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4화. 보조 법맥
심협은 아직도 엷은 분홍빛을 띤 가슴께의 피부를 만져보고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이 대개박술의 회복 효과는 예상보다 훨씬 뛰어나, 현음개맥결 수련을 보조하는 데 써도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
금갑천장에게서 다시 단약 하나를 받은 심협은 금빛 대전 밖에서 호흡을 가다듬으며 수련했다. 일전에 대개박술을 익히면서 공법에 작게나마 성과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 수련 경지도 알게 모르게 높아졌고, 단약의 도움까지 더해지자 놀랍게도 대승기 정점에 진입한 상태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의 두 눈에는 신광(神光)이 형형했고, 마음속에 생각이 일자 몸속 법력이 저절로 운행됐다. 단전 안에서는 한 줄기 뜨거운 기운이 전해져 온몸에 힘이 용솟음쳤다.
삽시간에 허공의 기류가 요동치며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것 같았고, 용과 코끼리의 포효가 한 차례 울려 퍼졌다. 또한 다섯 마리 금빛 거룡(巨龍)과 거상(巨象)의 모습이 떠올라 그의 주위를 맴돌았고, 온몸이 금빛으로 찬란하게 빛났다.
다섯 마리 금룡은 이빨을 드러내고 발톱을 휘두르며 수염을 길게 뻗는 것이, 거의 살아 있는 생물 같았다. 금코끼리는 비교적 진중하여 머리를 높이 쳐들고 코로 하늘을 찔렀는데, 흡사 포효하는 듯했다.
금룡과 금코끼리의 형상이 심협 주위에 자리를 잡자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빛이 하늘을 찌를 듯 솟구쳤고, 금탑을 뒤덮은 장막도 덩달아 격렬하게 떨렸다.
“마지막 황정경문을 완전히 깨닫는 것은 문제가 아니지만, 이 용과 코끼리의 힘을 원만하게 하려면 대승기 정점의 난관을 돌파해서 진정으로 진선기에 들어서야겠어.”
그는 약간 멍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내 그의 온몸에서 금빛이 번쩍이더니 다섯 마리 금룡과 금코끼리 형체가 빠르게 줄어들었고, 모두 금빛 광채로 변해 그의 체내로 들어가 사라졌다.
곧이어 그가 양팔을 살펴보니 그 위로는 금빛이 감돌았고, 아래로는 용 비늘 무늬가 한 층 떠올라 반짝였다. 그 속에는 보이지 않는 기운이 쉬지 않고 거세게 일렁이며 전신에서 간간이 거친 파동을 내뿜게 했다.
심협은 미소를 지은 채 손으로 법결을 맺었다. 그러자 온몸의 금빛이 흩어지고 비로소 모든 환상도 차츰 사라졌다.
“때가 되었어!”
그는 진중한 목소리로 말한 뒤 눈을 감은 채 가부좌를 틀었다. 그리고 정신을 가다듬어 현음개맥결 비술의 세세한 부분을 찬찬히 떠올렸다.
한참 뒤, 그는 마음을 굳히고 손바닥을 흔들어 육진편을 꺼내 앞에 세웠다.
이 물건 안에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많은 음살의 기운이 봉인되어 있었는데, 앞서 은갑천병과 교전을 치를 때부터 여러 차례 나타났다. 심협은 그 안에 저장된 음살의 기운으로 현음개맥결을 수련할 생각이었다.
그가 자신의 종아리를 빤히 응시하자 시선이 닿은 곳의 기표(*肌表: 피부를 보호하는 기능을 포함한 피부조직)와 혈육, 피부까지 모두 차츰 흐릿하게 사라지고, 음교맥에서 갈라져 나온 경맥 한 줄기만 남아 희뿌연 빛을 발했다.
심협은 곧장 법술을 펼치는 대신 손가락을 칼처럼 모아 종아리의 표피를 찔렀다. 그리고는 손가락을 움직여 그림을 그리듯 다리에 문양을 새기기 시작했다.
그의 손끝이 이리저리 움직이자 곧 상처에서 피가 방울방울 솟아나와 피부를 타고 흐르면서 가닥가닥 검붉은 핏자국을 남겼다. 그리고 잠시 후, 손끝이 멈추었을 무렵에는 핏빛 부적 문양이 그 위에 나타났다.
그 문양은 거의 종아리 전체를 뒤덮었다. 한가운데 촘촘하고 미세한 부적 문양 위에는 자잘한 핏방울들이 맺혀 있어 마치 개미 떼가 늘어선 것 같기도 했고, 남강(*南疆: 남쪽 국경지대)의 고술 같은 느낌도 들었다.
심협은 시선을 집중한 채 현음개맥법결을 나지막하게 읊조리며 손가락을 모아 육진편 위의 허공을 가리켰다. 손끝에서 하얀 빛줄기가 철편으로 쏘아져 들어가면서 철편을 뒤흔들었고, 곧 그 위로 시커먼 빛이 번뜩였다.
전투 때와는 다르게 이 검은 빛은 아무런 파동이 없었다. 심지어 부드럽고 온순해 보일 정도였다. 빛이 잦아들자 짙고 검은 빛줄기 하나가 갈라지더니 심협에게 이끌려 밖으로 흘러나왔다.
이 새까만 빛줄기가 흘러내려 종아리에 새겨진 부적 문양에 떨어지자 순간 먹물이 한 방울 떨어진 듯 그대로 핏자국을 검게 물들였다. 뒤이어 순식간에 부적 문양 전체가 영기를 불어넣기라도 한 것처럼 온통 검은 빛을 발하며 스스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종아리 한가운데의 개미떼 같은 부적 문양은 문득 살아난 것처럼 심협의 피부에 하나하나 박혀 혈육 깊숙한 곳의 경맥으로 파고들었다.
심협은 종아리에서 수백 마리 개미가 피와 살을 갉아먹는 것처럼 얼얼하고 간지러우면서도 욱신거려 인상을 찌푸렸다.
이 감각은 단순한 통증보다 훨씬 괴로워서 거의 실신할 지경이었지만, 심협은 이를 악물고 정신을 굳건히 다잡았다. 그 개미떼 같은 부적 문양이 곧 그의 경맥으로 들어가면 본격적으로 맥이 트이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혀 다른 날카로운 통증이 전해지면서 심협의 경맥이 한순간 끊어졌고, 이어서 경맥과 음교맥의 연결이 끊어지면서 마비된 듯 무감각한 느낌이 경맥을 따라 퍼져갔다.
“……실패인가?”
심협은 허탈해 한숨조차 내쉬지 못했다.
<현음개맥결>에는 ‘개미 문양이 맥을 갉아먹게 하고, 음기가 주입될 때에는 맥박이 끊어지지 않고 음기가 다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실이 불에 걸려 있는 것처럼 조금이라도 요동해서는 안 된다’라고 적혀 있었다.
이는 곧 개미 문양이 맥을 갉아먹고 경맥을 잠식해도 맥이 끊이지 않게 유지하면서 문양의 유도 아래 음살의 기운과 서로 결합하게 하라는 뜻이리라.
첫 시도는 너무 빨리 실패해서 심협이 경맥과 음살의 기운이 맞물리는 것을 채 느끼기도 전에 이미 경맥이 끊어졌고, 다리에 새겨진 부적 문양에 담긴 음살의 기운은 법력에 이끌려 천천히 그의 몸에서 끌려 나왔다.
심협은 생각을 움직여 양손을 몸 앞에 결인하고 묵묵히 대개박술의 신통력을 운공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곧 몸속에서 한 줄기 순양의 힘이 흘러 끊어진 경맥을 감싸고 회복시키기 시작했다.
잠시 후 빛이 사그라들자, 개미 문양으로 끊어졌던 곁가지 경맥은 원상태로 회복되었다.
심협은 잠시 휴식을 취했다가 다시 현음개맥결을 운공하여 육진편 안의 음살의 기운을 몸 안으로 끌어들이고, 그 곁가지 경맥을 다시 열었다.
음살의 기운이 유입되자 부적 문양 전체가 다시 검은 빛을 발하더니, 아까의 시큰하고 얼얼한 통증이 다시 나타나면서 개미 문양이 경맥을 물어뜯었다.
이번에 심협은 조금이라도 마음이 분산되지 않도록 온 정신을 쏟아부어 개미 문양이 조금씩 경맥을 타고 기어오르도록 조심스레 통제하면서, 그 물어뜯는 힘을 억눌렀다.
경맥은 처음처럼 쉽게 끊어지지는 않았지만, 경맥이 물어뜯길 때 전해져 오는 날카로운 통증은 참기 힘들어 잠깐 사이에 심협의 얼굴은 창백해졌다. 식은땀이 이마를 타고 줄줄 흘러내렸다.
그럼에도 그는 긴장을 조금도 늦추지 않고 개미 문양을 쉬지 않고 전진시켰다. 그 뒤로 끌려오는 음살의 기운을 경맥보다 가느다란 실로 응결시켜 개미 문양이 갉아먹은 흔적을 따라 휘감게 했다.
개미 문양이 조금씩 맥을 갉아먹으며 앞으로 나아가다가 곧 앞쪽의 풍륭혈(*豊隆穴: 종아리 앞쪽 모서리에 위치한 혈자리)에 이르자 강렬한 통증이 엄습해오면서 팽팽히 긴장되어 있던 경맥이 다시 끊어져버렸다.
심협은 깊게 탄식하며 음살의 기운을 이끌어 몸 밖으로 내보내고 다시 대개박술로 경맥을 회복시킬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흘렀다. 심협은 그간 이 곁가지 경맥만 해도 30여 차례 복구했는데, 한동안 종아리 바깥쪽 풍륭혈에 가기도 전에 경맥이 끊어져버렸으나 이후 진척이 좀 있어 이제 풍륭혈에 도달하는 데에는 성공했다.
하지만 개미 문양이 들어서자 곧 규혈의 강한 거부가 일어나면서 근처의 경맥들까지 영향을 받았다. 이 때문에 심협은 오랜 시간을 들인 끝에 겨우 원래 상태를 회복할 수 있었다.
그 뒤로는 지난할 정도로 붕괴가 이어졌고, 개미 문양이 규혈에 순조롭게 들어가더라도 음살의 기운이 유입되면서 본능적인 거부반응이 일었다. 이로 인해 옆에 있는 법맥 하나가 자극받으면서 법력이 말끔히 사라져버렸고, 심협의 종아리 경맥까지도 엉망진창으로 휘젓는 바람에 그는 의식을 잃기도 했다. 대개박술이 경맥들을 하나하나 바로잡아주지 않았더라면, 지금 심협의 종아리는 아예 못 쓰는 상태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거듭되는 실패를 겪으면서 심협은 개미 문양을 통제하고 음살의 기운을 이끌어내는 데 점점 능숙해졌다. 이제 곁가지 경맥의 풍륭혈은 전부 뚫어 마지막 삼음교(*三陰交: 정강이 안쪽에 있는 세 개의 음경락이 교차하는 혈자리)만 남았다.
그는 두 눈을 꼭 감은 채 손으로 법결을 맺고 다리 위 부적 문양을 작동시키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삼음교혈에서는 한데 모인 개미 문양이 그 안에 저장된 법력과 서로 뒤엉켜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심협은 미간에 응어리가 맺혀 극심한 통증을 겪고 있었지만, 현재 음살이 맥을 틔우는 중요한 시점이라 조금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가라!”
그가 적당한 때를 맞춰 가볍게 외치며 결인한 손가락으로 아래쪽을 가리키자 몸 앞에 떠있던 육진편이 파르르 몸을 떨었다. 뒤이어 한 줄기 살기가 가느다란 실 모양으로 응집되어 나와 개미 문양을 따라 삼음교혈로 곧장 들어갔다.
그 혈자리에서 돌연 빛이 번쩍이며 대부분의 법력이 밀려나왔고, 개미 문양과 음살의 기운이 서로 결합해 남은 법력 간에 특수한 균형을 이루며 한데 어우러졌다.
이 마지막 관문이 함락되면서 현음개맥의 총공격이 마침내 시작되었다.
심협의 다리 위에 새겨진 부적 문양의 빛이 갑자기 밝아지더니, 위에서 핏빛이 한동안 반짝이다가 이내 오그라들며 차츰 피와 살 깊숙이 파고들어갔다. 그리고는 한 줄기 빛으로 변해 곁가지 경맥 전체를 뒤덮었다.
곁가지 경맥 안에서는 검은색, 붉은색, 하얀색 빛이 동시에 번득여 마치 채색 명주 띠처럼 맺혔고, 반짝반짝 거리면서 서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그 위의 마지막 광흔(光痕)이 사라지면서 음살의 기운과 경맥이 마침내 융합을 이루었다.
그와 동시에 심협의 종아리에 새겨진 부적 문양이 새하얀 빛을 터뜨렸고, 빛 무늬가 번쩍이면서 기이한 힘이 스며들어 그 경맥을 휘감았다.
심협은 그 신비로운 힘에 가슴이 요동쳤다. 부적 문양의 작용 아래 경맥 속 음살의 기운이 점점 사라지고 새로운 법맥이 조금씩 생겨나는 것이 느껴졌다.
마침내 마지막 음살의 기운 한 점까지 완전히 변하자, 심협의 음교맥 위 경맥에서 드디어 맑고 투명하게 반짝이는 푸른 빛의 띠를 이루었다.
심협이 생각을 움직이자 정신이 법맥에 잠겨들었고, 가닥가닥 실오라기 같은 법력이 음교맥에서 흘러나와 이 새로운 법맥으로 차츰 모여드는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그가 법맥을 살짝 움직이자 법맥에 모여든 법력이 곧바로 운행됐다. 다만 이 법맥은 너비가 본래의 20줄기에 미치지 못하고 유연성도 약간 떨어졌다. 다행이라면 가장 중요한 법력의 운행속도는 다소 느리긴 해도 그 효과는 다른 법맥과 거의 같았다.
“되는구나! 이렇게 되면 법맥의 수가 적잖이 늘어날 수 있겠어. 하하하!”
심협은 저도 모르게 껄껄 웃으며 외쳤다.
그리고 잠시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은 뒤, 다시 새로운 법맥을 개척해갔다. 그는 꿈속에 있는 동안 현음개맥결의 신묘한 작용을 최대한 많이 터득해두려 했다. 실패가 많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이 법술에 대해 더 깊이 깨달을수록 현실 세계에서 더 확실하게 법맥을 개척할 수 있고, 법맥의 수가 많아져야 수행 자질도 상승할 것이다. 그리고 수행 자질은 그에게 있어 수명과 직결됐다.
그런 집념으로 심협은 거의 미친 사람처럼 쉬지도 않고 현음개맥결 수련에만 몰두했다. 10여 개의 곁가지 경맥은 그의 괴롭힘 아래 거의 300여 차례나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졌다.
그러던 중 수궐음심포경(手厥陰心包經)으로 통하는 곁가지 경맥이 끊어지면서 뜻하지 않게 심포경 속의 법력이 역으로 주입되면서 그 안에 담긴 음살의 기운과 충돌했을 때는 정말 위험했다. 거의 생사를 건 한바탕 격투를 벌였는데, 하마터면 심협의 심포경 요혈(*要穴: 중요한 혈자리)에까지 영향을 미칠 뻔했다.
다행히 중요한 순간 심협은 황정경 공법을 운공해 자신을 보호했고, 대개박술로 회복에 박차를 가하여 그 곁가지 경맥을 온전히 보호하고 수궐음심포경도 고비를 넘기게 했다.
이렇게 거듭된 시도로 그는 보조법맥 13개를 연달아 개척했고, 이제 현실에서도 법맥 개척을 시도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