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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285화 (285/1,214)
  • 285화. 이유

    심협은 또다시 표정이 급변해 미처 더 깊은 곳으로 피할 새도 없이 한구석에 몸을 숨기며 손을 휘둘러 오악진형인을 뒤로 던지는 동시에 모든 법력을 운공하여 효력을 불러 일으켰다.

    노란 빛이 연달아 번쩍이면서 다섯 개의 산봉우리가 그의 뒤에 나타났다.

    거대한 하얀 불길이 이글거리며 다섯 산봉우리에 부딪혔고, 노란 색과 하얀 색의 빛이 격렬히 충돌하며 광채가 사방으로 튀었다. 이어 경악할 만한 폭발음이 거듭 들려왔다.

    다섯 산봉우리가 심하게 떨리는 가운데 노란 빛이 희미해졌지만, 다행히 가까스로 버텨냈다.

    그러나 심협이 있는 이 방은 계속해 진동하며 벽과 바닥에 줄줄이 균열이 생겨났고, 이대로 곧 무너질 것만 같았다.

    심협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만약 이곳이 무너진다면 위험해질 터였다.

    그때, 통로 저 너머에서 커다란 굉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마치 거대한 산이 추락한 것처럼 바닥이 거세게 흔들리면서 커다란 바위들이 줄줄이 떨어져 내렸다.

    “통로가 불타서 무너졌어!”

    그는 곧장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차리고는 젖 먹던 힘까지 다해 피수결을 운공하면서, 손을 휘둘러 비취색 여의를 꺼내 커지게 만든 뒤 머리 위를 가렸다.

    다행히 그가 걱정하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 커다란 방은 무척 견고해 천장의 돌덩이들이 한바탕 떨어진 뒤로는 이내 멈췄다.

    심협은 잠시 더 기다렸다가 완전히 잠잠해진 뒤에야 결인해서 오악진형인을 거두고 구석에서 걸어 나왔다.

    자욱한 흙먼지가 휘날려 시야가 흐릿했다.

    심협은 손을 뒤집어 청풍파장부(淸風破障符)를 꺼내 법력으로 효력을 불러일으켰고, 큰 바람이 흙먼지들을 거대한 방 깊은 곳으로 휩쓸고 가 통로 안으로 밀어내자 시야는 다시 맑아졌다.

    곳곳마다 부서진 돌들로 뒤덮여 아수라장이었고, 통로는 무수한 돌덩이들과 진흙으로 꽉 막혀 있었다.

    “그 화운호로 안에 도대체 뭐가 들었기에 이토록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뿜어내는 걸까?”

    심협은 완전히 막혀버린 통로를 보면서 아직도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불타 죽었을 것이고, 죽지 않았더라도 거의 반죽음이 되어 파묻혔을 것이다.

    다행히 죽음은 피했지만, 통로가 막혀 버렸으니 어떻게 빠져나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후전 더 깊숙한 곳에 다른 통로가 있는지도 역시 알 수 없었다.

    심협이 커다란 방 깊숙한 곳을 살펴보니 방금 하얀 불길이 한바탕 지나면서 귀물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아까 하얀 불길에 타죽었거나, 후전 깊은 곳으로 도망친 것 같았다.

    이곳의 검은 귀기도 증발해 사라졌고, 빛도 한층 더 밝아졌다.

    그때, 심협은 무언가를 발견했다.

    “엇!”

    그는 갑자기 멀지 않은 곳의 바닥을 바라보면서 손을 흔들어 푸른 빛을 뿜어내 낙석 한 덩이를 흔들었다. 그러자 그 아래로 하얗고 작은 깃발이 드러났다. 운수진의 진기(陣旗)였다. 아까 망산오우의 시신과 법기 따위를 거두긴 했지만, 운수진의 진기는 멀리 있어 미처 거둘 틈이 없었던 것이다.

    심협은 푸른 빛을 움직여 작은 깃발을 휘감아 온 후 다시 방을 샅샅이 뒤져 마침내 여섯 개의 깃발을 모두 찾아냈다.

    이 하얀 깃발들은 재질이 튼튼하고 그 위에 새겨진 영광이 아직 흩어지지 않아 좀 전의 하얀 불길 속에서도 전혀 망가지지 않은 듯했다.

    심협은 법력을 운공해 작은 깃발들을 살펴보았다. 과연 그 안의 금제는 훼손되지 않고 멀쩡했다.

    “이 깃발들이 있으니 여섯 사람만 모으면 운수진을 펼칠 수 있겠군.”

    그가 몸소 겪어본 운수진은 틀림없이 등급이 매우 높은 법진이었다. 다만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방월공이 그에게 보여준 진도(陣圖)가 온전치 않았고, 그나마도 그 노인은 이미 죽었다는 점이었다. 현재 파괴된 상태로 보아 방월공이 지녔던 물건들도 이미 망가졌을 테니 운수진을 전부 파악할 수는 없을 터였다.

    심협은 다소 아쉬워하면서도 깃발들을 챙기고는 막 건곤대를 꺼내 그 안에 담긴 망산오우의 시체에 있는 물건들을 살펴보려 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앞쪽에 막혀 있던 통로에서 검은 그림자가 번쩍이더니 건장한 검은 그림자가 막힌 통로 속에서 비틀비틀 날아 나왔다. 놀랍게도 그 응혼기 장군 귀물이었다.

    다만 장군 귀물의 상태는 다소 처참해 보였다. 몸의 절반 정도는 이미 불타버렸고, 남은 반쪽마저도 만신창이라 곧 완전히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심협은 오른손으로 허공을 가리켰다. 그러자 순양검배가 번개처럼 튀어나가 한순간 흐릿해지더니 10여 줄기의 붉은 검영(劍影)으로 변해 장군 귀물의 머리를 뒤덮었다.

    이어서 왼손으로는 즉시 건곤대를 꺼내 안에 있던 백성과 외눈박이 사내 등을 모조리 바깥으로 내던졌다.

    장군 귀물은 비록 중상을 입었지만, 어쨌든 응혼기 귀물답게 반응이 재빨랐다. 그는 하나 남은 손에 검은 기운을 번뜩이며 전극을 응결해냈다. 다만 전극의 위력은 처음보다 한층 약해져 거의 반투명했다.

    귀물 장군은 한 손으로 전극을 쥐고 불가사의한 속도로 크게 휘둘렀다. 찍고, 치고, 부딪치고, 비틀면서 금속이 뒤엉키는 소리가 연거푸 10여 번이나 울렸다. 전극은 마치 교룡처럼 꿈틀거리며 찰나에 10여 개의 검영을 모두 막아냈다.

    하지만 이미 심각한 부상을 당한 상태에서 심협의 일격을 막아낸 반동으로 자신도 크게 뒤로 밀려났다.

    그 순간, 검은 빛의 고리가 날아와 손쓸 틈도 없이 빠른 기세로 장군 귀물을 덮었다. 그러자 귀물 장군은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옴짝달싹 못했다. 그리고 그때, 검은 주머니가 귀물 장군의 머리 위에 나타났다. 건곤대였다.

    심협이 열 손가락을 수레바퀴처럼 결인하자, 가닥가닥 법결들이 빗방울처럼 건곤대 안으로 들어갔다. 건곤대는 곧바로 폭이 몇 장에 이르도록 불어났고, 주둥이에 검은 빛의 고리가 떠올랐다. 수많은 검은 기운이 그 속에서 요동치면서 쉬지 않고 회전했고, 강한 흡입력을 내뿜었다.

    주변 공기가 윙윙 울리면서 기류의 소용돌이가 생겨났다.

    장군 귀물은 순간 중심을 잃고 건곤대로 빨려 들어갈 기미를 보였다.

    하지만 그 순간, 귀물은 갑자기 크게 고함을 지르더니 검은 기운을 빠르게 회전시켰다. 그러자 날카로운 소리가 울리며 건곤대의 흡입력을 버텨냈다. 뿐만 아니라 가느다란 음기가 굽이굽이 장군 귀물의 체내로 녹아들면서 부서진 몸이 회복될 기미를 보였다.

    이 놀라운 광경에 심협은 낯빛이 어두워져 다섯 손가락으로 즉시 허공을 그러쥐었다. 그러자 붉은 검기 다섯 줄기가 손끝에서 뿜어져 나와 새빨간 불꽃이 어렴풋이 나타나더니 장군 귀물의 가슴과 배를 찔렀다.

    푹! 푹!

    끔찍한 소리가 연거푸 울리며 장군 귀물의 몸은 바람 빠진 고무공처럼 빠르게 쪼그라들었다. 가뜩이나 미약했던 기운은 다시 뚝 떨어졌고, 결국 그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건곤대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심협은 방심하지 않고 즉시 건곤대 속의 금고(禁錮)류 금제를 작동시켰다.

    주머니 내벽 위로 별안간 수백 개의 검은 부적 문양이 떠올랐고, 기이한 소리가 울리면서 무수히 많은 검은 실들이 쏟아져 나와 장군 귀물을 한 바퀴 또 한 바퀴 휘감았다.

    장군 귀물은 애써 몸부림쳤지만, 검은 실들에 휘감겨 호흡 몇 번 할 사이에 검은색 고치가 되어 갇혀버렸다.

    장군 귀물은 분노에 찬 고함을 내지르며 있는 힘껏 발버둥 쳤지만, 애석하게도 빠져나올 수 없었다.

    심협은 이 귀물이 음기를 흡수하여 회복하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이에 일전에 사둔 봉인 부적 몇 개를 건곤대 안에 던져 넣고 검은 고치 곳곳에 붙였다.

    회색과 하얀색, 청록색 등 각양각색의 빛이 봉인 부적에서 솟아나와 장군 귀물을 뒤덮었다. 그제야 장군 귀물은 마침내 완전히 봉인되어 호박 속에 갇힌 파리처럼 조금도 움직이지 못했다.

    그는 원래 벽곡기 정점의 귀물 한 마리만 잡아 돌파를 보조하려 했는데, 어쩌다 보니 뜻밖에도 응혼기 귀물을 잡게 됐다. 그렇다면 응혼기를 돌파하게 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리라.

    심협은 기쁨을 억누르며 건곤대를 조심스레 챙겼다. 그때, 별안간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인님, 이 두 수사들의 봉인 변신술 시간이 거의 끝나갑니다.”

    백성이 주의를 준 것이었다.

    심협이 고개를 돌려 보니 표범 같은 사내와 하얀 옷의 청년이 변한 작은 불가사리의 몸에서 안개 같은 하얀 빛이 가닥가닥 떠올랐다. 봉인이 풀릴 징조였다.

    심협은 싸늘한 얼굴로 다섯 손가락을 연달아 튕겼다. 그러자 검기가 줄줄이 쏘아져 나가 두 불가사리의 몸에 꽂히면서 붉은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이 불가사리들의 몸에 생긴 상처들은 주로 하반신에 집중되어 있었다.

    머지않아 두 줄기 환한 빛이 번쩍 스치더니 두 마리 불가사리는 다시 표범 같은 얼굴의 사내와 하얀 옷의 청년으로 변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아랫배와 두 다리에는 상처 몇 개씩 나 있어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심협이 다시 손가락을 튕기자 이번에는 몇 갈래의 검기가 쏘아져 나가 두 사람의 팔뚝을 꿰뚫었다.

    “시, 심 공자님! 저희가 크신 분을 몰라 뵙고 무례를 범했습니다. 도우께서는 제가 다음 백 년 동안 수련이 어려울 것을 생각하시어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 소인 반드시 후하게 사례하겠습니다!”

    하얀 옷의 청년은 주위를 재빨리 살피고는 방월공이 이미 죽었음을 알아차렸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그리고는 체면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황급히 큰소리로 용서를 빌었다.

    “둘째 형님, 뭐하는 거요? 우리 망산오우가 애초에 의를 맺을 때 함께 살고 함께 죽자 하지 않았소! 큰형님과 셋째 누님, 다섯째까지 다 죽었는데 우리만 살아남아 무얼 하겠소! 심가 놈아, 죽이려면 죽여라! 이 몸이 눈썹이라도 찡그리면 사내대장부가 아니다!”

    표범 같은 사내가 심협을 사납게 쏘아보며 포효하듯 외치자 하얀 옷의 청년은 부끄러운 듯 고개를 푹 숙였다.

    “하! 너희 망산오우는 함정을 파서 사람을 해치는 주제에 결의의 정 따위를 운운하며 영웅에 사내대장부라 칭할 낯짝이 있더냐!”

    심협은 신랄하게 비웃었고, 표범 같은 사내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

    그들 망산오우는 정도(正道)를 걷는 사람이라 할 수는 없었고, 살인이나 방화 같은 짓도 해왔지만, 모두 이유가 있었다. 이번에 큰 이득을 내세운 진강의 꼬임에 넘어가 음모를 꾸민 것은 확실히 비열하고 떳떳하지 못한 행동이었다.

    “너희들 일은 신경 쓰기도 귀찮으니 혼비백산하여 환생할 기회를 잃고 싶지 않거들랑 진강과 관련해 아는 바를 전부 털어놓아라!”

    이들의 음모로 목숨을 잃을 뻔했던 심협은 싸늘한 목소리로 추궁했다. 만약 일의 전말을 알아내야 하는 상황아 아니었다면 두 사람은 진즉 죽었을 것이다.

    그때, 하얀 옷의 청년이 잠시 망설이더니 물었다.

    “사실대로 말씀드리면 목숨만은 살려주시겠습니까?”

    “네가 감히 흥정을 하려 들 처지인 줄 아느냐!”

    심협이 눈을 사납게 번득이며 한 손을 높이 치켜들자 난데없이 물화살이 나타나 표범 같은 사내의 미간에 꽂혔다. 사내는 두 눈을 까뒤집고 기절했다.

    “아닙니다! 흥정이라니요, 절대로 아닙니다!”

    하얀 옷의 청년은 두려움에 황급히 말했다.

    “흥! 눈치껏 모든 일을 털어놓아라. 이따가 저 험악하게 생긴 놈을 심문해 둘의 이야기가 맞지 않으면 추혼술(*抽魂術: 혼백을 뽑아내는 법술)로 누가 개수작을 부리는 것인지 알아내 혼을 불태워버리겠다! 내 추혼술을 배운 이후로 아직 써본 적이 없거늘…….”

    심협의 섬뜩한 목소리에 이어 손바닥 한가운데에서 어두운 검은 빛이 떠올랐다. 이 빛은 천천히 회전하며 음침하기 이를 데 없는 기운을 뿜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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