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283화 (283/1,214)

283화. 저승의 병사

잠시 뒤, 석실에서 걸어 나온 심협의 오른손에는 청동으로 만든 팔 보호대가 하나 더 생겨나 있었다.

그 시각, 다른 사람들도 각자 돌문을 하나씩 열고 보물을 찾느라 바빴다.

심협도 얼른 몸을 돌려 다른 돌문을 부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한 방의 모든 돌문이 열렸고, 그 안의 물건들은 모조리 털렸다.

심협이 가장 빨라서 석실 세 칸이 그의 차지였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석실에서는 별로 좋은 물건을 찾지 못했지만 세 번째 석실에서는 사람 머리만 한 비취색 결정체를 찾아냈다. 눈부시게 빛나는 결정체는 그의 비취색 옥여의와 비슷한 재질 같았다. 그러나 비취색 여의와 달리 이 결정체는 앞서 얻은 음살현빙보다 더 서늘하고 음험한 기운을 내뿜었다.

이 물건의 내력을 알아보지 못한 그는 아예 통째로 거둬들였다.

모든 석실을 살펴본 여섯 사람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다른 사람들의 수확에 대해서는 일절 묻지 않고 거대한 방 깊숙한 곳의 통로로 향했다.

그때였다.

“크오오오!”

통로 깊은 곳에서 한 차례 포효가 들려왔다.

여섯 사람은 표정이 돌변해 일제히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돌아보았다.

그 소리는 처음에는 조금 흐릿했지만, 끊임없이 울려 퍼지면서 점점 더욱 분명해졌고, 얼마 후 바짝 다가왔다. 이제 거대한 방도 웅웅 울리기 시작했다.

여섯 명은 각자 황급히 법기를 꺼내 들고는 우르릉거리며 떨리는 통로를 빤히 노려보았다.

앞쪽 통로에서 진한 검은 기운이 솟구쳐 나와 성난 파도처럼 여섯 사람을 향해 휘몰아쳤다. 검은 기운 속에는 놀랍게도 갑옷을 입은 귀물이 여럿 떠다녔는데, 손에는 칼과 창 같은 무기들을 쥔 것이 모두 병사들인 듯했다. 또한 이 병사들은 하나같이 온몸이 상처투성이였고, 손이며 머리를 잘린 사람도 있었다. 머리가 깨져 피를 흘리는 이도, 창자가 뚫리고 배가 썩어버린 사람도 수두룩했다. 하나같이 전쟁터에서 전사한 후 귀물이 된 것처럼 흉악하고 무시무시했다.

한 줄기 거센 물결을 이루며 통로를 가득 메운 귀물 병사들은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빽빽했다.

심협은 동공이 바짝 졸아들었다. 이 병사들이 내뿜는 음기로 보아 적어도 연기기 7, 8층 정도였고, 장군처럼 보이는 몇몇은 벽곡기에 이르러 있었다.

“이들은 전대 왕조의 전사한 병사들이 변하여 만들어진 음혼들이다. 강력한 귀물들이니 어서 운수진을 치자!”

방월공은 크게 외치며 하얗고 작은 깃발을 꺼내 작동시켰다.

다른 사람들도 즉시 법진을 작동시키자 하얀 빛 테두리가 여섯 사람을 뒤덮었다.

운수진이 만들어지기가 무섭게 검은 기운의 음병들이 여섯 사람의 30장도 안 되는 거리까지 달려들었다. 이들은 살아 있는 사람의 피와 살 냄새를 맡자 탐욕스러운 표정으로 앞다투어 덮쳐왔다.

휙!

음기가 응집된 일고여덟 자루의 장창(長槍)이 심협을 베려고 날아들었다.

심협은 재빨리 결인한 손으로 머리 위의 비취색 옥여의를 가리켰다. 그러자 여의가 순식간에 문짝만 하게 불어나 앞을 막으며 푸른 빛을 거세게 내뿜었다.

펑! 펑! 펑!

음병들은 하나하나 부서졌고, 귀물들도 진동에 의해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동시에 심협의 손에서 뇌부가 날아갔고, 그 위로 푸른 번개가 줄기줄기 떠올라 부채꼴 모양의 곡선을 그리며 귀물들의 허리를 두 동강냈다. 푸른 번개가 몸을 휘감자 귀물들은 그대로 폭발하여 가느다란 검은 기운으로 변해 흩어졌다.

천둥번개의 힘은 본디 귀물과 상극인 데다 뇌부의 푸른 번개가 지닌 위력은 소뢰부보다도 윗길이라 연기기 귀물들 앞에서는 거칠 것이 없었다.

귀물들이 울부짖는 가운데 또다시 귀물 두 마리가 옆에서 달려들었다.

심협은 이번에도 먼저 비취색 여의를 써서 막아낸 뒤, 뇌부로 그들을 베어 죽였다.

다른 사람들도 법진의 힘에 의지하여 귀물들을 막아낼 수는 있었지만, 심협처럼 간단하지는 않았다.

심협은 손에 든 뇌부(雷斧)를 좌우로 휘두르며 빠른 속도로 신출귀몰하듯 귀물들을 뇌부로 손쉽게 베어버렸고, 눈 깜짝할 사이에 무려 30여 마리의 귀물이 그에게 죽임을 당했다.

바로 그때, 검은 안개에 휩싸인 커다란 형체가 느닷없이 검은 기운 깊숙한 곳에서 날아와 순식간에 심협 앞에 이르렀다. 그러더니 싸늘한 빛을 내뿜는 전극(*戰戟: 장창과 도끼가 결합된 무기) 한 자루가 나타나 심협의 머리를 향해 곧장 내리쳐왔다.

살벌한 기운이 전극에서 폭발하면서 기이한 자기장이 심협을 뒤덮었다.

“벽곡기 정점의 귀물!”

심협은 깜짝 놀랐지만, 눈에는 희색이 감돌았다. 그는 결인하여 머리 위의 비취색 여의를 작동시키고 다른 손으로는 건곤대를 꺼내 이 귀물을 거둬들이려 했다.

그의 법술이 비취색 여의의 힘을 불러일으키자, 여의에서 환한 푸른 빛이 번득이면서 순간 맷돌만 하게 불어나 귀물을 맞았다. 여의 위에 박힌 붉은 보석도 눈부신 붉은 빛을 발하며 푸른 빛과 어우러져 옥여의의 위력을 증가시켰다.

따당!

전극이 비취색 옥여의를 내리찍자 짙은 검은 기운이 전극에서 솟아나더니, 놀랍게도 여의의 빛을 단숨에 덮어버렸다. 그리고는 오히려 여의를 쪼개어 날려버렸다.

엄청난 힘이 전해지면서 심협의 몸속 기혈이 한 차례 들끓었고, 법력 운행도 잠시 끊어졌으며, 건곤대를 꺼내 들지도 못했다.

하지만 다행히 그의 비취색 여의는 상품 법기답게 엄청난 반동으로 그 커다란 귀물을 밀어냈다. 귀물의 몸을 감싼 검은 기운이 흩어지면서 형체가 드러났는데, 몹시 건장한 몸에는 화려한 갑옷을 입은 채 방천극(*方天戟: 봉 끝에 강철로 된 뾰족한 날과 옆에 초승달 모양 날을 부착한 병기)을 들고 있었다. 살아생전 장군이었음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이 귀물은 온몸에 고슴도치 마냥 화살이 가득 꽂혀 있어 끔찍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약간 우스꽝스러웠다.

그러나 심협은 웃지 못했다. 웃기는커녕 안색이 어두워졌다.

“벽곡기가 아니라 응혼기 귀물이다!”

방금 전 한 차례 교전으로 가늠해낸 장군 귀물의 실력은 분명 응혼기였다. 심협은 경지가 크게 올랐고 놀라운 법기와 수단들도 제법 많았지만, 응혼기 귀물을 상대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다행이라면 운수진에서 여섯 사람의 힘을 모은 상태라는 점이었다.

막 법진의 힘을 작동시켜 다섯 사람의 법력을 끌어오려던 순간, 심협은 등 뒤에서 이상한 파동이 전해져 오는 것을 느끼고는 반사적으로 몸을 활처럼 구부리면서 옆으로 피했다. 회색 빛 한 줄기가 스쳐 지나가면서 어깨에서 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고,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바로 망산오우 중 하얀 옷의 청년이 작동시킨 회색 톱니바퀴 모양 법기였다.

곧이어 은빛 광선 한 줄기도 날아왔는데, 이는 붉은 치마를 입은 젊은 여인의 은빛 고리였다.

“네놈들이 감히!”

심협은 분노로 포효했으나, 지금은 화를 낼 때가 아니었다. 그는 곧바로 뇌부를 휘둘러 은빛 고리를 튕겨냈다.

챙!

금속이 맞부딪치는 굉음이 마치 하늘을 터뜨릴 듯한 천둥소리처럼 고막을 찔렀고, 반경 10여 장에는 은빛 광채가 어지러이 번득이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뇌부는 고리와 부딪히는 순간 뜻밖에 아무런 저항력도 없이 튕겨져 날아갔다.

심협의 몸도 세차게 떨렸고, 그는 연달아 몇 걸음이나 물러나고 나서야 겨우 제대로 설 수 있었다. 그가 손에 들고 있던 건곤대와 팔뚝 위의 청동보호대도 몇 장이나 튕겨나갔다.

이어서 그가 어떤 대응을 하기도 전에 하얀 빛 다섯 줄기가 눈 깜짝할 사이에 날아와 뿌리를 내리듯 그의 몇 척 앞에 멈춰 섰다. 이 다섯 줄기 빛은 법진을 작동하는 다섯 개의 하얀 깃발들이었다.

그가 들고 있던 하얀 깃발도 손에서 튀어나와 통제를 벗어나더니 다른 다섯 개의 깃발 옆에 내려섰다.

여섯 개의 하얀 깃발은 심협 주위에 원을 이루었고, 원래 여섯 사람을 감쌌던 하얀 빛 테두리도 순식간에 크기가 줄어들어 심협을 덮쳐왔다.

그 시각, 방월공을 포함한 다섯 사람은 몇 장 떨어진 곳에서 일제히 주문을 외우며 손으로 쉬지 않고 결인을 해댔다. 그러자 하얀 빛의 테두리에서 여러 갈래의 밝고 하얀 빛줄기가 뿜어져 나와 심협의 몸을 뒤덮었다.

심협은 갑자기 산봉우리가 짓누르는 것처럼 몸이 무거워져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도 어려웠다. 체내의 법력도 보이지 않는 금제의 힘에 뒤덮여 운공하기가 힘들었다.

그의 법력이 속박 당하자 여의와 도끼의 빛도 빠르게 꺼져갔고, 두 상품 법기는 돌멩이처럼 땅바닥에 떨어졌다.

이 모든 일은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이루어져 심협은 다섯 사람에게 꼼짝없이 갇힌 채 옴짝달싹 할 수 없었다.

한편, 통로 속의 귀물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영문을 몰랐지만, 심협이 더는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고는 흥분하여 그에게 달려들었다.

수많은 귀물들의 그림자와 검은 기운이 그의 모습을 집어삼켰다. 그곳에서 광란의 연회가 벌어지기라도 한 듯 간간이 귀신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휴, 정말 조심스럽기도 한 놈이로군.”

“그러게나 말입니다. 어쨌든 결국은 해냈습니다! 큰형님, 어서 진강에게 연락하시지요.”

외눈박이 사내가 흥분한 기색으로 방월공에게 말했다.

그 옆에 서 있던 표범 같은 얼굴의 사내는 근처에 떨어진 푸른 도끼와 비취색 여의, 건곤대 그리고 청동보호대를 탐욕스런 눈으로 바라보더니 손을 흔들어 그것들을 쓸어왔다. 어차피 나중에 똑같이 나누게 될 것이기에 다른 사람들도 제지하지 않았다.

“벌써 연락했다. 지금 다른 일로 바쁜 것 같더구나. 금방 올 게다. 우린 우선 후전으로 물러난다. 여기는 귀물이 너무 많아 우리가 감당할 수 없어!”

방월공도 희색 만연한 얼굴로 답하더니 얼른 후퇴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커허헝!”

“끼야아아!”

심협을 둘러쌌던 수많은 귀신 그림자들이 갑자기 겁에 질린 울음소리를 내며 요란하게 흩어지더니 눈 깜짝할 사이 깡그리 통로 깊은 곳으로 달아났다. 그리고 그들이 있던 곳에서는 아무런 상처도 없이 무사한 심협이 서 있었다.

그는 머리 위에 1척 정도 길이의 진홍색 단검을 들고 있었다. 단검에서는 새빨간 불꽃이 활활 타오르면서 어렴풋이 연꽃 모양을 드러냈다.

귀물들은 단검의 붉은 불꽃에 몹시 겁을 먹은 듯 멀찍이 떨어져서 가까이 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심지어 응혼기 귀물마저 두려움 가득한 눈으로 단검의 붉은 불꽃을 빤히 보며 제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그랬군. 네놈들은 진강이 보낸 놈들이었어. 그가 아직도 천년영유에 미련을 가지고 있는 것이냐?”

심협은 평온한 표정으로 다섯 사람을 훑보면서 담담히 입을 열었다.

“네, 네놈이…… 어찌……?”

방월공의 눈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이내 심협이 법진에 갇혀 있는 것을 보고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의 내쉬었다. 그리고는 심협의 머리 위에 있는 붉은 단검을 힐끗 훑어보았다.

“모양은 연꽃 같고, 백귀가 물러나다니……. 저것은 홍련업화다! 네놈이 홍련업화도 조종하다니!”

방월공은 단검 위의 붉은 불꽃을 빤히 쳐다보다가 갑자기 경악한 듯 외쳤다.

“뭣? 홍련업화!”

다른 사람들도 이 놀라운 천화의 명성을 들어본 적이 있기에 크게 놀란 모습이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귀물들이 허둥지둥 달아난 이유를……. 녀석들은 천적을 만난 것이다.

“흥! 네놈이 홍련업화를 지녔다고 한들 또 어쩔 것이냐? 네놈은 지금 운수진에 갇혀 곧 법력이 완전히 흩어질 것이다. 그때 가서 홍련업화가 네 목숨을 구할 수 있는지 보자꾸나. 하하하! 자, 우리는 이만 가자!”

방월공은 눈빛이 크게 흔들렸으나, 곧 평정을 되찾고는 몸을 돌려 물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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