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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284화 (284/1,214)
  • 284화. 반격

    다른 사람들도 그제야 평온해진 얼굴로 하나둘 방월공의 뒤를 따랐다. 다만 외눈박이 사내는 떠나는 순간까지도 탐욕스런 눈으로 심협의 머리 위에 일렁이는 붉은 불꽃을 돌아보았다.

    그때였다. 표범 같은 얼굴의 사내 손에 있던 청동보호대가 하얀 빛을 번쩍이더니 순식간에 맷돌만 한 하얀색 불가사리로 변했다. 바로 백성(白星)이었다.

    백성이 입을 쩍 벌리자 하얀 빛이 뿜어져 나와 표범 같은 사내의 몸에 꽂히더니 순식간에 체내로 들어갔다. 그러자 사내의 몸은 안개 같은 하얀 빛에 휩싸이더니 피식 하는 소리와 함께 길이가 두 뼘 정도 되는 하얗고 작은 불가사리로 변했다.

    “넷째 형님!”

    옆에 있던 외눈박이 사내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그 순간, 심협 주위에 있던 하얀 깃발이 돌연 빠르게 어두워졌고, 동시에 그의 몸 주변을 뒤덮었던 하얀 빛의 테두리도 격렬하게 요동치며 틈이 생겨났다.

    “됐다!”

    심협은 법력의 속박이 절반쯤 사라지자 곧장 통제 가능한 모든 법력을 발동시켰다. 그러자 머리 위에 떠 있던 순양검배(純陽劍胚)가 붉은 빛을 발하며 길이가 5장에 이르는 검광을 뿜어내더니 아래로 내려와 심협의 몸을 휘감았다.

    위잉!

    기이한 소리와 함께 심협은 순간 순양검배와 한 몸이 되었고, 눈부신 붉은 무지개로 변해 검의(劍意)의 파동을 일으키며 번개처럼 날아갔다.

    찌익!

    비단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울렸고, 붉은 무지개는 잠깐 멈칫했다. 그러나 결국 하얀 빛 테두리를 뚫고 나왔다.

    망산오우는 넷째의 변고에 잠시 넋이 나간 상태라, 심협 쪽의 상황을 알아차렸을 때는 그가 이미 곤경을 벗어난 뒤였다. 이에 이제 망산사우(邙山四友)가 된 네 사람의 낯빛이 크게 변했다.

    붉은 무지개는 속박에서 벗어나자마자 네 사람에게로 돌진했다. 속도는 어검비행보다도 훨씬 빨라, 번쩍 하는 사이에 가장 가까이 있던 외눈박이 사내 앞에 나타났다.

    “개자식! 넷째 형님을 살려내라!”

    외눈박이 사내는 표범 같은 사내가 이미 죽은 줄로 알고는 눈이 벌게져 붉은 무지개를 향해 검은 장도(長刀)를 사납게 휘둘렀다.

    만약 그가 차분했더라면 벽곡 중기의 수사로서 한 가닥 삶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분노로 이성을 잃었고, 이것이 패착(敗着)이 되어 삶과 죽음을 갈랐다.

    검은 장도와 충돌하기 직전, 붉은 무지개가 날렵하기 그지없는 작은 뱀처럼 절묘하게 방향을 틀더니, 외눈박이 사내의 허리춤을 스쳐 지나갔다.

    외눈박이 사내는 두 토막이 나 많은 피를 흩뿌리며 즉사하고 말았다.

    붉은 무지개는 위력이 다한 듯 번쩍하더니 해체되었고, 다시 순양검배와 심협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방금 시전한 것은 <순양검전>에 기록되어 있는 ‘인검합일(人劍合一)’의 심오한 검술인데, 안타깝게도 그는 이 검술이 아직 익숙지 않아 오래 사용할 수 없었고, 법력 소모도 컸다.

    “다섯째야! 이 개자식! 네놈 목숨으로 대가를 치르거라!”

    하얀 옷의 청년과 붉은 치마의 젊은 여인이 심협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곧바로 회색 톱니바퀴와 은빛 고리로 공격해왔다.

    그들 망산오우는 결의한 지 이미 수십 년이 되어, 가끔 마찰이 있긴 해도 이미 친남매보다도 정이 깊었다. 그런데 심협이 두 사람을 연이어 죽이는 것을 지켜봤으니 이들이 어찌 참고 견딜 수 있겠는가?

    “멈춰라! 우리는 그의 적수가 되질 못해!”

    가장 침착하고 이성적인 방월공이 다급히 두 사람을 말리려 했지만, 안타깝게도 한 발 늦고 말았다.

    심협은 두 사람이 공격해오자 기다렸다는 듯 소매를 휘둘렀다. 그러자 누르스름한 작은 도장이 나타나 노란 빛을 번득였다. 이어서 도장 주위에 다섯 개의 산봉우리 허상이 떠오르더니 회색 톱니바퀴, 은빛 고리와 맞부딪쳤다.

    꽈르릉!

    천둥소리 같은 굉음이 울렸고, 그 결과는 놀라웠다. 조그마한 도장은 끄떡없었던 반면, 회색 톱니바퀴와 은빛 고리는 광풍 속 낙엽처럼 가볍게 날아가 버린 것이다.

    두 사람, 특히 붉은 치마의 여인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녀의 은빛 고리는 은옥탁(銀玉琢)으로, 보기에는 볼품없지만 실은 9층 금제를 품고 있는 상품 법기였다. 더욱이 재질이 단단한 데다 그 안의 금제까지 어우러져 내던지면 만물을 부술 수 있을 만큼 위력적이었다.

    이것은 탐험 중 기연을 통해 얻은 것으로, 적의 법기와 정면으로 충돌해 밀린 적이 없었기에 충격이 컸다.

    ‘저 도장이 설마…… 극품 법기란 말인가?’

    여인은 여전히 짙은 빛을 반짝이는 작은 도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극품 법기는 무척이나 진귀해 응혼기 수사 중에도 갖지 못한 자가 많지만, 단번에 자신의 은옥탁을 날려버릴 수 있는 것은 오직 극품 법기뿐일 터였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붉은 치마의 여인은 분노로 타오르는 듯했던 머리가 얼음물을 퍼부은 것처럼 차분해졌다. 그리고는 황급히 날아간 은옥탁을 불러들이면서 몸을 돌려 멀리 입구 쪽으로 달아났다.

    하지만 심협은 세 사람의 법기가 정면충돌할 때부터 이미 준비를 해두었기에 순양검배가 다른 방향에서 날아왔다.

    붉은 치마의 여인은 얼마 가기도 전에 가느다란 붉은 검광이 번쩍 나타나는 것을 보았고, 목이 욱신거리는 듯하더니 이내 끝없는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

    하얀 옷의 청년은 여인마저 단숨에 목숨을 잃는 것을 보자 간담이 서늘해져 복수할 생각도 싹 사라져 즉시 몸을 돌려 달아났다.

    하지만 그때, 한 줄기 하얀 빛이 날아와 그의 몸에 꽂혔다. 백성(白星)이 때를 정확히 노려 공격을 퍼부은 것이다.

    이에 청년의 몸 위로 하얀 빛이 반짝이더니 그는 순식간에 하얀 불가사리로 변해 땅 위로 철퍼덕 떨어져 내렸다.

    “…….”

    미처 손을 써볼 틈도 없이 망산오우 중 방월공만이 남겨졌다. 더없이 교활한 그는 심협이 두 아우와 붙는 틈에 재빨리 후전 입구로 도망쳐 이미 30여 장을 달아난 상태였다.

    ‘빌어먹을! 저 심협이란 놈이 이렇게 강할 줄이야! 진즉 알았다면 진강의 포상에 눈이 멀어 이런 일을 벌이지는 않았을 텐데…….’

    방월공은 그야말로 후회막급이었다.

    그때였다.

    “네놈이 어디까지 달아날 수 있나 보자!”

    분노한 심협의 목소리가 방월공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

    심협은 손을 휘둘러 한 줄기 푸른 빛을 발하며 바닥의 수많은 법기들을 모조리 휩쓸어 거두어들였다. 표범 같은 사내와 하얀 옷의 청년이 변한 두 마리 불가사리와 백성, 외눈박이 사내와 붉은 치마 여인의 시신도 건곤대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즉시 결인하고 순양검배로 어검지술을 발휘하여 방월공을 뒤쫓았다.

    통로 깊숙한 곳의 응혼기 장군 귀물은 고강했지만, 영지(靈智)가 아직 트이지 않아 흐릿한 의식만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심협과 방월공이 입구를 향해 달려가는 것을 보고는 두 사람이 도망치려는 줄 알고 흉악한 성질이 발작하여 홍련업화에 대한 두려움마저 잊은 채 뒤를 쫓았다.

    이를 본 다른 귀물들도 모두 그 뒤를 바짝 쫓아 입구를 향해 세찬 기세로 내달렸다.

    어검지술의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한두 호흡 만에 심협은 방월공을 따라잡았고, 뒤에서 단숨에 그의 심장을 꿰뚫으려 했다.

    그때였다. 방월공이 느닷없이 몸을 휙 돌리더니 화운호로(火雲葫蘆)의 효력을 불러일으켰다.

    커다란 붉은 자갈들이 호리병에서 튀어나와 불구름이나 불새 따위로 뭉칠 틈도 없이 심협을 향해 곧장 날아들며 쇠뇌처럼 날카로운 파공음을 냈다.

    심협의 눈가가 움찔했지만, 그는 미리 대비해둔 대로 오른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오악진형인이 날아가 노란 빛을 세차게 반짝이면서 순식간에 거대한 산봉우리 허상을 만들어내 그의 앞을 막았다.

    콰르릉!

    붉은 자갈과 산봉우리 허상이 맞부딪치자 빗방울이 세차게 떨어지는 것 같은 둔탁한 소리가 한바탕 울렸다.

    산봉우리 허상은 노란 빛을 번득이며 자갈들을 전부 가볍게 막아냈고, 곧 아래로 내려가 방월공과 화운호로를 짓눌렀다.

    믿기 힘들 정도로 거대한 힘이 떨어져 내리자, 방월공은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고, 화운호로는 그의 몸에 깔렸다.

    “쿨럭!”

    노인은 피를 한 사발이나 내뿜고는 몸이 거의 납작해질 지경이 되어 화운호로로 노란 산봉우리들을 막으려 안간힘을 썼지만, 안타깝게도 소용이 없었다.

    “다음 생에는 머리를 좀 잘 쓰도록 하시오!”

    심협은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결인하여 오악진형인을 움직였다. 그러자 노란색 산봉우리 허상이 단번에 배로 불어나면서 압력도 갑자기 배로 증가했다.

    그 순간, 방월공이 광기에 물든 얼굴로 호리병에 법력을 모조리 쏟아 넣으며 버럭 외쳤다.

    “이렇게 된 바에는 다 같이 죽자꾸나!”

    푹!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노인의 두 손이 호리병 안으로 녹아 들어갔다. 이어서 노인이 혀끝을 깨물어 정혈 덩어리를 내뱉자 이 역시 번쩍이며 화운호로 안으로 녹아들었다.

    그 순간, 화운호로에서 붉은 빛이 거세게 뿜어져 나왔고, 호리병 겉면에 신비롭고 고귀해 보이는 성스러운 날짐승 문양이 나타났다. 머리에는 깃털관이 자라있고 꼬리에는 기다란 꽁지깃이 달린 모습이었다.

    거대한 영압이 화운호로에서 뿜어져 나와 놀랍게도 오악진형인의 압력을 막아냈다.

    심협은 안색이 살짝 변해 즉시 전력으로 오악진형인을 작동시켰다. 그러자 다섯 산봉우리 허상이 모두 떠올라 다섯 배의 압력으로 떨어져 내렸다. 이에 지하통로 전체가 격렬하게 요동쳤다.

    화운호로도 이 거대한 힘을 당해내지 못했고, 방월공의 몸은 그대로 납작하게 짓눌려 피범벅이 되었다. 그리고 그때, 강력한 흡입력이 화운호로에서 뿜어져 나오면서 피투성이가 된 방월공은 호리병 안으로 금세 녹아들어 사라져 버렸다.

    위잉 하는 진동음이 울리더니 태양처럼 눈부신 하얀 빛이 화운호로에서 폭발하며 통로 전체를 대낮처럼 환하게 비추었다. 동시에 무시무시한 불꽃 파동이 하얀 빛에서 폭발해 벽곡기 차원을 훌쩍 뛰어넘는 위력을 뿜어냈다.

    “이런!”

    심협은 안색이 급변해 황급히 오악진형인을 불러들이고 순양검배를 꺼내고는 두 손으로 재빨리 결인하여 순식간에 인검합일술을 펼쳤다.

    순양검배가 붉은 빛을 크게 발하더니 심협의 몸을 실은 채 눈부신 무지개로 변해 후전 깊숙한 곳으로 내달렸다.

    그 무렵, 응혼기 장군 귀물은 수많은 귀물들을 이끌고 심협을 바짝 뒤쫓아온 상태였는데, 갑자기 무시무시한 화염의 법력 파동이 느껴지자 두려운 눈빛으로 우뚝 멈춰 섰다.

    심협은 이 귀물 떼를 보고 놀라기는커녕 오히려 기쁜 기색으로 붉은 무지개를 움직여 방향을 살짝 틀었다. 그리고 장군 귀물을 살짝 스쳐 지나 그 옆의 귀물 떼를 파고들어가더니 더 깊은 곳으로 질주했다.

    그가 순양검배 속 홍련업화의 힘을 이끌어내자 무지개 위에 붉은 불꽃이 한 겹 피어올랐다. 귀물들은 홍련업화에 닿자마자 불타올라 아무런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푸른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찍! 찌익!

    비단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연거푸 울려 퍼졌다.

    붉은 무지개는 귀물들을 관통하면서도 전혀 느려지지 않은 속도로 눈 깜짝할 사이 커다란 방으로 돌아왔다.

    심협이 거대한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산이 울부짖고 해일이 이는 듯한 굉음이 뒤에서 들려왔고,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것처럼 공간이 거세게 흔들렸다. 뒤이어 눈부시게 하얀 빛이 뒤에서 휘몰아쳤다. 뜻밖에도 하얀 불길이 솟구쳐 통로 전체를 가득 채우고 그 안의 귀물들을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하얀 불길에서 엄청난 열기가 뿜어져 나와 지나는 곳마다 바위조차 그대로 녹아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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