭발한 금빛은 사방으로 흩어지지 않고 오히려 금빛 강줄기처럼 거꾸로 솟아 번개 폭포를 치받아 몇 장을 물러나게 만들었다.

    금빛 강줄기와 번개 폭포가 허공에서 팽팽히 맞서면서 그 경계에서는 하얀 검영(劍影)이 끊임없이 넘나들었고, 그 표면의 날카로운 기세가 점점 더 거세졌다.

    이를 본 심협은 속으로 무척이나 놀랐고, 또 기뻤다. 그는 곧장 남은 한 손도 흔들었다. 그러자 땅바닥에서 미리 써둔 네 장의 부적이 즉시 날아올라 새하얀 번개 폭포를 에워싸더니, 문양을 번득였다. 이윽고 강력한 흡입력이 부적들에서 뿜어져 나와 번개 폭포 한가운데로 흘러갔다.

    번개 폭포에서는 곧 왕성한 양기를 지닌, 엄지손가락 굵기의 번개 네 가닥이 뻗어 나와 부적 위로 모여들었다.

    앞서 청상지에 그린 부적 때와는 달랐다. 지금은 번개 폭포가 금빛과 검기에 이끌렸고, 부적들과도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어 미묘한 균형을 이룬 덕에 하얀 번개가 부적에 편안하게 녹아들었다.

    이번 뇌겁은 무려 일다경(*一茶頃: 차 한 잔 마실 정도의 시간)가량 지속된 뒤에야 마침내 기세가 사그라들었다.

    심협이 손을 한 차례 휘두르자 순양검기가 변해 만들어진 하얀 검영이 하늘에서 날아 돌아와 그의 손바닥 위를 쉬지 않고 맴돌았다. 그 위의 광택은 투명하고 맑아서 마치 실체를 지닌 듯했고, 영성과 위력 모두 향상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변화들을 자세히 살필 겨를이 없었기에 심협은 손을 흔들어 모두 챙겼다.

    이어서 네 장의 낙뢰부를 살펴보니 표면에는 맑은 빛이 반짝였고, 부적 문양 주위로는 순수한 천둥번개가 변하여 만들어진 벼락 문양이 나타났다. 슬쩍 만지는 것만으로도 그 안에 담긴 무시무시한 위력을 느낄 수 있었다.

    잘만 사용하면 진선기 수사에게도 심각한 부상을 입힐 수 있을 터였다. 그러니 음살이나 귀물, 악귀, 귀수(*鬼修: 사람이 죽은 뒤 혼백이 흩어지지 않고 정기나 피를 흡수하며 수련하는 존재) 같은 것들에게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위력을 발휘하리라.

    심협은 낙뢰부를 챙긴 뒤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뇌겁을 몇 차례 경험한 뒤, 그는 다음 뇌겁의 위력이 어떤지 대략 가늠할 수 있었다.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해 막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다시 다른 것에 마음이 분산된다면 사서 고생을 하는 꼴이었다.

    그러나 잠시 후에 떨어져 내린 여덟 번째 번개는 순수한 검은 빛깔의 현음지뢰(玄陰之雷)였다. 심협이 육진편으로 맞섰지만 단번에 뚫고 내려와 그의 머리 위에 곧장 내리꽂혔다.

    번개는 몸속으로 파고들었고, 심협의 식해 안에 하늘을 뒤덮을 듯한 거대한 파도가 일었다!

    만약 방촌산에서 황정경을 듣고 끊임없는 수행을 거쳐 신식의 힘을 크게 증가시키지 않았다면, 이 현음지뢰에 곧장 식해가 깨져나가고 신혼이 박살나 산송장 같은 존재가 됐을 터였다.

    하지만 뇌겁에 맞선 이점은 상당했다. 전에 경지를 돌파한 뒤에는 신혼이 육신과 살짝 어우러지지 않았는데, 지금은 신혼이 더욱 굳건해져서 육신과 더없이 잘 어울리는 상태였다.

    둥!

    심협의 식해가 막 평온해지자마자 머리 위에서 갑자기 북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갑자기 온 대전이 이상한 적막감에 빠져들었고, 형언할 수 없는 엄숙하고 무거운 분위기가 사방에 가득 내려앉았다.

    심협이 슬쩍 저 멀리 하늘을 살펴보니, 머리 위의 십자 법진에서 눈부신 일곱 빛깔 광채가 번쩍이는 것이 보였다. 한데 그는 일단 그 빛에 시선이 꽂히자 고개를 돌릴 수가 없었다.

    그 광채가 갑자기 번쩍하더니 갈수록 밝아졌다.

    심협은 그 빛에 찔린 듯 눈이 아파왔지만, 갖은 수를 써도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눈이 멀어버릴 것만 같은 흰빛이 번쩍이고 난 뒤에야 눈앞이 다시 원래 모습을 되찾았다.

    하지만 다시 사방을 둘러보았을 때, 그는 이미 원래 있던 금빛 대전이 아닌 만 리 밖까지 아득히 이어진 금빛 구름 속에 떠 있었다. 주위에서는 간간이 요란한 굉음이 들려왔다.

    “여기는……?”

    심협은 평정심을 유지하려 했지만,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때, 구름층이 갑자기 거세게 용솟음치면서 사방에서 굉음이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심협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온 주위에 번갯불이 번쩍였고, 구름층 사이로 용의 모습을 한 번개가 줄줄이 무리지어 움직이며 돌진해 왔다.

    여러 갈래의 벼락 사이에 담긴 기운은 앞선 여덟 번의 뇌겁과는 전혀 달랐다. 자세히 살펴보니 놀랍게도 벼락 속에 살아 있는 생명체의 영식(靈識)이 깃든 것처럼 달려들면서 그를 가늠해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는 즉시 전력을 다해 황정경 공법을 운공하기 시작했다. 온몸의 법맥에서 강한 빛이 뿜어져 나오면서 엄청난 기세가 생겨났고, 몸 바깥에는 여섯 마리 금빛 용이 빙빙 맴돌았으며, 여섯 마리 코끼리가 하늘을 향해 울부짖었다.

    심협이 두 손을 모으자 눈에 한 줄기 금빛이 스쳐 지나면서 전신의 기운이 순간 폭발했다.

    주변에 용 형상의 번개가 채 가까워지기도 전에 여섯 쌍의 금룡과 금 코끼리가 맹렬하게 돌진했다. 이들은 서로 금빛으로 이어져 있어 금빛 성벽을 이룬 채 용 형상의 번개와 충돌했다.

    꽈릉!

    하늘을 뒤흔드는 굉음이 요란하게 터져 나왔고, 수많은 금색 번갯불이 나와 반경 천 장을 뒤덮었다.

    순식간에 심협의 온몸은 물론, 금룡과 금 코끼리까지 전부 번갯불에 잠겼다.

    “뇌지(雷池)를 이끌어 몸을 연단하다니, 과연 우리가 기다리던 그 사람인 것 같군.”

    대전 안에서 금갑천장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다만 본래 아무 감정 없이 담담했던 것과 달리 이제 놀라움과 기쁨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한편, 온 하늘에 가득한 번갯불 속에서는 용 형상의 번개가 구름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면서 번갯불로 뒤덮인 지역에 부딪쳤다. 그때마다 폭발이 일어났고, 번갯불로 뒤덮인 지역이 줄어들었다.

    그 안에서 여섯 쌍의 용과 코끼리의 모습은 압박당해 끊임없이 밀려났고, 주위의 번갯불은 계속해서 모여들어 중심의 심협을 짓눌렀다.

    바로 앞에서는 길이 백 장의 거대한 천둥과 번개의 금룡이 고개를 쳐든 채 돌진해 와 번개 줄기가 서로 엇갈리고 천둥이 우르릉 울리는 시뻘건 입을 쩍 벌려 심협을 물어뜯으려 했다.

    심협은 이 웅장한 기세가 자신을 밀어내는 것을 느꼈지만, 두려워하기는커녕 오히려 특유의 오기가 일어났다.

    ‘몸에 음기가 들었으면 온갖 방법을 찾을 것이고, 악귀가 침입해 괴롭힌다면 죽기를 각오하고 싸울 것이며, 수명이 부족하다면 어떻게든 보충할 것이다!’

    죽음의 위협은 늘 그의 삶 가까이 있었지만, 생존의 희망도 버린 적이 없었다.

    ‘내가 졌다고 말하지 않는 이상 세상 천지에 누구도 나를 고개숙이게 만들 수는 없어!’

    전의가 불처럼 일었고, 미친 듯한 고함 소리가 터져 나왔다.

    다음 순간, 사위를 둘러쌌던 용과 코끼리의 허상이 잇달아 줄어들더니 어째서인지 더는 천둥번개에 저항하지 않고 전부 그의 몸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그의 온몸이 금빛에 휩싸이더니 몸 표면에 빽빽한 금비늘이 돋아났다.

    심협은 두 눈을 집중하고 육진편을 번쩍 치켜들면서 황정경 공법과 무명법결을 동시에 운공했다. 체내의 순양검기도 세차게 솟구쳐 나와 검고 기다란 철편으로 모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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