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282화 (282/1,214)
  • 282화. 부귀영화를 구하려면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법

    심협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는 뇌부(雷斧)에 법력을 주입했다. 이어서 그가 손을 들어 허공을 가르자 뇌부 위로 빽빽하게 나타났던 푸른 번개가 줄기줄기 쏘아져 나와 뒤엉키면서 1장 길이의 뇌부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이 뇌부 그림자는 번쩍하며 몇 장을 훌쩍 뛰어넘어 검은 돌 위를 베었다.

    우우웅!

    검은 돌 위의 법진은 위협을 느낀 것처럼 핏빛을 세차게 내뿜었고, 기이한 소리를 울리면서 빠르게 회전해 여섯 사람의 공격에 정면으로 맞섰다.

    꽈르릉! 쾅!

    굉음이 연이어 터져 나오면서 석실 전체가 격렬하게 흔들렸고, 바닥도 지진이 난 것처럼 들썩여 커다란 자갈과 먼지가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검은 돌 위의 핏빛은 단번에 절반 이상 흩어졌고, 남아 있던 핏빛도 광풍 속의 불꽃처럼 미친 듯이 번쩍였지만, 결국은 점차 진정되었다. 뿐만 아니라 검은 돌 위의 법진 문양이 번쩍이면서 핏빛이 빠르게 밝아지더니 원래 모습을 회복해갔다.

    “이 법진은 이상할 정도로 견고하니 평범한 연합 공격으로는 깨기 힘들 것 같다. 운수진을 치자꾸나! 전 도우, 그대의 수련 경지가 가장 높으니, 그대를 중심으로 하는 게 좋겠소!”

    방월공은 진중한 얼굴로 고민하더니 단호하게 소리쳤다. 이어서 손을 뒤집어 아까 심협에게 준 것과 똑같은 작은 깃발을 꺼내더니 몸을 날려 심협 옆에 섰다.

    망산오우 다른 네 사람도 그 말을 듣고 각자 하얀 깃발을 꺼내 들고 심협 사방에 서서 운수진을 운행했다. 심협을 법진의 중심으로 삼는 게 마음에 들지는 않았으나, 상황이 상황인 만큼 다들 별말은 없었다.

    심협도 자신의 하얀 깃발을 꺼내 법력을 주입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섯 명이 들고 있던 깃발에서 하얀 빛 여섯 덩이가 피어올라 서로 연결되면서 빛 테두리를 만들어 이들을 덮었다.

    법진 한가운데 선 심협은 침착해 보였지만, 속으로는 꽤 놀라는 중이었다.

    진도를 보긴 했지만 실제로 작동한 운수진은 기이했다. 실로 정교한 구석이 있어서 법집이 열리자마자 마치 통로가 열린 것처럼 여섯 사람의 법력이 서로 연결된 것이다. 만약 누구 한 사람의 법력이 쇠약해지면 다른 사람이 곧바로 지원할 수 있고, 여섯 명의 법력을 한 사람에게 집중해 그의 법력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킴으로써 순식간에 강력한 공격을 가할 수도 있는 법진이었다.

    ‘망산오우는 다섯 명이니 이 진법은 그들에게 그다지 실용적이지 않았겠군.’

    심협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망산오우는 엄숙한 표정으로 손에 든 작은 깃발을 흔들며 끊임없이 법진의 힘을 운행시켰다.

    심협은 눈을 살짝 크게 뜨고 다섯 줄기 법력이 끊임없이 모여들어 자신의 체내로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그러자 그의 체내 법력은 갑자기 몇 배로 치솟아 성난 파도처럼 경맥 안을 내달리며 모든 경맥을 부풀어 오르게 했다. 다행히 그가 척맥단을 복용하여 경맥을 튼튼히 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이 힘을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쿵!

    거대한 위압이 그의 몸에서 폭발하여 주위 공기까지 진동했다.

    “하아앗!”

    심협이 길게 울부짖으며 뇌부의 힘을 불러일으키자 몇 배나 굵어진 푸른 번개줄기가 도끼 위에 나타났다.

    콰지직! 콰직! 콰르릉!

    석실 안은 순간 폭풍과 우렛소리로 가득 찼다. 심협의 몸도 이 푸른 번개에 파묻혔고, 온몸 위아래로 번갯불에 휘감겨 마치 뇌신(*雷神: 전설 속 천둥 번개의 신)이 강림한 것만 같았다.

    “핫!”

    심협은 두 손으로 뇌부(雷斧)를 잡고 허공을 내리쳤다.

    쫙!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10여 장 길이의 명주 천 같은 푸른 도끼의 잔상이 뇌부에서 뿜어져 나와 석실 전체를 눈부신 번갯불로 가득 채웠다.

    이 커다란 도끼는 무시무시한 기세를 담은 채 검은 돌을 세차게 베었다.

    꽈르릉!

    굉음과 함께 검은 돌 위의 핏빛은 가까스로 쪼개졌고, 도끼의 잔상은 한 번 번쩍이더니 검은 돌에 빨려 들어간 것처럼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심협은 내심 긴장했다. 이번 일격은 자신의 전력을 다한 것으로, 만약 이 공격으로도 저 봉인을 깰 수 없다면 그로서는 더 이상 방법이 없었다.

    다행히 그가 우려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뇌부의 잔상을 빨아들인 검은 돌에 쩍 하는 소리와 함께 균열이 나타난 것이다.

    이 균열은 순식간에 검은 돌 곳곳으로 뻗어나갔다. 그리고 검은 돌은 결국 무수한 돌가루로 변해 바람을 타고 사라졌다.

    검은 돌이 있었던 벽에서는 검은 빛이 번쩍이더니 높이 1장 정도의 동굴이 소리 없이 나타났다. 동굴은 어두컴컴해서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없었다.

    우우우!

    울부짖는 음산한 바람이 검은 동굴 안에서 불어오면서 한기가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죽여! 죽여! 죽여!

    음산한 바람소리에는 포악하고 광기 어린 사념(邪念)이 담겨 있어 여섯 사람의 머릿속으로 곧장 파고들었다. 동시에 이들의 눈앞에는 끝없는 전쟁 장면이 떠올랐다. 피로 물든 산하, 산을 이룬 시체더미 그리고 하늘을 뒤덮을 듯한 백골들…….

    심협은 콧방귀를 뀌고는 <연신비전>의 비술을 운공했다. 그러자 머릿속에 위로는 하늘에 닿고 아래로는 대지로 이어지는 웅장한 산봉우리 허상이 떠오르면서 전쟁의 환상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는 ‘부주진신법(不周鎭神法);이라는 비법이었다. 전해지기로는 상고시대 때 부주산(不周山)이라는 하늘을 떠받칠 듯 커다란 산봉우리가 있어 하늘의 기둥이라 불리며 모든 악마들을 짓누른 채 억만 년간 굳건히 서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신산(神山)은 훗날 물의 신 공공(*共工: 중국 신화 속 물의 신으로, 불의 신 축융과 싸우다가 부주산을 들이받음)이 부딪히면서 무너지는 바람에 더는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고 했다.

    부주진신법은 신혼(神魂)의 힘으로 부주 신산을 시각화하여 모든 망령된 생각을 억누르는 비법이다. 이 법술을 심오한 경지까지 수련하면 신혼의 힘을 산처럼 우람하고 어떤 외력도 영향을 미치지 못할 정도로 튼튼하게 만들 수 있다.

    지금 심협은 다른 사람들과 운수진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었기에 그가 머릿속으로 시각화한 부주산의 영봉(靈峰) 허상은 그들의 의식에도 전달되었다. 이에 망산오우는 부르르 떨더니 차례로 음산한 바람의 살의의 영향에서 벗어났다.

    “전 도우의 도움에 깊이 감사드리오. 전 도우가 아니었더라면 우린 정말 그 살벌한 환상을 떨쳐버리기 힘들었을 거요.”

    방월공이 심협에게 감사를 표했다.

    심협은 이 육합번곤진(六合翻滾陣)이 다섯 사람의 생각까지 하나로 연결할 수 있을 정도로 신묘하다는 것에 속으로 의아해하면서도 대충 겸양의 말을 했다.

    운수진을 가동하는 데 꽤 많은 법력이 들었고, 이제 입구의 봉인은 풀어졌으니 여섯 사람은 곧 법진을 해제하였다.

    망산오우는 눈앞의 동굴 입구를 바라보면서도 약간 망설였다. 아직 후전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음풍 한 줄기만으로도 이렇게 강력하니, 저 안의 귀물들은 얼마나 위험할지 우려가 된 것이리라.

    “여기까지 왔는데 물러날 수 있겠느냐? 부귀영화를 구하려면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법. 자, 모두 가자꾸나.”

    방월공의 말에 망산오우의 다른 네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을 다잡았다.

    물론 망산오우가 물러나면 혼자라도 갈 생각이었던 심협이야 말할 것도 없이 방월공의 말에 동의했다.

    그렇게 여섯 사람은 각자 법술로 몸을 보호하며 함께 검은 동굴로 들어섰다.

    동굴 안은 칠흑처럼 어두워서 자신의 손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벽곡기 수사였기에 머지않아 시력을 되찾았다.

    이곳은 폭 10여 장의 동굴로, 바닥에는 평평한 청석 벽돌이 깔려 있었다. 벽돌 위에는 두꺼운 잿빛 얼음 결정이 맺혀 하늘에 닿을 듯한 한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벽곡기 경지인 여섯 사람마저 추위에 이가 덜덜 떨리고 피가 다 어는 듯했다.

    이들은 황급히 공법을 운공하여 한기를 막아냈다.

    심협은 바닥의 잿빛 얼음 결정을 몇 번 살펴보다가 머릿속에 문득 예전 귀시(鬼市)에서 산 <귀계영초대전(鬼界靈草大全)>의 한 대목이 떠올라 즉시 뇌부(雷斧)를 휘둘러 이 잿빛 얼음결정을 내리친 뒤 재빨리 거둬들였다.

    망산오우는 그의 행동을 보고 다들 어리둥절했다.

    “이것은 고분의 음풍(陰風)이 이곳 시살(屍煞)의 기운과 뒤섞이며 응결된 음살현빙(陰煞玄氷)이다. 담겨 있는 음살의 한기가 일반적인 천년현빙(千年玄氷)보다 강하며, 음 속성 법기를 만드는 데 더없이 좋은 재료지. 어서들 챙기거라.”

    방월공도 그제야 이 잿빛 현빙의 내력을 떠올리고는 말했다. 그러자 그의 아우들은 황급히 법기를 꺼내 이 잿빛 현빙을 깨부수고 거둬들였다.

    이곳의 음살현빙은 많지 않아서 여섯 명이 손을 쓰자 금방 분배가 끝났다.

    동굴 깊은 곳에는 아래로 통하는 계단이 하나 있었다.

    여섯 사람이 계단을 따라 내려가자 전전과 비슷한 통로 하나가 나타났다. 다만 이곳의 통로는 훨씬 더 크고 넓어서 일고여덟 명이 나란히 걸어가도 비좁지 않을 것 같아 보였고, 높이도 4장쯤 되어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역시 황족의 묘지답군. 통로 하나도 이렇게 웅장하다니…….”

    방월공은 눈앞의 광경에 중얼거렸다.

    “큰형님, 그만 감탄하시고 어서 가시지요. 앞에는 분명 더 많은 보물이 있을 겁니다.”

    음살현빙을 적잖이 챙기면서 보물의 맛을 알게 된 외눈박이 사내는 흥분한 목소리로 재촉했다.

    “다섯째야, 조급해하지 마라.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모르니 조심하는 것이 상책이니라.”

    방월공은 침착하게 대꾸했다.

    대략 1각 정도 조심조심 나아가니 거대한 지하 공간이 펼쳐졌다. 사면의 벽에는 일정한 거리마다 굳게 닫힌 돌문이 무려 10여 개나 있었다. 그 위에는 이상한 무늬가 새겨져 있었는데, 도무지 무슨 방인지 알 수가 없었다.

    거대한 방 가장 안쪽에는 더 깊은 곳으로 통하는 검은 통로가 보였다.

    “이 방들은 무척 비범해 보이는군요. 안에 보물이 숨겨져 있을 수도 있으니 한번 열어볼까요?”

    외눈박이 사내가 탐욕스러운 표정으로 묻자 방월공도 마음이 조금 동한 듯했다. 그러나 그는 잠깐 망설이다가 심협의 의사를 물었다.

    “전 도우는 어찌 생각하오?”

    “그는 한낱 외부인일 뿐인데 굳이 일일이 물어보십니까?”

    외눈박이 사내는 불만스러운 듯 툴툴거렸으나, 심협은 그에게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이 석실들은 확실히 살펴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석실이 많으니 흩어져서 살펴보지요. 보물을 찾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각자의 운에 달려 있는 겁니다.”

    그렇게 말한 심협은 어느 돌문 앞에 서더니 뇌부로 돌문을 내리쳤다.

    꽝!

    아무런 금제도 없었지만, 이 문은 어떤 재료로 만들어졌는지 몹시도 튼튼하여 심협이 3할의 법력을 끌어낸 공격으로도 겨우 작은 틈 하나 낸 것이 전부였다.

    심협은 다시 7할의 법력을 이끌어내 뇌부에 줄줄이 푸른 번갯불을 떠오르게 한 뒤, 다시 돌문을 세차게 내리쳤다. 이번에는 문짝이 절반 정도 부서졌다.

    망산오우도 각자 돌문을 하나씩 찾아 깨기 시작했다.

    심협이 또다시 일격을 가하자 돌문은 마침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무너졌다.

    문 너머는 뜻밖에도 사면이 10여 장에 이르는 석실이었다.

    심협은 바짝 경계하며 석실 안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석실 안쪽은 서재 비슷한 곳으로, 책장 두 개와 책상 하나가 놓여 있었으며, 그 위에는 많은 책들이 쌓여 있었다.

    이 서책들의 종이는 질이 좋은 편이라 최소한 수십 년이 지난 것이 분명한데도 썩지 않았다. 그리고 그 수십 년간 아무도 들어온 적 없는 것인지 석실 안은 책장이며 책상 위에 먼지가 가득했다.

    심협은 책상에서 손 가는 대로 서책을 한 권 집어 들고 먼지를 툭툭 털어낸 뒤 훑어보다가 곧 실망한 기색으로 내려놓았다. 공법이나 영재에 관한 것이 아니라 토목과 기계장치 책으로, 갖가지 함정 장치의 제작 방법과 공성(攻城)기구, 선박, 수레의 설계도 따위가 실려 있었다.

    그는 또다시 몇 권을 훑어봤으나, 모두 기계장치 방면에 관련된 책이었다.

    “방월공이 이 고분의 주인은 기관의 대가라고 했지. 이 책들은 그가 남긴 것인가?”

    심협은 그렇게 생각하며 방 곳곳을 뒤져봤지만, 비슷비슷한 책들 외에는 별다른 것이 없음을 알고는 퍽 실망했다. 물론 좋은 책이 많을 수도 있겠지만, 하나하나 살펴볼 겨를이 없었다. 다행히 그에게는 두 개의 저물법기가 있고 공간이 넉넉했기에 일단 모든 책을 집어넣었다.

    일을 마치고 떠나려던 그는 바깥을 내다보고는 잠시 주저하다가 다시 방 가장 안쪽으로 들어가 통령역요 술법을 읊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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