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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290화 (290/1,214)
  • 290화. 금탑

    1각쯤 뒤, 심협은 집 한가운데로 돌아와 사방을 한 차례 훑어보고는 결인하며 법진 문양을 가리켰다. 그러자 푸른 문양들이 갑자기 밝아지면서 푸른 빛의 장막을 이루어 집 전체를 뒤덮었다가 금세 다시 모습을 감추었다.

    그는 이 장면을 보고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은 진강의 비술 고서에서 배운 간단한 법진이었는데, 경계 작용을 지니고 있어 누구든 집 가까이 다가오면 그가 바로 감지할 수 있게 해줄 터였다.

    여기까지 마친 뒤에야 그는 내실로 들어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번에 순조로이 응혼기에 진입하면서 수명이 그전보다 백 년 이상 늘어나 한동안 안도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심협은 곧 마겁이 들이닥칠 것이라는 생각에 기분이 다시 가라앉았다.

    수명이 크게 늘면 뭐 한단 말인가? 일단 마겁이 닥쳐오면 신선조차도 목숨을 잃을 텐데 하물며 그처럼 보잘것없는 응혼기 수사야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긴장을 늦춰서는 안 돼. 경지를 더 높여야 해!’

    심협은 다음 수련 계획을 궁리했다.

    이곳 장안성은 물자가 풍부하여 수련하기 좋은 곳이지만, 그의 자질은 높지 않아 외력의 도움 없이는 속도가 나질 않았다. 그래서 이원진수 같은 것이 그에게는 중요했는데, 이미 시험해본 바, 응혼기에 접어든 이후에도 이원진수는 여전히 큰 효과를 보였다. 다만 이원진수는 너무도 귀해, 선옥이 아무리 많아도 연줄이 없으면 손에 넣을 수 없었다.

    심협이 한창 생각에 잠겨 있을 때였다. 체내에서 한 차례 희미한 귀신 울음소리가 들려오더니, 공기 중에 드문드문 음기의 파동이 나타났다.

    그는 곧장 물건 건곤대를 꺼냈다. 귀신의 울음소리가 바로 이 주머니에서 들려왔다. 분명 그 장군 귀물이 내는 소리일 터였다.

    건곤대는 음살 법기라, 내부에 음살의 힘을 적잖이 담고 있다. 장군 귀물은 요 며칠 동안 그 안에 머물면서 뜻밖에도 주머니 안 음기를 빨아들여 차츰 부상을 회복했다.

    건곤대만의 금제와 봉인 부적으로는 점점 더 이 귀물을 제압하기 힘들어졌다.

    심협은 순조롭게 응혼기에 접어들었기에 장군 귀물은 필요 없었지만, 그렇다고 응혼기 실력을 지닌 귀물을 그냥 놓아주기는 너무 아쉬웠다.

    “소모산은 귀신을 쫓아내거나 부리는 술법이 뛰어나고, 내 기억으로 순양보전에도 귀물을 길들여 영총(*靈寵: 영성을 지닌 애완동물. 주술의 일종으로 죽은 동물의 시신에 영체를 저장하여 애완동물처럼 따르게 하는 것) 같은 존재로 변하게 만드는 법문들이 있었어.”

    심협은 순양보전을 꺼내 빠르게 훑어보았다.

    순양보전의 전반부는 순양검결이고, 후반부에는 여러 비술이 기록되어 있는데, 너무도 난잡해 몇 번을 읽어보았지만 어떤 부분은 여전히 이해하기 힘들었다.

    심협은 잠시 훑어본 끝에 귀신을 길들이는 술법을 찾아냈다. 이 법술은 통령역요와 거의 차이가 없을 만큼 전혀 복잡하지 않았고, 쉽게 말하자면 귀물을 힘으로 굴복시켜서 그 사나운 성질을 약화시키고 조종하는 것이었다.

    ‘한번 시험해보고 안 되겠으면 이 귀물을 처리해버려야겠다. 몸에 지니고 다니기에는 너무 위험해.’

    그는 그렇게 결정하고는 건곤대를 앞에 내려놓고 순양보전에 기록된 대로 귀신을 길들이는 순귀술(馴鬼術)을 천천히 운공하기 시작했다.

    그가 주문을 외우자 손가락에서 검은 빛이 줄줄이 쏘아져 나와 건곤대 안으로 끊임없이 녹아들었다.

    눈 깜짝할 새에 반 시진이 흘렀고, 손을 거두어들인 심협의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가득했다.

    순귀술에는 신혼의 힘이 너무 많이 소모되었다. 그는 방금 응혼기를 돌파한 터라 신혼의 힘이 그리 강한 편이 아니라서 견디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그는 장군 귀물이 조금 더 온순해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순귀술은 꽤나 효과가 괜찮은 것 같군.”

    심협은 빙긋 미소 짓고 건곤대를 챙기고는 드러누워 꿈속으로 빠져들었다.

    * * *

    얼마나 지났을까. 심협이 천천히 눈을 떠보니, 눈앞이 온통 환하게 밝은 빛으로 가득했다.

    그는 급히 팔을 들어 눈앞을 가리고는 손가락 사이로 앞을 훑어보았다. 그러자 눈앞이 아득하게 새하얀 가운데 멀리 백옥 의자가 놓여 있고, 그 위에 금탑을 받쳐 든 금갑천장(金甲天將)이 단정하게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또다시 꿈속으로 들어왔나 보군.’

    심협은 속으로 탄식했다.

    금갑천장의 차디찬 시선이 그의 몸을 훑었고, 입으로는 뭔가를 한 차례 읊조렸다. 곧이어 그가 손에 든 천책(天冊)을 휘두르자, 곧바로 그 위에서 금빛이 흘러나와 심협을 휘감고는 예전의 금빛 공간으로 데려가 수백 장 둘레의 돌 받침대 위에 내려놓았다.

    심협이 바로 서기가 무섭게 눈앞에 갑자기 서늘한 빛이 번쩍 스쳐 지나더니, 은빛 장창 한 자루가 난데없이 튀어나와 미간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창끝이 귀 끝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면서 섬뜩한 한기가 배어 나와 얼굴이 시렸다.

    심협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몸을 날려 피하는 동시에 팔을 들어 창의 몸체를 내리쳤다.

    쿵!

    둔탁한 소리와 함께 갑자기 소용돌이가 일면서 은빛 장창이 휘어지더니 창을 쥔 사람까지 그대로 몇 장을 밀어냈다.

    심협은 그 기세를 몰아 몇 걸음 뒤로 물러나면서 상대와의 거리를 좀 벌리고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대략 마흔 전후쯤 되어 보이는 사내는 짧은 수염을 길렀고, 표정은 무뚝뚝했다. 은빛 갑옷에, 손에는 서리처럼 새하얀 장창을 들고 있었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의 파동은 놀랍게도 이미 대승 중기에 이르러 있었다.

    은갑천병은 심협의 일격에 뒤로 물러난 뒤, 손에 든 장창을 곧추세우고 다시 달려들었다.

    그가 장창을 앞으로 내지르자 창끝에서 서슬 퍼런 빛이 번득이며 세 차례 바르르 떨렸다. 그리고 허공에서 갑자기 새하얀 창 그림자가 나타나 심협의 머리를 덮쳐왔다.

    심협이 손목을 빙글 돌리자, 손바닥 한가운데에서 새카만 빛이 한 차례 스치더니 육진편이 나타났다. 그는 물러서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며 창 그림자를 향해 돌진하면서 육진편을 세차게 휘둘렀다.

    쐐액!

    육진편이 허공을 갈랐고, 거센 바람이 일면서 검은 빛을 세차게 뿜어내며 흐릿한 철편의 그림자와 함께 새하얀 창 그림자와 충돌했다.

    꽝!

    새하얀 창 그림자는 전부 소멸되었고, 몸체도 철편 그림자와의 연이은 충돌에 뒤로 물러났다.

    심협이 걸음을 떼자 달그림자가 깜빡였고, 그는 순식간에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가 별안간 은갑천병 뒤에 나타났다.

    은갑천병의 반응도 빨랐다. 그가 허리는 꼼짝도 않은 채 상반신을 갑자기 뒤틀었다. 동시에 장창에서 용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울렸고, 창끝이 회전하면서 멋들어진 회마창(*回馬槍: 갑자기 돌아서서 반격을 가하는 창법)을 선보였다.

    그 창끝에서는 갑자기 섬뜩한 한기를 띤 새하얀 소용돌이가 떠올라 심협의 명치를 향해 곧장 찔러왔다.

    심협은 빠르게 앞으로 돌진하고 있던 차라 피하기에는 늦은 상태였다. 이에 그는 크게 고함을 내지르며 혼신의 힘으로 황정경을 운공해 네 마리 용과 코끼리의 힘을 온몸에 불어넣었다. 또한, 철편을 휘두르던 손을 거둬들이고 다른 한 손을 거대한 용의 발로 변화시켜 창끝을 잡아챘다.

    쨍!

    이어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

    은빛 장창은 용의 발 한가운데에 세차게 박혔고, 창끝의 소용돌이가 격렬하게 회전하면서 강력한 힘이 소용돌이에서 전해져왔다. 그 힘은 관통력이 아주 강한 한기를 띤 채 심협에게로 들이닥쳤다.

    심협의 팔뚝에서 쩌적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눈 같이 하얀 얼음결정이 그의 손바닥 한가운데에서부터 팔을 타고 올라왔고, 뼈에 사무치는 한기가 쉬지 않고 골수 안으로 스며들었다.

    ‘응혼기에 접어들긴 했으나 나의 수명은 동급 수사들에 비해 턱없이 짧으니 꿈속 세상에서도 죽음만은 최대한 피해야 해!’

    심협이 속으로 되뇌는 사이 그의 몸속 법맥 20줄기가 일제히 빛을 냈고, 강력한 법력 파동이 요동쳤다. 그러자 용의 발로 변한 팔뚝도 갑자기 진동하면서 간간이 빛이 몸을 뚫고 나와 팔뚝을 뒤덮은 얼음을 깨부쉈다.

    심협은 용 발을 앞으로 뻗어 은빛 장창을 잡아채고는 힘껏 끌어당겼다. 그러자 은갑천병이 바로 앞까지 끌려왔다. 심협은 다른 한 손으로 육진편을 단단히 움켜 쥔 채 곧바로 은갑천병의 머리를 내리쳤다.

    은갑천병은 장창을 뽑아내지 못하자 손을 풀고 두 팔을 교차시켜 머리 위를 막았다.

    쿵!

    둔중한 소리가 울렸다.

    육진편에서 검은 빛이 폭발하며 은갑천병의 두 팔이 끊어졌고, 머리도 곤죽이 되었다. 몸은 차츰 흩어져 사라지더니 그 속에서 한 줄기 하얀 빛이 뿜어져 나와 심협의 체내로 날아들었다.

    심협은 그 하얀 빛 덩어리가 자신의 신혼 속으로 녹아드는 것을 느꼈고, 미처 자세히 살펴보기도 전에 이미 금빛 대전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그는 용과 코끼리의 힘을 거둬들이고는 고개를 숙여 왼손을 쓱 살펴보았다. 옷소매 아래 팔뚝이 온통 붉게 멍든 것이 보였고, 그 안에는 아직 실오라기처럼 가느다란 한기가 사라지지 않은 채 맴돌고 있었다.

    ‘앞으로의 전투에서는 더 조심해야겠어. 수련 경지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고는 해도 전투 경험은 여전히 부족하니까.’

    심협은 방금 천병의 회마창을 떠올리자 아직도 은근한 두려움이 느껴졌다.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금갑천장이 손에 들고 있던 금탑이 환하게 번득이더니, 또다시 금빛 단약이 그에게로 날아왔다.

    심협은 금빛 단약을 덥석 받아 들고 몸을 돌려 대전을 나섰다.

    대전 밖으로 나온 그는 아래쪽을 쓱 둘러보았지만 오홍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다시 계단 앞으로 돌아와 앉아서 단약을 입에 털어 넣고 꿀꺽 삼켰다.

    잠시 후, 심협의 팔뚝에 남아 있던 한기는 말끔히 흩어졌고, 체내의 법력은 조금 더 증가했다. 다만 대승 후기의 난관에 막혀 있어, 돌파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였다.

    심협은 몸을 추스른 뒤 급히 몸을 일으켜 다시 대전에 들어가지 않고, 바닥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지금껏 그는 꿈속 세상에서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고, 매번 최대한 빨리 문제를 해결하고 현실로 돌아오려 했다. 하지만 이제 그는 이 시간이 더없이 큰 자산임을 깨달았다. 자신이 현실에서 어지간한 사람들보다 빠른 속도로 수행할 수 있던 것도, 낙뢰부와 쇄갑부 같은 여러 고급 부적들에 정통할 수 있게 된 것도 온전히 꿈속 세상에서의 경험 덕분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 시간을 이용해 더 많은 경험을 쌓기로 했다.

    “마수수는 줄곧 억몽부를 원하고 있지. 정말 그 부적을 터득하게 된다면 분명 취보당에서 만족할 만한 가격에 팔 수 있을 거야.”

    심협은 아래턱을 가볍게 문지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마수수가 간절히 원하는 부적은 특이해서 고급 부적지나 특수한 부묵은 필요치 않았다. 다만 많은 신혼의 힘이 필요했다.

    하지만 꿈속의 그는 타고난 자질이 워낙 탁월한 데다 특히 신혼의 힘이 강력하다 보니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심협은 곧 칠성필을 꺼내 손바닥으로 가볍게 문질렀다. 이어서 또 두툼한 황지 한 다발과 주사 부묵(符墨) 한 단지를 꺼냈다.

    준비를 마친 그는 잠시 눈을 감은 채 가부좌를 틀고 앉아 억몽부의 세밀한 부분들을 찬찬히 떠올려보기 시작했다.

    잠시 뒤, 심협은 두 눈을 번쩍 뜨고는 두 손가락을 세워 앞을 향해 휘둘렀다. 그러자 옆에 있던 황지가 날아올라 마치 군사들이 진을 치는 것처럼 그의 앞에 떠다녔다. 탁자가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칠성필을 집어 들고는 허공에 대고 부적을 그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붓끝이 부적지에 가볍게 닿자, 그는 다시 두 눈을 감았다. 시선은 이미 자신의 식해 속으로 내려앉아 있었다. 그 안은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하여 평화로운 상태였고, 작은 사람의 모습으로 변한 신혼은 그와 마찬가지로 그 안에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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