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292화 (292/1,214)
  • 292화. 대개박술(大開剝術)

    심협은 황급히 몸의 급소들을 감싸 보호했지만, 두 팔은 촘촘한 검광에 찔려 욱신거렸다.

    고개를 숙여 보니 비늘 틈새로 검붉은 핏자국이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다행히 잠시 후에는 스스로 흩어져 사라졌다. 이어서 하얀 빛이 그 속에서 날아와 심협의 미간으로 뚫고 들어간 뒤 그의 신혼과 함께 어우러졌다.

    심협은 육진편과 함께 용과 코끼리의 힘도 거둬들였다. 두 팔에는 놀랍게도 거의 백 줄기에 달하는 상흔이 있었고, 그 위로 선혈이 낭자해 보기에도 처참했다.

    그가 두 손을 들어 올리려 하자, 양팔 깊숙한 곳에서 번개가 지나가는 것처럼 날카로운 통증이 전해져와 절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실로 대단한 검기다. 공법이 흩어진 뒤에도 이토록 많은 검기가 남아 있다니……. 이번에는 경맥까지 손상된 것 같군.”

    그러는 동안 주위에 빛이 번쩍였고, 심협은 금빛 대전 안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는 의자 위에 높이 앉은 금갑천장을 보자 참지 못하고 불만을 터뜨렸다.

    “당신 휘하에 삼십육천강병인가 뭔가 하는 이들은 정말이지 상대하기 쉬운 이가 하나도 없군요. 비장의 무기까지 다 썼단 말입니다!”

    그의 불만에는 아랑곳 않는 듯 천장이 손을 움직이자 보탑의 빛이 밝아지더니 단약 하나가 빠르게 날아왔다.

    심협은 팔을 들어 잡으려 했으나, 아까의 맹렬한 통증이 다시 휘몰아쳐 어쩔 수 없이 입을 쩍 벌려 단약을 받았다. 그렇게 입에 단약을 머금은 채 터벅터벅 대전을 나와 싸움에 진 수탉마냥 두 팔을 축 늘어뜨리고 계단에 걸터앉았다.

    그의 목젖이 아래로 꿀꺽 미끄러지면서 단약을 삼켰다.

    단약은 뱃속에 들어가자마자 뜨거운 열기로 변해 가슴과 배에서 사지로 흘러갔다. 약기운이 지나간 곳마다 비와 이슬이 내린 것처럼 상쾌해졌지만, 양팔에서는 마치 강줄기가 막힌 것 같이 쉽게 지나가지 못했다.

    심협은 또다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좀 전에 상대한 은갑천병의 마지막 일격은 검기가 경맥을 손상시켜 약효가 지나가지 못하게 만든 것을 보면 생각보다 훨씬 대단했던 모양이다.

    다음 순간, 심협은 뼈를 찌르는 듯한 통증을 꾹 참고 두 손으로 몸 앞에 법결을 맺은 뒤, 가부좌를 틀고 앉아 무명공법을 운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법력으로 약기운이 양팔로 통하게끔 유도했다.

    하지만 그의 법력이 양쪽 팔의 견정혈(肩井穴)에 주입된 뒤 극천혈(*極泉穴: 겨드랑이 한가운데 있는 혈)에 이르자 다시 막혀버렸다.

    심협은 미간을 찌푸리고는 단전 안 법력을 빠르게 움직여 큰 힘을 극천혈로 돌진시켜 법력으로 가로막은 검기를 무리하게 뚫으려 했다. 그러나 시도하기가 무섭게 그전의 백배는 될 법한 통증이 어깨에서 전해져왔다.

    그은 갑자기 머리털이 바짝 곤두서고 관자놀이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어, 어떻게 이럴 수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자칫하면 경맥마저 완전히 끊어질 우려가 있다는 생각에 다시 시도해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틀렸어! 단약의 약효가 들어갈 수 없으니 회복이 너무 더디잖아! 검기가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려면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고…….”

    심협은 불평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탄식을 금할 수가 없었다.

    천병과의 싸움에서 좀 더 신중했어야 한다고 후회했지만, 어차피 후회란 아무리 빨라도 늦은 것임을 알기에 해결할 방법을 생각해보기로 했다. 간단했다. 검기를 자신의 경맥에서 제거하고, 경맥을 고치는 것이다. 물론 답이 간단하다고 해서 그 과정도 간단하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말이다.

    심협은 문득 순양검결에서 본 대개박술(大開剝術)이라는 신통력이 떠올랐다. 전해지기로는 이 법술을 연마하고 나면 수련자의 가슴과 배를 갈라도 죽지 않으며, 뼈가 부러지고 팔다리가 잘려도 다시 자라게 할 수 있다고 했다. 심지어 대성하면 머리를 자르고 심장을 파내도 눈 깜짝할 사이에 온전히 회복된다고 하니, 이 법술만 완전히 익힌다면 경맥을 복구하는 것쯤은 문제도 아닐 터였다.

    심협은 두 눈을 감은 채 대개박술(大開剝術)을 마음속으로 한 차례 떠올려본 뒤, 천천히 두 눈을 떴다. 다소 주저하는 기색이었다.

    “대체 어떤 사람이 이런 기괴한 신통을 창시한 거지? 솔직히 이건…… 그냥 자학하라는 거 아닌가?”

    대개박술의 수련법은 매우 기괴했다. 마치 백정이 소의 뼈와 살을 능수능란하게 발라내듯, 수행자가 법력을 칼 삼아 자신의 뼈와 살, 경맥, 혈관 사이를 잘라내는 것이 그 방법이었다. 그렇게 자신의 육신을 차근차근 분해하고 피와 살, 근육을 다시 만드는 행위를 끊임없이 반복해야만 그 놀라운 조화와 신통력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 법술을 수련하기에 앞서 순양검결을 먼저 수련해 순수한 순양검기(純陽劍氣)를 길러내야만 했다.

    순양보전에 이르기를 ‘양기가 일어나면 만물이 생겨난다(陽氣擧, 而萬物生)’고 하였다.

    세상 절대다수의 생물에게 양기는 탄생의 근본이며, 생존의 뿌리다. 자신이 모든 수곡정미(*水谷精微: 몸에서 소화, 흡수한 음식물 속 양분과 원기)를 흡수하는 것 역시 정양(精陽)의 기운을 운화(*運化: 양분을 흡수하여 온몸에 운반하는 기능)하여 몸과 정신을 보양하기 위해서였다.

    대개박술이 육체를 회복시키는 힘의 근원이 바로 순양검기로, 양기를 통해 생겨나는 힘에 비술의 특수한 자극을 결합하여 피와 살이 다시 생겨나는 것이다.

    “아무튼 현세에서 이미 순양검배를 만들어냈으니 이번에 순양검결 공법을 익힌다면 돌아가서도 도움이 될지도 몰라.”

    심협은 그렇게 결정을 내린 뒤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그는 양팔의 극심한 통증을 참으며 두 손을 몸 앞에 합장하고는 뒤이어 위아래로 나누어 왼손으로는 위로 하늘을, 오른손으로는 아래로 대지를 가리켰다. 손목은 여전히 딱 붙인 채 삼재(三才: 우주의 세 가지 근원. 천지인-天地人)가 서로 이어진 자세를 검결로 삼고, 마음속으로는 순양보전의 구결을 묵상했다.

    “순수한 양기를 덮는 법은 기(氣)를 정(精)으로 변하게 하고, 양(陽)을 강(罡)으로 변하게 하며, 영(靈)은 바깥에 받아들이고, 신(神)은 안에 숨기는 것이니(蓋純陽之法, 化氣爲精, 化陽爲罡, 納靈于外, 藏神于內)…….”

    공법이 작동하면서 심협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곧 온몸에 건조하고 더운 느낌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이는 법력이 동원되면서 차츰 양강정기(陽罡正氣)로 변할 조짐이었다.

    곧이어 사방에서 바람소리가 들리는 듯하더니 가닥가닥 몽롱한 하얀 빛이 주변에서 몰려와 예리한 기운을 띤 천지의 영력으로 변해 주위를 뒤덮었다.

    심협이 미간을 살짝 움직이자, 체내의 법력이 공법에서 말한 대로 조금씩 움직여 단전 안에 기이한 둥근 고리를 이루고는 유유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한편, 그를 둘러싼 주위의 천지영기도 체내 법력에 영향을 받은 듯 온몸을 감싸고 서서히 회전했다. 다만 이 천지영기는 소용돌이 모양으로 도는 것이 아니라, 하늘과 땅을 기점으로 심협 주위에 흐릿한 고리를 이루며 천천히 돌았다.

    이 둘이 회전하는 파동이 점점 가까워지면서 심협은 문득 자신이 천지와 한데 어우러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의 몸을 감싸고 있는 하얀 고리에서는 가닥가닥 실오라기 같은 영기가 모공을 뚫고 체내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심협은 곧 온몸의 모공을 무수한 날카로운 쇠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그럼에도 이를 악물고 이 불쾌한 통증을 견디며 다소 횡포한 기운을 띤 천지영기를 계속 체내로 이끌었다.

    그러나 체내로 들어간 이 힘은 그의 안배에 따라 단전으로 모여들기를 거부하고 스스로 심협의 몸속 경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이 힘이 팔의 수삼음경(*手三陰經: 팔 안쪽에 분포된 3개의 경맥)과 수삼양경(*手三陽經: 팔 바깥쪽에 분포된 3개의 경맥)을 타고 움직이자, 심협은 팔뚝에서 저릿저릿한 느낌이 들었다. 이 느낌도 썩 편안하지는 않았지만, 단순한 법력이 흘러들어왔을 때와 비교하면 그리 견디기 힘들지는 않았다.

    “양강은 늘 따라다니며, 법기(法氣)는 늘 건너간다. 맥을 이루었으나 응결되지 않으면 기운(氣運)이 절로 형통해지나니(陽罡常隨, 法氣常渡, 形脈不凝, 氣運自靈)…….”

    심협은 법결을 읊조리며 단전의 법력을 더 빠르게 운행시켰다.

    그러자 몸 바깥의 하얀 고리도 따라서 빠른 속도로 회전했고, 더 많은 천지영기가 체내로 스며들어 마치 산을 뚫어 길을 내는 것처럼 곳곳의 막힌 경락을 뚫기 시작했다.

    가장 심각하게 막힌 양팔의 여섯 개 경맥에 영기의 공격이 특히 집중됐다.

    점점 더 많은 천지영기가 쉬지 않고 모여들자 심협의 안색도 더욱 나빠졌다. 하지만 그는 이번에 몸속에 남아 있던 검기가 이 힘과 맞부딪치는 힘이 그리 강하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이를 달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듯했다.

    그는 두 눈을 꼭 감은 채, 이를 악물고 신식으로 마음을 굳게 지키며 온힘을 다해 순양검결을 운공했다.

    * * *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심협은 온몸이 땀에 푹 젖은 채로 얼굴에 홍조를 띠며 두 눈을 번쩍 떴다.

    “우웩!”

    그는 붉은 피를 왈칵 뿜어냈는데, 놀랍게도 이 피는 화살처럼 쏘아져 나가 금탑을 뒤덮은 빛 장막에 부딪혔다. 빛 장막은 충격으로 격렬히 떨렸다.

    심협의 얼굴에서는 발그스레한 기운이 차츰 사라지며 차츰 원래 상태를 회복해갔다.

    그는 입가의 핏자국을 문질러 닦으며 얼굴에 안도한 듯 미소를 지었다.

    “대개박술을 수련해야만 남은 검기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순양검결 공법만으로 검기를 제거했어! 대개박술을 수련하지 않아도 손상된 경맥들은 차츰 회복되겠지.”

    하지만 그 신통을 익히기로 한 결정은 바꾸지 않았다. 그는 이미 순양검결을 10층까지 수련하여 딱 적당한 정체기에 이른 셈이었다.

    순양검결의 11층과 12층 공법은 그전의 10층에 비하면 조금 특별했다.

    정상적인 수련 경로대로라면 앞의 10층 공법은 일종의 양을 축적하는 것과 같다. 여기까지 축적하면 평범한 수사는 벽곡기 돌파를 시도할 수 있고, 그 뒤의 2층 공법은 이를 토대로 한 단계 승급을 진행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11층 공법부터는 더 이상 천지영기를 끌어들여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미 변화된 순양검기를 이끌어 몸속에 있는 자아를 공격하여 정복하는 것이다. 설명은 다소 추상적이지만, 실제로는 순양검기로 자신의 경맥에서 스스로를 공격함으로써 전신의 경맥을 확장하는 방식이다.

    순양검결은 본디 크고 강직한 것을 추구하여 경맥이 충분히 넓어야만 일신의 법력이 양강정기의 인도 아래 큰 강처럼 세차고 호탕해지고, 공격이 일어난 곳에서는 기세가 벼락과 같아진다.

    심협은 잠시 휴식을 취한 뒤에 다시 수련을 이어갔다.

    심협은 자신이 이번 수행에 또다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였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앞의 12층 순양검결 공법을 성공적으로 수련했다는 것만 알았다.

    12층 순양검결이 완성될 무렵, 그의 체내 12정경과 기경팔맥은 배로 확장되었고, 여러 법맥이 품고 있는 법력도 3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때 그의 법맥 속에는 눈에 띄는 하얀 기류가 한 줄기 있었는데, 일종의 왕과 같은 모습으로 곳곳을 두루 살피고 있었다.

    심협이 두 눈을 번쩍 뜨자 맹렬한 광채가 번쩍 스쳐갔다. 그는 축 늘어뜨렸던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려 결인 한 뒤, 느닷없이 허공을 가리켰다. 그러자 체내를 떠돌던 그 하얀 법력이 법맥 속을 쏜살같이 지나 팔뚝의 경맥을 타고 곧장 손끝을 통해 쏘아져 나갔다.

    하얀 기류는 몸 밖으로 튀어나오는 순간 흐릿한 광검(光劍) 같은 형태로 응결해 순식간에 금탑의 대문과 충돌했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금빛 보탑이 흔들렸지만, 대문에는 아무런 손상도 없었다. 오히려 검기가 반동에 튕겨져 나왔다.

    그러나 심협은 전혀 실망한 기색 없이 마음 가는 대로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그 하얀 기류가 다시 뭉쳐 날아 돌아와 그의 손바닥 위를 빙빙 맴돌았다.

    이것은 심협이 이번에 공을 들여 길러낸 순수한 순양검기였다. 공격력이 그다지 강하지는 않지만, 순양검배와 서로 짝을 이루면 맹렬한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게다가 이 순양검기가 있어야만 대개박술을 수련할 수 있다.

    그간의 수련을 통해 심협은 또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는데, 대개박술을 익히면 천병을 상대할 패가 늘어날 뿐만 아니라 현음개맥결을 익힐 가능성도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는 현음개맥결을 익히다가 잘못하면 경맥이 손상되거나 심지어 죽을 수도 있다고 걱정했지만, 경맥이 손상되더라도 대개박술의 힘을 빌려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 되면 걱정 없이 음살의 기운으로 법맥을 열어 현실에서 법맥을 늘리기 위한 경험을 쌓을 수 있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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