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297화 (297/1,214)
  • 297화. 천겁(天劫)의 강림

    심협은 온 정신을 집중해 황정경 공법을 전력으로 운공하면서 체내로 흡수한 천지영기를 빠르게 운화하여 법력으로 바꾼 뒤, 법맥과 단전으로 흡수시켰다.

    겨자씨만 한 정신(精神)은 수룡을 몰고 몸속 경맥들을 거침없이 내달리며 온몸을 일곱 바퀴 돈 후, 마침내 충분한 힘을 모아 대승기 정점의 난관을 뚫고 지나갔다.

    그곳에는 니환궁(泥丸宮)이라는 아주 특별한 규혈이 있는데, 이곳을 뚫기만 하면 평범한 사람도 신선이 될 수 있다.

    ‘선인이 내 머리를 어루만져주고 불로장생의 부적을 맺어주었네(仙人撫我頂, 結髮受長生: 이백의 시에서 인용한 말)’라는 옛말은 바로 선법(仙法)으로 니환궁을 관통하면 선규(仙竅)가 트여 선법을 전수받을 수 있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이것은 그저 속세의 망상에 불과해, 실제로는 그리 간단하지가 않았다. 수선자도 대승기 정점에 이르러야 니환궁을 뚫어볼 기회를 겨우 얻는다. 이곳에 섣불리 충격을 가했다가는 신혼이 손상을 입고 육신과 따로 놀게 되어 진선의 경지에 오를 가능성마저 사라진다.

    그때, 갑자기 이변이 발생했다.

    둥!

    텅 빈 금빛 대전에서 느닷없이 북소리가 울려 퍼진 것이다.

    “이소리는……?”

    심협은 깜짝 놀라 눈을 번쩍 떴다. 몸속의 수룡도 한순간 위로 치솟던 기세를 거둬들이고는 대추혈(*大椎穴: 목 뒤에 위치한 혈자리 중 하나)에 멈춰선 채 쉬지 않고 빙빙 맴돌았다.

    둥!

    잠시 간격을 두고 북소리가 또다시 울렸다.

    그때, 대전 안 보좌에 앉아 있던 금갑천장의 몸에서 갑자기 물결이 일렁이며 무덤덤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기고(*夔鼓: 전투에 쓰이는 북)가 세 번 울리면 천겁(天劫)이 세상에 임하리라.”

    그 말을 들은 심협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천겁? 천겁은 보통 진선의 경지에 처음 들어선 뒤에야 강림하지 않나?”

    백소운에게 들어서 진선의 경지에 오르는 것에 대해 어느정도 알고 있었다.

    니환을 뚫고 신선이 되면 천겁이 내려와 신혼을 깨끗이 다듬고 근골을 단련하여 육신의 불순물을 완전히 제거함으로써 진정으로 진선의 경지를 견고히한다.

    그러나 이 천겁은 더없이 험난하여 그 시련을 견뎌내는 사람은 드물었다. 만약 수선세가나 종문에서 누군가가 이 경지에 도달한다면 종문의 힘으로 준비할 정도였다.

    당시 백소운은 백가의 전폭적인 지원과 화생사 종문의 비호 아래 돌파를 시도했다. 그럼에도 결과는 실패였지만, 화생사에서 전해 내려오는 진귀한 법보를 대가로 겨우 목숨을 보전하여 마침내 반선의 몸이 되었다.

    그 정도만 해도 훌륭한 편이었다. 대부분은 천겁을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잃고, 끝내 육신과 신혼이 모두 소멸되어 윤회조차 할 수 없는 신세가 된다.

    또한, 천겁에 육신이 소멸되고도 끝내 신혼은 살아남아 똑같이 강력한 힘을 얻는 특이한 경우도 있는데, 이런 사람들을 귀선(鬼仙)이라 불렀다.

    “진작 알았으면 그 반도를 허겁지겁 먹어치우지 않았을 텐데…….”

    심협은 내심 후회가 됐다. 그는 당연히 반선이 되고 싶지도, 귀선으로 전락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후회해봐야 때는 이미 늦었다.

    둥!

    마지막 북소리가 울리고, 금빛 대전 위에 갑자기 금빛 안개가 피어오르더니 크고 건장한 그림자 4줄기가 나타났다. 금빛 갑옷을 입은 신선 역사(力士)들이었다. 그들은 손에 각자 부월(*斧鉞: 참형에 쓰이던 작은 도끼와 큰 도끼)을 하나씩 든 채 무심한 얼굴로 아래쪽의 심협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매우 특이해서, 금갑천장이나 이전의 천병들과는 달랐다. 그 속에는 인신(人神)의 기운이 조금도 없었다.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것 같으면서도 엄청나게 강력한 천지의 위압을 지니고 있었다.

    “집법천병(執法天兵)…….”

    심협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집법천병은 천겁과 천벌을 관장하는데, 전자는 범인(凡人)이 신선의 경지에 이르는 것을 시험하는 데에 쓰이고, 후자는 선인을 징벌하고 죄를 내리는 데 쓰인다. 당연히 그 위력은 같은 선상에서 볼 수 없었다.

    심협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아 손목을 돌려 육진편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그때, 머리 위 집법천병들이 갑자기 흩어지더니, 각각 동서남북 네 방위를 차지하고 서서는 동시에 무언가를 읊조리기 시작했다.

    불경을 외는 듯한 소리가 온 금빛 대전에 울려 퍼졌고, 천병들의 몸에도 법력 파문이 잇따라 일어나며 십(十)자 법진 무늬가 허공에 떠올랐다.

    법진이 떠오른 순간, 심협은 주변의 공기 흐름이 순간 정체되는 것을 느꼈다. 천지영기의 흐름까지도 느려지는 것 같았다. 주위는 기묘할 정도로 고요해서 자신의 심장 박동 소리까지 선명하게 들을 수 있을 지경이었다.

    심협은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위에서 전해지는 강력한 압박감을 참지 못하고 마른침을 꿀꺽 삼키면서 가만히 황정경을 운공하기 시작했다.

    그의 대추혈 안에서 배회하던 수룡도 고개를 쳐들고 강적을 만난 듯 잔뜩 긴장한 모습이었다.

    그때, 네 명의 집법천병이 갑자기 손에 든 부월을 서로 맞부딪쳤다.

    허공에 떠 있는 법진에서 갑자기 강한 빛이 번득이더니 새하얀 번갯불이 온 대전을 비추었다. 뒤이어 하늘을 뒤흔드는 천둥소리와 함께 한 줄기 거대한 번개가 높은 하늘에서 곧장 내리꽂혔다.

    심협은 재빨리 전신의 법력을 육진편으로 주입시켰다. 그러자 채찍에서 시커먼 빛이 검은 햇빛처럼 피어올라 커다란 굉음을 내면서 새하얀 번갯불과 맞부딪쳤다.

    콰르릉!

    폭발음이 울렸고, 새카만 빛이 폭발하면서 하얀 번개가 뚫고 들어와 육진편에 정통으로 꽂혔다.

    파지직!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육진편에서는 활처럼 휘어진 불꽃이 연달아 튀었다.

    심협이 힘껏 휘두르자 육진편에서 검은 빛이 뿜어져 나와 불꽃을 흩뜨렸다.

    그의 눈빛은 희미하게 반짝였다. 천겁의 위력이 생각보다 강하지 않은 듯한 느낌에 의아했던 것이다.

    “이것은 첫 번째 천겁지뢰(天劫之雷)에 불과하다. 앞으로 여덟 번의 천겁이 더 남았다. 갈수록 위력이 강해지지. 너는 아직 진정한 진선의 경지에 들지 못했으니 다섯 번의 뇌겁(*雷劫: 신선의 수행 경지가 크게 증가할 때 겪는 벼락의 시련)을 버티지 못하고 육신과 신혼 모두 죽어 사라질 것이다.”

    금갑천장의 건조한 목소리에 심협은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 천겁이 임한 것이 분명 이상했다. 천겁은 본래 진선기에 발을 디딜 때 처음 강림하는 것인데 어째서 벌써 찾아와 이런 곤경에 빠지게 한단 말인가.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쨍!

    심협이 대책을 세우기도 전에 네 명의 집법천병이 다시 공격했고, 십자대진이 다시 한번 번쩍였다. 두 줄기 번갯불이 좌우에서 동시에 번득이며 전광석화처럼 돌진해 서로 합쳐지자마자 아래로 뚝 떨어져 내렸다.

    심협은 황정경공법을 빠르게 운공했다. 그러자 뒤에서 허광(虛光)이 크게 일며 거대한 코끼리 그림자가 앞발을 높이 치켜들었고, 코끼리 울음소리가 하늘을 뒤흔들었다. 또 금룡 한 마리가 허공을 선회하며 튀어나와 끊임없이 용 울음소리를 냈다.

    그가 두 발을 세차게 구르자 대전 전체가 심하게 흔들렸고, 금빛이 하늘을 향해 겹겹이 거꾸로 솟구쳤다.

    심협은 곧장 한 팔을 들어 다섯 손가락을 짐승의 발처럼 구부리고는 높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번갯불들을 맹렬히 떠밀었다.

    어디선가 거대한 금빛 용의 발이 떠오르더니 심협의 손바닥이 하늘로 솟아오르자 하늘에서 떨어지는 번개 줄기와 맞부딪쳤다.

    꽈르릉!

    커다란 폭발음이 울리면서 잠깐 금빛 대전 전체가 진동했다.

    은빛 번개와 금빛 용의 발이 맞부딪친 곳에서는 무수한 은빛 번개가 사방으로 뿜어졌다. 마치 심협의 머리 위에 찬란한 은빛 우산을 펼쳐놓은 것만 같았는데, 그 위로는 무수한 번개가 튕겨져 나왔다.

    거대한 힘에 짓눌려 심협은 몸이 살짝 굽어졌으며, 팔뚝도 저릿했다. 심지어 가느다란 전류가 체내로 파고들어 그의 오장육부를 날카롭게 찔렀다.

    “물러가라!”

    심협은 이를 악물고 커다란 고함을 내지르며 다시 한번 발을 굴렀다. 그러자 뒤에 있던 거대한 코끼리도 따라서 발을 들어 올렸다가 내디뎠고, 금룡은 금빛 용의 발을 맴돌면서 올라가 은빛 번개와 부딪쳤다.

    꽈광!

    은빛 번개는 금룡과 충돌하자 완전히 부서져 내렸고, 거칠고 난폭한 힘이 허공에서 돌진하여 법진의 빛 장막에 그대로 부딪혔다. 이어 장막이 크게 떨렸다.

    이윽고 심협의 몸에서 빛나던 금빛은 흩어져버렸고, 등 뒤의 용과 코끼리 그림자도 따라서 사라졌다.

    심협은 숨을 한 모금 가볍게 내뱉고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법진 위의 파동은 이미 사라져 평정을 되찾았고, 집행천병들은 고개를 숙인 채 숙연한 표정으로 심협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역시 첫 번째보다 훨씬 강하구나. 하지만 이 정도라면 버틸 수 있겠는데?’

    심협은 여전히 의아했다. 그러나 이내 상황이 생각처럼 간단치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뇌겁 사이의 틈을 타 니환궁 관문을 뚫어볼까 고민했다.

    “금갑천장이 날 속였을 리는 없으니 앞으로 뇌겁의 위력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강해질 거야. 역시 먼저 진선기 경지를 돌파하는 게 더 안전하겠어.”

    심협은 마음을 고쳐먹고는 그렇게 결심했다.

    그가 곧 가부좌를 틀고 두 손으로 결인하자, 겨자씨만 한 정신(精神)이 몸 안으로 가라앉아 수룡의 머리 위에 올라타고 니환궁을 향해 계속 충격을 가하려 했다.

    하지만 그가 생각을 불러일으켰음에도 수룡은 곧바로 움직이지 않았고, 여전히 밖으로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외부의 벼락을 몹시도 적대시하는 것 같았다.

    심협은 정신을 집중하고 억지로 수룡을 이끌었다. 수룡은 그제야 입을 벌리고 울부짖더니 고개를 젓고 꼬리를 흔들면서 니환궁으로 돌진했다.

    수룡은 무척 날쌨다. 주위의 물 속성 법력이 바짝 따라다니면서 마치 용의 구름을 좇는 것 같아 아주 장관이었다.

    용이 내달리고 구름이 솟구치는 기세로 진선기 관문을 두드리려 하는데, 요란한 천둥소리가 다시 한번 울렸다.

    심협의 머리 위에서 은빛 천둥번개 네 줄기가 얽히고설킨 채 거대한 번개 공이 되어 떨어져 내렸다. 그 주위로는 어린아이 팔뚝만 한 굵기의 번개 채찍이 무수히 휘감겨 사방을 후려치며 심협에게로 날아들었다.

    심협은 이를 악물었다. 니환궁에 충격을 가하는 것과 천겁게 맞서는 두 가지를 동시에 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는 힘을 북돋아 관문을 뚫는 동시에 다른 황정경 공법을 운공해 벼락에 굳건히 맞섰다.

    그의 온몸에 눈부신 금빛이 솟아나면서 세 마리 금룡의 허상이 날아와 서로 구슬을 빼앗으려는 듯한 기세로 천둥번개의 공을 향해 달려들었다. 동시에 용머리가 단숨에 뇌구(雷球) 안으로 파고들자 사나운 뇌성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그 안에서 무수한 번개 줄기가 쏟아져 나와 금룡의 몸에 내리꽂히면서 마치 선계의 과룡대(*剮龍臺: 전설 속 용의 목을 치는 단두대)를 연 것처럼 금 비늘이 용의 몸통 위에서 조각조각 떨어져 나갔고, 그 안의 혈육과 근골이 드러났다.

    금룡은 몸뚱이를 꿈틀꿈틀 비틀며 잠시 버티더니, 결국 견디지 못하고 온몸의 금빛을 잃고 무수한 금색 별빛이 되어 사라졌다.

    그러나 천둥번개의 공도 금룡의 저항에 힘이 차츰 약해져 크기도 절반으로 줄었다. 다만 그럼에도 내리꽂히는 기세는 조금도 느려지지 않았다.

    그때, 세 마리의 금빛 코끼리도 잇달아 고개를 돌려 뇌구를 향해 코를 휘둘렀다. 이 힘은 뇌구에 대항하지 못하고 닿는 순간 은빛 천둥번개에 찢겨 산산조각이 났다. 그러나 한순간에 거대한 세 마리 코끼리의 머리가 맞닿으면서 방패처럼 심협의 머리 위쪽을 덮었다.

    심협은 뇌겁이 잠시 가로막힌 틈을 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체내의 수룡을 전력으로 조종해 니환궁에 충격을 가했다.

    마치 보호벽이나 결계가 맺혀 있는 것처럼 니환궁 주위로는 검은 빛의 장막이 떠 있었다. 수룡은 그 앞에 이르러 고개를 번쩍 치켜들고 힘찬 물 속성의 법력을 휘감은 채 장막에 가서 부딪쳤다.

    쿵!

    둔중한 소리가 심협의 체내에서 울려 퍼졌다. 그의 몸이 덩달아 부들부들 떨렸고, 머릿속이 웅웅 울렸다. 머리 위를 막아선 거대한 코끼리 머리들도 그 영향을 받아 휘청거렸다.

    천둥번개의 공이 이 틈에 곧장 뚫고 들어와 심협에게로 떨어져 내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