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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288화 (288/1,214)
  • 288화. 불행 중 다행

    심협은 재빨리 두 손을 결인하며 구구통보결을 운공해 황동소종을 제련했다.

    한나절이 지났을 때, 마지막 금제까지 풀리면서 심협은 이 종의 이름이 금갑선의(金甲仙衣)임을 알게 되었다.

    그는 눈을 번쩍 뜨고 결인하여 금갑선의를 작동시켰다.

    눈부시게 노란 빛이 한 줄기 눈앞을 번쩍 스쳐 지나더니 곧 우웅 하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황동종 하나가 머리 위에 나타났다. 그리고는 빙글빙글 회전하며 실체를 지닌 듯한 노란 빛을 내뿜어 종 모양 덮개로 그의 몸을 뒤덮었다.

    심협이 중얼중얼 주문을 외우자 주위의 물이 출렁이며 맷돌만 한 수인(水刃) 세 줄기가 나타나 회전하면서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냈다. 이는 그가 예전에 벽수문에서 배운 물 계통의 법술, 선와참(漩渦斬)이었다.

    “와라!”

    심협이 결인한 손을 끌어당기자, 회전하는 수인 세 줄기가 쏜살같이 날아와 물속에 반짝이는 세 줄기 흔적을 남기며 종 모양 보호덮개를 세차게 베었다.

    댕! 댕! 댕!

    고막을 울리는 세 번의 굉음이 터져 나왔다!

    회전하는 세 줄기 수인은 암초에 부딪힌 물결처럼 가볍게 부서져 무수한 물방울이 되었지만, 종 모양 보호덮개는 살짝 흔들리기만 했을 뿐, 곧 원상태를 되찾았다.

    심협의 눈에 희색이 돌았다.

    지금 그의 수련 경지와 어수지술(御水之術)의 위력으로 봤을 때, 선와참은 분명 중품 법기로 전력을 다해 가한 일격과 맞먹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놀랍게도 금갑선의의 방어는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그는 이제 공격 법기로 순양검배, 오악진형인, 청단부(靑短斧)를 지녔고, 방어 법기로는 금갑선의가 생겼으니, 공격과 방어를 겸비하게 됐다. 드디어 확실한 단점이 사라진 셈이다.

    흐뭇해진 심협은 손을 흔들어 금갑선의의 방어를 해제하고는 다시 진강의 저물 반지를 꺼내 법력으로 살펴보았다.

    진강의 저물 반지 속 공간은 꽤나 커서 족히 방 하나 크기 정도는 되었지만, 뜻밖에도 텅 비어 있었다. 그저 몇몇 물건과 선옥 30여 개가 자잘하게 흩어져 있는 것이 전부였다.

    “그럴 리가? 진강은 박물행의 공봉이라고 단양자가 그러지 않았던가! 그전에 보물 목록을 줄줄이 늘어놓고 나더러 고르라고 했던 자의 저물 법기가 어떻게 이리 텅 비었단 말인가!”

    심협은 실망을 금치 못했다.

    공간 안의 물건들은 언뜻 보기에도 그리 귀중한 물건들은 아니었다. 단약 두 병과 영패 하나, 서책 세 권, 그리고 팔각형 원반 하나였다.

    심협은 이 물건들을 꺼내들고 하나하나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두 약병에 든 것은 회복 단약들이었고, 영패는 박물행의 공봉 영패였다.

    서책 중 하나는 공법이 담긴 <열화현공(烈火玄功)>이라는 고서였고, 다른 한 권에는 진강이 수집한 각종 법술과 비기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심협은 <열화현공>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지만, 진강이 수집한 여러 법술에는 약간 흥미가 생겨 찬찬히 살펴보았다. 약간의 수확도 있었다.

    마지막 한 권은 진강의 수기(手記)였는데, 잡다한 것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박물행에 관한 일도 있고, 수련의 깨달음이나 소소한 일상 등도 있어 일기 같은 느낌이었다.

    심협은 대강 훑어보다가 금세 맨 마지막으로 넘어갔는데, 그 순간 표정이 굳어지더니 자세히 읽어보기 시작했다.

    잠시 뒤, 고개를 든 그의 표정은 복잡했다.

    수기의 맨 마지막 몇 장에는 한 가지 중요한 일을 반복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진강이 수년 전 탐험 중에 우연히 훼손된 옥간 하나를 얻게 되었는데, 그 안에는 위력이 엄청난 상고 시대의 법보 제조법이 기록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 법보의 이름은 오화신염선(五火神焰扇)으로, 일곱 가지 신조(*神鳥: 봉황, 주작 등 신령한 새)의 깃털에 다섯 가지 천화(天火)를 융합해야 만들 수 있으며, 그 위력은 족히 천지를 불사르고 신선을 베어 죽일 수 있을 정도라고 하였다.

    진강은 본디 불 속성 공법을 수련하던 터라 그 옥간을 얻고서 미칠 듯이 기뻤고, 어떻게든 이 법보를 만들고자 했다.

    다만 오화신염선은 구천신기(九天神器)인지라, 한낱 응혼기 수사가 연성해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에 진강은 차선책으로 어느 연기 대가와 반복해 의논한 뒤, 공정을 간소화하고 재료의 등급도 크게 낮췄으며, 다섯 가지 천화를 다섯 가지 인화로 낮추어 오화선(五火扇)을 만들었다.

    여기서 말하는 연기 대가가 누구인지는 심협도 알고 있었다. 바로 헌원각 경매를 주관했던 적수진인이었다.

    하지만 오화선도 만드는 데 대가가 너무나 컸기에, 진강은 가산을 거의 다 판 뒤에야 요 며칠 가까스로 재료를 모아 적수진인에게 넘겨주었다.

    진강이 심협에게서 천년영유를 샀던 것 역시 그 법보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수기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개량된 오화선은 그리 안정적이지 않은데, 천년영유가 안정화시키는 효능을 지닌 듯했다.

    사흘 전, 적수진인은 이 법보를 만들기 시작했고, 진강은 한쪽 옆에서 호법(*護法: 염불과 기도 등으로 사악한 기운을 물리쳐 지키는 일)을 섰다. 그래서 직접 심협을 쫓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게 된 것이로군. 행운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네.”

    심협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가 며칠만 일찍 고분에 갔었더라면 진강은 수집한 물건들을 팔 할 정도는 지닌 채 망산오우와 함께 추격해왔을 터. 그와 망산오우가 협공을 했다면 결국 자신은 그들에게서 살아남지 못했으리라.

    그는 고개를 두어 번 흔들고는 수기를 챙긴 뒤, 마지막으로 팔각 원반을 들었다.

    원반 둘레에는 팔괘의 방위가 새겨져 있었고, 가운데 부분은 여러 개의 작은 칸으로 나뉘어 있어 법진(法陣)의 진도(陳圖)와 비슷했는데, 그 문양이 복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 물건이 내 위치를 감지한 법기 아닐까?”

    심협은 구구통보결을 운공해 원반을 작동시켜 보려 했다. 원반에 담긴 금제는 무척 기이해, 평범한 법기의 금제들과는 전혀 달랐다.

    하지만 구구통보결은 역시 놀라운 비술이라, 이 팔각원반도 곧 반응하여 진도 한가운데에 하얀 빛이 떠올라 가볍게 반짝였다.

    심협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원진수가 담긴 병을 꺼내 원반에 가까이 가져갔다. 그러자 병 밑바닥이 갑자기 빛나더니 자그맣고 하얀 빛이 떠올라 원반의 빛과 희미하게 공명했다.

    “역시 그랬군!”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계속해서 팔각 원반을 작동하여 그것의 사용법을 정확히 파악해보려 했다. 그러나 구구통보결로는 이 원반을 더 이상 작동시킬 수 없었다.

    어쨌든 진강이 자신을 추적한 수단을 찾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심협은 모든 물건들을 챙긴 뒤, 눈을 감고 가부좌를 튼 채 상태를 가다듬었다. 이제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일인 응혼기 돌파를 시도할 차례였다.

    * * *

    몇 시진 뒤, 심협이 천천히 눈을 뜨고 의식을 움직이자, 몸 주위로 푸른 빛이 반짝이며 반경 4~5장의 강물이 밀려났다.

    심협은 곧 몸을 일으켜 재료들을 꺼낸 뒤, 아래쪽의 돌 받침에 진문(陣紋)을 새기며 법진을 하나 설치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반경 1장여의 검은색 원형 법진이 생겨났다.

    심협은 우선 통령역요 법술을 운공하여 낭생을 소환해 호법을 세운 뒤, 법진 바깥에 무릎을 꿇고 건곤대를 꺼내 법진 한가운데에 놓았다. 이어서 결인하여 법진을 작동시키자, 한 줄기 검은 빛이 법진 안에서 솟아올라 건곤대를 천천히 받쳐 올렸고, 가느다란 검은 빛이 계속해서 주머니 안으로 녹아들었다.

    건곤대 주위에 검고 어두운 빛이 일렁이더니, 흐릿한 검은 형체 하나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장군 귀물의 형상이었다.

    “나를 도와주느라 귀하가 고생이 많았소.”

    심협이 싱긋 웃고 몸을 일으켜 법진 안으로 걸어 들어가서는 건곤대 아래쪽에 앉자, 장군 귀물의 허상이 그의 몸에 겹쳐졌다.

    심협이 천천히 귀신으로 신혼(*神魂:정신과 혼백)을 수양하는 이귀양신(以鬼養神)의 비술을 운공하자, 가느다란 어두운 빛이 귀물의 허상에서 새어나와 그의 미간으로 모여들었다.

    미간을 살짝 찌푸린 그는 다소 고통스러운 기색이었지만, 이를 악물고 참아내면서 무명공법을 운공해 다시 응혼기의 난관에 충격을 가했다.

    * * *

    눈 깜짝하는 사이 몇 달이 지났다.

    이미 새해가 바뀌었지만, 이곳 황하의 날씨는 여전히 하루가 다르게 추워졌다. 더욱이 오늘은 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아득한 강물 위로 눈꽃이 춤추며 흩날리고, 천지는 온통 흐리멍덩하여 어디가 강물이고 어디가 하늘인지 분간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이런 날씨는 배를 띄우기도, 물고기를 잡기도 적당치 않았기에, 강 위에는 나룻배와 고깃배가 한 척도 없었다.

    하지만 이런 절경은 생계로 근심할 필요 없는 문인들이나 귀족 자제들이 설경(雪景)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길이가 무려 30여 장에 이르는 3층이의 화방(*畵舫: 아름답게 장식한 놀잇배) 한 척만이 황하를 천천히 지났다. 그 위에 펄럭이는 깃발은 놀랍게도 밝은 황색이었고, 용과 봉황이 수놓아져 있는 것으로 보아 황실 사람들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음악 소리며 음주가무를 즐기는 소리가 들려왔고, 간혹 누군가 시 한 수를 소리 높여 읊조리기도 했다.

    바로 그때, 화방 수백 장 앞의 강물이 갑자기 부글부글 용솟음치더니 거대한 소용돌이 하나가 떠올랐다. 이어서 주위에도 무수한 작은 소용돌이들이 번갈아 나타나 근처에 엄청난 광풍을 불러일으켰다. 동시에 강물의 천지영기도 격렬하게 흐트러지면서 거대한 소용돌이를 향해 몰려들었다. 하늘에서도 거센 광풍이 일어나 더 큰 소용돌이를 이루면서 천둥이 연이어 치는 듯 길게 울렸다.

    화방의 돛도 광풍에 한 차례 극심하게 흔들렸고, 깃발들이 미친 듯 부는 바람에 그대로 꺾여 하늘로 휘말려 올라갔다.

    “이게 무슨 일이냐!”

    배 위의 소음이 뚝 그쳤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선실 안에서 황급히 쏟아져 나왔다.

    우두머리는 밝은 황색 장포를 입고 머리에 금관을 썼으며, 손에 쥘부채를 든 청년이었다. 20대로 보이는 그는 별처럼 반짝이는 눈에 수려한 눈썹을 지녔으며, 천정(*天庭: 관상에서 이마 한가운데를 이르는 말)이 옹골진 데다 미간에 자색을 어렴풋이 띤 것이 무척 고귀한 느낌이었다.

    금관 청년의 곁에는 한 사람이 더 서 있었는데, 밝은 황색 긴 치마를 입었으며, 머리에는 봉관(*鳳冠: 옛날 황후가 머리에 썼던 봉황 모양 장식이 드리워진 관)을 쓴 소녀였다. 놀랍게도 그녀는 바로 심협이 완구성 방시와 헌원각 경매에서 두 번이나 만났던 이씨 소녀였다.

    뒤에는 10여 명이 서 있었는데, 모두 비단 옷을 입은 젊은 남녀로, 기품이 범상치 않은 것이 다들 제법 지체 높은 사람들임이 분명했다.

    또한 도포를 입은 우사(*羽士: 도사를 일컫는 말 중의 하나) 몇 사람도 주위에 서 있었는데, 모두 수사들이었다.

    무씨 청년도 이곳에 있었지만, 변두리에 서 있었다. 특유의 오만함은 어디로 갔는지 무척 공손해 보였다.

    무씨 청년 앞에는 자줏빛 도포 차림에 뇌양관(雷陽冠)을 쓴 중년 우사가 한 사람 서 있었다. 두 사람의 이목구비와 윤곽이 무척 닮은 것으로 보아 혈연관계인 듯했다.

    “구전하(九殿下)께 아룁니다. 전방에 영기가 밀려오고 광풍이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것이, 분명 어느 수사가 강바닥에서 폐관하며 경지 돌파를 시도해 기상 현상을 일으킨 듯하옵니다.”

    금관 청년 뒤에서 손에 불진(*拂塵: 승려나 도사가 번뇌 따위를 물리치는 표지로 쓰는 총채)을 들고 서 있던 도인이 강물을 살펴보고는 미소를 띠며 말했다. 이 도인은 외모가 빼어나고 특이하여, 머리는 온통 백발이었지만 얼굴에는 주름 하나 찾아볼 수 없었고, 안색은 왠지 모르게 약간 병색을 띠어 창백했다.

    그는 손에 든 불진을 한 번 휘둘렀다. 그러자 어디선가 푸른 빛이 한 층 나타나 화방 전체를 뒤덮었고, 푸른 빛 속에는 기묘한 무늬가 줄줄이 반짝였으며, 점점이 빛들이 밤하늘의 별들처럼 깜빡였다.

    화방은 이내 평온해져서 하늘에 광풍이 불고 강에 소용돌이가 거세게 솟구쳐도 그들에게는 조금도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이때, 멀리 허공의 영기 소용돌이가 돌연 회전을 멈추더니 맑은 소리와 함께 산산이 부서져 흩날렸다. 하늘에는 무지개 같은 노을빛이 줄줄이 떠올라 그야말로 장관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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