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293화 (293/1,214)
  • 293화. 대개박술의 위력

    심협은 순양검기를 거둬들이고 일어나 난간에 기대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여전히 오홍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도 탑 속으로 들어왔는지 아니면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심협은 다시 계단 앞으로 돌아가 앉아서 눈을 감고 호흡을 고르기 시작했다.

    대략 반 각 정도 지난 뒤에야 그는 두 눈을 뜨고 두 손으로 몸 앞에 법인(*法印: 불교에서 진리의 표시를 일컫는 말)을 맺으며 대개박술의 구결을 읊조리기 시작했다.

    이어서 번득이는 시선으로 자신의 팔뚝을 내려다보았다. 팔뚝의 피부가 차츰 얇아지는가 싶더니, 놀랍게도 조금씩 투명해져 그 안의 근육과 근골, 혈관 속 혈액의 흐름이 모두 또렷하게 보였다.

    “사람의 근골과 혈육이 이처럼 많이 나뉘어 있는 줄은 몰랐군. 이 마디마디 근육의 결과 배열도 모두 달라. 저 사이로 틈 같은 게 보이는데 이걸 또 어찌 잘라야 백정이 소를 잡듯 능수능란하게 할 수 있을까?”

    심협은 더 뚜렷하게 보일수록 더욱 놀랐으나, 포기할 마음은 없었기에 곧 대개박술에 따라 순양검기를 팔뚝으로 이끌었다. 이어서 순양검기가 법맥을 벗어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오게 한 뒤, 검끝을 돌려 팔뚝 위로 떨어뜨렸다.

    대개박술은 바깥에서 안쪽에 이르는 것이기에, 첫 번째로 벗겨내야 할 곳은 바로 사람의 표피였다. 파괴되었다가 다시 세워지고, 열었다가 다시 합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피부의 구조를 깊이 이해하게 될 터였다.

    검끝이 떨어지자 심협은 손목에 날카로운 통증을 느꼈다. 이미 투명한 상태의 피부 위로 별안간 갈라진 상처 하나가 생겨났지만, 그 속에서는 털끝만큼의 피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이것이 대개박술 비법의 비호로, 기혈의 방해를 막아 피부를 절단하는 데만 전념하게 하는 것이었다. 바로 이런 집중력이 피부가 갈라질 때 함께 오는 통증을 더욱 잘 이겨낼 수 있게 해주었다.

    심협은 미간을 찌푸리고 이를 악문 채 긴장을 늦추지 않고 온 정신을 집중하여 신념(神念)으로 검기를 이끌었다. 그리고는 손목을 따라 팔꿈치 쪽으로 베었다.

    겨우 몇 촌 벤 것만으로도 식은땀이 흘렀고, 안색은 창백하게 질려버렸으며, 온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이는 어쩔 수 없는 반응이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온 마음을 다해 피부 속의 모든 세세한 변화를 느껴야만 했고, 살결이 갈라질 때의 미세한 감각은 물론, 곳곳의 모공이 벌어졌다 수축하는 것도 놓쳐서는 안 됐다.

    검기의 날이 천천히 긋고 지나가자 팔뚝의 피부가 갈라지면서 법력의 뒷받침 아래 양쪽으로 갈라진 상처가 생겨났다. 위쪽은 어렴풋한 빛으로 한 겹 덮여 있어 그 안의 근육과 혈관들을 보호했다.

    심협은 꾸준히, 쉬지 않고 피부를 벗겨내며, 한 치 또 한 치 피부의 결을 느꼈다. 시간은 마치 멈춘 것처럼 몹시도 느려지기 시작했다.

    * * *

    시간이 흐를수록 대개박술이 깊고 정교해지면서 통증은 점점 커져갔지만, 덕분에 둔감해지지 않을 수 있었다.

    현재 그는 종아리의 피부와 근육이 거의 투명한 상태였다. 몽롱한 하얀 빛이 아래쪽에 숨겨진 음교맥(*陰蹺脈: 기경팔맥의 하나로, 안쪽 복사뼈 아래에서 시작해 넓적다리 안쪽을 타고 눈까지 가는 경맥)을 뒤덮어 경맥 전체가 엷은 금빛 광택을 띠고 있었다. 그 위로 군데군데 미세한 상처를 엿보였지만, 빠른 속도로 치유되고 있었다.

    살갗을 벗기고 살을 가르며 뼈를 깎는 3단계를 거친 끝에 심협은 드디어 경맥을 가다듬는 단계에 이르렀다.

    대개박술의 수련은 앞의 모든 단계와 마찬가지로 전부 파괴한 뒤 다시 세우는 과정이다. 그는 순양검기로 육신을 해체하고 해체한 몸의 모든 살결을 파악한 뒤, 다시 순양의 힘과 법력으로 고쳐서 마지막으로 전체를 재창조했다.

    다만 갈수록 고치는 방법이 더욱 정교해졌고, 해체하고 다시 만들어야 할 부분은 더욱 정밀해졌다. 특히 경맥은 인체에서 가장 빽빽하고 복잡한 체계로, 오장육부와 머리 같은 중요 기관에 버금갈 정도로 어려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심협의 종아리를 뒤덮었던 빛이 갑자기 사그라들었고, 음교맥 위의 상처도 완전히 원래대로 회복됐다.

    ‘경맥을 복구할 수만 있다면 현음개맥결을 시도해볼 수 있겠어!’

    그는 탁한 숨을 내뱉고는 옷소매로 관자놀이의 땀을 닦으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한데 바로 그때, 탑문에 갑자기 빛이 깜빡거렸다.

    심협은 움찔 놀라 벌떡 일어나서는 곧장 문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잠시 주저하다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안에 들어서자마자 금갑천장이 눈에서 금빛을 내뿜어 다시 그를 전투 공간으로 끌어들였다.

    ‘너무 오랫동안 탑에 들어오지 않아서 그런 건가?’

    심협이 탄식하는 사이 돌 받침대 맞은편에 은빛이 번쩍이더니 또 하나의 은갑천병이 모습을 드러냈다. 건장한 체격에 손에는 쌍간(*雙鐗: 길고 날이 없으며 네 각이 져 있고 윗부분에 손잡이가 있는 고대 병기의 하나)을 든 사내가 차가운 눈으로 심협을 바라보고 있었다.

    심협은 얼른 나가서 현음개맥결을 수련하고 싶은 마음에 곧바로 육진편을 꺼내며 달려들었다.

    은갑천병은 줄곧 냉랭하게 심협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꿈쩍도 않다가 둘 사이의 거리가 10여 장에 이르자 두 눈에서 번득이는 빛을 내뿜으며 몸을 낮췄다. 그러더니 발끝으로 세차게 땅바닥을 찍고는 쏜살같이 돌진했다. 그의 발아래로 은빛 기류가 감돌았다.

    은갑천병은 양손에 쥔 쌍간을 몸 앞에서 교차시키며 거의 단숨에 심협 앞으로 다가왔다. 이어서 그가 양손을 휘두르자 쌍간에서 활처럼 굽은 금빛 호광(弧光)이 하나씩 뿜어져 나와 서로 엇갈리며 심협에게로 날아들었다.

    거리가 워낙 가까워 심협은 미처 피할 수 없었고, 우뚝 멈춰 서서 손을 뒤집어 육진편을 쥐고는 바닥을 세차게 내리찍었다. 그러자 철편 위에서 검은 빛이 세차게 뿜어져 나오며 몸 앞에 검은 울타리를 세워 놓은 것처럼 철편의 그림자가 양쪽으로 겹겹이 뻗어나갔다.

    퍼펑!

    엇갈린 금빛 호광과 검은 울타리가 충돌하면서 폭발음이 울렸다. 겹겹이 철편 그림자가 연이어 부서지더니 끝으로는 육진편 본체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났다.

    심협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며 하늘 높이 치솟는 들불 같은 기세로 철편을 휘둘렀다. 철편에서는 순간 굵직한 그림자가 쏘아져 나와 땅을 박차고 은갑천병의 얼굴로 돌진했다.

    철편의 그림자가 돌진하여 은갑천병의 몸을 두들기려는 찰나, 그의 몸에서 갑자기 빛이 번쩍였다. 그러더니 미간에서 한 줄기 빛이 생겨나 그의 몸을 세로로 나누었고, 다음 순간 놀랍게도 두 명의 천병이 되어 있었다.

    다시 보아도 두 은갑천병은 용모만이 아니라 몸의 기운까지도 완전히 똑같았다. 즉, 둘 다 대승 중기의 천병이었다.

    두 형상은 각자 금간(金鐗)을 한 자루씩 쥔 채 좌우에서 심협에게로 달려들었다. 그들의 발밑에서는 은빛 기류가 빙빙 돌면서 모습이 순간 흐릿해지더니, 각각 좌우로 연이은 잔상을 그리며 쉬지 않고 심협을 가운데로 에워쌌다.

    “잔재주를 부리는구나!”

    심협은 잔상들 틈에서 확실히 다른 두 그림자를 한눈에 분별해내고는 낮은 기합과 함께 육진편을 크게 휘둘렀다.

    철편 그림자가 느닷없이 덮쳐오자 두 잔상은 심협을 슬쩍 보았으나, 별다른 행동은 취하지 않았다. 곧이어 다른 잔상들도 전부 그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육진편이 거세게 내려치면서 그 위에서 시커먼 빛이 뿜어져 나와 순식간에 두 잔상을 갈기갈기 찢어발겼다.

    이 광경에 심협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아 육진편을 홱 잡아 빼고는 머리 위로 쳐들었다.

    거의 동시에 쨍 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다. 금간 한 자루가 뒤에서 그의 머리를 향해 내리치다가 육진편과 충돌한 것이다.

    그 충격에 비틀비틀 두어 걸음 물러난 심협이 똑바로 서기도 전에, 그를 둘러싼 눈앞의 잔상들 속에서 갑자기 한 사람이 튀어나와 단번에 명치를 찔러왔다.

    심협은 이를 악물고 용과 코끼리의 힘을 불러일으켜 한 손을 짐승의 발처럼 그러쥐고 이 갑작스런 일격을 막아보려 했다.

    하지만 그가 손을 뻗어 붙잡은 순간, 그 인영은 안개처럼 흩어져버렸다.

    뒤이어 심협이 미처 반응할 틈도 없이 커다란 바람소리와 함께 또다시 두 사람의 형체가 뒤쪽 잔상들 틈에서 튀어나와, 손에 든 간을 찔러왔다.

    심협은 황급히 한 걸음 물러서서 그중 하나를 피했고, 다른 쪽을 향해 육진편을 휘둘렀다.

    그러나 이 일격에 맞은 형체도 연기처럼 사라졌다. 역시나 환영이었던 것이다.

    심협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는 곧 잔상이 하나둘씩 주위를 에워싸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모두 손에 금간을 쥔 채 공격해왔다.

    심협은 진중한 자세로 육진편을 크게 휘둘러 사방을 휩쓸었다. 철편은 시커먼 빛과 울부짖는 바람소리를 내며 큰 원을 그려 줄줄이 닿은 잔상들을 하나하나 찢어발기며 재로 만들어버렸다.

    그런데 그때, 흩어져 사라진 잔상들 틈에서 또다시 형체 하나가 홀연히 응집돼 기습적으로 다가와 심협의 등 한복판을 찔러왔다.

    심협은 굳은 얼굴로 허리는 고정시킨 채 상반신만 뒤로 틀면서 육진편을 장창처럼 이용해 자신의 등을 찌르려던 금간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이는 바로 앞선 은갑천병의 회마창을 응용한 것이었지만, 그의 무기는 육진편이었기에 다소 불편했던 데다가 회전의 기세는 더 짧았다.

    쩡!

    금속이 맞부딪치는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심협의 몸속에서 용과 코끼리의 힘이 솟구치자 육진편에서 검은 빛이 폭발하면서 검은 태양처럼 철편 끄트머리에서 터져 나왔다. 이에 은갑천병의 금간이 일격에 끊어졌다.

    심협의 육진편은 파죽지세로 돌진하여 은갑천병의 가슴을 곧장 꿰뚫었다.

    하지만 은갑천병은 곧바로 사라지지 않았다. 그 뚫린 가슴팍에서 갑자기 금색 빛줄기가 솟구치더니, 누에가 고치를 짜듯 육진편을 겹겹이 뒤덮으며 따라 올라가 곧장 심협의 팔뚝으로 향했다.

    심협은 즉시 철편을 세차게 뽑아냈지만, 어떤 힘에 꽉 붙잡힌 것처럼 일순 벗어날 수 없었다.

    바로 그때, 별안간 등 뒤에서 나타난 또 다른 은갑천병의 그림자가 금간으로 찔러왔다.

    심협은 도저히 피할 틈이 없었고, 그의 가슴팍에서는 한 줄기 피가 튀었다. 동시에 금빛 장간(長鐗)이 한 마디쯤 그의 가슴을 뚫고 나왔다.

    그는 신음하며 용과 코끼리의 힘을 운행했다. 그러자 양팔이 돌연 배로 굵어지면서 날카로운 용의 발로 변해 육진편을 버리고는 몸을 돌려 뒤쪽을 홱 잡아챘다. 그는 단숨에 은갑천병의 머리를 잡아당겼고, 머리는 수박 깨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조각조각 부서지고 말았다.

    그제야 두 천병의 시신 두 구가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마침내 하나로 합쳐지더니, 하얀 빛으로 변해 심협의 신혼으로 날아 들어왔다.

    심협은 그제야 육진편을 거둬들이고 고개를 숙여 자신의 가슴팍을 살폈다.

    명치 부분에 주먹만 한 구멍이 뻥 뚫려 있었는데, 그 안에는 선혈이 낭자했고, 피와 살이 한데 뒤엉켜 심장은 보이지 않았다.

    “위험했군. 하마터면 또 한 번 죽을 뻔했어.”

    심협이 그렇게 안도하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자, 가슴의 구멍 안에서 하얗고 희미한 광채가 빛나더니 근육이 한 겹 꿈틀거렸고, 이내 박동하는 심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까 은갑천병이 기습하는 순간, 심협은 대개박술로 몸 안의 근육을 조종해 심장을 원래 자리에서 옮겨 치명적인 일격을 피했던 것이다.

    심장을 원래 위치에 돌려놓자 그 부드러운 하얀 빛이 뻗어나가 그의 가슴 전체를 감쌌다. 그리고 그 안에 끊어졌던 경맥과 혈관, 근육들이 빠르게 자라나며 복구되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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