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280화 (280/1,214)
  • 280화. 다시 만난 다섯 사람

    통로는 제법 길어서 50여 장을 나아간 뒤에야 끄트머리에 이르렀다. 그곳에도 석실이 하나 있었는데, 그리 넓지는 않았지만 내부 장식은 좀 전의 석실과 비슷했다.

    당연히 이곳도 휑하니 비어 있었는데, 중요한 것은 여기에도 똑같이 세 방향으로 통하는 세 개의 통로가 있다는 점이었다.

    심협은 잠시 어안이 벙벙해졌다. 하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그중 한 곳으로 들어섰다.

    이런 상황이 반복됐다. 통로 하나의 끝마다 석실이 하나씩 나타났고, 그곳에는 두 개 또는 세 개의 통로가 있었다.

    처음에는 조금 놀랐던 심협도 이런 일이 몇 차례 거듭되자 점차 평온해졌다.

    이렇게 통로 몇 개를 지나자 음살의 기운이 더욱 짙어졌다. 아마도 이 통로들은 지하로 통하는 듯했다. 그리고 점점 통로와 석실의 훼손도 덜했다. 여기까지 온 사람이 많지 않다는 의미이리라.

    그러나 아직까지 귀물은 한 마리도 나타나지 않았다.

    ‘설마…… 아직도 고분 변두리에 불과한 것인가?’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이 고분은 그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을 만큼 넓다는 의미였다.

    그렇게 한참을 나아가던 중이었다. 발아래 지면이 갑자기 움직이더니 땅속에서 검은 그림자 하나가 불쑥 튀어올라 그의 얼굴로 곧장 달려들었다.

    심협은 걸음을 엇갈려 디디며 옆으로 피하면서 손에 든 뇌부를 휘둘렀다. 도끼 위로 푸른 번개가 줄줄이 나타나 검은 그림자를 쪼갰다.

    쾅!

    뭔가 부서지는 듯한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고, 검은 그림자는 순식간에 깔끔히 두 토막으로 잘려 땅에 나뒹굴었다. 자세히 보니 거무튀튀한 해골귀물로, 하반신은 움직이지 않았지만, 상반신은 땅에서 튀어 올라 멀리 달아났다.

    물론 녀석이 도망가도록 내버려둘 심협이 아니었다. 그는 막 비취색 여의를 움직여 추격하려다가 불현듯 법결을 거두고는 다른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검은색 작은 주머니가 그의 손에서 날아가 눈 깜짝할 새에 해골귀물을 따라잡았다. 바로 건곤대였다.

    검은 빛의 고리가 주머니 속에서 날아가 뒤덮자, 해골귀물은 곧 뻣뻣하게 굳어버려 꼼짝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 순간, 건곤대가 갑자기 몇 곱절이나 커져서는 해골귀물의 몸을 단번에 집어삼켰다.

    심협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휘두르자, 건곤대가 순식간에 본래 크기로 줄어들어 그의 손으로 날아 돌아왔다.

    건곤대 안에는 방 하나 정도의 검은 공간이 있었고, 액체 같은 무수한 검은 빛이 그 안에서 출렁였다.

    해골귀물이 그 안에 떨어지자 몸을 속박했던 힘은 순간 사라졌다. 녀석은 놀라 허둥대며 주위를 둘러보더니 울부짖었다. 이어서 뼈다귀만 남은 두 손에 검은 빛을 번쩍이며 마치 두 자루 칼처럼 검은 공간의 벽을 사납게 찔러댔다.

    심협은 건곤대의 위력을 시험해볼 마음에 그 안의 금제로 해골귀물을 속박하지 않고 내버려두었다.

    이 해골귀물은 연기 5, 6층 수사에 견줄 만했고, 몸의 절반을 잘리긴 했지만 여전히 위력이 있었다.

    녀석이 손을 휘두르면서 간간이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그러나 장벽에 흐르는 검은 빛은 마치 미끄러운 기름 같아서, 해골귀물의 공격은 8할이 미끄러지고 말았다. 심지어 이 검은 장벽은 두꺼운 소가죽처럼 튼튼해서 빗나가지 않은 2할 정도의 공격에도 끄떡없었다.

    “좋아!”

    심협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며 웃더니 건곤대 안의 공격 금제를 발동시켰다. 그러자 검푸른 빛이 쏟아져 나와 해골귀물을 감쌌고, 녀석의 몸은 부식성이 강한 산성 액체를 끼얹은 것처럼 빠르게 녹기 시작했다.

    해골귀물은 도망쳐 숨으려 했으나 헛수고였고, 가뜩이나 망가진 몸은 금세 절반쯤 녹아 바닥에 완전히 주저앉았다.

    검푸른 빛이 이 귀물을 감싸고 맷돌질을 하듯 반복해서 짓이기자, 잠시 뒤 해골귀물의 몸은 완전히 녹아 검고 끈끈한 액체가 되어버렸다.

    심협은 살짝 놀라 숨을 한 번 들이마셨다. 귀물들은 본디 맹독에 강한 저항력을 지녔건만, 놀랍게도 호흡 몇 번 할 사이에 해골귀물이 녹아버리지 않았는가!

    “이 주머니에 담긴 음독강기(陰毒罡氣)가 이 정도로 대단할 줄이야!”

    그는 기쁜 듯 미소를 지으며 건곤대를 소매 안으로 다시 불러들이고는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 * *

    눈 깜짝할 새 한나절이 지났다.

    심협은 어느 통로에서 법력을 회복하는 단약을 하나 꺼내 먹고는 운기조식을 했다.

    이 무렵, 그는 이 고분이 얼마나 넓은지 완전히 파악했다. 내부의 통로들은 구불구불 복잡하게 얽혀 있고, 수시로 갈림길이 나타났으며, 사방팔방으로 통해 있어 그야말로 지하미궁 같았다.

    그는 이 한나절 동안 얼마나 많은 석실과 얼마나 많은 통로를 지났는지 알 수 없었지만, 여전히 고분 밑바닥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대신 그간 수확도 적지 않아서 음(陰) 속성 영재도 꽤 많이 찾아냈고, 여러 귀물들도 맞닥뜨렸다. 다만 안타깝게도 그중 가장 강한 귀물도 벽곡 중기에 불과했다.

    “점점 깊은 곳으로 가고 있는데도 더 강력한 귀물은 나타나지 않는군. 설마 육화명의 정보가 잘못된 건 아니겠지?”

    불쑥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다. 믿는 사람은 의심하지 말고, 의심스러운 사람은 믿지 말라 했지.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의심하지 말고 더 가보자.”

    그는 운기조식을 마친 뒤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전진했다.

    한데 또 연이어 통로 몇 개를 지난 심협은 문득 걸음을 멈추고 앞을 바라보았다. 저 앞에서 무언가 부딪치는 듯한 소리가 간간이 들려왔고, 고함도 뒤섞여 있었다. 아마도 싸움이 난 듯했다.

    하지만 그는 놀라지 않았다. 음령산맥은 음기가 짙어 갖가지 음 속성 영재가 많다 보니 수사들이 자주 오는 곳이었다. 게다가 그렇게 찾아도 적당한 귀물을 찾지 못하던 참이라 다른 수사가 있는 듯하자 정보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마저 생겨났다.

    심협은 속도를 높여 이내 통로 끝에 다다랐다.

    그곳에는 거대한 석실이 있었다. 내부는 훤히 트여 있었고, 한구석에 관이 하나 놓여 있는 것이 전부였다. 관은 땅바닥에 엎어져 있었는데, 안에서 붉은 피가 흘러나와 바닥을 온통 붉게 물들이며 짙은 피비린내와 음기를 뿜어냈다.

    관 근처에서는 수사 다섯 명이 핏빛 강시 하나와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이 광경을 본 심협은 흠칫 놀랐다.

    ‘이럴 수가! 그들이잖아?’

    다섯 수사는 바로 단양자의 저택 밖에서 만난 망산오우였다.

    한편, 핏빛 강시는 키가 족히 1장은 되어 보였고, 날카로운 이빨이 잔뜩 있었는데 입 밖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피부는 마치 오래된 나무껍질 같은 데다 몹시 단단해서 칼과 창이 꿰뚫을 수 없을 정도였다.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탓에 핏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저 관에서 뛰쳐나온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이 강시는 제법 강력해서 벽곡 후기에 도달해 있었다. 망산오우는 수적으로 우세한 덕에 싸움을 유리하게 끌어갔지만, 강시를 죽이지는 못하고 있었다.

    “큰형님, 화운호로(火雲葫蘆)를 쓰시지요. 후전(*後殿: 안쪽에 있는 궁전)에 가는 것이야말로 중요한 일이니, 여기서 너무 오래 지체하면 안 됩니다!”

    망산오우 중 백의의 청년이 오랜 싸움에도 강시가 쓰러지지 않자 다소 초조한 듯 우두머리인 유포 차림 노인에게 외쳤다.

    망산오우와 구면이긴 해도 친구는 아니었기에 슬그머니 물러나려던 심협은 우뚝 멈춰 섰다.

    ‘후전? 거기 뭔가 있는 건가?’

    그가 다시 상황을 살피고 있는데, 유포 차림 노인이 소매를 떨치며 외쳤다.

    “좋다!”

    난데없이 새빨간 호리병이 하나 나타났고, 노인은 그 호리병을 철썩 두드렸다. 그러자 호리병 주둥이에서 붉은 빛이 번쩍이더니 그 안에서 콩알만 한 자갈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 새빨간 자갈들은 공기에 닿자마자 불꽃이 솟아오르며 빠르게 불어나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시뻘건 불구름으로 변해 사나운 기세로 핏빛 강시를 때렸다.

    그 순간, 석실의 기온이 훅 치솟아 밖에 서 있던 심협까지도 화롯가에 서 있는 것처럼 후끈함을 느꼈으니, 석실 안은 어떠할지 짐작할 수도 없었다.

    망산오우의 다른 네 사람은 벌써 빠르게 뒤로 물러났고, 오직 핏빛 강시만이 그 자리에서 사납게 덮쳐오는 새빨간 불구름에 맞섰다. 그러나 강시의 얼굴에는 얼핏 두려움이 스쳤다. 그가 온몸에서 강한 핏빛을 뿜어내며 두 손을 앞으로 휘두르자 핏빛이 몸을 벗어나 그 앞에 하나의 장막을 이루었다.

    이를 본 유포 차림 노인은 경멸하듯 피식 웃더니 열 손가락을 수레바퀴처럼 결인했다. 그러자 붉은 불구름이 갑자기 불어나면서 살짝 용솟음치더니 길이가 10여 장에 이르는 새빨간 불새로 변했다. 그러더니 배는 빨라진 속도로 순식간에 날아들어 강시 앞을 막아선 핏빛 장막에 거세게 부딪혔다.

    꽈르릉! 콰쾅!

    커다란 파열음이 끊임없이 울렸다. 붉은 화염은 피처럼 붉은 빛에 닿자마자 끓는 기름이 찬물을 만난 것처럼 연이어 폭발했다.

    붉은 불새의 위력이 핏빛 장막의 방어력을 뛰어넘는 것인지, 가뿐히 뚫고 들어가 강시의 몸을 사정없이 공격했다.

    핏빛 강시는 짚단처럼 날아가 벽에 세게 처박혔고, 온몸이 활활 타오르는 불길에 휩싸인 채 불덩이가 되어 땅에 뒹굴며 고통스런 비명을 내질렀다.

    그 새빨간 불꽃은 평범한 불이 아닌지, 불과 호흡 몇 번 하는 사이에 핏빛 강시는 잿더미가 되어버렸다.

    이를 본 심협의 눈에 놀라움이 스쳐 지났다. 유포 차림 노인이 지닌 화운호로는 위력이 대단해 꽤나 뛰어난 상품 법기인 것 같았다.

    “웬 놈이 엿보고 있는 것이냐? 썩 나오너라!”

    유포 차림 노인은 휙 돌아서더니 심협이 숨어 있는 통로를 마주보고 섰다. 새빨간 불새는 곧 다시 날아와 노인의 머리 위를 맴돌며 언제라도 튀어나갈 듯 대기하고 있었다.

    다른 네 사람도 깜짝 놀라 즉시 유포 차림 노인 곁으로 다가오더니 통로를 포위했다.

    심협은 미간을 찌푸렸다.

    ‘저 노인은 반응이 아주 빠르군. 잠깐 기운이 흐트러진 것만으로도 눈치 채다니…….’

    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재빨리 문질러 거의 한순간에 각진 얼굴의 청년으로 변한 뒤, 느릿느릿 걸어 나갔다.

    “오해입니다. 전(田)모는 우연히 누군가 도술을 쓰며 싸우는 소리를 듣고 와 본 것이지, 절대 여러분을 몰래 엿볼 생각은 없었습니다.”

    심협은 당황한 듯 말했는데, 목소리도 거칠게 변해 있었다.

    “귀하는?”

    유포 차림 노인이 심협을 위아래로 훑어본 뒤 물었다.

    “저는 전철생이라 합니다. 도우들의 존함은 어찌 되시는지요?”

    심협은 가명을 하나 대고는 웃음을 머금으며 말했다.

    “흥! 친한 척 굴지 마라! 네놈은 언제 여기에 온 것이냐? 우리가 방금 하는 말을 들었느냐?”

    외눈박이 사나이가 흉악한 눈빛을 번뜩이며 한 걸음 다가섰다.

    이런 반응을 본 심협의 낯빛도 싸늘하게 식었다. 그는 체내의 법력을 모조리 불러일으켜 벽곡기 정점의 강대한 위압을 남김없이 드러냈다.

    “들었으면 어떻고 못 들었으면 또 어떻소? 들었다 하면 나를 죽여 입막음이라도 하겠다는 거요? 어디 할 수 있으면 해보시구려!”

    망산오우의 표정이 급변했다. 그들 중 오직 유포 차림의 노인만이 벽곡 후기의 경지였고, 네 사람은 모두 벽곡 중기에 불과했던 것이다.

    “다섯째는 경거망동하지 마라!”

    유포 차림의 노인이 꾸짖자, 외눈박이 사내는 황급히 대꾸하고는 슬그머니 물러났다.

    심협은 가볍게 콧방귀를 뀌고는 폭발시켰던 기운을 거두어들였다.

    “전 도우, 인사드리오. 우리 다섯 사람은 망산에 살고 있어 수선계의 벗들이 망산오우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오. 나는 방월공이라 하고, 여기 네 사람은 나의 의남매들이외다.”

    유포 차림의 노인, 방월공은 공수하여 예를 갖추고는 다섯 사람을 차례로 소개한 뒤, 결인하여 호리병을 끌어당겼다. 그러자 붉은 불새가 날아 돌아와 다시 빨간 자갈돌로 변하더니 호리병 안으로 들어갔다.

    “망산오우시로군요. 만나 뵙게 되어 기쁩니다.”

    심협은 화운호로를 흘끗 쳐다보고는 손을 들어 예를 갖추었다.

    “전 도우가 양해해주시오. 워낙 중요한 일과 얽힌 은밀한 논의를 하던 중이라 다섯째의 언사가 조금 격해졌던 것뿐이니 도우는 책망치 말아주길 바라오.”

    방월공이 해명하듯 말하자 심협은 눈썹 꼬리를 치켜 올리며 물었다.

    “아까 무슨 후전이라고 그러셨던 것 같긴 한데…….”

    0