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289화 (289/1,214)
  • 289화. 어느 응혼기 고수

    강 위의 소용돌이도 따라서 사라져 잠시 후에는 모든 것이 평정을 되찾았고, 눈꽃은 계속해서 하늘하늘 떨어져 내렸다.

    “끝난 듯하구려. 국사(*國師: 국가에서 학문과 덕을 겸비한 고승에게 내린 호칭), 이 사람이 어떤 경지인지 알 수 있겠소? 방금 돌파에 성공한 것이오?”

    금관 청년이 흥미가 생긴 듯 물었다.

    “돌파는 이미 성공했습니다. 이 영기의 파동으로 보아 응혼기 수사겠군요.”

    도인이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흥! 갓 응혼기를 돌파한 수사 따위가 감히 구(九)황자 전하와 숙(淑)공주 전하의 눈 구경을 방해하고 황기(皇旗)를 훼손하다니요! 아주 극악무도한 죄입니다. 제가 그놈을 끌어내올 테니 전하께서 처벌해주시옵소서.”

    무씨 청년의 앞에 있던 자색 옷의 우사가 콧방귀를 뀌더니, 성큼성큼 걸어 나와 금관 청년에게 예를 갖추고는 말했다.

    “국사의 말에 따르면 그자는 폐관 돌파를 하다가 그런 것뿐이지 고의가 아니었소. 그러니 야단법석 떨 필요 없소.”

    금관 청년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고의가 아니었다고는 하나 그자가 황기를 훼손한 것은 사실입니다. 엄벌하지 않는다면 우리 대당 황실의 위엄을 드러내 보이지 못할 것이고, 이 일이 퍼져 나간다면 더욱이 수선 종문들이 조정을 멸시하게 될 것이옵니다. 명찰(*明察:사물을 똑똑히 사핌)하여주시옵소서, 전하.”

    자색 옷의 수사가 다시 한번 말했다.

    조정의 위신 이야기가 나오자 금관 청년도 곤란한 듯 국사를 돌아보았다.

    “무 도우의 말도 일리가 있으니 전하께서는 허락하시는 게 좋을 듯하옵니다. 우리도 마침 무 도우의 분천선법(焚天仙法)을 감상하고 말이지요. 다만 이곳은 황하 위인지라 물의 기운이 짙어 무 도우의 불 계통 신통력을 억제하고 있으니, 이 원(袁)모가 그대를 좀 도와줄까요?”

    국사 도인은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내비치며 말했다.

    “겨우 응혼기를 갓 돌파한 수사일 뿐이니 원 국사께서 마음 쓰실 필요 없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당장 그자를 잡아오겠습니다.”

    자색 옷의 우사는 자존심이 상한 듯 그렇게 내뱉더니, 어떤 법술을 썼는지 몰라도 이미 몸을 날려 몇 호흡 만에 아까의 회오리 상공에 이르러 있었다.

    “어느 방자한 놈이 감히 황선(皇船)의 운항을 방해하는 것이냐! 썩 나오지 못할까!”

    그는 노여움에 호통을 치며 손가락을 굽히고 강물을 가리켰다. 그러자 바람을 가르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그의 소매에서 한 줄기 붉은 검광이 뿜어져 나와 유성(流星)처럼 빠르게 강을 파고들었다. 동시에 파열음이 강물을 따라 10여 리까지 울려 퍼졌다.

    “무 도우의 유성검(流星劍)은 위세가 점점 커지는구먼. 무 현질, 자네 아버지의 수련 경지가 응혼 중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지?”

    배 위에 있던 백발동안의 우사가 무씨 청년에게 물었다.

    “대방진인(大方眞人)께서는 눈빛이 횃불처럼 밝으시군요. 근래 들어 아버님께서는 확실히 수련이 크게 발전하시어 3년 안에 응혼 중기 돌파를 장담하셨습니다.”

    무씨 청년은 자랑스러운 듯 말하더니 이씨 소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씨 소녀는 무씨 청년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멀리 강물을 바라보았다.

    대방진인은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웃음을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무씨 도인이 쏘아 보낸 붉은 비검이 번개처럼 강을 파고드는 순간!

    쾅!

    강물에서 굵은 물기둥이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그 속도 또한 더없이 빨라서 결코 붉은 비검보다 느리지 않았고, 둘은 세차게 맞부딪쳤다.

    굵은 물기둥은 단숨에 두 토막이 났지만, 붉은 비검도 그 반동에 튕겨나갔다.

    무씨 우사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물기둥 때문에 체면을 제대로 구긴 그는 두 손가락을 뻗어 허공의 유성검을 가리켰다. 그러자 유성검이 마치 수레바퀴처럼 스스로 회전하기 시작했고, 붉은 빛을 한층 세차게 내뿜더니 곧 사그라들었다.

    검광이 횃불처럼 일렁이자 갑자기 가느다란 붉은 실오라기들이 무수히 쏟아져 나와 아래 반경 수십 장을 뒤덮으며 귀를 찌르는 날카로운 소리를 냈고, 그 위세가 놀라울 정도였다.

    하지만 상대도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강물에 푸른 빛이 번쩍이더니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울렸고, 동시에 수많은 푸른 광선이 강에서 뿜어져 나왔다. 이는 푸른 물침들로, 그 수가 얼마나 많은지 셀 수 없을 정도로 빽빽해서 하늘을 뒤덮으며 쏟아져 내리는 붉은 검사(劍絲)들과 부딪쳤다.

    수없이 많은 크고 작은 빛 덩어리들이 허공에 나타나 잠시 동안 서로 팽팽히 맞서는 형세였다.

    “천우침술(千雨針術)! 한데 위력이 대단하구나. 무 도우의 만사검결(萬絲劍訣)을 막아내다니!”

    대방진인이 얼굴에 놀란 기색이 감돌았다.

    무씨 청년도 득의양양했던 표정이 사라진 채 근심스런 표정이었다.

    붉은 검사들은 검광이 변하여 만들어진 것이라 검광이 다하자 기세가 금방 쇠약해진 반면, 물침은 오히려 더욱 맹렬하게 발사되었다. 무 우사는 수세에 몰린 듯 차츰 물러났다.

    “죽고 싶은 게로구나!”

    무 우사는 대노하여 결인해 비검을 거둬들이고는 온몸에서 붉은 빛을 거세게 내뿜었다. 그러자 붉은 불구름 덩어리들이 그의 몸속에서 뿜어져 나와 눈 깜짝할 새에 10여 장 크기의 불구름을 만들어 그를 완전히 뒤덮었다.

    빽빽한 물침들은 뜨거운 불구름에 닿자마자 타는 듯이 치지직 소리를 내며 증발해버렸다.

    “네 이놈, 내 분천대법(焚天大法) 맛 좀 보아라! 크하하!”

    불구름 속에서 무 우사의 차가운 웃음소리가 들려오면서 불구름이 뭉게뭉게 세차게 용솟음치더니 아래쪽을 향해 몰려들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흥!”

    차카운 코웃음 소리가 물속에서 들려오더니 주변의 허공이 크게 울리면서 천지를 뒤덮을 기세로 수원(*水元: 물의 근원)의 힘이 사방에서 몰려들었다. 이내 불구름 주위 허공에는 수원의 힘이 실체를 지닌 듯 짙어졌고, 주변의 공기도 강물보다 백 배는 더 무겁게 변해 마치 공중에서 만 장 깊이의 바다 밑바닥으로 이동한 것만 같았다.

    불구름으로 변한 무 우사는 이 짙은 수원의 힘 때문에 허공에 갇혀 호박 속의 파리처럼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꽈르릉!

    굉음과 함께 굵기가 3장에 이르는 물기둥이 강에서 솟구쳐 올라 분노한 용처럼 사방을 휩쓸며 불구름을 매섭게 두들겼다.

    다음 순간, 불구름은 작은 불씨처럼 물기둥에 산산이 부서져 완전히 꺼져버렸고, 작열하던 열기도 말끔히 사라졌다.

    이윽고 무 우사의 모습이 나타났는데, 그는 입에서 붉은 피를 마구 토하며 튕겨 나가고야 말았다.

    배 위의 사람들은 이 광경에 놀란 표정이었으나, 오직 국사 도인만은 이럴 줄 알았다는 듯 미소를 띠고 있었다.

    하얀 빛 한 줄기가 화방에서 날아가 무 우사의 몸을 떠받쳤고, 이어서 사람 그림자가 나타났다. 바로 대방진인이었다.

    “무 도우, 괜찮으시오?”

    대방진인이 따스한 표정으로 물었다.

    “괜찮소이다.”

    무 우사는 가까스로 표정을 가다듬었지만, 그 눈에 담긴 두려움과 수치심은 어떻게 해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는 자신과 강바닥 수사와의 격차를 깨달았다. 그자는 수원의 힘을 조종하는 데 있어 불가사의한 수준에 이르러 있었고, 이는 그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방금은 상대가 봐주고 또 봐준 것으로, 만약 상대가 마음만 먹었다면 자신은 열두 번도 더 죽었을 터였다.

    “어느 고수께서 여기 계신지 좀 나와 보시오!”

    대방진인은 무 우사의 표정을 알아보고는 경계심이 생겨 곧 아래쪽 강물을 바라보며 소리 높여 외쳤다.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록 아무런 기척이 없었고,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대방진인이 이를 악물고 손가락을 구부려 강물을 가리키자, 하얀 번갯불 10여 줄기가 날아가 강물 위를 내리쳤다.

    펑! 펑! 펑!

    강물이 10여 줄기의 굵직한 물기둥이 터져 나오면서 물보라가 사방으로 튀었지만 강바닥에서는 여전히 아무 움직임이 없었다.

    “보아하니 그 수사는 이미 떠난 듯하오. 아쉽군. 이런 고수와 사귀지 못하다니…….”

    화방 위에 있던 금관 청년이 아쉬운 듯 탄식했다.

    “전하께서 그자와 인연이 있다면 훗날 다시 만나시게 될 것이옵니다.”

    국사 도인이 웃으며 말하자 금관 청년이 눈썹꼬리를 슬쩍 움직였다.

    “국사는 그자의 신분을 알아차리셨소?”

    “황공하나오, 아뢸 수 없습니다. 때가 이르면 전하께서도 자연히 아시게 될 겁니다.”

    국사 도인은 거듭 손사래를 친 뒤 입을 꾹 다물었다.

    금관 청년은 국사 도인을 공경했기에 더는 묻지 않았다.

    배 위의 사람들은 모두 조정 귀관(貴官)들의 후손들로, 평소에도 수선자들을 알고 지내긴 했지만 이처럼 격렬한 싸움을 직접 본 적은 거의 없었기에 잔뜩 흥분한 모습들이었다.

    한편, 멀리 강물을 빤히 쳐다보는 이씨 소녀의 표정이 퍽 기이한 것을 눈치챈 금관 청년이 물었다.

    “열아홉째야, 왜 그러느냐?”

    “아무 일도 아닙니다. 그저 두 선배님께서 싸우시는 모습을 보고 조금 놀랐을 뿐입니다.”

    이씨 소녀가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괜찮으면 되었다.”

    금관 청년이 웃으며 대꾸했으나, 이씨 소녀는 속으로 남몰래 중얼거렸다.

    ‘아까 강바닥에서 들려온 코웃음 소리가 어찌 낯익은 느낌이 드는 것일까. 설마…… 내가 아는 사람은 아니겠지?’

    그 무렵, 대방진인과 함께 돌아온 무 우사는 수치심에 벌게진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인 채, 실수를 스스로 인정하고 벌을 청하였다.

    금관 청년은 잘못을 따지지 않고 무 우사를 물러가 쉬게 한 뒤, 사람들과 함께 선실로 돌아갔다.

    다른 사람들은 아직도 흥분해서 강바닥 고수의 정체에 대해 떠들고 있었는데, 귀관의 자제들 중 두 명이나 그를 스승으로 모시고 싶다고까지 하였다.

    * * *

    강바닥의 고수, 심협은 이미 수십 리 밖에 있었다. 그는 청삼(靑衫)으로 갈아입은 채 순양검배 위에 서서 검을 조종하는 중이었다.

    그는 두 눈에 생기가 반짝이고 전신에서 강력한 기운이 넘실거리는 것이, 응혼기 단계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었다. 꿈속에서의 경험과 이귀양신 비술의 도움 덕에 한 달 정도 시간을 들인 끝에 난관을 돌파하고 응혼기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다만 그는 경지를 돌파한 뒤, 수련 경지를 튼튼히 하는 데 시간을 좀 들여야 했다. 아직 그의 수련 경지가 완전히 견고해지지 않은 것이다. 만약 이미 견고해졌다면 온몸의 기운이 이렇게 들끓을 리 없을 테니 말이다. 시간을 들여 천천히 적응해야 했다.

    이런 온양수련(溫陽修練)에는 안정된 환경이 필요했기에 그는 장안성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이제 그는 실력이 크게 늘어난 데다 많은 법기와 부적들을 지니고 있어 취보당을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었다.

    심협이 결인하고 가리키자, 발아래의 순양검배에서 검광이 뿜어져 나오더니 바람처럼 질주하여 금세 장안성에 도착했다.

    그는 날골역용술(捏骨易容術)을 써서 새로운 모습으로 변한 뒤, 문을 지키는 수사들의 검문을 손쉽게 통과하고 재빨리 성으로 들어섰다. 그러나 곡지방으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그곳의 거처는 이미 진강에게 발각돼 망산오우 같은 누군가가 감시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는 성 동쪽 상락방(常樂坊)에 집을 한 채 구입하여 새로운 거처로 삼았다.

    집 안 곳곳을 한 차례 청소한 뒤, 그는 집안 이곳저곳을 한 바퀴 돌아다니면서 이따금 손끝에서 푸른 빛줄기를 쏘아 집 주변 땅바닥에 법진 문양 같은 도안들을 새겼다. 이어서 선옥 한 덩이를 꺼내 법진 문양 속에 꽂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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