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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296화 (296/1,214)
  • 296화. 반도(蟠桃)

    잠시 후, 시야가 다시 돌아왔을 때, 심협은 다시 전투 공간에 서 있었다. 그는 더없이 침울한 상태였다.

    진선기 단계의 뇌부천장은 상상을 훨씬 뛰어넘을 정도로 강해서, 떠올릴 수 있는 모든 수를 썼음에도 도저히 당해낼 수가 없었다.

    “다시 죽을 수는 없어! 이대로는 응혼기에 접어들면서 얻게 된 수명마저도 날리게 될 거야. 그나저나 현실로 돌아갈 목숨이 남긴 한 걸까?”

    심협은 깊게 탄식했다.

    그는 뇌부천장을 노려보며 가만히 대책을 궁리해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승산이 없었다.

    한데 그가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은빛 번개가 스쳐 지나면서 뇌부천장의 모습이 뒤에 나타나 다시 황금 장곤을 가로로 휘둘렀다.

    그의 대응은 이전과 같았고, 한동안 뇌부천장을 수세에 몰아넣기도 했다.

    곧이어 뇌부천장의 모습이 번쩍하고 허공에 줄줄이 잔상을 드리우면서 또 한 번 허공으로 사라졌다.

    심협은 번개처럼 빠르게 머리를 굴려 두 손을 결인하는 동시에 고개를 들고 머리 위를 올려다보았다.

    바로 그때, 위쪽에서 번개가 번쩍이더니 뇌부천장이 난데없이 나타나 심판의 검처럼 황금곤을 휘두르며 내려왔다. 사방에서 활 모양의 청자색 번개와 은빛 번개들이 줄기줄기 떠올라 주위를 뒤덮었다.

    그 기이한 힘이 다시 속박하려는 찰나, 심협의 눈에 별안간 한 줄기 광채가 차올랐다. 이어서 그는 한 손을 갑자기 아래쪽으로 끌어당기며 버럭 외쳤다.

    “떨어져라!”

    그러자 아득히 먼 허공에서 알 수 없는 힘이 끌어당기는지, 별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무수한 빛을 반짝이는 것 같았다. 뒤이어 산처럼 커다란 금별이 허공 어디선가 나타나 금탑 위로 비스듬히 떨어져 내렸고, 허공에 불타는 금빛 화염을 그리며 찬란하게 빛났다.

    금탑 바깥의 장막은 찬란하게 번득였지만, 금별이 떨어지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금별은 빛 장막을 뚫고 지나는 순간, 마치 실체에서 허상으로 바뀐 것처럼 빛의 장막과 금탑, 전투 공간을 뚫고 뇌부천장의 머리 위에 불쑥 나타났다.

    뇌부천장은 이 변고에 전혀 개의치 않는 듯 단단히 거머쥔 황금 장곤의 부적 무늬를 환하게 번득이면서 금빛 번개로 심협을 공격해왔다.

    금빛 번개는 여전히 별의 허상보다 한 발 빨라서 곧 심협에게 떨어질 것만 같았다.

    그 순간, 체내의 용과 코끼리의 힘이 극에 달한 심협은 속박을 가까스로 벗어나 몸을 비틀었다.

    파직!

    금빛 번갯불은 심협의 머리를 맞추지는 못했지만 그의 어깨를 꿰뚫었다.

    한 줄기 피가 뿜어져 나오면서 심협의 팔뚝이 어깨에서부터 잘려나가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그의 안색은 창백해졌고, 몸은 거의 앞으로 고꾸라질 것 같았지만, 여전히 육진편으로 땅을 짚은 채 버텨냈다.

    바로 그때, 금별의 허상이 마침내 뇌부천장의 몸을 내리찍었다.

    콰르릉!

    격렬한 폭발음이 울리고, 무수한 금빛 번갯불이 사방으로 튀었다. 반경 백 장 안에서는 커다란 번개 우산을 받친 것처럼 하늘을 뒤덮는 번개 줄기가 이리저리 움직이며 끊임없이 반짝였다.

    심협은 끔찍한 통증을 참으며 앞을 바라보았고, 그 순간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뜻밖에도 뇌부천장이 멀지 않은 곳에 두 손으로 황금곤을 꽉 움켜쥐고는 바닥에 반쯤 무릎을 꿇고 있었던 것이다.

    장곤의 끄트머리는 금별을 떠받친 채 별이 내려오지 못하게 막고 있었고, 맞부딪힌 곳에서는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고, 끊이지 않는 번개에 눈이 부셨다.

    하지만 별이 떨어져 내리는 힘에는 결국 한계가 있었고, 거센 충돌 속에 끊임없이 힘을 소모하면서 빛이 차츰 어두워져갔다.

    그때, 전투 공간 상공에 갑자기 격렬한 파동이 일어나면서 난데없이 전보다 10배나 더 큰 별의 허상이 나타나 좀 전까지 있던 별 위로 내리쳤다. 그 둘의 빛이 순식간에 어우러지면서 거대한 압력이 그대로 뚫고 내려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그 순간, 뇌부천장은 버티지 못하고 별에 짓눌렸다.

    꽝!

    묵직한 충돌음이 울리면서 전투 공간 전체가 크게 진동했고, 바닥의 돌 받침대 위에서는 한차례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커다란 균열이 거미줄처럼 줄줄이 뻗어 나갔다.

    부서진 대지에는 거대한 검은 무늬가 나타났는데, 그 한가운데에는 오각별 문양 두 개가 있었다. 구름 문양이 그 주위를 둘러쌌고, 그 속에서는 간간이 더없이 뜨거운 별의 기운이 전해져왔다.

    심협은 한 손으로 육진편을 쥔 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팔이 잘려나간 곳은 흐릿한 하얀 빛에 뒤덮여 있었는데, 욱신거리면서도 얼얼했고, 아프면서도 간지러웠다.

    별의 진문(陣紋) 한가운데를 본 심협의 표정이 미세하게 변했다.

    두 별 무늬 위에는 뇌부천장이 드러누워 있었다. 등 뒤의 날개는 별의 힘에 갈기갈기 찢겨졌고, 갑옷도 형편없이 부서졌으며, 온몸이 별빛에 뒤덮여 땅바닥에 갇힌 채 일어나지 못했다.

    “진선의 경지에 도달해 진정한 삼성멸마(三星滅魔)를 수련해내야만 진선기 존재를 단번에 죽일 수 있는 모양이군.”

    말을 마친 그는 망설이지 않고 성큼 나아가 용과 코끼리의 힘을 불러일으켜 뇌부천장의 머리를 향해 육진편을 휘둘렀다. 뒤이어 검은 빛이 뇌부천장의 머리에서 터져 나왔고, 그 몸은 마침내 차츰 흩어져 사라졌다.

    길게 한숨을 내쉬는 심협의 눈앞에 한 줄기 하얀 빛이 스쳐 지나더니 곧장 미간으로 들어가 신혼에 녹아들었다. 그 순간, 심협의 식해에서는 한순간 하늘에 닿을 듯 거대한 물결이 일었다. 이 물결은 번개가 한참 동안 번쩍인 뒤에야 차츰 안정을 되찾았다.

    그는 털썩 주저앉아 잠깐 쉬면서 잘려나간 왼팔 쪽을 곁눈질로 흘끔 보았다. 하얀빛이 사그라들고, 어느새 다시 생겨난 팔은 분홍색으로 빛났다.

    그는 팔을 잠깐 움직여보고는 아무 이상이 없자, 그제야 눈을 감고 가부좌를 튼 채 운기조식을 했다.

    * * *

    눈을 떠보니 전투 공간에서 금빛 대전으로 돌아와 있었다.

    금빛 대전에는 금갑천장이 단정히 앉아 있었다. 그의 손에 들린 금빛 보탑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맨 아래층의 탑문이 천천히 열렸다. 그리고 그 안에서 금빛 광채가 허공을 빙빙 돌면서 심협을 향해 날아왔다.

    심협은 이 빛 덩어리에서 심상찮은 기운을 느끼고는 안색이 약간 변하며 재빨리 그것을 받아 들었다.

    금빛이 손에 떨어져 내리면서 빛이 차츰 사라지자, 찻주전자만 한, 희고 보드라운 빛깔의 복숭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복숭아가 나타나자 그윽한 난초 향 같은 향기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심협이 코를 찡긋거리며 향기를 빨아들이자 그 그윽한 난초 향기가 비강(鼻腔)을 따라 머릿속으로 곧장 들어가자 기분이 상쾌해지고 편안해졌다.

    복숭아를 손에 받쳐 들고 자세히 살펴보니, 몸체에는 고운 솜털들이 가득했고, 빛깔은 황금빛이었으며, 그 안에서 일곱 빛깔 광채가 굴절되어 나왔다.

    “지금껏 저 금탑에서 나온 것들은 등급이 높은 금빛 단약들이었지 이 복숭아도 평범한 물건일 리 없어. 혹시…… 요지반도(*瑤池蟠桃: 서왕모가 사는 곤륜산의 요지에 3천 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신비한 복숭아)가 아닐까?”

    심협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는 민간의 전설이나 여러 일화들에서 반도에 대한 설화를 한두 번 본 게 아니었다.

    전설에 따르면 선계에는 요지 반도원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 안에는 신비한 복숭아나무 3600그루가 심어져 있다. 그중 앞의 1200그루는 3000년마다 한 번씩 열매를 맺는데, 꽃과 과일이 작고, 먹으면 몸이 가볍고 건강해져 백 가지 병이 들지 않는다고 했다.

    중간의 1200그루는 6000년마다 한 번 열매를 맺으며, 그 열매를 먹으면 불로장생할 수 있고, 백주 대낮에 승천하여 신선이 된다. 뒤쪽의 1200그루는 9000년마다 한 번씩 열매를 맺는데, 그것을 먹으면 수명이 끝이 없고 천지와 수명을 함께하며, 해나 달과 나이가 같아진다고 했다.

    심협은 기대를 품은 채, 금빛 대전을 떠나는 것조차 잊고 즉시 복숭아를 한 입 베어 물었다.

    반도의 아삭한 껍질이 갈라지면서 큼지막한 과육이 입속으로 들어갔고, 몇 번을 씹으니 그 안에서 진하고 달콤한 과즙이 흘러나와 입을 가득 채웠다.

    심협은 갑자기 동공이 확장되면서 군침이 돌고 입안에 향기가 흘러넘치는 것을 느꼈다. 그는 이미 일생의 절정에 이른 느낌이었다. 평생 어디에서도 이렇게 아름답고 묘한 맛을 맛본 적이 없었다.

    그 향기롭고 달콤한 즙이 목구멍을 타고 흘러들었고, 심협의 온 폐부는 단비로 촉촉이 젖는 것 같은 기묘한 상태에 빠져들었다.

    바람 한 자락 없건만 심협의 옷자락은 부풀어 올랐고, 온몸이 다섯 빛깔 광채로 뒤덮였으며, 온몸의 경맥, 특히 33줄기의 법맥에서 물처럼 푸른 빛을 발했다. 그러나 정작 그 자신은 이 일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보이지 않는 기류가 주위를 감싸며 서서히 사방의 천지영기가 그에게로 모여들였다.

    심협은 다시 반도를 한 입 베어 물고 천천히 음미하면서 그 속에 담긴 더할 나위 없이 순수한 천지영기가 느릿느릿 온몸에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그와 동시에 그의 단전에서는 하늘을 찌를 듯한 거대한 파도가 이는 듯했고, 이어서 콸콸 솟구치는 파동이 끊임없이 몰려오더니, 순수한 물 속성 법력으로 응결된 푸른 수룡(水龍)이 그 안에서 뛰쳐나왔다.

    이 푸른 수룡이 단전에서 뛰쳐나오는 순간, 온몸에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반도의 영력과 한데 어우러졌다.

    아직 완전한 형태를 갖추지 못했던 수룡은 반도의 영력을 흡수하자마자 영혼이 주입된 것처럼 고개를 쳐들고 포효했다. 두 눈에서는 영광(靈光)이 빛났고, 온몸에도 비늘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푸른 수룡은 단숨에 심협의 임맥으로 파고들어 탁 트인 법맥을 타고 곧장 머리끝까지 돌진해 올라갔다. 수룡이 지나간 곳을 따라 법맥이 쉬지 않고 요동쳤고, 보통 사람들 굵기였던 법맥이 순식간에 배로 확장되었다.

    수룡은 임맥에서 독맥으로 들어간 뒤, 등허리에 이르자 대맥으로 길을 바꿔 계속해서 심협의 온몸에 있는 모든 법맥을 따라 돌아다니며 노닐었다. 뒤이어 수룡이 흡수한 반도의 영력이 점점 많아지면서 심협의 전신 법맥 속 빛도 점점 더 밝아졌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심협의 체내에서 황정경 공법이 스스로 작동하기 시작했고, 식해 안에도 한 차례 폭풍이 일어난 것 같았다. 신식의 허공에는 황정경의 72구결 중 마지막 구절이 끊임없이 메아리치고 있었다.

    “천정과 지관에는 도끼를 늘어 놓았고, 신령한 임금인 반고는 영원히 쇠하지 않는다(天庭地關列斧釿, 靈臺盤固永不衰).”

    얼마 지나지 않아 심협은 반도를 모두 먹어치웠고, 손에는 가늘고 긴, 붉은 빛깔의 씨만 남았다.

    온전한 반도의 모든 영력이 몸으로 빨려 들어가자, 심협은 뭔가 타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는 복숭아씨를 꽉 움켜쥔 채 마음속으로 뭔가를 감지한 듯 낮게 중얼거렸다.

    “그 고비가 다가오려는 모양이군.”

    말을 마친 그는 손 가는 대로 복숭아씨를 내던지고 양손을 들어 법결을 맺은 뒤, 황정경 공법을 운공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내 정신이 몸 안에 시각화되어 나타나, 푸른 수룡의 머리에 올라탄 채 한 손으로 그 뿔을 붙잡고 온몸 곳곳의 규혈을 살폈다.

    수룡이 지나는 곳마다 규혈들이 하나하나 푸른 빛을 발하며 어떤 금제를 깨뜨린 듯 작은 소용돌이가 떠올라 맹렬히 회전했다.

    대승기 정점일 때 온몸에 법력이 충만했던 느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심협은 자신의 모든 규혈이 마치 굶주린 야수처럼 탐욕스럽게 엄청난 양의 천지영기를 집어삼키는 것을 느꼈다.

    점점 더 많은 천지영기가 체내로 들어오자 심협의 옷자락은 극한까지 부풀었고, 몸은 하늘 높이 붕 떠올랐다. 마치 잔뜩 부푼 풍선 같은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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