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286화 (286/1,214)

286화. 위기

추혼술은 다른 사람의 혼백을 뽑아 끊임없이 고통스럽게 하고, 마침내 완전히 혼백을 흩어 환생의 기회조차 얻지 못하게 만드는 것으로, 수선계에서 악명 높은 법술이었다. 그러나 이 법술을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고, 심협도 배운 적이 없다. 그가 지금 운공한 것은 <연신비전>에 기록된 ‘몽염술(夢魘術)’로, 역시 혼을 다루는 법술이라 이를 이용해 하얀 옷의 청년을 겁박한 것뿐이다.

“예, 예. 제가 반드시 아는 대로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진강이란 자는 1년 전에 우리에게 도우를 눈여겨보고 있다가, 도우께서 장안성을 나서자마자 곧바로 자신에게 알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자신이 도우를 죽이고 도우께서 지닌 보물 하나를 빼앗을 거라고 말입니다.”

하얀 옷의 청년은 추혼술이 무척이나 두려웠는지 심협이 제대로 묻기도 전에 술술 털어놓았다.

“내가 장안성 어디에 사는지 알고 있었단 말이냐?”

심협은 더욱 싸늘해진 목소리로 물었다.

“물론입니다. 그 진강이라는 자가 알려주었습죠. 그는 어떤 비술로 귀하의 몸에 표식을 심어 놓았는지, 감지 진반(陣盤)으로 도우의 위치를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큰형님 수중에도 하나 있고요.”

백의(白衣)의 청년은 술술 털어놓았다.

심협의 눈길에는 섬뜩한 한광이 떠올랐고, 낯빛도 살짝 어두워졌다.

그는 그날 단양자의 거처를 떠나자마자 미행을 피하기 위해 강물 아래로 잠수해서 이동했고, 곧장 곡지방으로 달아났다. 그래서 누구도 자신을 찾지 못할 거라 생각했건만, 이미 진강의 계략에 빠진 후였다니…….

‘하지만 그자를 만난 것은 아주 잠깐이었고, 내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거늘 어찌 내게 표식을 심을 수 있었단 말인가?’

어쨌든 이곳에서 망산오우(邙山五友)를 우연히 마주친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진강이 설계한 판일 터였다!

‘설마…… 그 이원진수(二元眞水)에 문제가 있나?’

그런 가능성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했다.

그는 손을 뒤집어 이원진수가 담긴 옥병을 꺼냈다. 지금은 4분의 1 정도만 남은 상태였다.

그는 옥병과 내용물을 꼼꼼히 살펴보았지만 별다른 단서를 찾아내지 못했고, 이번에는 법력을 그 안으로 주입하여 자세히 감지해보았다.

“흠!”

심협의 눈빛이 흔들렸다.

옥병 밑바닥에서 희미한 법력의 파동이 어렴풋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경지가 크게 발전하면서 감응이 예민해진 덕에 가까스로 발견할 수 있었다.

‘이게 그 표식인가?’

단정할 수는 없었던 심협은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백의의 청년을 닦달했다.

“내가 장안성을 떠난 후의 일을 말해보거라.”

“우린 도우를 바짝 쫓으면서 진강에게 알렸습니다. 그는 뭔가 다른 일로 바빠 짬을 낼 겨를이 없었는지 우선 우리에게 도우를 놓치지 말고 계속 주시하라 했습니다. 귀하가 이곳을 떠날까 우려한 큰형님은 후전으로 유인하기로 했지요. 운수진으로 묶어둘 생각이었습니다. 그 뒤의 일은 아시다피시…….”

심협이 그간의 일을 떠올려보고는 청년의 말이 맞아떨어진다고 여겼다.

“좋다. 넌 우선 쉬어라!”

그가 손을 들어 백의 청년의 이마를 누르자 손바닥에서 어두운 빛이 세차게 뿜어져 나왔다. 청년은 두려운 듯 흠칫 떨었지만, 이내 두 눈을 뒤집고는 의식을 잃었다.

몽염술(夢魘術)은 사람을 잠들게 할 뿐만 아니라 끝없이 가위눌리게 하는 법술로, 누군가를 괴롭히는 데 쓰였다. 하지만 심협은 처음 써보는 것이라 그저 잠들게 하는 것만 가능했다.

그는 곧이어 표범 같이 생긴 사내도 깨워 한바탕 겁을 준 뒤, 그에게도 저간의 일을 물었고, 백의 청년의 말과 거의 일치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어서 그자마저 잠들게 한 후, 심협은 고민에 잠겼다.

망산오우와의 전투로 꽤나 시간을 보냈으니, 지금쯤 진강이 지척에 와 있을지도, 어쩌면 이미 고분에 도착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게다가 진강이 자신에게 남겨두었다는 표식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으니 이대로 움직이다가는 피하기 힘들 듯했다.

‘그럴 바에는 이곳에서 그를 기다리는 편이 낫겠군. 이곳에 제법 익숙해지기도 했으니, 미리 함정을 파놓는다면 승산이 있을 터.’

게다가 무너진 통로를 통과하려면 진강은 꽤나 힘을 소모하게 될 거라는 계산도 있었다. 물론 자신이 빠져나가려 해도 그 역시 힘들기는 매한가지였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이곳 내전의 또 다른 강력한 귀물을 마주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일단 법력부터 회복하자.”

심협은 호용에게서 얻은 뽀얀 유백색 단약을 꺼내 삼키고는 가만히 법력을 운공해 정제했다. 그러면서도 손으로는 망산오우에게서 얻은 물건들을 꺼내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이들은 저물법기 같은 것을 가지지 못했던 터라 소지품도 많지 않았다. 법기 몇 가지를 빼면 아까 챙긴 음살현빙(陰煞玄氷) 등의 재료와 약간의 단약, 부적 같은 응급 물품이 전부였다. 게다가 단약과 부적도 모두 평범한 것들이라 지금의 그에게는 그리 큰 가치가 없었다. 그나마 붉은 치마의 여인에게서 찾아낸 중품 화검부(火劍符) 몇 장은 그런대로 쓸모가 있었다.

심협은 이것들을 전부 챙긴 뒤 법기들을 살펴보았다.

외눈박이 사내와 표범을 닮은 사내의 검은색 두 장도는 예상대로 짝을 이루는 법기로, 각각 6도 금제가 담겨 있어서 합께 사용하면 어지간한 상품 법기 못지않은 위력을 발휘할 터였다.

백의 청년의 회색 톱니바퀴는 7도 금제가 담긴 상품 법기였다. 위력이 제법 괜찮았고, 공격용은 물론 톱니바퀴 중간에 뚫린 구멍으로 다른 사람의 법기를 가두는 데에도 유용해 보였다. 무척 정교한 법기였다.

마지막 하나는 은빛 고리였는데, 법력으로 확인해보니 특이한 점이 있었다.

“이 법기는 의외로 괜찮군. 내 청단부(靑短斧: 푸른색 도끼)보다 뛰어난 걸!”

그는 기쁜 듯 미소를 지었으나, 이내 웃음기를 거두고는 막힌 통로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그의 눈이 가늘어졌고, 한껏 청력을 끌어올린 귀가 쫑긋거렸다.

저 너머에서 분명 희미하지만 어떤 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뭔가 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은 심협은 단약을 마저 정제할 틈도 없이, 꺼내둔 물건들을 모두 거둬들이고는 곧장 거대한 방의 낙석 더미 뒤로 몸을 숨겼다. 죽거나 잠든 망산오우는 그대로 둔 채였다.

방금 세운 바꿔치기 계책에 대해 막 백성에게 설명하려던 그는 또다시 흠칫 놀랐다. 온몸의 솜털이 죄다 곤두서는 느낌에 한차례 전율했다. 엄청나게 거대하고 흉악한 기운이 가득한 귀기가 저 깊숙한 통로에서 전해져온 것이다.

‘이, 이건 출규기 귀물! 빌어먹을, 강력한 귀물이 후전 깊은 곳에서, 하필 지금 튀어나오다니!’

그의 안색은 더없이 어두워졌다. 그야말로 사면초가 아닌가!

하지만 심협은 요 몇 년간 겪은 일들로 심지가 굳어져서 이런 위기의 순간에도 침착했고, 심지어 머릿속으로는 수많은 방법을 떠올리고 있었다.

‘모험을 해보는 수밖에…….’

그는 이내 결정을 내리고는 손을 뒤집어 푸른색 단약을 하나 꺼냈다. 이전 저승 임무 때 얻은 음칩단(陰蟄丹)으로, 먹으면 호흡을 사리지게 하고 온몸이 얼음처럼 차가워지면서 가사상태에 빠지게 되는 단약이었다.

“백성, 너를 이런 위험한 상황에 끌어들여서 미안하구나. 내가 이 단약을 먹으면 나를 돌덩이로 변신시키고 너는 서둘러 동해로 돌아가거라.”

음칩단의 힘에 백성의 봉인술이 더해지면 출규기 귀물이라도 속일 수 있을 터였다.

심협은 소리 죽여 그렇게 말하고는 손을 흔들어 물결을 한 덩이 불러냈다. 그리고는 통령술을 운공해 물구멍을 열었다. 그리고 백성은 그런 심협을 멍하니 쳐다보더니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주인님은 제게 잘 해주시잖아요. 떠나지 않을래요. 제 변신술에는 시간제한이 있어서 제가 떠나면 주인님은 원래 모습이 되실 거예요. 하지만 제가 다른 생물과 함께 변신하면 제한시간을 늘릴 수 있지요. 그러니 저를 남게 해주세요.”

심협은 연약한 줄로만 알았던 백성이 확고한 눈빛으로 말하자 잠시 당황했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네게 그런 능력도 있었구나! 그럼 좋다. 부탁하마!”

사실 자신도 변신의 제한시간 때문에 걱정하던 차였는데 백성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니, 한결 마음이 놓였다.

말을 마친 그는 결인하여 물구멍을 흩어버린 뒤, 검은 백서(帛書: 비단에 쓴 글)를 하나 꺼내 손으로 쥐어 바스러뜨린 뒤에야 음칩단을 복용했다. 백서는 구혼마면이 준 것으로, 그를 불러 도움을 청할 수 있는 통령계약이 담긴 것이다.

구혼마면은 응혼기 경지에 불과하여 이 출규기 귀물을 상대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으나, 상황이 워낙 급박하니 그런 것 따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음칩단은 뱃속에 들어가자마자 얼음장 같이 차가운 기류로 변해 온몸 곳곳으로 빠르게 퍼져 나갔다.

잠시 후, 심협의 체내 법력은 전부 사그라들었고, 몸이 싸늘하게 식으면서 피부도 검푸르게 변해 마치 송장이 된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의 오감은 평소보다 훨씬 약해지긴 했어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한쪽 옆에 있던 백성은 꿈틀꿈틀 몸을 움직여 빠르게 심협 위로 기어 올라갔다. 그러자 그의 몸에서 안개 같은 하얀 빛이 떠올라 두 사람 주위를 휘감았다.

그들의 몸은 빠르게 흐릿해지면서 검은 돌덩이로 변했고, 털끝만 한 기운도 내뿜지 않아 주위의 낙석들과 다를 게 없었다.

심협은 처음 겪는 백성의 변신술이 신기했다.

백성이 변신을 마치자마자 거대한 방 깊숙한 통로 안에서 뿜어져 나오던 귀기가 더욱 짙어졌고, 쇠사슬을 끄는 듯한 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그때, 굳게 막혀 있던 통로 안에서도 우르르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점점 크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진강이 어떤 신통력으로 무너진 통로를 뚫고 있는 것이리라. 기세로 보아 곧 뚫릴 것만 같았다.

‘잘됐군. 너희끼리 붙어보거라!’

심협은 이 뜻밖의 상황을 감지하고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때, 후전의 통로 입구에 누르스름한 그림자가 어른거리더니, 검고 커다란 귀물의 그림자가 천천히 걸어왔다. 보아하니 생전에 죄수였던 모양인데, 풀어헤친 머리는 마구 헝클어져 얼굴을 반쯤 덮었고, 목과 두 발에 칼과 족쇄를 차고 있었다. 그 상태로 검은 쇠사슬 두 가닥을 질질 끌며 걸어왔는데, 그 소리가 날카롭게 귀를 찔렀다.

심협은 상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짙은 귀기로 이 귀물이 적어도 출규 후기라고 판단했다. 과연 녀석이 속아 넘어갈지는 미지수였다.

죄수 귀물은 천천히 방을 둘러보더니 산발한 머리칼 뒤로 문득 두 덩이 핏빛을 번뜩였다. 이어서 어찌 움직였는지 볼 틈도 없이, 쇠사슬이 살아난 듯 날아올라 백의 청년과 표범 같이 생긴 사내의 몸을 찔렀다.

“끄어억!”

두 사람은 움찔 떨더니 깊은 잠에서 깨어나 처참한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이미 중상을 입은 탓인지 저항조차 하지 못했다. 가느다란 핏빛이 두 사람의 몸에서 흘러나와 검은 쇠사슬 안으로 녹아들었고, 이들은 빠르게 오그라들어 두세 호흡 뒤에는 바싹 마른 시신이 되어 버렸다.

두 개의 쇠사슬은 이어서 붉은 치마의 여인과 외눈박이 사내의 시신을 파고들었고, 두 사람의 시신도 이내 마른 시체가 되었다.

거대한 방은 쥐죽은 듯 고요했다. 무너진 통로를 파헤치던 소리는 이미 멈춘 뒤였다. 아마 진강도 이쪽의 상황을 알아채고 멈춘 것 같았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