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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287화 (287/1,214)
  • 287화. 전리품

    네 사람의 기혈을 흡수한 죄수 귀물은 눈을 살기로 번득이더니, 실체를 지닌 듯한 핏빛 두 줄기를 뿜어내며 방 곳곳을 둘러보았다. 어딘가 조금 당황한 듯한 표정이었다.

    심협은 심장이 목구멍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조마조마해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그때, 그가 변신한 검은 돌 주위의 허공이 일렁이더니 희미한 검은 기운이 떠올라 검은 돌을 뒤덮었다.

    죄수 귀물의 시선은 심협이 몸을 숨긴 곳을 훑어보았지만, 이내 옆으로 옮겨갔다.

    심협은 그제야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죄수 귀물은 눈동자를 핏빛으로 일렁이며 무너진 통로를 바라보더니 낮게 으르렁거렸다. 그리고는 별안간 한 줄기 검은 그림자로 변해 재빨리 무너진 통로 속으로 들어갔다. 그 속도는 무서울 정도로 빨라서 조금 전의 느릿느릿했던 걸음과는 전혀 달랐다.

    콰르릉!

    통로 깊숙한 곳에서 느닷없이 굉음이 들려왔는데, 놀라고도 분노한 듯한 목소리가 섞여 있었다. 분명 진강의 목소리였다.

    짧고 요란한 굉음 몇 차례 들려오는가 싶더니 처절한 비명이 통로 안에 울렸고, 이내 고요해졌다.

    잠시 후, 무너진 통로 안의 검은 그림자가 번쩍하더니 죄수 귀물의 모습이 다시 나타나 거대한 방 깊은 곳의 통로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 사라져버렸다.

    “나오너라. 그놈은 이미 갔다. 네 이놈! 저런 원귀를 상대하게 하다니, 나를 죽이려고 작정한 게냐?”

    검은 돌 주위의 허공이 일렁이더니 구혼마면의 모습이 떠올라 퉁명스레 핀잔을 주었다.

    그러자 검은 돌덩이 위로 하얀 빛이 떠올라 한 차례 반짝거리더니, 이내 심협과 백성의 모습으로 변했다.

    “허! 숨기는 잘도 숨는구나!”

    구혼마면은 심협에게 눈을 가볍게 흘기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백성은 구혼마면을 보고는 두려운 듯 가늘게 떨며 재빨리 심협의 몸 위에서 기어 내려와 한쪽 옆에 웅크렸다.

    “선배님을 난처하게 해 죄송합니다. 상황이 위급한지라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심협은 여전히 바닥에 누운 채 멋쩍은 듯 말했다. 사실 무안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 꼼짝도 할 수 없었고, 말도 조금 어눌했다.

    “음칩단을 먹었느냐? 어쩐지 기운이 너무 약해졌다 했더니…….”

    구혼마면은 쓱 훑어보고는 가볍게 심협의 어깨를 눌렀다. 그러자 심협은 음칩단이 녹아 만들어진 체내의 냉기가 모두 구혼마면의 손바닥으로 몰려가는 것이 느껴졌다.

    잠시 후, 원 상태를 회복한 심협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선배님.”

    “됐다. 이걸로 우리 계산은 말끔히 끝난 셈이다. 한데 너 수련 경지가 벌써……? 이러다가 곧 나를 따라잡겠구나. 하하하!”

    심협을 두어 번 훑어보던 구혼마면의 입에서 작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과찬이십니다.”

    심협이 웃으며 말했다.

    “칭찬 한마디 했다고 좋아 죽는구나. 네 녀석은 정말이지 일을 잘벌려. 감히 혼자서 이 음령산 고분에 오다니, 명줄이 길어서 그만 살고 싶어진 게냐? 이곳은 저승이라 해도 함부로 간섭할 수 없는 곳이란 말이다.”

    구혼마면은 얼굴을 굳히며 꾸짖었다.

    “저도 이곳이 이렇게 위험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이번 걸음에 온갖 뜻밖의 사건들이 얽히고설킨 것도 절대 저의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어쨌든, 일단 너를 데리고 나가마. 이곳에 오래 머무는 것은 좋지 않아.”

    구혼마면은 이곳에 더 머물고 싶지 않은 듯 심협의 어깨를 붙잡았다.

    “선배님,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잠시 시간을 번 심협은 물 덩어리를 소환한 뒤, 물구멍을 열었다.

    “백성, 이번에 고마웠다. 어서 동해로 돌아가거라.”

    백성은 말없이 물구멍 속으로 들어가 사라져버렸다.

    “넌 요족에게도 대단히 친절하구나. 평범한 수사들과는 달라.”

    “수사든 요족이든 살아 있는 생명이니까요. 비록 일부 요물들이 사람을 해치긴 하나, 그 일부만으로 전체를 평가할 필요 있겠습니까?”

    구혼마면이 웃으며 말하자 심협은 진중한 목소리로 답했다.

    구혼마면은 눈썹을 치켜 올리고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을 뒤집어서 자줏빛 부적을 한 장 꺼내 부스러뜨렸다. 그러자 누르스름한 빛이 순식간에 두 사람을 뒤덮고 날아갔다.

    두 사람의 몸은 벽이 마치 공기라도 된 것처럼 지나쳐 거침없이 날아갔다.

    심협은 다소 놀랄 수밖에 없었다. 땅속을 가로지르는 이런 효과라면 그 자줏빛 부적은 분명 둔지부(遁地符) 같은 부적이었을 것이다.

    방촌산 고서에서 본 대로라면 둔지부는 고급 부적이라 진귀했다. 지금껏 배우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아직까지 기회가 없었다.

    “선배님, 아까 그 귀물이 통로에서 누군가와 싸웠던 것 같은데, 잠시 그곳으로 데리고 가주실 수 있으신지요? 귀물과 싸웠던 상대가 아마도 저의 원수였을 겁니다. 가서 그자의 생사를 확인해보고 싶습니다.”

    “알았다.”

    심협이 문득 진강의 일이 떠올라 청하자 구혼마면은 법결을 작동시켜 살짝 방향을 틀고는 막혀버린 통로 안으로 향했다.

    잠시 후, 눈앞이 아득해지더니 통로 안 어느 굴속에 나타났다.

    사방 벽과 바닥에는 새카맣게 베인 흔적이 몇 군데나 있었는데, 강력한 불 속성 법기의 흔적 같았다.

    바닥에는 마른 시체가 한 구 있었는데, 바짝 말라비틀어졌지만 분명 진강이었다.

    심협은 차게 웃고는 곧 진강의 시체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 이내 옥으로 만들어진 황토색 노작(魯斫: 땅을 파거나 흙을 고르는 데 쓰는 농기구. 괭이) 한 자루와 전체가 검붉은 구환귀두대도(九環鬼頭大刀) 그리고 황동으로 만든 작은 종을 발견했다. 모두 한 가닥 법력 파동을 내뿜는 것이 법기들인 게 분명했다. 특히 구환귀두대도는 건드리지도 않았건만 가느다란 영광(靈光)을 번득이며 강력한 영압을 내비쳤다. 심지어 오악진형인에도 뒤떨어지지 않는 것 같았다.

    심협이 신이 나서 세 물건을 챙기려 하는데, 검은 기운이 번개처럼 빠르게 날아와 그것들을 휩쓸어 구혼마면의 손으로 떨어졌다.

    “선배님은 저승의 음차(陰差)이신데 소인과 보물을 놓고 다투려 하십니까?”

    심협은 어이가 없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물었다.

    “저승에 자원이 좀 있긴 하다만 나 같은 음차가 수도 없이 많은데 누구 코에 붙이겠느냐? 그래도 안심해라. 내 독식하지 않으마. 이 오금귀두겸(烏金鬼頭鎌)만 가질 테니 다른 것은 네가 가져라.”

    구혼마면은 씩 웃고는 손을 뒤집어 귀두대도를 챙긴 뒤, 황토노작과 황동소종을 건넸다.

    “마면 선배님, 그 귀두대도만 가지신다 하셨으니 약조 지키셔야 합니다.”

    심협은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두 물건을 받아 챙기며 중얼거리더니 곧장 진강의 시체 옆까지 걸어가 그의 오른손 엄지에서 두꺼운 황옥반지를 빼냈다.

    “저물법기!”

    구혼마면은 순간 멍해졌다가 혼자 짜증을 내며 허벅지를 두드렸다.

    심협은 그런 구혼마면을 아랑곳 않고 진강의 시체를 이리저리 뒤져본 뒤, 별다른 물건을 찾지 못하자 그제야 손을 뗐다.

    “됐습니다. 가시죠, 선배님.”

    심협이 몸을 돌려 되돌아오면서 웃었으나, 구혼마면은 콧방귀를 뀔 뿐 별다른 말도 없이 다시 이동했다.

    * * *

    음령산맥 어딘가의 땅바닥에 노란빛이 번쩍이더니 구혼마면과 심협의 모습이 튀어나왔다.

    “마면 선배님, 선배님이 계셨기에 다행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저도 거기 영원히 잠들어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심협은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구혼마면에게 다시 한번 감사를 표했다. 비록 구혼마면이 극품 법기를 하나 가져가기는 했지만, 그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정말로 살아나오기 힘들었을 것이다.

    “네 녀석이 내 복덩이인가보다. 매번 너와 함께 있으면 좋은 일이 있으니 말이야. 이걸 줄 테니 다음에 또 무슨 일이 있으면 잊지 말고 나를 불러라.”

    구혼마면은 빙긋 웃더니 검은 백서 하나를 꺼냈다. 또 하나의 통령계약이었다.

    말을 마친 구혼마면은 심협이 더 뭐라고 말할 틈도 주지 않고 바람처럼 사라져버렸다.

    심협은 구혼마면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더 있었지만, 이미 늦었기에 한숨을 내쉬고는 백서를 챙겼다.

    그는 고분 방향을 힐끗 돌아보고는 손을 흔들어 순양검배를 꺼낸 뒤 곧장 음령산맥을 벗어났다. 그러나 장안성으로 향하지는 않았다.

    잠시 후, 눈앞에 커다란 강 한 줄기가 나타났다. 웅대하고 세찬 물결이 끝없이 펼쳐진 것이 마치 신룡(神龍)이 대지 위에 둥지를 틀고 있는 것 같았고, 위풍당당한 기세가 우뚝 솟아 수덕(水德: 오행 가운데 물에 상응하는 왕의 덕)의 영화를 남김없이 드러냈다. 다만 강물이 약간 누런빛인 것이 옥에 티였다.

    이 강은 바로 황하로, 당에서 두 번째로 큰 수역의 강이었다.

    심협은 강가에 내려서더니 세찬 강줄기를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이 점차 엄숙하게 변해갔다.

    ‘이제 응혼기 돌파를 시도할 모든 조건을 갖추었다.’

    그래서 그는 장안성이 아닌 황화로 왔다. 만약 돌파에 성공하면 많은 사람의 주목을 끌게 될 텐데, 황하는 인적이 드물고 물의 기운도 풍부하니 적당했다.

    그는 마음을 굳히고는 곧장 강으로 날아든 뒤, 피수결을 써서 강 밑바닥으로 자맥질했다. 그리고 금세 강바닥에서 꽤 평평하고 커다란 바위를 찾아내 법술로 조금 다듬어 폭 3장 정도의 평대를 만든 뒤, 가부좌를 틀었다.

    그는 이제 수련 경지가 점점 깊어져서 피수결을 단순히 전투에만 사용하지 않았다. 특히 강물이 가로막혀 있는 상황에서는 법력 소모가 미미하여 오랫동안 시전할 수 있다. 그러니 물밑에서 폐관하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했다.

    하지만 그는 곧바로 수련을 시작하지 않고 진강의 저물반지와 황토노작, 그리고 황동소종을 꺼내 찬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황토노작은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하품 법기였지만, 흙을 부수고 돌을 뚫는 기능이 있었다.

    심협은 황토노작을 잠시 제련한 뒤 아래쪽 바위 위를 휙 그어보았다. 그러자 단단한 돌덩이가 와르르 무너져 한 조각이 크게 쓸려 내려갔다.

    심협은 감탄했다. 어쩐지 진강이 그렇게 빠른 속도로 막힌 통로를 뚫는 것을 신기하게 여겼는데, 이런 보물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곧 황토노작을 한쪽 옆에 내려놓고 황동소종을 집어 들었다. 이 종은 보기에는 크지 않아도 꽤 묵직했는데, 황동으로 주조한 듯했고, 겉면에는 용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심협은 이 종을 손에 쥐고 잠시 만지작거리다가 구구통보결을 운공하여 살펴보고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 황동 소종은 놀랍게도 9도 금제가 걸린 상품 법기였던 것이다!

    그는 지금 이미 극품 법기를 하나 가지고 있고, 상품 법기도 네다섯 개쯤 되는데, 이 황동소종 같은 순수한 방어 법기는 없었다. 그나마 방어에 유용한 비취색 옥여의도 반쪽짜리였다.

    방어류 법기는 필요한 재료가 구하기도 까다롭고 필요한 양도 공격 법기보다 많으며, 만드는 공정은 매우 복잡했다. 그렇다보니 시중에서는 방어 법기를 찾아보기 힘들었고, 가격은 동급의 공격 법기보다 훨씬 비쌌다.

    꿈속 세상에서 황정경을 수련해 법기에 견줄 만큼 강인한 육신을 가진 것과 달리 현실에서의 그는 그리 강인하지 못했다. 그래서 줄곧 몸을 지킬 방어법기를 원했으나 지금까지 구하지 못했는데, 이제 마침내 하나를 얻게 된 것이다. 더욱이 등급마저 이토록 높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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