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295화 (295/1,214)

295화. 뇌부천장(雷部天將)

심협은 법맥 개척을 멈췄다. 금탑 안에서 다시 금빛이 번쩍거렸던 것이다.

대개박술을 익히고 법맥이 13줄기나 늘어나자, 이제 체내의 법력은 보통의 대승 후기 수사보다 3배는 더 많았다.

그는 수련 틈틈이 앞서 천병들과의 싸움을 되새기며 그들의 신통한 술법들에 대해서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이를 전투에 활용하자 이후로 천병 몇을 큰 힘 들이지 않고 격파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한 손에 철편을 든 채 전투 공간의 평대 위에 서 있었다. 저 앞, 멀지 않은 곳에는 손에 쌍극(雙戟)을 든 은갑천병의 빛이 차츰 사라지고 있었다. 그는 끝내 하얀 빛 덩어리가 되어 심협의 신혼 속으로 날아들었다.

“저자가 마지막 천강병이었으니 이제 돌아갈 수 있겠구나.”

심협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방이 빛에 휩싸였고, 그는 어느새 그 공간을 빠져나와 금빛 대전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금빛 대전의 보좌 위에 단정히 앉은 금갑천장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우뚝 솟은 산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금빛 보탑이 환히 빛났음에도 탑문은 열리지 않았고, 단약도 날아오지 않았다.

“에이, 설마! 마지막 천병을 쓰러뜨렸는데 보상이 없단 말이야?”

심협은 진심으로 울컥하는 마음에 투덜거렸다.

한데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앞에 단정히 앉아 있던 금갑천장의 몸에서 눈이 멀어버릴 듯한 금빛이 번쩍이더니, 겹겹의 광채가 공작이 꼬리를 펼치듯 사방을 휩쓸었다.

현실 같기도 환상 같기도 한 순간, 심협은 아찔함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리고 그때, 금갑천장이 되살아난 듯 엄숙한 표정으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역시 방촌산의 계승자로군. 좋아, 괜찮구나. 허나 네가 앞으로 짊어져야 할 짐은 너무도 무거워 이 정도로는 한참 부족하다. 네가 뇌부천장(雷部天將)의 시험도 통과할 수 있을지 지켜보겠다.”

“시험이 더 있습니까?”

심협은 미간을 찌푸린 채 따지듯 물었다. 삼십육천강병의 시험을 통과하면 무사히 현실로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심협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으나, 금갑천장과 입씨름을 할 엄두는 나지 않아 손을 휘휘 저으며 대전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런데 그가 몸을 돌리자마자 뒤에서 한 차례 법력 파동이 전해져왔다.

심협이 재빨리 돌아서자 금갑천장의 눈에서 한 줄기 금빛이 내려와 그의 온몸을 집어삼켰다. 다음 순간, 그의 몸은 다시 전투 공간으로 돌아와 있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이지?”

심협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뭔가 심상치 않았다.

그때, 맞은편에서 은빛이 한 줄기 스쳐 지나갔다. 이어서 그 안에서는 커다란 은빛 광구(光球)가 응결되어 나왔다. 여러 갈래의 번개가 번득였고, 그 사이에서 깡마른 인영(人影)이 나타났다.

자세히 보니, 그 사람의 얼굴은 쪽에서 뽑아낸 짙푸른 물감 같았고, 머리카락은 붉디붉은 주사(*硃砂: 수은으로 이루어진 황화 광물. 붉은색을 띠어 붉은색 안료로 쓰인다) 같았으며, 두 눈은 둥글고 툭 튀어나와 있었다. 뺨은 뾰족하고 길쭉했으며, 입술은 두툼해서 밖으로 뒤집혀 있었는데, 삐죽 튀어나온 뾰족한 이빨이 가득해 언뜻 보면 원숭이 악귀로 착각할 만했다.

그의 등 뒤에는 푸른 날개가 한 쌍 달려 있었고, 몸에는 은빛 갑옷을 한 겹 걸치고 있었다. 갑옷 위로는 많은 금빛 문양이 있어 무척 아름다웠다. 사내가 손에 쥔 금빛 장곤(長棍: 기다란 몽둥이 형태의 무기) 위에는 빽빽한 뇌운문(雷雲紋)이 새겨져 있어 척 보기에도 비범해 보였다.

비록 그 용모는 추할지라도 기세는 놀라웠다. 백여 장이나 떨어져 있었음에도 심협은 그에게서 전해져오는 법력의 파동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그의 기운은 대승기 단계를 훨씬 넘어 진선기에 이르러 있었다.

심협은 그가 날개를 치지 않고도 땅 위에 약간 떠 있는 것을 보고 이번 전투가 결코 순탄치 않을 것임을 직감했다.

그가 손목을 돌리자 손바닥 한가운데에서 검은 빛이 번득이더니 육진편이 나타났다.

심협이 막 전투태세를 취하자, 그 못생긴 뇌부천장의 눈에 한 줄기 광채가 번득였다. 뒤이어 길이 2장의 황금곤을 한 손으로 들고 돌려 심협을 가리켰다.

“이야, 도발도 다 할 줄 알고……. 천병들보다 훨씬 낫네.”

심협은 비아냥대듯 말했지만, 내심 놀라서 더욱 경각심이 일었다.

그때, 그는 어렴풋이 치직 하는 소리를 들었다. 이어서 전면 허공에 난데없이 한 줄기 번개가 번쩍 스쳤다. 그 순간, 뇌부천장의 모습이 그 자리에서 사라져버렸다.

심협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뒤에서 번갯불이 번쩍했고, 뒤이어 강풍이 휘몰아쳤다. 그리고 황금 장곤 하나가 연달아 금빛 잔상을 드리우면서 그의 허리를 향해 다가왔다.

퍽!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심협은 극심한 통증에 마치 거대한 산에 내리 찍힌 것처럼 참지 못하고 몸을 새우처럼 웅크린 채 나가떨어졌다.

그의 몸이 땅에 막 곤두박질치려는 순간, 한 줄기 번갯불이 그가 떨어질 곳에 번쩍였다. 그곳에서는 뇌부천장이 심협을 기다리고 있다가, 지렛대를 들어 올리듯 황금곤을 번쩍 들어올렸다. 그러자 땅에 떨어지지도 않은 심협의 몸이 방향을 바꾸어 다시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이, 이런!”

심협은 간담이 서늘해졌다. 뇌부천장의 다음 동작을 예측했지만, 그 생각도, 반응도 상대방보다 한 발 느렸다. 그가 막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했을 때, 뇌부천장은 이미 그의 머리 위에 나타난 뒤였다.

뇌부천장의 두 눈에 날선 번개가 번쩍였다. 그는 두 손으로 황금곤을 단단히 움켜쥔 채 양팔로 크게 원을 그리며 심협의 머리를 내리쳤다.

황금곤 위의 뇌운(雷雲) 문양이 번득였고, 굵고 단단한 청자색 천둥번개가 솟구쳐 나와 황금곤을 휘감으며 하늘을 뒤흔드는 굉음을 발했다.

심협은 반응할 새도 없이 머리를 얻어맞고야 말았다.

비할 데 없이 강렬한 통증이 엄습해온 순간, 모든 청자색 번갯불이 한곳에 모여 날카로운 칼끝처럼 그의 머리를 파고들었다. 그의 신식이, 이어서 그의 의식이 온통 어둠에 잠겨들었다.

* * *

얼마나 지났을까. 심협은 문득 정신이 들었지만, 그 순간 참지 못하고 낮게 신음했다.

잠시 끙끙 앓던 그가 정신을 차리고 둘러보니 금갑천장이 앞에 서 있었다.

“……죽은 건가?”

심협은 자기 뺨을 문지르면서 조금 얼떨떨한 듯 중얼거렸다.

방금 만난 뇌부천장처럼 빠른 움직임은 일평생 본 적이 없었고, 그의 황금곤 같은 위력도 겪어보지 못했다.

“안 돼. 대승기의 힘으로 진선기에 맞서다니, 전혀 승산이 없잖아! 이러다간 그냥 개죽음만 당하는 거야.”

심협은 한 번 죽을 때마다 현실 세계에서의 수명이 줄어든다는 생각에 속이 타들어갔다.

그가 황급히 돌아서서 금빛 대전을 나서려는데, 뒤에서 익숙한 법력 파동이 다시 전해져왔다.

발걸음을 내딛던 심협의 움직임이 굳어지면서 쓴웃음이 가시기도 전에, 그의 온몸은 벌써 금빛에 휩싸여 금세 다시 전투 공간에 나타났다.

저 너머 백여 장 앞에서는 뇌부천장의 모습이 다시 나타났다. 눈빛은 여전히 도발적이었다.

심협은 한숨을 내쉬며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기억을 더듬어 아까 뇌부천장이 보인 궤적에서 몇 가지 연결점을 찾은 뒤, 손을 뒤집어 육진편을 꺼내고는 정신을 집중해 맞은편을 바라보았다.

그때, 뇌부천장이 갑자기 등 뒤의 두 날개를 활짝 펼쳤다. 푸른 돌풍에 은빛 천둥번개가 뒤섞인 빛이 갑자기 번쩍하더니 그의 몸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다음 순간, 뇌부천장의 몸이 심협 뒤에 나타나 줄줄이 잔상을 드리우며 황금곤을 휘둘렀다. 허리를 향해 다가오는 황금곤의 강력한 기세와 힘을 도저히 막아낼 엄두도 나지 않았다.

땅!

맑은 소리가 울렸다.

황금곤의 궤적을 새카만 철편이 막으면서 맹렬한 폭풍이 일어났다.

‘엄청난 힘이다!’

심협은 속으로 감탄했다. 육진편으로 막긴 했으나, 그는 그 거대한 힘에 그대로 나가떨어졌다. 몸이 미끄러진 궤적도 방금 전과 다를 바 없었다.

심협은 뇌부천장이 다음 순간 저 앞에 나타나 황금곤으로 자신을 하늘 높이 밀어 올릴 것을 예상하고는 땅에 떨어지기 전에 황정경 공법을 운공해 용과 코끼리의 힘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왼손 팔뚝에서 금빛이 번쩍이자 손바닥이 굵은 용의 발로 변해 몸 아래를 단숨에 내리치면서 때마침 뇌부천장이 휘두르던 황금곤을 움켜잡았다.

곧이어 황금장곤이 위로 휙 휘둘러지자 심협도 들려 올라갔다. 하지만 곤봉을 잡은 손에 힘을 준 덕에 하늘 높이 던져지지는 않았다.

한데 그 순간, 황금곤 위의 부적 문양이 갑자기 빛나더니, 청자색 번갯불이 동시에 번쩍이면서 뇌부천장이 잡고 있는 곳에 모여들어 심협을 덮쳐왔다.

심협은 이 또한 미리 예상하고 한 발 먼저 손을 놓고 몸이 땅에 떨어지는 순간 곧바로 사월보를 시전했다. 동시에 발아래로 달그림자를 흩뿌리며 뇌부천장을 향해 돌진하면서 육진편을 세차게 휘둘렀다.

육진편에서 시커먼 빛이 검은 태양처럼 피어올라 뇌부천장을 향해 떨어졌다. 그 순간, 뇌부천장의 두 눈에 번갯불이 번쩍 스치더니, 온몸의 갑옷에서 금빛이 쏟아졌다. 이 번갯불은 갑옷 틈새로 흘러나와 번개 장막으로 변해 그를 보호했다.

꽈르릉!

육진편이 번갯불 장막을 내리치자 천지를 진동시키는 천둥소리가 울렸다. 하지만 장막에 막힌 육진편은 한 치도 전진할 수 없었다. 도리어 장막 표면에서 번갯불이 줄줄이 솟구쳐 나와 기다란 채찍처럼 매섭게 휘몰아쳤다.

심협은 아슬아슬하게 피한 뒤, 곧장 10여 장을 물러났다. 그리고 황정경 공법을 전력으로 불러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의 등 뒤로 금빛이 떠오르더니, 다섯 마리 금룡과 거대한 코끼리 그림자가 연달아 나타나 허공에서 한바탕 춤추듯 움직이고는 그의 몸속으로 몰려들었다.

순간, 그의 몸집이 2배로 불어났고, 두 다리에 푸른 빛이 휘감기면서 거대한 코끼리 발이 되었다. 양팔과 등줄기부터 목덜미는 두터운 용 비늘에 뒤덮였다. 육진편을 잡은 손도 굵직하고 튼튼한 용의 발로 변했다.

이 변화가 끝나기가 무섭게 앞에서 한 줄기 은빛이 스쳐 지났다. 뇌부천장은 어느새 날개를 흔들어 심협 앞까지 바싹 다가와 그의 목을 향해 손을 내찔렀다.

이 일격은 더없이 빨라서 심협은 막거나 피할 틈이 없었다.

치직!

기이한 소리와 함께 번갯불이 번쩍이며 뇌부천장의 손에 감겨 있던 금빛 번개가 한데 얽혀 비수 같은 금빛 번개칼로 변했고, 이 칼이 심협의 목을 그으면서 금빛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다행히 용 비늘 덕에 심협은 무사했다. 그리고 그 틈에 그는 육진편을 세차게 휘둘렀다. 철편은 거대한 검은 빛으로 변해 뇌부천장의 가슴을 때렸다.

쾅!

둔중한 소리가 울리면서 새카만 빛이 심협 앞에서 폭발했고, 뇌부천장의 몸뚱이는 백여 장이나 날아갔다.

하지만 뇌부천장은 땅에 떨어지기 전에 두 날개를 다시 움직였고, 거의 동시에 은빛 번갯불이 치지직 소리를 내며 그의 온몸이 다시 흐릿해지더니, 연이은 은빛 잔상으로 변해 허공으로 사라졌다.

심협은 두 눈을 빠르게 두리번거리고 신식으로 주변을 뒤덮었지만, 안타깝게도 뇌부천장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신식도 주변 곳곳에 법력 파동이 있다는 것만 알아차렸을 뿐, 그 모습은 찾아내지 못했다.

그때, 머리 위에서 갑자기 파드득 하는 소리가 났고, 심협이 고개를 홱 들어보니, 하늘에서 인영 하나가 두 손으로 금빛 장곤을 쥔 채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황금곤 위의 부적 문양이 빛을 발하자 청자색 번갯불이 은빛 번개줄기에 섞여들었다. 그리고는 둘레가 족히 백 장쯤 되는 번개 광진(光陣)으로 변해 거꾸로 뒤집힌 커다란 그릇처럼 떨어져 내렸다.

광진에 닿기도 전에 심협은 온몸이 저릿저릿했고, 전신의 털과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이어 한 줄기 기이한 힘이 주위를 뒤덮고 그를 가두어 피할 수도 없고, 심지어 자리를 이동하는 것도 할 수 없었다.

그와 동시에 금빛 장곤 위의 금빛이 더욱 환하게 번쩍이면서 어린아이 팔뚝 굵기의 금빛 번개로 변해 발사되었고, 그 기세가 너무나도 빨라 무언가 번쩍한 순간 심협의 미간에 정통으로 꽂혔다.

심협은 미간이 서늘해지는 것만 느꼈을 뿐, 심지어 그 번갯불의 위력을 느낄 겨를도 없이 머리가 쪼개졌고, 시야는 다시 어둠에 잠겨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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